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람이 무기력증에 빠지는 이유와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왕상19:1~8) [일시] 2025년 03월 02일(주일) 오전9시, 11시 [찬송] 찬 12장 다 함께 주를 경배하세, 찬 92장 위에 계신 나의 친구, 찬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PW: 믿음, MIW: 사명의 자리 T.S: 믿음이란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자신의 사명의 자리로 되돌아가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들 가운데 가장 강한 능력을 행한 선지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엘리야 선지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말 한 마디에, 3년 6개월동안 북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며, 서슬퍼런 이세벨 왕비가 자기 밑에 두고 있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워서 승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강했던 엘리야가 그만 무기력증에 빠질 때가 있었습니다. 만사가 다 귀찮아지면서 어떤 일도 하기 싫어하는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는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까지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강하디 강한 엘리야 선지자는 그만 무기력증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엘리야로 하여금 그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하셨던 것일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엘리야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7대왕이었던 아합왕이 이끄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갈멜산에서, 누가 진정 살아있는 하나님인지를 대결하여 승리한 후에, 다음날 아합왕의 왕비인 이세벨이 하루가 지나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사신을 보냈을 때, 사신의 말을 듣고는 자기 사환과 더불어 도망을 쳐서 남유다의 경계지점인 브엘세바까지 내려갔고, 또다시 혼자서 광야로 더 들어가 한 로뎀나무 아래에서 자기를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 그를 두 번씩이나 먹이고 마시게 하신 후 40일만에 호렙산에 가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엘리야는 얼마 만에도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과 대결하여 승리했던 사람이었는데, 하루가 지나자 연약함에 빠져서 이세벨 왕비가 무서워 도망을 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위세가 당당하던 엘리야의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1대 850명의 대결에서 의연하게 승리했던 모습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요?
아무리 이세벨이 무서운 왕비라고 하건만, 850명의 선지자들과 싸울 때 전혀 기죽지 않았던 당당함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왜 그는 도망치기에 바빴던 것일까요?
왜 엘리야는 이세벨이 자기에게 보낸 사신에게, 오히려 내일 이맘 때에 하나님께서 이세벨 당신의 입을 쳐서 그녀가 한 말대로 그녀가 죽게 될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또 자신이 그는 왜 이세벨에게 죽임당해 순교하지 않고 굳이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했던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우리가 보기에,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였는데, 어느날 축 쳐져서 힘이 다 빠진 사람처럼 맥없이 걸어다니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B.C.855년경,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왕이 이끄는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직후에 일어난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갈멜산에 전투에서 자신의 선지자들을 잃어버린 아합왕은 급히 왕궁이 있는 이스르엘에 도착하여, 엘리야가 행한 일과 어떻게 엘리야가 모든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보고합니다.
그러자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 내일 이맘 때에 네 목숨을 바알선지자들 같게 할 것이라고 겁박을 하면서,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신이 자신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릴 것이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왕상19: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목숨)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목숨)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러자 엘리야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이세벨 왕비가 북이스라엘에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칼로 마구 죽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때 궁내대신이었던 오바댜가 굴 속에 선지자 100명을 숨기지 아니했더라면 북이스라엘에서 선지자의 씨가 말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을 꼭 찝어서 자신을 죽이겠다고 하니, 겁이 덜컥 난 것입니다. 이세벨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즉시 도망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사환과 함께 남유다의 맨 경계지점인 브엘세바까지 약 140km를 도망쳤습니다. 한 3일길을 도망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자기 사환은 브엘세바에 두고 광야로 하룻길 약 32~40Km를 더 도망쳤습니다. 아마도 자신을 뒤쫓아올 이세벨의 군사들을 피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늘을 만들어주는 하나의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합니다. 지금 족하니 자기의 목숨을 거둬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지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면서 깨웠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먹으십시오.” 그러자 살펴본즉 자신의 머리맡에 구워놓은 둥그런 떡과 물병에 담겨진 물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그것을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쳤는지 또 잠이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또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면서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먹고 마시십시오. 이것을 먹지 않으면 기력이 쇠하여져서 선지자님께서 가야 할 길을 못 갈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그 천사는 엘리야 선지자가 가고자 하는 장소를 아는 것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엘리야가 다시 일어나 두 번째로 구운 떡과 물병의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의지하여 40일을 주야로 이동하여 드디어, 미디안 광야에 있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호렙산까지는 적어도 약 400Km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그러니 아마도 열심히 걸어갔다고 할지라도 아마 보름(15일)은 족히 걸렸을 것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때로는 겁먹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자기만을 꼭 찝어서 죽이려드는 힘있는 자를 보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자신을 해할 만한 능력과 권세를 가진 사람 앞에서는 아무래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하나님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질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너무 지쳐 육체에서 힘이 빠져버리면 사람이라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자신이 열심히 주의 일을 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자신의 형편을 비관하면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보상이 없고, 오히려 어려움이 가중되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고 오히려 자신에게 위험만 가중될 때에는 엘리야처럼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내 인생에 어떠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모든 상황을 다시 판단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엘리야는 왜 멀리멀리 도망쳐야 했는가?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선지자를 한 사람 들라 하면 그는 아마도 엘리야 선지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기는 북이스라엘 나라 가운데 가장 우상숭배가 극에 달했던 때였습니다. 그때는 북이스라엘의 일곱번째 왕이었던 아합왕이 다스렸는데, 정략결혼으로 인하여 그는 시돈의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 민족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 신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마리이에 성전을 세우고 성대하게 섬기던 시대였습니다.
그렇지만 처음 엘리야가 부름을 받던 시기에 그는 참으로 담대했습니다. 아합 왕 앞에서 자기 말이 있기 전까지 수 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이슬도 내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의연하게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이세벨 왕비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찾아서 모조리 죽이기 시작하였고 북이스라엘의 유일한 제단인 산당들마저 다 허물어 버렸습니다. 그때 갈멜산의 산당도 허물어졌습니다.
그리고 아합왕이 자신을 어떻게 하려고 찾아왔을 때,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왕에게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 함께 오라고 하면서, 과연 누가 진짜 신인지를 겨뤄보자고 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가 붙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물을 태우는 신이 진짜 신이라는 내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불을 내려준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엘리야는 신들간의 싸움에서 패배한 바알 선지자 450명을 기손강가에 데려가서, 숙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3년 6개월만에 엘리야의 말을 따라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바알선지자들의 우상숭배 행위가 그치자 하늘에서 비를 내려 기근재앙이 멈추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북이스라엘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야 마땅할까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으로의 신앙회복운동이 일어나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엘리야에게 돌아온 것은 북이스라엘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세벨 왕비가 자신을 목숨을 찾는다는 기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이세벨의 손을 피해 멀리 멀리 도망쳤습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뿐만 아니라 이세벨 왕비가 자신을 죽인다고 하니, 자기의 목숨마저 위태롭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나. 왜 엘리야는 도망치다가 자신의 목숨을 거둬달라고 주께 부탁했는가?
보편적으로 사람이 낙심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행한다고 작정하고 일을 열심히 행하였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은 주어지지 않은 채, 육체적으로는 지치고 그리고 오히려 자기에게 어려움만 가중될 때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엘리야처럼 대개 절망하면서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왜 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다 바치며 수고하고 헌신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내가 위험할 때에는 오히려 나를 지켜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어려움만 가중시키느냐면서 대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열심히 주의 일을 감당했는데, 자기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어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돌아보지 않는 것 같아서 매우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육체적으로 매우 지쳐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엘리야는 어찌 하나님께서 내게 이럴 수 있느냐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목숨을 빨리 거둬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행하였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위험만 다가오자, 엘리야는 절망하고 낙심한 채 무기력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사실 엘리야는 어떠한 이세벨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오히려 의연하게 대처해야 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세벨에게 그녀가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그녀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엘리야는 갈멜산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따라주고 자신을 지켜줄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자, 그만 무기력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에 그는 혼자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자기는 자신의 조상들보다 아무것도 나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면서 자신을 비관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합니다.
다. 하나님은 어떻게 엘리야를 위로하셨고 용기를 심어 주셨는가?
그런데 이때 하나님으로부터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주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고 그를 다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다루셨는지는 오늘 본문 다음의 말씀(왕상 19:9~18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3가지였습니다.
첫째, 주님께서 그를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영육이 지쳐있는 엘리야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습니다(5~8절).
왕상19:5~8 [그가]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그런데 보라!] [한]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그가]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두번째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그가]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주님은 하나님께 실망하여 대드는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갈멜산에서 얼마나 큰 영적 전쟁을 치렀는지를 잘 아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 사실 엘리야도 두려워서 떨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등에서는 한 줄기 땀줄기가 또르르 흘러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도 두려워서 떨린다는 것을 숨긴 채, 담대하게 850명의 선지자들과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순간에 그에게 갑옷을 입혀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난주 천국에 있는 엘리야의 집에 올라가서 알았습니다.
그리고 갈멜산의 싸움이 끝났을 때, 엘리야는 기진맥진하여 몸이 몹시 피곤했습니다. 힘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그러자 도망치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기진맥진하여 잠들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우선 그의 몸부터 챙기셨습니다. 그의 몸이 회복될 수 있도록 당신의 천사를 보냈습니다. 천사를 시켜서 그에게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철판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먹게 했습니다. 그래서 기진맥진한 채 있는 그로 하여금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사명의 산이라 불리는 호렙산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역자라도 큰 일을 하고 나면 조금 쉬어주어야 합니다. 일반 우리 성도들이라도 큰 영적 싸움을 하고 나면 조금 쉬어주어야 합니다. 육체가 모든 것을 다 견디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귀신과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귀신들과 목숨 걸고 싸워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육체가 쇠약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축사나 치유사역자들을 몸 건강을 잘 챙기면서 사역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일반성도들이라고 할지라도 영적 싸움을 하려면 몸 건강에 특히 유의하셔야 합니다. 엘리야처럼 이틀동안 쉬지 않고 잠만 자야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역자가 알아야 할 사실은 자신이 엄청난 능력과 기적을 행하였다는 것보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9~10절).
왕상19:9~10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당신)의 언약을 버리고 주(당신)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당신)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주님께서 호렙산에 도착한 그에게 왜 여기에 있느냐를 물었을 때에, 그는 북이스라엘에서는 오직 자기자신만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다는 말했습니다. 반대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세벨을 따라 다 주님의 언약을 버려버렸고, 주님의 제단을 다 헐어버렸으며, 주의 선지자들은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을 섬길 자가 아무도 없고, 오직 자신만이 남아있는데, 이제는 이세벨을 비롯한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자신의 목숨을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가 행한 갈멜산 전투가 그가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한 것이었음을 깨닫도록, 하나님께서 과연 어디에 계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이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위대한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은 환경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실행하는 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과연 어디에 계신지를 그에게 보여주심으로 그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첫째 먼저는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며 지나갔습니다. 그 바람은 바위를 부서뜨렸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땅 흔들리며 갈라지는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지진 중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불이 붙었습니다. 매우 강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의 물건들을 휘감아 태웠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하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넷째는 이제 가느다랗고 조용하고 부드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음성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즉시 자신의 겉옷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우고 동굴 어귀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을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꼭 어떤 위대한 일을 할 때에만 거기에 계시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갈멜산의 전투에서만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찾아와 언제라도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는지 그 방식을 잘 모르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나즈막한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그가 미래에 해야 할 일을 먼저 알려주시면서 다시 사명의 자리로 되돌아가서 남은 사명을 완수하라고 하셨습니다(15~18절). 그것은 3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는 아람나라의 왕을 주님이 바꿀 것이니, 새 왕으로 등극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지금까지 아합과 이세벨이 북이스라엘의 왕과 왕비가 되어서 행한 일을 하나님께서 다 알고 있으니, 그를 심판하여 아합의 가문을 멸절할 차기 왕이 될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엘리야의 대를 이어 다음의 선지자가 될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찾아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을 대신하여 선지자직무를 수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자신이 실로 위대한 일을 했다고 그것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라도 자신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이든지 주님께 기도하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알려주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문득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았다고 하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그것도 자신이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한 것이었고 자신은 다만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자신이 행했던 일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세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했던 사람을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실 때에는 어떤 개인 혼자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또 준비해둔 사람을 쓰시는 것임을 알라고 하시고, 부름받은 자는 자신이 할 일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어떤 능력이 나타났다고 하여 자신만이 하나님의 쓰는 사람인 것인량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이라도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차기 주자에게 입혀주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께서 크게 쓰임받으면 쓰임받을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주권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자신의 사명의 자리로 되돌아가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나.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누가 갈멜산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해 주셨을까요? 엘리야의 열심이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관하신 것일까요? 그렇다면 엘리야가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달았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깨달아야 합니다.
“네가 아무리 큰 일을 행했다고 해도 그것은 네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네가 자신이 크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라도 내게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면 누구든지 만나주느니라. 그러니 자신이 위대한 일을 행했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하지 말고, 언제라도 내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를 배운다면 나는 네 갈 길을 끝까지 인도할 것이다.”
요 며칠 전에 저는 저와 동역하는 목사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1층은 상방이었고, 2층은 역사방이었습니다. 3층은 옷방이었고, 4층은 연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집에 놀라운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5층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조용히 혼자 예배드리는 공간이었습니다. 혼자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었습니다. 이는 비록 그가 세상에서는 실패했지만 천국에서는 주님과 교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에게 맞는 예배실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렇습니다. 자기가 행한 일을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으십시오. 예를 들어, 내가 회개기도를 500번, 1,000번 했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십시오. 오히려 지금 주님께서 나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되실 것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1. 주여, 나의 나된 것이 주님의 은혜였음을 다시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주여, 내가 한 일만을 위대하다고 생각한 채, 지금도 내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 듣기를 게을리한다면 낙심하고 낙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3. 주여,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보상이 없고 오히려 어려움이 가중될 때에, 누구든지 낙심하면서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4. 주여,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의 일을 한 후에 육체가 지쳐 있을 때에는 그를 결코 책망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5. 주여, 하나님의 사역자는 자신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내보이려고 하지 말고, 지금도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6. 주여, 지금도 말씀하시는 음성에 주의하지 않고 내게 불어닥친 어려움 때문에 원망과 불평하고 낙심했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1. 주여, 이제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2. 주여, 이제는 나 스스로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3. 주여, 이제는 나 스스로 무기력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4. 주여, 이제는 내가 한 일을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5. 주여, 이제는 언제나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1.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자신이 이룬 업적만을 자랑하다가 어려움이 닥칠 때면 곧장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의 화살을 돌리도록 꼬드긴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2.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데, 꼭 자신이 행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3.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4. 내가 어떤 기적를 행한다고 할지라도 나를 내세우지 말고 오늘도 내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구약시대에 가장 능력 있고 강한 선지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엘리야 선지자였구나.
2. 엘리야도 한 때는 자기가 했던 위대한 일만을 생각한 나머지, 어려움이 찾아오자 곧장 하나님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말았구나.
3.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보상은 따라오지 않고, 오히려 육체는 지치고 어려움만 가중될 때에는 누구라도 절망하면서 무기력에 빠지고 마는구나.
4.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쓰시는 종이 혹 실수를 한다고 할지라도 곧바로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육체가 약해졌을 때에는 우선 건강부터 회복시켜 주시는구나.
5.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기적과 능력 속에서만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음성을 듣고 뜻을 구하는 자를 찾으시는구나.
6. 아무리 낙심했던 자라도 과거에 자신이 한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다시 듣고 있으면, 주님은 그를 다시 사명의 자리로 되돌이켜 주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