주님이 찾고 있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줄 교회와 성도(왕하7:1~10)[창립기념감사주일설교]_2021-07-18(주일)

by 갈렙 posted Jul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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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KNWnvsRv-sw
날짜 2021-07-18
본문말씀 열왕기하 7:1~10(구약 57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교회창립기념,핏값으로세워진교회,온라인성도,사마리아성의기근원인,기근재앙이사라진이유,굶주림의재앙,여호람왕,회개,복음전파,네명의나병환자,동탄명성교회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이 땅 위에 세우신 목적은 무엇인가? 전공하는 신학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를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를 만드는 일인 것이다. 그것이 구원의 최종목표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천국에 들어가서도 거기서 왕노릇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이 더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과 회개"다. 믿음으로 신앙생활의 첫발을 내딛지만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지만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간 한 편 강도의 경우를 보라. 그렇다. 회개없이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한 편 강도를 보라. 그는 행한 것이 없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믿음도 필요하고 회개도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회개는 어떠한 회개가 있는가? 사실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회개(회심)의 방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회개의 방면도 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우리를 저주로부터 탈출하게 도와주는 회개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어떤 것이 과연 진정한 회개이며,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그리고 회개 후에 나에게 축복이 주어지면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2. 왜 사마리아에 굶주림의 재앙이 찾아왔는가?

  왜 사마리아에 굶주림이 찾아왔던 것일까? 겉으로 보기에는 아람나라의 벤하닷2세가 쳐들어왔고 그들이 사마리아 성을 에워쌓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이 외부와 차단되었으며 시간이 지나자 먹을 식량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굶주림의 기근이 찾아온 것은 그들의 선조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출20:5). 왜냐하면 그의 부친 아합왕과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이스라엘을 바알신앙의 우상의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잡아다가 모조리 죽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사한 이세벨 때문에 죄없는 나봇이 포도밭에서 돌에 맞아서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죄값은 비참했다. 점차 식량이 떨어지니 식료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부정한 짐승인 나귀가 음식으로 팔렸는데 나귀의 머리 하나가 은80세겔이 나갔다. 이는 노동자가 1년치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벌어야 할 돈이었다. 뿐만 아니라 비둘기의 똥처럼 생긴 콩의 1/4갑이 무려 은5세겔에 팔리고 있었다. 노동자의 4일치의 품삯이 은1세겔이었으니, 20일동안 일해서 벌어야 할 돈으로 겨우 콩 1/4조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아는가? 왕이 들으니 그때 성 안에서 두 여인이 싸우는 소리를 들렸다. 두 여인이 합의하여 그날에 한 여인의 아들을 서로 삶아먹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다른 여인의 아들을 삶아먹기로 했는데, 그 여인이 그만 자기자식을 숨겨버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차마 들을 수 없는 참혹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세 번 있었다. B.C.854년에 이때에 한 번 있었고, 남유다가 멸망할 때에 또 한 번 있었으며(B.C.586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멸당당할 때(A.D.68~70)에도 그랬다. 

 

3. 왜 사마리아 성에 임한 굶주림이 하루 아침에 끝날 수 있었는가?

  어떤 이는 말한다. 사마리아 성에 기근이 끝나게 된 것은 "이제 하루가 지나면 고운 밀가루 한 스아가 한 세겔로 팔리게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에 팔리게 될 것(왕하7:1)"이라고 한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 때문이라고 말이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 뿐이지 자신이 직접 지어내어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이렇게 바꾸어야 옳다. "왜 하나님께서 기근의 재앙을 풀어주셨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에 임한 기근의 재앙을 왜 풀어주신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냥 확 마음을 바꾸시면 되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따라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아무 이유도 없는데 그냥 마음을 바꾸시지는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곧바로 마귀의 참소가 있을 것이다. 마치 욥처럼 말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불의하게 행하신다면 이 우주에 있는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수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또 어떤 이는 말한다. 그때 성문 어귀에 있던 네 명의 나병환자가 이판사판의 상황에서 적에게 항복하기 위하여 나아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자국소리와 그들이 가진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거대한 군대의 소리로 바꾸어주셨고, 전차 바퀴 소리와 말 소리로 바꾸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바꾸신 것은 맞다. 그러니까 그 소리를 듣고 아람 군대가 그 밤중에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던 것이다. 그때 아람 군인들은 너무나 급한 나머지, 자기들이 쳐놓은 장막도 그대로 놔두고, 매놓았던 말과 나귀도 그대로 놔두고, 아사작전을 펼치려고 가져다놓은 군량미도 그대로 놔두고, 심지어 어느 전쟁 통에 빼앗았는지 모르지만 금과 은도 그대로 놔두고 그리고 자신들이 입던 옷까지 전부 그대로 놔둔 채 몸만 빠져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결과가 그랬다는 것이 그것이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사마리아 성에 임한 굶주림의 기근이 하루 아침에 끝날 수가 있었던 것인가? 요약하면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실만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여호람 왕의 회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백성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고통당하고 있을 때 홀로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하고 있었다. 여호람 왕은 아합 왕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가진 자였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그의 곁에 좋은 모사로서 엘리사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아람 나라 왕의 모든 작전회의를 다 여호람 왕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왕하6:12). 그러므로 그에게 엘리사 선지자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그는 엘리사 선지자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섬겼다(왕하6:21). 그러니 그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왕하6:30),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에게도 말하기를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내가 여호와께 무엇을 더 바라리요?(왕하6:33)" 하면서 엘리사 선지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재앙을 물러가게 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네 명의 문둥병자가 그 시간에 긍휼을 구하기 위해 아람 진영으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마음은 바뀌었다. 여호람 왕의 회개가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아람 군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야 할 순서가 되었다. 하지만 아람 나라를 하나님께서 까닭없이 치실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아람 군대를 쫓아보내 버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네 명의 문둥병자가 그 역할을 대신 해 준 것이다. 그들이 아람 진영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와 쇠붙이 소리를 크게 하여, 아람 군대로 하여금 놀라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아람 군인들은 북이스라엘 왕이 헷 족속의 왕들과 애굽의 왕들을 용병으로 기용하여 쳐들어오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니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을 친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네 명의 나병환자를 굶주신 사마리아 사람들을 살리는 도구로 쓰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네 명의 나병환자를 쓰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가지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네 명의 나병환자가 아람 나라로 걸어들어갔기에 그것을 쓰신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의 내면에는 과거 북이스라엘 왕이 과거 아람 군대를 포로로 잡았지만 도리어 떡과 물을 먹여 보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왕하6:22~23). 그리고 또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선한 마음 때문이다. 자기들이 체험한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그들에게 있었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쓰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람 진영에서 자기들만 혜택을 누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들은 그 밤에 아람 진영으로 갔었다. 그러자 아람 군대들은 모든 것을 놔둔 채 도망쳤다. 그러니 네 명의 나병환자는 장막에 들어가 허겁지겁 먹고 마셨다. 그리고 배가 불러서 보니 의복도 보였고, 은금패물도 보였다. 그러자 그들은 장막을 돌아다니면서 그것을 가져다가 감추었다. 하지만 그중의 한 명이 말했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않도다. 오늘은 이렇게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인데 이 소식을 성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밝은 아침까지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왕하7:9)" 그래서 그들은 밤중에 사마리아 성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성의 문지기에게 고했다. "여보시오. 우리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전하겠소. 지금 아람 진영이 텅텅 비어있소. 그리고 그들이 급히 도망치느라 모든 것을 놔두고 갔으니 어서 가서 그 물품들을 취하라고 왕에게 말해주시오" 결국 문지기는 왕궁 담당자에게 전달하였고 그 소식에 왕의 귓가에도 들어갔다. 그러자 처음에 왕은 의심하였다. 저들의 작전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탐꾼을 보내고 보고를 받은 왕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 다음날 백성들이 왕의 말을 듣고 적진으로 들어갔고 적진에 쌓아둔 수많은 군량미를 취하여 가져올 수가 있었다. 그러자 그날 저녁 성문어귀에게 거래되는 밀가루와 보리값이 거의 평상수준을 회복하게 되었다. 

 

5.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렇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과연 어떤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첫째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그것은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당시에 누군가가 나서서 아람 군대를 물리쳐야 했야. 그런데 그때 그들의 선택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선택을 하나님이 들어쓰신 것이다. 그러므로 네 명의 나병환자가 믿음이 있어서 그들을 쓰신 것이 아니라, 그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룰 사람들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그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쓰임받은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어떤 뜻을 이루려고 하는데 거기에 그 뜻을 이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복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좋은 소식을 나누기를 기뻐하는 사람을 쓰신다. 그들이 그때 아람 나라의 진영에 있는 음식들과 물품들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아람 군대와 싸우러 간 것이 아니었다. 다만 항복하여 혹시 살려주면 살아보려고 그리 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수중에 들어온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만이 누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그들도 그곳을 얻기 위해 행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기쁜 소식을 사마리아에서 굶주리고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도 전해주는 것이 자신의 도리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꺼이 그 밤 중에서 다시 사마리아 성을 찾아나선 것이다.

 

7. 이 시대에 우리 교회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인가?

  이제 동탄명성교회는 2가지 사실을 실천하고 있다. 하나는 모든 삶에 어려움이 닥치고 고통이 찾아오고 힘든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에 있었는지를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는 회개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지 않아서라였다(출20:5). 그런데 우리 교회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안 되었다. 하지만 우리 동탄명성교회는 이전에도 7년동안 오직 "회개"를 외쳐왔다. 왜냐하면 오직 회개만이 구원의 최종관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6월부터는, 회개가 우리자신을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최종 열쇠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저주마저도 끝내는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회개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났다. 성도들의 경우는 약 9~10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회개소식을 듣고 실천한 사람들에게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건강은 나아지기 시작했고 재정은 회복되고 있으며 자녀의 문제마저도 풀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삶의 모든 저주의 문제가 회개를 통하여 풀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열심이 사는 것도 중요하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문의 저주를 끊어버리는 일이다.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손대는 모든 일마다 잘 되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브라함이 가문의 저주를 끊어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를 끊어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의 후손들에게 형통함의 축복이 뒤따라온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 교회에게 주신 비전과 사명을 꼭 붙잡았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의 문제는 성실함으로 그리고 충성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저주를 끝내야 가능한 일이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고 있어서 그가 손대는 모든 일에 복이 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조상 아브라함이 저주를 끝냈기 때문에 그가 손대는 모든 일에 형통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17세부터 30세까지 엄청난 어려움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형들의 시기질투로 인해 노예로 팔려야 했고, 애굽에서는 자기 주인의 처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흔들리지 않고 순결과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살았던 것은 그가 17세에 꾸었던 계시적인 꿈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이었고 그의 사명이었다. 그가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기집안 모든 식구들을 굶주림에 건질 수 있었고, 애굽의 고센 땅을 이스라엘 민족의 거주지로 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그가 꿈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한 사명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동탄명성교회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 곧 세례요한의 사명, 즉 이 땅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는 일을 붙들고 있다. 이 기쁜 소식을 내 교회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전파하는 것이 사명인 것이다. 

 

8.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쓰실 수가 있다. 그렇다고해서 아무나 쓰임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어떤 재앙을 거두실 수가 있다. 그렇다고해서 그냥 재앙을 거둬가시지는 아니하신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열심히 살아간다고 해서 그리고 충성되이 살아간다고 해서 이 세상 일이 다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고 있지만, 여전히 저주 가운데에 놓여있다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는 자기에게 임한 저주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한 마디로 회개부터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지은 죄와 내 조상들이 지은 죄들을 낱낱이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한 번의 회개만으로 자신과 조상이 지었던 과거의 죄가 한거뻔에 씻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과거에 귀신들이 우리 몸에 들어올 때 각각의 죄 때문에 합법적으로 우리 몸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한 번 회개했다고 그것들이 한꺼번에 다 나가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해야 할 분량은 아주 많다. 적에도 몇  개월에서 많으면 10년까지도 회개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조상들이 지은 죄가 많으면 더 회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을 끝내지 아니하면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에 저주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람 왕에게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무도 보아주거나 알아주지 않아도, 그는 골방에서 홀로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회개를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나병환자의 경우를 마음에 새기고 싶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를 원할 때 그곳에 나병환자들이 있었던 것을 말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바로 그곳에 내가 있어야 나도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경험한 기쁜 소식을 자기만 누릴 것이 아니라 전해주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먼저 아름다운 소식을 받게 된 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7월 18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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