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결심(마1:16~21)

by 갈렙 posted Dec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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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의 결심(마1:16~21)
[일시] 2015년 12월 13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35장 큰 영화로신 주, 찬 120장 오 베들레헴 작은 골, 찬 101장 이새의 뿌리에서
PW: 사랑, MIW: 지켜주는
T.S: 사랑이란 약한 자를 지켜주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혹시 유대인들의 결혼식을 구경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제는 예수님 당시의 결혼식장으로 한 번 가보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결혼은 두 번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약혼식를 합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결정하면, 신랑된 사람은 신부된 사람의 집으로 가서 그의 부모에게  허락을 받습니다. 그때 부모는 딸에게 한 잔의 포도주를 줍니다. 만일 딸이 포도주를 받아 마시면 허락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는 여자와 약혼한 것이 됩니다. 말은 약혼이지만  사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약혼은 결혼과  같은 법적인 효력을 갖고 있습니다.
  남자는 돌아가 그때부터 결혼해서 살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때 남자의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아들에게  결혼 생활을 위한 훈련을 시키고, 결혼 생활에 필요한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이제 약 1년쯤 지나 남자가 집을 다 짓게 되면 여자의 집으로 결혼식을 올리러 가는데 밤중에 갑니다. 이때에 약혼한 여자는 부지런히 결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결혼식에 입을 예복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밤에 있을 결혼을 위해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워 놓아야 합니다.
  이제 결혼식은 축하연으로 시작됩니다. 신랑과 신부가 짧은 시간이지만 이때 따로 축하잔치를 갖습니다. 이 축하연이 끝나면 신랑은 신부에게 가서 얼굴에 베일을 덮어줍니다. 이것은 신랑이 언젠가 사라질  외모가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명예의 손님이 신랑과 신부를 안내해 훕바(결혼 케노피텐트) 아래로 데려갑니다. 결혼 캐노피는 전통적으로 기도 숄이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의 법 아래 거함을 상징합니다. 이때 신랑은 신부를 일곱 번을 돌면서 보이지 않지만 하나의 성을 쌓습니다. 신부는  다른 모든 남성과 자신의 가문을 모두 내려놓고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는 이제 온전히 그리고 오로지 신랑과만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이룰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부는 신랑을 일곱 번 돕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신랑을 평생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이때, 랍비가 전통적인 결혼 축복 기도를 낭독합니다. 신랑은 신부의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어주고 케투바(결혼계약서, 신랑이 신부에게 결혼생활동안 지킬 조건을 )낭독합니다.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한 잔을 나눠 마시고 “7개의 축복서”를 읽습니다.
  그리고 신랑은 포도주잔을 던져 깨트립니다. 깨어진 잔은 결혼이 인생에 한 번만 있고 되돌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마젤 톱(축복)"을 외칩니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장 옆에 방으로 가 잠시 둘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제 부부가  축하연회장으로 들어오면  모두 대대적으로 그들을 환영합니다. 신랑은 남자들과, 신부는 여자들과 춤을 춥니다. 친구들이 신부와 신랑을 의자에 태워서 들어 올린 후에 춤을 춥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를 세워주고 올려주는 과정이지 서로를 폄하하고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춤이 끝나면  결혼식 만찬을 합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결혼식은 일생일대에 있어서 가장 축복된 시간입니다.
  사랑이란 약속과 축복을 통해서 서로를 지켜주고 서로를 위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러한 결혼식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을 앞두고 둘 사이에 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과연 요셉은 자기에게 찾아온 커다란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했던 것일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마리아와 요셉이 약혼한 상태에서 마리아가 잉태된 사실이 발견되었지만 사랑으로 그 모든 일을 자신이 책임지려했다는 말씀입니다.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어떻게 해서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모든 사람에게 알려서 자신과의 신의를 배반한 여인이 그것에 합당한 댓가를 치르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율법에 나온 규례대로 시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요셉이 그 사실을 가만히 정리하겠다고 했는데 , 이는 파혼하겠다는 결정인데, 그러면 요셉이 그 죄를 덮어쓰고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되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미쳤습니까?
  뿐만 아니라 지금 요셉은 그 여인과 결혼함으로 자신의 장인의 기업까지 물려받게 되어 있었는데, 그녀와 파혼한다면 아무것도 건질 수 없게 되는데, 그래도 괜찮은 것입니까?

2)청중적 접근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파혼에 관한 모든 책임을 내가 뒤집어쓴 채 모든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사람이 우리 중 대체 몇이나 될 수 있을까요?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닌데, 여자 하나 살리자고 모든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만약 주변의 사람들이 속사정을 알게 된다고 하면, 잘 했다고 할까요? 미친 놈이라고 할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B.C.6년경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요셉은 이미 마리아와 약혼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행복하게 살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그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약혼녀가 자신의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가 상당히 불러온 상태에 있었습니다. 어찌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율법규정에 따르면, 이 여자는 어떻게 처리해야 옳습니까?
신22:23-24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24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그녀는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그렇게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마리아의 잉태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마리아는 틀림없이 부정한 여인이 되어 돌에 맞아 죽게 될 것이 뻔합니다.

4)문제발생원인
  만약 요셉이 파혼을 선언하게 된다면, 이혼에 관한 모든 책임을 다 요셉 자신이 떠맡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자신에게 유익할 만한 것은 한 개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뒤집어 쓴 누명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혼사길이 막힐  것은 뻔하며, 어쩌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할 지도 모릅니다.

5)문제 심리묘사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 있어도 내가 앞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 너무 크면 그 일을 결정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해서 상대방을 위한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그 결정이 내게 손해만 끼치는 것이요 나의 앞길을 막는 것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쉽게 결정할 수 없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녀를 사랑했기에 파혼을 결정합니다. 그리하여 그녀가 상태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그녀를 은밀하게 떠나보내버리기로 결정합니다. 설령 그렇게 한다면, 행복한 결혼의 꿈이 날아가버리고, 자신의 미래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그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셉의 결심을 바라보십니다. 그의 결단이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나쁜 것들을 가져올지 뻔 한데도 스스로 파혼을 결정한 요셉을 보시고는, 그를 붙들어주고 싶어하십니다. 그의 결정이 그의 장래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어하십니다.

가. 그렇다면, 요셉이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첫째, 그것은 파혼의 책임을 다 자신이 떠맡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파혼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돌아올 모든 수치와 도덕적인 불명예와 심지어 불투명한 미래까지도 자신이 끝까지 갖고 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요셉은 마리아와 데이트 한 번 제대로 못해 보았습니다. 결혼을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혼식날까지 그녀의 순결을 지켜주는 것은 약혼하는 남자의 가장 중요한 예의였습니다. 그래서 오직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기다리며, 여태껏 애써 왔습니다. 그런데 왜 마른 하늘에 날벼락입니까?
  만약 그녀의 임신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녀의 상태를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른 채 할 수도 없습니다. 결혼식날이 머잖아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녀와 파혼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놓아주기로 결정합니다. 결혼을 결정해놓은 상태에서 파혼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자신이 감당하고자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마도 요셉이 그 일을 결정한 다음에 그 마을에 살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마리아가 임신한 책임이 요셉 자신에게 있었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파혼의 책임이 요셉에게 눈꼽 만큼이라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마리아에게 있습니다. 요셉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녀와 결혼하기로 약속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지금 파혼의 책임을 다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러 어리석고 미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둘째,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을 기업을 다 포기하겠다는 뜻입니다. 사실 요셉은 좀 가난한 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가정은 좀 더 나은 가정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아버지가 요셉을 사위이자 아들로 삼으려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리아의 가정은 부족한 것이 없는 가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마리아의 집에는 아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아버지는 어떤 인물입니까? 그녀의 아버지는 ‘헬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헬리는 두 명의 딸만을 낳았습니다. 첫째가 마리아요, 둘째는 살로메입니다. 살로메는 세베대의 아내이자, 예수님의 12제자의 하나였던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입니다. 살로메는 예수님의 이모인 것이죠. 그 살로메가 시집을 갔는데, 당시에 살로메의 남편 세베대는 배도 가지고 있었고 종들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살로메가 시집갈 때 그녀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도 같은 유다지파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하게 된 것은 율법의 규정에 따라 헬리에 의해서 선택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헬리의 장녀인 마리아와 결혼하게 된다면, 요셉은 헬리의 기업까지 물려받을 수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자, 마리아의 족보를 한 번 보시겠습니다.
눅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법대로라면) 그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요셉은 헬리의 아들이요)
  예수님께서는 법대로 치자면 그는 다윗의 가문으로서, 요셉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요셉은 야곱의 아들로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1:16에 의하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지, 결코 헬리의 아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족보에 의하면, 요셉은 헬리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자, 여기 한 번 도표를 보겠습니다.

  헬리가 아들이 없었기에, 마리아의 첫째사위인 요셉이 장인의 족보를 법적으로 계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 의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아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기업은 딸들에게라도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런 경우 딸들은 그들의 기업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지파의 남자와 결혼할 수 없었고 반드시 자기가 속한 지파의 남자와만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민36:1~12).
민36:8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그 기업을 이은 딸들은 모두 자기 조상 지파의 종족되는 사람의 아내가 될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전하게 되어
  마리아의 경우도 아버지 헬리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기업을 상속하기 위해서는 같은 유다지파의 총각과 결혼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가 바로 요셉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헬리의 법적상속자 곧 법적인 아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마리아는 헬리의 딸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시나이틱 시리악 사본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 둘 다 다윗의 집 족속이라(눅2:4)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가난했고 특출한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 동네에서 유다지파사람이었기에 헬리의 사위로 점찍힌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결혼하기만 하면 장인의 기업과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그만 임신을 한 것입니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그러니 이 일을 어찌합니까? 자신에게 찾아온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내려놓아야 할 판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이 파혼을 결심한다고 하는 것은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을 기업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녀와 결혼하면 얻게 될 엄청난 재산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를 은밀히 떠나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셋째, 이 세상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파혼을 결정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치고 가장 아름다운 날은 언제일까요? 결혼식날입니다. 가장 기쁜 날도 결혼식날입니다. 자신의 영원한 짝을 찾아서 하나가 되는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전통결혼식은 밤을 새워서 진행합니다. 그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그들을 밤새껏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새벽이 될 때까지 말이죠. 특별히 그가 지난 1년동안 지어놓은 집도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파혼을 결정했다는 것은 그러한 결혼의 기쁨, 이 세상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을 내려놓겠다는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누군가에게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내 욕심을 다 차리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첫째, 상대방의 허물이 발견하더라도 그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을 위해 상대방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상대방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잠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벧전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둘째, 사랑이란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 오히려 내가 어려움과 손해를 대신 떠안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엄청나게 경제적으로 손실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러한 경제적인 손실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헬라어로 ‘아가페’라고 부릅니다. 아가페는 자신을 희생해서 상대방을 살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한 우리가 지옥형벌을 받는 것을 그대로 놔두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대신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셋째, 사랑이란 상대방을 지켜주기 위해 이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지켜주기기 위해 요셉은 파혼을 결정합니다.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게 하지 않기 위해 요셉은 파혼을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도 그 순간 기꺼이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그렇다면, 요셉이 사랑의 마음으로 파혼을 결정하게 됨으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말 동네사람들에게 치욕적인 사람이라고 놀림을 받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명예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자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잘 실천한 명예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불명예를 갖고 살아가지 않도록 로마의 황제를 동원하셨습니다. 그가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지 않도록 그와 그녀를 그 동내에서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급하게 로마황제를 동원하여 천하로 호적령을 내리게 함으로, 자신이 파렴치한의 사람으로 알려지지 않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호적령 때문에 호적하러 자신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갈 때 자신의 아내된 마리아도 데려갔고, 그 뒤를 이어 헤롯대왕이 2살 아래의 아이들을 죽이려고 하자 애굽에 피신했다가 헤롯대왕이 죽은 후에 다시 나사렛에 가서 살았기 때문에, 아무도 태어난 아기를 사생자로 보는 이가 없게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사랑으로 마리아를 돌보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수치도 가리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아버지라 칭함을 받는 가장 명예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 그가 비록 파혼을 결정하기는 했지만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잉태된 사람이 누군지를 알게 되어 그는 결국 파혼을 하지 않게 되었고, 어떠한 손해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리아와 실제로 부부가 됨으로, 장인인 헬리의 기업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기업이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재산이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기업이 이 세상의 땅이나 부동산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아들의 그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목수의 일을 배워 목수가 되었고, 지금도 천국에서 우리의 집을 짓고 있는 하늘의 목수가 되셨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사랑하기에 때로는 내가 손해보는 것 같고 내가 불명예를 안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복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결코 두고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눈물에서 억울함을 씻어주십니다. 결코 손해가 나지 않게 하십니다. 결코 불명예를 떠안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도 때로는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 상대방을 어찌하든지 구해내기 위해 고통을 대신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나쁜 사람으로 불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누가 보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신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하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대신 어려움을 당하는 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을 당할 때 결코 슬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것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천사를 보내서라도 우리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막아주십니다.

2)결단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허물이 보입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내게 손해가 되는 것이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진정 예수님과 같은 사랑이 있다면 우리도 사랑의 마음을 실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속담처럼 우리도 행함으로 실천할 때 참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올 해가 다 가기 전에, 내가 말한 것 때문에 상대방의 허물이 드러낸 일이 있다면 가서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나의 부족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단하십시오. 그런 자가 바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에 많을 때에 교회는 행복해집니다. 아름다워집니다. 2016년에는 그래서 행복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랑이란 사람을 살리는 것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랑이란 사람을 지켜주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랑이란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랑이란 상대를 위해 내가 손해보는 것을 선택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동안 참된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사람을 살리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내가 오히려 손해 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아픔이거들랑 내가 안고 가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내 유익이라도 내려놓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참된 사랑의 실천을 어리석은 행위로 몰아붙이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꾀이는 악한 영들은 떠날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사랑을 실천할지어다. 예수님처럼 살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약혼한 여자가 남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 간음죄로 처벌받는거로구나.
2. 마리아를 살리기 위해 요셉은 파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신이 떠안으려했구나.
3. 마리아를 지켜주기 위해 요셉은 장인의 기업을 물려받는 것이라도 포기해야했구나.
4. 사랑이란 사람을 살리는 것이요,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요, 상대방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이로구나.
5. 예수께서는 요셉의 희생을 통해서 임신중에 안전하게 보호되셨으며, 태어나셨구나.
6. 남자란 모름지기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자신이 책임을 떠안는 존재로구나.


[다운로드하기] 2015-12-13 요셉의 결심(마1;16~2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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