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복음(06)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를 구분하는 2가지 기준은?(마25:1~13)_2022-02-27(주일)

by 갈렙 posted Feb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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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4tC_no-EUd8 [혹은 https://tv.naver.com/v/25389890 ]
날짜 2022-02-27
본문말씀 마태복음 25:1~13(신약 4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천국준비,준비하고있으라,열처녀,미련한다섯처녀,슬기로운다섯처녀,혼인잔치,천국입성결정요인,기름준비,기름인정,기름이곧상을결정한다

 

1. 들어가며

  마태복음 25장에는 천국에 관한 3가지 비유가 등장한다. 그것들 중에 첫 번째 비유가 바로 '열 처녀의 비유'다. 이 비유는 누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인가를 알려주는 놀라운 비유 말씀이다. 이 비유에 관한 기본적인 포맷은 이미 며칠 전에 함께 나누었다. "천국복음(05) 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천국에 못 들어갔는가?"가 그 제목이다. 오늘은 이 비유에 대한 두 번째 시간으로서, 똑같이 둘 다 처녀들이었으며, 똑같이 둘 다 신랑을 기다리던 여인들이었는데, 왜 한 편은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되었고, 반대로 왜 또 한 편은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는지 그 근본적이 이유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번 말씀을 통하여 대체 '기름'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이 깊이 묵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나도 기름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철저하게 알게 될 것이다. 이 비유는 천국에 들어가는 최소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충분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2. 천국 준비는 그냥 열심히 준비하면 되는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깨어있으라' 혹은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하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의 의미요 저렇게 하는 것이 준비하고 있는 것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중에 가장 흔한 생각은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기도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이요 준비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조금 뚜렷하지 않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깨어있으라 그리고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충성하고 있으라"는 의미이며, 또 하나는 "지혜롭게 행동하고 있으라"는 의이다(마24:44~45). 그러므로 내가 지금 깨어 있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고, 또한 똑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지혜롭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우쳐주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2가지 비유를 들어서 말씀해주셨다. 하나는 "지혜롭게 하고 있으라"는 말씀의 의미를 풀어주시기 위해서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마25:1~13). 그리고 또 하나로 "충성하고 있으라"는 말씀의 의미를 풀어주시기 위해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들어 말씀해주셨다(마25:14~30).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지혜롭게 준비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말씀이라고 하겠다. 사실 기도도 배워서 할 때에 시간이 절약되고 더 잘 응답받을 수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듯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배워서 준비한다면 훨씬 그 날을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3. 처녀들이 천국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거나 못 들어가게 되었던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혼인잔치 곧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천국의 영광의 광장에서 이루어질 혼인잔치는 과연 누가 참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늘 "열 처녀의 비유"에 따르면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요,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하면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대체 어디에서 생긴 것인가? 그것은 딱 2가지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하나는 그날 신랑과의 만남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느냐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신이 준비한 기름이 과연 주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전자는 기름을 준비한 채 나갔느냐 아니면 그냥 나갔느냐 하는 문제요, 후자는 기름을 가지고 가긴 갔어도 그 기름을 과연 신랑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느냐 받지 못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4. 천국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 여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했는가?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신랑을 맞으러 나갈 때에 등(등잔이나 횃불)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지고 나갔다. 하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신랑을 맞으러 나갈 때에 등만 가지고 나갔다. 곧 기름을 가지고 갔느냐가 결국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이 된 것이다. 그럼, 왜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을 가지고 나간 것인가? 그것은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딱 한 가지 차이에서다.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을 마중만 나간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만남을 생각하고 준비하고서 나갔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마중만 나갔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1절과 6절에서 알 수 있다. 1절을 보면, 열 처녀들은 모두 다 자기의 등을 취한 후에 신랑을 맞이하러 나갔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맞이하러'라는 말은 '마중을 위하여, 영접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이것을 헬라어로 보면, '휘판데시스'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6절에 보면, 누가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었는지가 나오는데, 이는 그분과의 만남을 위하여 준비하였던 자라고 나와 있다. 여기서 '만남'이라는 단어는 '아판데시스'이다. 그렇다. 슬기로운 처녀나 미련한 처녀가 신랑을 마중 나갔던 것은 다 동일한 것이었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을 마중만 나간 것이 아니라, 신랑과의 만남을 준비한 채 나갔던 것이요, 미련한 처녀는 그냥 마중만 나간 것이다. 

 

5. 슬기로운 여인이 준비했던 기름은 어떤 용도였는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슬기로운 여인이 준비했던 기름은 꺼져가는 등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맞다. 하지만 그 기름은 그 용도로만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이 비유의 후반부에 나온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미련한 다섯 처녀가 신랑이 온다는 말에 깨어나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등잔에 불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자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좀 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그들은 곱게 거부하면서 자기가 쓰기에도 부족할 것 같으니, 가서 댓가를 지불하고 사오라고 말한다. 그러자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사기 위해 급히 나간다. 그리고 얼마 후에 돌아온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혼인 집 문이 닫혀 있는 상태였다. 그러자 그들이 신랑에게 말하기를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고 청원한다. 그런데 신랑은 그들은 알지 못하겠다고 잘라 말한다. 다시 말해 "너희가 내 신부가 될 사람인지는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지나갔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련한 처녀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신랑이 그들을 혼인잔치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들이 너무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그들의 등불이 활활 타오르지 않아서였는가? 아니다. 그들이 신랑의 영접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이유는 그들이 나중에 기름을 채워서 왔더라도 그 기름은 신랑을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등불이 활활 타오르지 않아서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들을 신부로 맞아들이기에 합당하지 않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 슬기로운 여인들이 신랑을 맞이하기 전에 준비했던 기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슬기로운 여인들이 준비했던 기름이 꺼져가는 등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한 용도로만 쓰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한다. 신랑이 오기 전에 준비한 기름은 그녀들로 하여금 신랑을 자신의 남편으로 맞이들이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했다는 증표였던 것이다. 뒤늦게 기름을 가지고 온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그것이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은 신부로서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슬기로운 여인들은 언제부터 이 기름을 준비한 것인가? 그것은 '처음부터'다. 그들이 앞으로 자신이 신부가 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부터다. 왜냐하면 2절 말씀을 보니,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된 것이 나중에 신랑을 만날 때에 결정되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음을 헬라어 동사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을 보면, 슬기로운 처녀는 처음부터 신랑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지혜로운 이들로 있어왔기 때문이요(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구문), 미련한 다섯 처녀도 역시 처음부터 신랑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미련한 이들로 있어왔기 때문이다(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구문). 그 근거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처음부터 그릇에다가 기름을 준비했기 때문이요,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처음부터 그것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 왜 슬기로운 처녀는 처음부터 기름을 준비할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슬기로운 처녀는 어떻게 되어서 처음부터 그 기름을 준비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을 장차 영접하기 위해서만('휘판데시스') 살았던 것이 아니라 신랑과의 만남('아판데시스')을 염두에 두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부는 처음부터 장차 신랑이 자신을 만났을 때에 어떻게 하면 신랑이 자신을 아내로 맞이해 줄 것인지를 생각하며 준비해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 신랑이 자기를 아내로 맞이해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왔던 것이다. 만약 그날 그들이 신랑을 만났는데,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나는 당신을 모르겠소. 그래서 나는 당신과 결혼할 수 없소"라고 말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기다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지런히 신랑과의 만남을 위해 모든 나날을 준비해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 그들이 가져간 '기름'은 그저 단순한 기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헌신과 수고와 땀과 노력의 결정체들이었던 것이다. 사실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슬기로운 처녀들이 가지고 간 기름의 그릇이 '기름병'이었다고 나온다. 그 안에 기름을 채워서 가져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삶에서 혼신의 노력으로 댓가를 치러 신랑을 맞을 준비하였던 것이 한 방울씩 한 방울씩 기름이 되어 그 기름병에 채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처녀들이 신랑을 마중 나갈 때에 그들의 허리에서는 찰랑찰랑하면서 기름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 기름병에 담겨진 것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일생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럼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들은 그 기름을 준비하기 위해 때로는 서슬퍼런 핍박을 견디어내야 했을 것이고, 노동의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더 빨리 일어나서 일해야 했으며, 남들보다 더 늦게까지 일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기쁨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장차 신랑을 마주 대할 만남의 날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그것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처음 믿었을 때에 받은 것을 그냥 가진 채 그냥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주님과의 맞선에서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지에 관하여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8. 열 처녀의 비유가 들려주는 기름의 4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을 통하여, 열 처녀의 비유가 들려주는 기름의 4가지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첫째는 그것은 절대 남에게 나눠줄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준비한 것은 자기만이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꺼져가는 등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이라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등불'은 계4:5에 의하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 곧 '성령'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을 만나는 그날까지 성령께서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계속해서 수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는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의 기름을 미련한 다섯 처녀에 나눠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미련한 처녀들이 달라고 했을 때에 그들은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라고 하였다. 자기들도 댓가를 지불하여 기름을 준비하였기 때문이다. 넷째는 자신이 죽기 전에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열 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갈 때에 신랑은 지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졸았고 잠들었다. 모두가 지쳐서 그만 잠든 것이다. 여기서 '잠들었다'는 말은 요11:11~13이나 살전4:13~16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열 처녀들은 모두 다 죽은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에 큰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호령'도 아마 천사장의 호령이리라고 본다(살전4:16). 그러자 그들이 깨어났다. 그들이 부활한 것이다(살전4:16, 고전15:12~18). 그런데 부활한 후에 나가서 준비해온 기름은 그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님께서 그것을 인정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댓가를 치르지 않은 분들은 죽은 후에라도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 치른 댓가를 통해서 절대 혼인잔치에 참여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댓가를 치러서 우리의 것을 장만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 우리가 이땅에 살고 있을 때 뿐이다. 

 

9. 슬기로운 여인들이 준비했던 기름의 최종적인 쓰임은 어디에서일까?

  헬라어원문을 보면, 슬기로운 여인들이 준비했던 기름병의 숫자가 각각 다르다. 어떤 여인은 한 개의 기름병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여인은 두 개의 기름병이나 다섯 개의 기름병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아니 어떤 여인은 한 개의 기름병 안에 기름을 다 채우지 못해 이제 맨 밑바닦에 채울 만큼의 기름만 가지고 있었던 여인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자신을 신랑으로 맞이하기 위해 댓가를 지불하며 준비했던 그 여인들을 다 신부로 맞이해주었다. 사실 이 비유에 나오는 '신랑'은 전지전능한 분이다. 왜냐하면 신랑이 곧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 "나는 처음부터 너희들이 나를 위해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기름병에 담긴 기름이 어떻게 해서 채워졌는지를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어떤 기름은 핍박과 고난을 참으면서 준비했던 한 방울의 기름이라는 것을 그분은 아시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것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신랑을 만날 그날을 위해 수고한 땀방울의 결실이라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날 기름병의 크기와 숫자와 그리고 양에 따라 신부들에게 장차 하늘나라에서 받을 복들을 주실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이러한 면류관으로 주실 것이고, 아니면 저러한 면류관으로 주실 것이다. 그리고 면류관에 박힐 보석도 이러한 것으로 주시기도 하고, 저러한 것으로 주시기도 하실 것이다. 기름의 종류와 양에 따라서 말이다. 그리고 그 준비한 기름의 크기에 따라 보좌자리도, 천국집도 각기 마련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신분도 정해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기름은 처녀들의 일생의 수고와 사랑과 눈물과 땀이 담겨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기꺼이 하늘나라를 위해 그 기름을 준비했던 것이다. "오, 주여 나도 지금부터라도 그 기름을 준비하게 하소서!"

 

10. 나오며

  열 처녀의 비유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 "그랬었구나. 그 여인들이 그렇게 해서 기름을 준비하였고 그것을 허리에 차고 마중 나갔었구나"하고 생각하면 그 기름 한 방울 한 방울의 의미가 다시 한 번 되새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실천하지 않았던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러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그러한 사실에 관심도 없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댓가를 지불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곧 그들은 자신은 신랑을 마중 나갈 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 그날 그 시에 어떻게 신랑을 만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등'으로 상징되는 '성령'을 받았고(계4:5), 처음에는 그것으로 불도 사를 수 있었기에 그것이 있으면 신랑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재림은 지체되었다. 오늘날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믿는 순간에 죽지 않는다. 목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살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의 등불이 점차로 희미해져간다는 알아야 한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미처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믿은 것으로 혼인잔치에 그냥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혼인잔치에 못 들어간다. 그러므로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충분조건으로 그날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면 오늘 이 시간부터라도 그렇게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후5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품꾼이라 할지라도 하루치의 품삯을 주었던 그 포도원 주인(마20:1~16)이신 우리 주 예수님,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기억하고 오늘부터라도 신부단장을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2월 27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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