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오늘도 계속해서 성찬식을 행하는가?(눅22:19~20)_2021-11-21(주일)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Nov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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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RAF9akRE1s [혹은 https://tv.naver.com/v/23695702 ]
날짜 2021-11-21
본문말씀 누가복음 22:19~20(신약 13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새언약,옛언약,유월절언약,시내산언약,유월절양,속죄양,예수님의몸,예수님의피,하나님의피,성찬식,세례식,예수님의피의효능
 
오늘은 성찬주일을 맞이하여 왜 이단들이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것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는 성찬식이 갖고 있는 새 언약으로서의 놀라운 능력과 그것의 효능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았다. 성찬식은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에 불과하지만 거기에만 그치지 않는 놀라운 능력이 들어 있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며, 왜 그러한 증상이 발생하는가? 여기 그 해답이 있다.
 

 

1. 들어가며

  한국에서 자생한 토종 이단인 '신천지[증거장막성전]'와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에서는 성찬식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특히 신천지는 성찬식이라는 자체가 아예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에서도 역시 성찬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성찬식을 하지 않는 대신 유월절을 지킨다. 유월절 식사는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이단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상은 바로 자기들이야말로 '새 언약'을 지키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새 언약'이라는 단어가 바로 예수님께서 성만찬 때에 약속하신 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 언약'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며, 이것은 예수님의 성만찬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교회의 성찬 주일을 맞이하여, 성찬식이 곧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아보고, 새 언약은 어떻게 세워졌으며, 그 도구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새 언약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새 언약'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새 언약'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 가운데 처음 등장하는 단어다. 장차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체결하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예수께서 오셔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눅22:20, 고전11:25). 

  그렇다면, 첫째, '언약'이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언약'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사실 많이 나오는 단어다(164회).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베리트'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협정, 조약, 체결, 약속'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세운 협정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운 언약(무지개 언약)이 있고,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횃불 언약, 할례 언약)도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과 세운 언약(유월절 언약, 시내산 언약)도 있다. 

  둘째, '새 언약'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옛 언약을 갱신하고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옛 언약이 약하고 부족하고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과 다시 언약을 체결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과 세우는 언약을 가리켜 '새 언약'이라고 명명하신 것인가? 그것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제자들과 체결하시겠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새 언약'이라는 단어에 사용된 '새(로운)'는 단어가, '이전에 없었으나 지금 새롭게 생겨난'이라는 뜻의 새로운('네오스')라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것보다는 더 훌륭한' 혹은 '이전에 이미 예표되어 있었으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이라는 뜻의 새로운('카이노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약성경에서 '카이노스'의 '새로운'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용례를 살펴보면, 공관복음서에서는 '새 교훈, 새 포도주, 새 계명, 새 방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사도 바울도 이 단어를 사용했으니, '새 사람, 새 피조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히브리서와 고린도전서에 보면, '새 언약'이라는 단어가 있으며, 요한계시록에 보면 거기에는 '새 이름, 새 노,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고 하는 말은 이전에 없던 전대미문의 언약이 아니라, 구약시대에 이미 사용된 언약을 계승 발전시키고 갱신시켜,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언약을 체결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3. 옛 언약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이전에 하나님께서 체결하셨던 '옛 언약'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노아나 아브라함과 더불어 세운 언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세운 언약을 가리킨다. 이러한 언약에는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유월절 언약'이 있고(렘31:31~32), 출애굽기 19~24장에 나오는 '시내산 언약'이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러한 언약을 체결하신 것인가?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유월절 언약을 체결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어 구출하시고, 그들을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시 애굽 땅 전역에 장자 죽음의 재앙을 내릴 것인데, 이 재앙을 피하고 결국 애굽의 속박에서 탈출하려면 유월절 예식을 지키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1월 14일 해질 때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인방과 설주에 뿌렸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시내산 언약을 체결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알게 하려고 도덕적 계명들 그들에게 주시기 위함이었고, 그래서 죄를 범한 것을 깨우침을 받은 자로 하여금 속죄 제사법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의 핵심은 유월절 양의 죽음과 속죄양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옛 언약 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4. 왜 예수께서는 옛 언약을 끝내고 새 언약을 체결하시려고 하신 것인가?

  그렇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유월절은 거의 준수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 조상들이 어떻게 애굽에서 구출되었는지를 그들은 곧 잊어버리게 되었다. 몇 명의 왕들(히스기야왕 요시야왕)과 포로 귀환 시대의 에스라 때에 유월절이 지켜지기도 했지만, 그때에 지켜지는 유월절은 피까지 바르는 유월절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장자 죽음의 재앙을 면제받기 위해 치러한 어린양의 값진 희생을 그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유월절을 제외하고 유월절은 오직 절기의 식사를 하는 것으로만 지켜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가는 제물의 값진 희생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장치를 고안하셨다. 그것이 바로 성막법에 나오는 속죄 제사다. 그러나 이것도 제사의 특성상 자신이 자기의 죄를 깨달아 드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대부분은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많았고, 백성의 지도자들도 처음에는 죄없는 짐승의 죽음을 보고 슬퍼하고 아파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자 그러한 마음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명무실화되어 거의 형식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더 이상 옛 언약 하에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구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이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과 더불어 새 언약을 체결하게 되신 것이다. 예수께서 구약 언약을 갱신하여 새롭게 새 언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했던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요8:24~25, 28, 5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제 구약의 유월절 언약이나 시내산 언약보다 더 강력한 언약을 세우려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제 참된 유월절 양으로 죽으시고(고전5:7), 참된 속죄 제물로 죽으셔서(요1:29), 유월절과 속죄 제사의 뜻을 이어받을 뿐만 아니라, 구약의 언약보다 더 강력한 혜택을 믿는 자들에게 베풀어 주시기 위함이었다. 

 

5.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피는 왜 구약시대 언약의 제물과 피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구약의 언약을 그대로 놔두어 그것을 수정하여 사용하지 않으시고 새 언약을 체결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자. 왜냐하면 '새 언약'이라는 말 속에 이미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체결하실 때에 사용하신 제물 및 그 피가 이전에 구약시대에 사용했던 제물 및 그 피와 비교할 수 없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첫째, 제물이 달라졌다. 구약시대에는 흠없는 양과 소 같은 짐승이 유월절 양과 속죄 제물로서 사용하였다. 그런데 새 언약에 사용되는 제물은 그러한 짐승이 아니었다. 죄 없는 예수님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제물이 된 것이다. 그것도 사람의 몸만이 제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그 몸이 제물로 사용되신 것이다. 우리는 사실 요한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요1:14). 그러므로 한 번의 죄에 한 번 사용되는 제물과 예수님의 몸은 그 효력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구약시대에 짐승의 제물은 하나의 죄에 한 번 바쳐진다면 그 제물은 두 번 사용할 수 없었다. 제물은 살아 있는 것으로만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제물의 피가 달라졌다. 구약시대 사용된 피는 다 짐승의 피였다. 그런데 짐승의 피는 계속해서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양이 있기 때문이다. 그 피를 다 쏟고 나면 짐승은 죽는다. 또한 한 번 흘려진 피는 그때 그 제사에 한 번 사용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짐승의 피를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달랐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분이었기에 그 피 또한 이 세상의 물질세계에 제한받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죽었지만 자신 안에 생명이 있어서 부활하실 수 있었듯이, 예수님의 피 또한 한 번 사용하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몸과 피는 이 물질세계에 제한받지 않으시고 항상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몸은 지난 2천 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제물로 한 번 드려졌지만 두 번 다시 드려질 필요가 없다. 그분은 항상 살아 있어서, 그분의 제물되심은 계속 유효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의 피 흘림은 한 번 흘리신 것이지만 계속해서 살아 있는 피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분을 의지하여 나아가기만 하면 그분의 피가 계속해서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의 제한이 철폐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언약의 백성들 곧 오직 할례받은 히브리 유대 민족만이 유월절을 지키고 속죄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제한을 철폐하셨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예수께로 나오면 받아 주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양 뿐만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을 위해서도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멀리 있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가까워졌다고 언급하였다(엡2:17~18).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제물과 제물의 피의 효능이 탁월하게 향상된 것이다. 사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도 할례받은 민족에게만 제한되어 있었고, 제물도 반복해서 쓸 수 없었으며, 피 또한 새로운 짐승의 피가 계속해서 흘려져야 했지만,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피는 한 번 드린 것이었으나 영원히 유효한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분이 이 물질세계를 초월해 계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피 흘림은 하나님께서 피를 흘리신 것이 된다. 또한 구약시대에는 제사를 드리려면 꼭 성전에 나가서 제물을 드려야 했으나, 예수님 때부터는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아도 어디서든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므로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유월절 양과 속죄 제물로 죽으신 이후부터 모든 믿는 이들은 옛 언약보다 더 강력한 새 언약 하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6. 왜 오늘날 예수믿는 사람들은 성찬식을 행하는가?

  왜 오늘날 예수믿는 사람은 성찬식을 행하는가? 그것은 새 언약을 우리가 잊지 않기 위해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몸과 하나님의 피로 세워 놓으신 새 언약을 우리와 맺으음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도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다. 그분이 참 유월절 양과 참 속죄양이 되시어 죽으셨기에 우리는 죽음의 재앙을 면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고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통하여 악한 사탄 마귀에게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즉시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를 속죄하여 더 이상 죄의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게 해 주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값진 희생을 높이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오늘도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 언약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이렇게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당신이 오시는 그날까지 행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도 있다(눅22:19).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이미 예수께서 2천 년 전에 이루어 놓으신, 엄청나고 위대한 희생 언약을 계속해서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것을 기념하며 또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다(고전11:26). 

 

7. 왜 이단들은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가?

  이제는 왜 이단들이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말할 때가 되었다. 이단들은 겉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실은 이단의 교주가 재림 예수인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사용하고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진짜로 성찬식을 행하게 되어버리면, 그 예식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그분의 피로서 자신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이단에서는 결단코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성찬식은 모름지기 죄사함은 오직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피를 통해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단들은 성찬식을 통해서는 자기들의 뜻을 이룰 수가 없기에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짜로 성찬식을 행하게 된다고 하면, 그들은 자신에게 더 엄청난 큰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다. 이제 고린도전서 11:27~30을 읽어 보라. 만약 누군가 성만찬을 합당하지 않게 행하게 되면 성만찬을 행한 사람들이 약하게 되고 병들게 되고 죽는 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므로 어찌 이단들이 자기의 죽음을 각오하고서 성찬식을 행하려고 하겠는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신천지는 결단코 성찬식을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유월절을 지키자고만 할 뿐, 성찬식을 행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8. 나오며

  루터교를 제외한 모든 개신교에서는 사실 성찬식을 많이 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행하는 것이 이 성찬식이다. 성찬식에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가 들어 있고 영원한 속죄를 가져다 주는 혜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을 기억하게 하고 그것을 효과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오늘도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오직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사람되시어 죽으신 하나님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때에 예수께서도 성령을 통하여 당신이 2천 년 전에 골고다에서 행하신 일이 우리의 속죄와 구원을 위한 것이었음을 더욱 깨닫게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장에서 이 땅에 예수께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언하는 것이 셋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성령'과 '물'과 '피'라고 하였다(요일5:5~8). 이것들 중에서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오신 영이기 때문에 그분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믿도록 도와주신다. 그리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시다가 죽기 전에 다 쏟아 놓으신 '물'과 '피'도 역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피 흘려 죽으셨음을 증거해 주고 있다(요19:34). 왜냐하면 그분의 육신이야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에 하늘로 가지고 가지만, 그분이 이 땅 위에 남겨두신 피와 물은 여전히 이 세상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들은 엄청나게 축복받은 세대다. 민족의 제한이 철폐되고 어디서든지 회개하만 하면 속죄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는 나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더욱 돌리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게 되도록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꼭 회개하여서 속죄함을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분이 들어오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시는 천국에 꼭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분에게 영광돌리는 가장 귀하고 가장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21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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