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신앙고백의 틀을 바꿀 때(계1:9-20)_2014-07-27

by 관리자 posted Oct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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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4-07-27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1:9-20(신약 39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지금은 벌써 배도의 시대에 접어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벌써부터 드러내놓고 루시퍼를 섬기며, 성경말씀을 조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난 4월 18일 천주교 바티칸의 한 추기경은 "재림에 대한 말씀은 예수께서 취중에서 한 실언이었다'고 말했으며, 4월 19일에는 교황이 루시퍼를 칭송하는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것을 방송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큰 일이다. 믿음있는 자라면 성경말씀을 가감하지 않으며 재림에 대한 약속을 끝까지 믿고 그 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본문 말씀은 A.D.95년경 복음을 증거했다는 이유로 고령의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붙들려 있을 때에 주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 하신 말씀을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게 보내라고 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사도요한이 본 환상 가운데 예수님은 그가 60년전 그분을 모시고 다닐 때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으며, 그분의 말씀은 자비롭거나 어떤 실수라로 용납하시겠다는 그러한 종류의 말씀이 아니었다.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던 예수님의 모습은 구약의 여호와의 모습과 같았던 것이다. 그분의 목소리는 많은 물소리와 같았고(겔43:2) 그분의 자태에서는 영광의 빛이 둘러 비치었고(단7:9), 그분의 눈빛에서는 불꽃이 이글거렸으며 그의 발에서는 금방이라도 밟아버릴 것만 같아 심판의 긴박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자 사도요한은 엎드려서 벌벌벌 떨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용모는 구약의 여호와의 용모와 동일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사9:6, 요1:14,18). 이제 천상의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며 공의로 심판하시는 절대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분이 써보내라고 들려주신 말씀은 엄중하고는 준엄한 경고의 말씀이었다. 용서와 용납의 말씀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교회를 없애버리시겠다는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축복의 말씀, 용서의 말씀만을 전해도 사람들이 받을까 말까 한데, 경고의 말씀, 심판의 말씀, 공의의 말씀을 전한다면 과연 성도들이 들을 것인가? 하지만 사도요한은 믿음으로 경고와 심판의 말씀을 일곱교회에게 써보내기로 한다.
  우리는 여기서 먼저 왜 사도요한에게 예수께서 그렇게 엄중한 심판주로서 나타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 예수님은 하늘에서 이제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지상에 보던 예수님은 형님같았고 때로는 장난도 칠 수 있었으나 환상중에 만난 천상의 예수님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 우리의 신앙고백을 재정립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제자들의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6)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지상사역을 마치고 천상에 가셔서 교회들을 돌보시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분을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정도로만 신앙고백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고 행위대로 모든 것을 심판하실 공의로운 하나님으로 신앙고백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믿는 사람들은 태만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루시퍼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비록 지상의 예수님을 믿어 천국열쇠를 받았다 하더라도 천국에 못 들어 가거나 들어갔어도 내어쫓김을 받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곱교회에게 써 보내라는 말씀을 살펴보면 그것은 거짓 선지자(사도, 교사)와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지 말라는 것인데, 이는 그것을 주의하지 못하면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우상숭배로 꾀는 발람이나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고, 거짓된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 성도들이여, 믿음 안으로 들어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거기에 합당한 삶 즉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라.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는 것이지만 거기에 따른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져야 할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말라. 인간이 감당해야 할 부분은 인간이 감당해야 한다. 믿고 난 후에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생활을 한다고 해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나가야 한다. 한 번 믿었으면 구원은 보장된 것이니 좀 죄짓고 살아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회개하라.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라. 그래야 죽을 때에 천국에 들어가는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07-27 주일낮설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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