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계3:20)_2024-05-26(주일)

by 갈렙 posted May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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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3:20)

[일시] 20240503(주일) 오전9, 11

[찬송] 29장 성도여 다함께,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날, 272장 고통에 멍에 벗으려고

PW: 믿음, MIW: 영접하는

T.S: 믿음이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자기의 마음 속에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즉시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실까요? 아니면 예수님을 믿는 사건이 먼저 있고 한참 뒤에 성령이 들어오시는 것일까요?

또한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 들어와 거주하시는 것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성령께서 자기 위에 기름붓듯 부어지는 것이 먼저일까요?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부어지심이 동시에 일어난 사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 교회는 성령의 부어지심이 먼저 일어났고, 나중에 성령의 내주가 있게 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과 내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다는 말은 같은 의미일 수도 있고,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분들은 구약적인 성령의 내려오심 곧 성령의 부어지심을 자신이 경험했기에 자기 속에는 성령께서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자기 속에 성령이 아니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적인 성령의 임재방식 곧 성령의 부어지심만을 보고서,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성령의 부어지심이 일어났어도 여전히 자기 속에 성령이 아니 계신 분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처음부터 거듭나지 않았는데, 자기에게서 성령의 나타나심을 보고는 자신은 거듭났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사역자는 아직 거듭나지도 않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에게서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니, 자신은 이미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사람들 중에 사탄이 그 마음을 주관하면 그가 사탄의 종으로 쓰임받게 됩니다. 그러면 이 사람에게는 성령의 은사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지만 사탄의 사역자이기에 그의 손에서 예수님의 보혈이 나오지 않고, 그의 손에거 검은 액체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도 않았는데 자기에게 나타난 은사만을 보고서 자신은 거듭난 자이자 성령사역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믿는 것과 거듭난 것은 서로 다른 것이다.

둘째, 자기 위해 성령이 부어지는 것과 성령께서 자기 안에 들어오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즉시 그 사람이 거듭나서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옴으로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이제 구원의 여정에 그가 첫발을 들여놓았으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는 뜻일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출입문 밖에 서서 두드리실 때에 우리의 자유의지로 그분에게 내 마음의 출입문을 열어드리면 그분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오시어 그분이 나와 함께 저녁 만찬을 드시고 나도 그분과 더불어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역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20 보라! [내가문 가까이에서 서 있는 채 있다그리고 [나는[현재] 두드리고 있다만일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단번에듣고 [단번에출입문을 연다면, [내가그를 향하여 들어갈 것이다그러면 나는 그와 함께 [정찬을] 먹을 것이다그리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왜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문 앞에서 서 계신 채로 있어온 것일까요?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뜻인가요?

왜 예수께서는 강제로 사람의 마음 문을 열고 들어가시지 왜 계속해서 마음 문 밖에서 서 계셔온 것일까요?

그리고 또다시 라오디게아 성도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지금 교회 안에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자기 자기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95~96년경 그러니까 예수께서 돌아가신지 65년이 지난 시점, 밧모섬에 귀양을 가게 된 사도 요한이 천상에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주님께서는 결론적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있는 채로] [있다. 그리고] [나는] 두드리노니, [만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출입]문을 열면(연다면), 내가 그에게로(그를 향하여) 들어가(들어갈 것이요 그리고) [그래서 나는] 그와 더불어 먹[을 것이],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먹을 것이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예수 생명이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가는지를 잘 모르면, 자신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니 자연히 거듭나서 자기 안에 예수 생명이 있는 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 생명이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가는지를 잘 모르면, 자기에서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으니 자신은 당연히 예수 생명을 가진 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 생명이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가는지를 잘 모르면,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자연히 자기 속에 성령께서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 생명이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가는지를 잘 모르면, 자신이 교회에 출석한지 벌써 30년이상 되었으니 자신을 절대적으로 자기 안에 예수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자기 안에 과연 예수님의 생명이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만일 예수생명이 없다면 오늘 이 시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해 기꺼이 그분을 자기 마음 속에 영접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내 이름이 과연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최근의 영적 사실에 따르면, 다음의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생명책에 그 이름이 있는지 생명책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의는 쉬운데 실제로 생명책을 들쳐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가깝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과연 누가 저 셋째하늘에 감추어진 채 있는 생명책을 어찌 들여다볼 수가 있겠습니까?

둘째, 믿는 사람에게 과연 수호천사2명 이상 붙어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힘듭니다. 왜냐하면 영안이 열려야 천사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안이 열리지 않았으면 과연 내게 천사가 2명이 달라붙어 있으니, 3명이, 7, 21명이, 31명이 달라붙어 있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는 사람의 영의 손에서 과연 예수님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영안이 열려서 사람의 영의 손에서 예수님의 보혈이 얼마나 흘러나오는지를 알 수 있을 뿐, 일반적인 사람의 경우는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넷째로, 이러한 사실을 결과론적으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계시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으로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사람 속에 들어오실 때에는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늘에 있는 어린양의 생명 책에 그 사람의 이름이 기록이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어떤 결과를 가질 때에 비로소 우리가 거듭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넷째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말하는가를 체크해 보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란 성령께서 사람 속에 내주하게 되었을 때에, 영이 살아남으로 사람이 방언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의 경우, 그들이 방언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2:4 [그러자] 그들이 다(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령이 [담대하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발언)하기를 시작하니라(하였다)

이것은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고넬료 가정에서도 그렇게 나타났고,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에베소교회에서도 그렇게 나타났으며,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은 바울에게서도 방언을 하는 역사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방언말함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가 하게 되는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16:17~18 [그런데] 믿는(믿었던)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장차] 따르리니(따를 것이다)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안에서) [장차] 귀신을 쫓아내며(낼 것이다), [그들이] 새 방언[][장차] 말하며(발언할 것이다) 18 [그리고 그들이 손들 안에서] [장차] 뱀을 집어올리며(올릴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무슨 독(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그것이 결코 그들을] 해를 받지(해하지) 아니하며(못할 것이다) [그들이] 병든 사람[]에게(위에) [][장차] 얹은즉(얹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나으리라(잘 됨을 가질 것이다) 하시더라

그러나 고린도전서 12에 보면, 다 방언들을 말하는 자겠느냐?”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방언을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가 거듭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12:30 (모든 이들이)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모든 이들이) 방언[]을 말(발언)하는 자이겠느냐? (모든 이들이)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본인이 온전한 방언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름이 이미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라오디게아 교회상은 어느 시대의 교회상인가?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다 방언을 말하는 자들이었을까요?

라오디게아 교회는 소아시아에 위치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소아시아에 위치한 교회들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소개된 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맨 마지막으로 소개된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3가지입니다.

첫째, 이 교회는 사데교회와 마찬가지로 칭찬은 하나도 없고 오직 책망만 있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19). 왜냐하면 뜨뜻미지근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 교회는 스스로는 외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볼 때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라고 말하지만 내적으로나 혹은 영적으로 볼 때 매우 가난하고 벌거벗었으며, 눈이 멀어 있는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내린 평가가 아니라 자기자신들이 자기를 평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교회를 소개할 때에 순서상 맨 마지막에 소개하고 있는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언급하듯이 이 교회야말로 말세지말의 교회상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교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말세지말의 교회상으로 언급되어 있는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과연 자기들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고 있던 교회였을까요?

첫째, 그들 속에 성령이 내주하고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발견하기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들은 성령의 은사마저도 없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을 통해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첫째, 주님께서 자신의 입에 있는 그들을 토해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16). 이는 그들을 주님께서 다 삼켜서 자신의 살과 피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교회의 성도들의 상당수가 믿고 있으나 아직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는 못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들은 믿고는 있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16 [왜냐하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뜨겁지도 아니하고 [역시] 차지도 아니하니, [나는] 내 입에서[부터] [자신]를 토하여 버리리라(토해버릴 것을 막 작정하고 있다)

 

둘째, 예수께서 자신의 상태를 소개하실 때에 아직 이 교회 성도들의 마음 문 밖에 서 계신 채로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0). 이는 대부분의 성도들의 마음 속에 아직 예수께서 못 들어간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있는 채로] [있다. 그리고] [나는] 두드리노니, [만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출입]문을 열면(연다면), 내가 그에게로(그를 향하여) 들어가(들어갈 것이요 그리고) [그래서 나는] 그와 더불어 먹[을 것이],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먹을 것이다).

 

셋째, 예수께서 자신을 아멘, 신실하고 참된 증인, 창조의 시작이신 이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4). 이는 그들이 영적으로 이제 비로소 시작해야 할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3:14 라오디게아 [안에 있는] 교회의 사자(메시지 전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진실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시작)이신 이]이것들을] 이르시되(말씀하신다)

이것을 거꾸로 해석하면 그들은 지금 진실로의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며, 충성되지도 않고, 참된 증인으로 삶을 살고 있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곧 영의 자식으로서의 새로운 창조를 아직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오늘날에 교회에는 출석하고 있으나 성령이 아직 내주하지 않아 거듭나지 않은 성도들로 가득차 있는 교회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 채 성밖으로 던져지고 있다는 간증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내가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가 다 다 생명책에 우리 자신의 이름이 다 기록된 채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만약 그가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채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1)에베서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주님과의 첫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2)서머나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핍박과 환란 가운데서도 죽기까지 충성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3)버가모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죽임당하는 순간에서도 결코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4)두아디라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거짓된 선지자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고 그들에게 결코 좌지우지 되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5)사데 교회의 이기고 있는 자와 같이 죄를 짓지 않아서 자신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있을 뿐더러 주님께서 원하시는 합당한 삶을 살아서 흰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6)빌라델비아 교회의 이기는 자와 같이,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께서는 3가지 것을 권면했습니다.

첫째,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음을 진실로 회개해야 합니다(19). 차가운 사람이 되든지 뜨거운 사람이 되든지 열심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그만큼 많이] 책망하여(책망한다) [그리고 나는]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 [그리고 너는 단호하게] 회개하라

둘째, 자신의 마음의 문을 이제 열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인격적으로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20).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있는 채로] [있다. 그리고] [나는] 두드리노니, [만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출입]문을 열면(연다면), 내가 그에게로(그를 향하여) 들어가(들어갈 것이요 그리고) [그래서 나는] 그와 더불어 먹[을 것이],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먹을 것이다).

따라해 봅시다.

주여, 이 시간 저는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지금까지 저는 뜨뜻미지근하게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내 속에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셔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사람이 되시기를 자처하셨으며, 그래서 2천년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영접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심은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또한 나를 위해 기쁨으로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은 나의 죄를 씻어주기 위한 죽음이었고, 나를 살리기 위한 죽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정작 죄가 없으셨으니, 죽으신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 이 시간 그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원히 영접합니다. 주님,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원히 모셔들입니다. 지금 이 시간, 내 속에 들어오시옵소서. 내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시옵소서. 그래서 세상 끝날까지 나를 떠나가지 마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셋째, 이제부터는 영적인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8). 즉 물질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영적으로 깨끗한 옷을 입으려고 노력하며, 영적으로 눈이 열려져서 영적인 세계를 보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17~18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비참한) 것과 가련한(불쌍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너는]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사라) [그래서] 부요하게 하고, [그리고 너는] 흰 옷을 사서(사라) 그래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하라) [그리고 너는] 안약을 사서(사라) [그래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것은 세상 은행에 돈을 맡기는데 신경쓰지 말고, 순결한 믿음을 얻는데 너의 시간과 돈을 쓰라. 세상의 비싼 옷을 구입하는데 신경쓰지 말고, 회개하여 깨끗하고 순결한 세마포 흰 옷을 장만하는데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라. 그리고 안약을 사서 발라서 자기의 시력을 좋게 하는데에만 신경쓰지 말고,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하늘의 것을 바라보고 하늘의 것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 뒤에, 예수님을 자기의 마음 속에 인격적으로 받아들여 영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내 삶에 예수님은 과연 어떤 존재로 있습니까? 그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까? 아니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입니까? 만약 예수께서 우리 인생에 있어서 그분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라면 예수께서는 아직 우리 마음의 밖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직 영적으로 아직 시작도 못해 본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사위를 던졌습니다. 이 예수님을 나 자신의 개인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천국을 향한 신앙의 항해를 시작해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더욱더 순결한 믿음을 추구하십시오.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죄를 지었으면 회개해서 날마다 깨끗한 세마포 옷을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회개를 하여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십시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가 갖게 될 지위와 신분을 위해 달려가십시오. 그것을 얻기 위해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투자하십시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그것을 받을 날이 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1. 주여, 그동안 내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지도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용서해 주소서.

2. 주여, 성령께서 내게 들어오시면 내 영이 살아서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이었는데, 방언말함을 무시하며 살아왔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3. 주여, 지금 나의 모습이 뜨뜻미지근한 말세의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4. 주여, 지금까는 나는 세상적으로는 그리 부족하지 않았지만, 영적으로 보면 믿음이 지극히 가난한 자였으며, 눈은 떴으나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하는 자였으며, 더러운 옷을 입은 채 있었음을 깨닫지 못했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5. 주여, 지금까지 주님을 내 마음 밖에 서 있게 했습니다. 용서해 주소서,

6. 주여, 오늘에 이르러 내 자신을 비로소 바라보고 새 출발을 하게 하시니 진실로 감사하옵고 감사드립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1. 주여, 이제는 주의 일에는 뜨겁고 죄에 대해서는 차가운 자가 되겠습니다.

2. 주여, 이제는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겠습니다.

3. 주여, 이제는 주님을 결코 문밖에 서 계시게 하지 않겠습니다.

4. 주여, 이제는 내 온 맘으로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5. 주여, 이제는 희고 순결한 세마포 옷을 준비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1.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직시하게 못하게 막아온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2.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은 것이라고 속여온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3.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4. 내 마음 중심에 예수님만을 나의 구주와 유일한 하나님으로 영원히 믿고 섬길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채 있는지는 방언 말함으로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한 것이었구나.

2. 라오디게아 교회상은 마지막 시대의 교회상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것이로구나.

3. 라오디게아 교회는 오늘날 교회는 출석하고 있으나 성령께서 내주하지 않음으로 거듭나지 않은 성도들로 가득 찬 교회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로구나.

4. 내가 거듭난 자라면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구나.

5. 내가 거듭난 자라면 회개하면서 순결한 믿음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었구나.

6. 내가 거듭난 자였다면 영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천국에서 얻을 지위와 신분과 상급을 위해 오늘도 뛰어가고 있었어야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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