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 예수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려면?(벧후1:10~11)_2021-12-26(주일)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Dec 26,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nsMbgnracGg [혹은 https://tv.naver.com/v/24313002 ]
날짜 2021-12-26
본문말씀 베드로후서 1:10~11(신약 38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구원,믿음,회개,부르심,택하심,사명,소명,사울과다윗,바울과베드로,부르심을받은자들의특징,2021년,2022년,송년예배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아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 나라에 누군가는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대체 그 길은 무엇이란 말인가? 왜 우리는 그러한 길이 있다는 것에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는가? 그런데 지금 이 길은 누가 걷고 있는 중이며, 여기에 나는 어떻게 동참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바로 부르심과 택하심에 그 비밀이 들어있다. 오,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를 향한 부르심, 그것은 무엇인가?
 

1. 들어가며

  오늘은 송년주일이다. 일년을 마감하는 주일이다. 일 년 열두 달 사실 중요하지 아니한 주일은 하나도 없지만 송년주일은 더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송년주일의 때가 되면 지난 일 년을 돌아보고 또 한 해를 준비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일에 반성과 결산이 없다면 발전은 어렵고 더딜 것이다. 세상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재정을 결산하고 인적 자원을 결산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 일도 이러하는데 하물며 영적인 일은 더더욱 그렇제 않겠는가? 그러므로 올 해 우리의 신앙도 잘 결산해 보아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미 마25장의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당신의 종들을 불러모아 반드시 결산하는 모습을 일러주셨다(마25:19). 그렇다면 과연 그날 우리의 신앙은 어떤 기준과 잣대로 평가받게 될 것인가? 무엇이 과연 우리의 신앙을 결산하는 기준이 되는가?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 가운데 그 심판의 기준의 하나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들려준 신앙결산의 기준에 따라 올 한 해를 잘 결산하고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사도 베드로가 신앙의 결산의 기준과 잣대로서 제시한 것은 무엇인가?

  오늘 말씀에 보니,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신앙을 결산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이 기준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 기준대로 살기만 한다면 우리도 엄청난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대로 살기만 하면 우리들도 주 예수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 하면 우리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 주의 나라 곧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오늘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벧후1:10-11[직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더욱[더] [단호하게] 힘써(열심을 내라). 너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확실하게) [계속해서] [자기자신을 위하여] [행]하라(실행하고 있기 위하여) [왜냐하면] 너희가 이것을 [실]행한즉(실행하고 있다면) 언제든지(어느때든지) [너희가]실족하지(비틀거리지, 걸려 넘어지지) 아니하리라(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1 [왜냐하면]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안으로) 들어감(입장함)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급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성도가 자신을 향한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해 열심을 품고 확실히 실행한다면 그는 이 땅에서 걸려 넘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에게 넉넉히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님 앞에 서서 심판받을 때에 우리가 넉넉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제시되고 있으니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충성하라는 것이다. 

 

3. 부르심과 사명 그리고 택하심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의 경우 자신을 향한 그리고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성도들기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 일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오늘 사도 베드로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사항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이제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면, 그는 반드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소명)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여기서 '부르심(소명)'이란 의미는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을 택하여 그에게 어떤 특별한 직무를 맡기려고 그를 불러내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그에게 맡겨진 임무(직무)를 가리켜 우리는 보통 그가 달려갈 길 곧 '사명(소명)'이라고 부른다(행20:24, 딤후4:7). 이처럼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특별한 직무을 맡겨 세운 자들이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역을 맡기려고 특정한 사람을 택하시며 어느날 그를 부르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부름받은 자는 반드시 자기가 무엇 때문에 부름을 받았고 또한 보냄을 받았는지를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로 자신이 어떤 부름으로 부름을 받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아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져 있는 일반 사명이란 무엇이며, 어떤 특정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특별 사명이란 무엇인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공통된 부르심을 가진 자들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막16:15). 우리가 복음을 들어서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면 우리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달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곧  자기가족에서부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친구와 이웃들에게 그리고 자기의 민족과 국민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다른 민족과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특별한 사명을  주시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약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던 자였다. 왜냐하면 그도 일반 사명을 가진 자이지만, 그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의 나이가 34살 정도되었을 때였다. 그는 그 이전까지만 해도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오직 여호와만 하나님이 유일한 절대자라고 믿고, 사람이었던 예수님은 절대 하나님이 될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분이 대낮에 그에게 나타난 것이다. 죽어서 이미 없어진 줄 알았던 그분이 살아서 자기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그에게 지시를 하였다. 이제 더이상 예수님을 믿는 형제들을 핍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을 지시할 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다메섹 도성으로 들어갔고 거기에서 아나니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자신을 향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예수의 이름을 전하도록 주님이 택한 그릇이라는 것이다(행9:15). 그렇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는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자가 있있었으니 그는 '베드로'였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자로서 '바울'이 선택되었던 것이다. 

  한편 사명은 보통 어떤 개인이 받는 것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어떤 공동체나 민족이 받는 경우도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구약시대에 이사야나 예레미야는 개인 사명자였다. 그러나 모세나 다윗같은 자는 개인적인 사명자이기도 하지만 그 사명은 그가 속해 있는 민족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신약시대로 치자면, 빌립집사의 경우는 혼자 개인적으로 사명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면, 바울은 개인이 받은 사명을 뛰어넘는 것으로서, 교회과 선교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파송한 안디옥교회와 그를 돕도록 하나님께서 붙혀준 바울선교단의 일행은 바울로 인하여 함께 부름을 받은 사명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민족 중에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민족의 사명도 있는데, 그것은 메시야를 이 땅에 산출하라는 사명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그토록 못된 짓을 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했어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그루터기를 남겨두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아마 마지막 시대에 대한민국도 아마 그러한 사명이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5. 하나님의 부르심은 보통 어떻게 나타나게 되고 이루어지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보통 어떻게 사람을 불러 그를 들어쓰시는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셨지만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는 특별히 지정해서 주신 사명도 있다. 이러한 사명을 가진 자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어느날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게 된다. 그러한 사람 중에는 하늘에서부터 그가 영혼으로 있을 때에 이미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택함을 받아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들도 있으며, 이 땅에 태어난 이후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여 그를 불러 쓰시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성경 사무엘서를 읽어본다면, 전자의 해당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바로 '다윗'이라는 사람이며,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는 '사울왕'이라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역을 위해 어떤 특정한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특정한 직임을 맡기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명자를 어떻게 불러내시는가? 성경을 보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러내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 볼 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시는 경우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노아나 아브라함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경우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나타나서 직임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경우는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경우다. 베드로는 육신을 갖고 계셨던 예수께서 직접 불러 세우신 예이고, 바울은 부활승천하시어 하늘에 계신 예수께서 직접 오셔서 불러서 그에게 직임을 맡긴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르심은 극히 드문 사례의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대에 하나나 둘이 있을까 말까 하는 경우다. 둘째, 천사를 시켜 불러내르시고 그에게 직임을 맡기는 경우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의 경우이고, 신약시대에는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나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모세에게는 여호와의 천사(가브리엘로 추정됨)가 나타나서 그를 불러내어 사명을 주셨고, 사가랴나 마리아의 경우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사명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셋째, 꿈과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간접적으로 그에게 직임을 맡기기도 하신다. 넷째, 영적으로 깨끗하고 경건한 사역자들 곧 방언통역 사역자나 예언 사역자를 통해서 일을 맡기기도 하신다. 오늘날 목회자가 되신 분들은 어느날 부흥성회 때에 기도를 받았는데 예언이 나와서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주의 종이 되었다는 분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특별 사명자는 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일찌감치 그러한 소명을 받아서 알게 된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아는 경우도 종종 있다. 

 

6. 특별 사명자가 아닌 일반 평신도의 경우는 어떻게 사명을 받고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 세운 사명자가 아닌 일반 성도들의 경우는 어떠한 사명이 있는 것인가? 사실 사명자가 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라고 소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요동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사람을 어떤 그릇으로 쓸 것인지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다. 이는 마치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자신의 뜻을 따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딤후2:20~21).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반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롬9:20~21). 성경을 다시 한 번 보라. 과연 하나님께서 쓰셨던 인물들 중에서 자신이 그러한 사역자가가 되겠다고 선언해서 된 자가 있는지를 말이다. 성경의 기록은 전부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을 불러내어 그를 들어쓴 것들 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경우를 보라. 자기가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제자가 된 경우가 있는가? 없다. 예수님께서 그를 지명하여 불러서 쓰신 것들 뿐이다. 사도 바울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특별한 부르심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값진 삶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불러 세운 사명자를 협력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로 치자면, 이는 마치 아론이나 훌이 모세를 도와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것과 같다. 신약의 경우라면 바울을 도와서 바나바, 실라, 디모데, 브리스가와 아굴라, 아볼로 등이 쓰임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 것이요, 의인으로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 것과 같다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0:41~42).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를 돕게 된다면 그 사역자가 받을 상을 그도 함께 받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계의 법칙 중에 하나다. 그러므로 적어도 하나님께서 불러 세운 사역자를 돕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엄청난 상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중들에 상당수가 '충성'의 면류관이나 '섬김'의 면류관 더 나아가서는 '겸손'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7. 하나님의 택정함을 받아 사명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 중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있다. 그러한 일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그러한 자를 알아볼 수가 있는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불러내어 사용하는 사역자들을 알아볼 수 있는 어떤 특징은 없는 것인가? 아니다.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명자들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징으로는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자는 자신이 어떤 사역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러한 사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여러가지 경로로 그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그러한 사명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하여 열정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명자는 어떠한 어려운 난관에도 굴하지 않으며, 받은 사명을 끝까지 완수해 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개인의 야망과는 다른 것이다. 야망이란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주인 되어서 추진하는 열정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야망과 소명은 다른 것이다. 셋째, 이러한 사명자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아무도 그를 죽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초자연적으로 그를 지키시키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늘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붙혀주시고 재정까지도 붙혀주시게 된다. 요한계시록의 두 증인의 경우를 보라. 그들은 이 땅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하라고 주님이 불러서 세운 자들이다. 여기서 '둘'은 증인의 숫자로서 두 명인 것이지 딱 두 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마치기까지 어떤 사람도 그를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계11:5). 고로 만약 그 사명자가 죽임을 당한다면 그것은 그의 사명이 거기에서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8. 자기와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2가지 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자기와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주어지는 사명을 완수하는 자에게는 어떤 복이 주어지게 되는가?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다음과 같은 2가지 복을 주어질 것이라고 했다. 첫째는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개인이나 공동체는 결코 실족하지 않으며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벧후1:10). 그러한 사명자는 내적이든 외부적인 다른 어떤 이유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거나 다른 길로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사명을 반드시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주 예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러한 사명자와 공동체에게 넉넉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벧후1:11). 오 그렇다. 믿음을 지키고 회개를 해도 천국에 들어가기가 쉬운 일은 아닌데, 이러한 종류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우리 인간의 들이 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제부터라도 개인이나 공동체에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사명에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러한 자들에게는 새 예루살렘 성에 입장하는 것이 넉넉하게 준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9. 나오며

  베드로와 바울에 의하여 이 땅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해서 또 다른 교회를 낳고 또 낳았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어떤 특정한 개인과 교회 공동체를 불러내시고 그들을 들어 사용하신다. 누구를 들어쓰시는가 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정하시는 일이다. 그것은 그분이 바로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도 특정한 사람이나 공동체를 불러서 그에게 과업을 맡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중에 작지만 동탄명성교회와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도 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기관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지적인 믿음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깨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오늘 이 두 기관을 들어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기관이나 혹은 개인사역자는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중에 어느 한 구석을 이 두 기관이 지금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보면, 정확한 것은 앞으로도 이 두 기관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사용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 뿐이다. 구약시대 사울왕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직무에 성실하지 않았다. 그것을 오히려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버림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직임을 맡은 사명자나 단체라 할지라도 혹 잘못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인간이니까. 그렇지만 누군가를 어떤 그릇으로 쓰실 것인지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다만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뿐이다. 고로 사명도 일종의 '은혜'인 것이다(갈1:15). 그분의 은혜, 자격없는 자라도 들어쓰시는 그분의 은혜, 가난한 자를 들어쓰시어 부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그분의 은혜. 만약 이러한 은혜를 받은 개인이나 공동체가 끝까지 충성한다면 그들이 하는 사역은 주님이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이 사역에 동참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나라에 입장하되 넉넉하게 입장하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다. 

 

2021년 12월 26일(주일)

정병진목사

 


Articles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