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계신 이가 종이 되신 이유(요13:3~20)_2018-03-11(설교전문)

by 갈렙 posted Mar 11,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스스로 계신 이가 종이 되신 이유(13:3~20)

[일시] 2018311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PW: 섬김, MIW:

T.S: 섬김이란 주인이지만 종이 되어 종을 주인처럼 섬기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오래전의 겪은 일이라 할지라도 가슴에 담아두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인상이 깊게 남아있는 것들입니다.

저도 처음에 교회에 갔을 때에 정말 인상 깊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저는 교회에 가면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만났던 목사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왠 동화이야기를 꺼내어 이야기해주지를 않나, 아니면 무슨 학자나 신학자가 말한 것을 꺼내어 이야기해주지를 않나, 그러다가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러니 저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더욱 더 갈급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겠지만, 저는 그때에 처음으로 교회를 나갔기에,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도 몰랐고,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었더니 문둥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잘 몰랐습니다. 신약성경에 들어와서 그 흔한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도 몰랐고, 갈릴리의 어부 베드로의 고기잡의 기적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께서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신앙의 길을 가르쳐주시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 설교는 그분과 정반대일 것입니다. 맨날 성경이야기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에 신물이 날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 철학 이야기나, 세상 성공담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께서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간증들을 막 들려주시면, 우리가 은혜도 받고 믿음이 쑥쑥 자랄 것인데, 왜 우리 목사님은 그러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실까 하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에의 첫인상이 뼈속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수석이었던 베드로에게 있어서도 저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깊이 남아있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으로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대략 3가지 정도가 뚜렷한 것들입니다. 첫째는 신앙고백이후 주님께서 자기에게 붙여준 이름이 그에게는 인상적이었을 것입니다.

16: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주님에 대하여 당신은 그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이후에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페트로스입니다. 즉 베드로입니다. 반석이라는 뜻의 남성명사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늘 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벧전 2장을 읽어보면 온통 돌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반석으로 표현하는 데, “보배로운 산 돌”(벧전2:3)이라고도 하였고, “보배로운 모통잇돌”(벧전2:6)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예수님은 부딪히는 돌이자,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벧전2:8)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베드로에게 깊이 남은 인상은 변화산상에 올라갔을 때에 그가 들었던 하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벧후에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기록해 두었습니다.

벧후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 그에게 인상깊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예수께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무릎을 꿇고서 자기의 발을 씻어주셨던 장면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기에 그 장면이 평생 자신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벧전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그래서 오늘은 베드로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던 세족식에 관한 말씀을 나눌까 합니다. 아마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왠만한 성도라면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가장 큰 이슈는 2가지입니다. 그것의 하나는 세족식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원죄를 처리받은 자가 자신이 지은 자범죄는 어떻게 씻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성만찬을 마치실 때쯤이었습니다. 그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겉옷들을 벗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수건을 취하시더니 자신의 허리춤에 매셨습니다. 그리고는 대야에 물을 떠오더니 제자들에게 다가가서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겨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두르신 수건으로 제자들의 발까지 닦아 주셨습니다.

갑작스런 일이라 제자들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이제 베드로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강하게 말리면서 말합니다. 주여, 당신은 영원히 결단코 내 발을 씻으셔서는 아니 됩니다.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함께 분깃을 가지지 못하느니라그러자 베드로가 이내 태도를 달리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그러면 내 발들 뿐만 아니라 손들과 머리까지 씻어주소서.그러자 이번에 주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이미] 목욕하게 된 채 있는 자에게는 발들을 씻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필요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전부가 깨끗하다. 그리고 너희는 깨끗한 자들이지만 오히려 모든 이들이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가룟유다가 죄의 화신인 마귀에게 넘어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의 세족식의 첫 번째 이슈는 사람이 이미 목욕한 것과 손과 발을 씻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며, 그것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 아시다시피 간단합니다. 목욕이 온 몸을 씻는 것이라면, 씻는 것은 손과 발이나 얼굴만을 씻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목욕했으면 이미 깨끗해진 것이지만 갑자기 외출을 하면 온 몸이 더럽혀지지는 않아도 손과 발을 더럽혀지기 때문에 손과 발은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해석하면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었으면 그는 원죄(죄된 본성)로부터 해방을 받은 것이지만 계속해서 육체 안에 원죄가 남아있는 것이기에 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럴 때에는 원죄를 회개할 것이 아니라 지은 자범죄를 회개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슈가 나옵니다. 그것은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은 선생님이자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왜 제자들의 발을 일부러 씻겨주었나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 문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선생과 주님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것처럼 제자들도 서로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이 합당하며 그런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섬기는 자가 복있는 자입니까 섬김을 받는 자가 복있는 자입니까? 사실 이 세상에서는 섬김을 받는 자가 복이지, 남을 섬기는 자가 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자신을 낮추어 종과 제자들처럼 남을 섬기며 사는 것이 진정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체 예수님은 어떻게 되어서 남을 섬기는 자가 복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에 교회에 다니다보면, 교회 안에는 식사준비로 섬겨야 하고, 교회청소도 해야 하고, 주방 설겆이도 해야 하며, 차량안내로 차량봉사로 섬겨야 하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로 섬겨야 하며, 매일 전도함으로 세상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도들이 다 이러한 섬김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직분자를 세우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섬기는 일에 당신도 동참하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되어서 섬기는 자로 봉사하다보면, 엉뚱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 나만 일해야 하는거지? 남들이 다 적당히 하고 노는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해 봤자, 내 몸만 축내는 것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교회를 다녀도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되면 때로는 여행도 다니고 좋은 데에 구경도 가는데, 나는 왜 주일에 결석도 못하고 이렇게 써빠지게 고생만 하는거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예 세상을 즐기러 다니는 세상 사람들을 마냥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이러한 생각이 올라올 때가 있지 않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0년경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기 하루전날인 목요일 저녁에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다락방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갑자기 예수께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극구 만류했지만 오히려 주님께 꾸중만 들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겨주신 예수께서는 다시 제자들을 불러놓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12-15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무엇을 행하였는지)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이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말을 잘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하다(그러하기 때문이다) 14 [만일]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으로서) 너희 발을 씻었으니(씻겼다면) 너희도 서로 [계속해서]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의무이니라, 빚이니라) 15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행한(행했던) 것 같이 너희도 [계속해서] 행하게 하려(행하도록) 하여(하기 위해) 본을 보였노라(보였기 때문이다)

 

5)문제 심리묘사

섬김을 모르면, 예수께서 왜 종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섬김을 모르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피조물들의 발을 씻겨주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섬김을 모르면, 왜 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 오히려 종이 되어 섬기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섬김을 모르면, 왜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천국에서 분깃을 얻기 위해 이처럼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섬김을 모르면,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가진 분이 왜 일부러 종처럼 섬기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가지신 예수께서 왜 제자들의 발을 굳이 씻겨주셨는지를 알고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째, 주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 제자들도 그렇게 하도록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첫째, 주님은 왜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것일까요? 그것은 주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먼저, 개역개정성경으로 보겠습니다.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13:8[직역] 베드로가 그에게 말한다. “당신은 절대로 영원히 내 발들을 씻기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만일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한다면, [너는] 나와 함께 분깃(부분, 할당된 몫, 얼마/메로스)을 가지지 못한다

여기에 나오는 단어 분깃은 헬라어로 메로스입니다. 그것은 눅15장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아들이 아버지에게 요구한 것으로서, “내게 돌아올 분깃이라고 했던 바로 그 분깃이라는 단어입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나와 함께 분깃을 가지지 못한다는 말씀은 사실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께서 그렇게 함으로써 베드로도 예수께서 왜 이렇게 하셨는지를 나중에 알게 되어 그대로 행함으로 그도 하늘에서 분깃을 얻는 자가 될 것이라는 뜻과 아울러서, 예수께서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셔서 당신이 받을 분깃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로 제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실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하늘에 가면 당신이 받을 분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오신 이상, 예수께서도 아들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아들로 오셨던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것도 그냥 으례껏 앉으신 것이 아니라, 대적과 싸워서 얻으신 것입니다.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3:21 [현재] 이기고 있는 자는 내가 나의 보좌 안에 나와 함께 [단번에] 앉는 것을 그에게 [장차] 줄 것이다. 나도 이겼고 그래서 나의 아버지와 함께 그(아버지)의 보좌 안에 앉았던 것처럼.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응당 보좌에 앉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아들로 오셔서 사탄과 싸워 이기셨고 죄와 사망과 싸워서 이긴 후에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서 장차 받으실 분깃으로 사명은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것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감당해야할 사명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허리춤에 수건을 두르시고 자신의 종들의 발을 씻는 것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제물로서 내놓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작은 것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았습니.

 

둘째,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두 번째 이유는 제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은 지위가 높아질수록, 권세가 주어지고 능력이 많아질수록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높아지려고 하지 낮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게 될 때에 한 자리를 얻고자 싸움하고 있었을 때에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0:25-27[표준새번역] 예수께서는 그들은 곁에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민족들을 통치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크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법은 세상의 방법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얻는 것은 영원히 자신의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정말 제자들이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고 하늘나라에서 으뜸이 되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12명의 제자들을 발을 다 씻겨주신 예수께서는 왜 자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는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13:12~15[직역]...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이미] 행하였는지를 아느냐?” 13 너희들은 나를 선생님 그리고 주님이라고 부른다. 너희가 말을 잘한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14 그러면 만일 내가 주와 선생으로서 너희의 발들을 씻었다면, 너희들도 서로의 그 발들을 [계속해서] 씻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빚이니라, 의무이니라/오페일로). 15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행하였던 것 같이 너희도 [계속해서]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너희들에게 본(휘포데이그마)[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빚진 자인 것을 모릅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더욱 낮아져서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도,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섬기는 것에 대해 예수께서는 의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것을 의무(오페일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러나 예수님은 종이어서 섬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종이 아니라 상전이요 주인이셨습니다. 그분은 제자가 아니라 스승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로 하여금 섬기는 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 앞에 무릎을 꿇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분을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고 부활승천하실 때에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13:19~20 지금[이후로]부터 [단번에] [스스로] 그것이 되어지기 전에, [단번에] [스스로] 그것이 되어질 때에, “나는 ~이다(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을 너희가 [단번에] 믿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2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단번에] 보낸 누군가를 취하고(영접하고) 있는 자는 나를 취하고(영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취하고(영접하고) 있는 자는 나를 [이미] 보내셨던 이를 취하는(영접하는) 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은 단지, 스승이거나 주인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던 하나님 자신으로서, “나는 ~이다라고 일컫는 분이셨습니다. 이것은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라는 말씀으로서, 그것은 출3:14에 나오는 히브리어문장(에흐에 아쉐르 에흐에 = I am that I am = 스스로 있는 자)을 그대로 옮긴 표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자신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뜻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표현임과 동시에, “나는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할 줄 아는 나다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메시야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주권자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4. 영적 법칙

섬김이란 무엇입니까? 종이 자신의 주인을 떠받들어 섬기듯, 주인이면서도 종의 신분으로 낮아져서 종을 주인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래서 이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들은 죽기까지 다른 사람들을 섬기다가 제물로 자신의 목숨을 다 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그대로 걸어갔던 것입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우리도 그러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는 더 깊이 알고 행해야 합니다.

13:16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자신의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한다. 보냄을 받은 자(사도)가 자신을 보낸 자보다 더 크지 못한다. 만일 네가 [이미] 이것들을 알아왔다면, 그리고 너희가 그것을 [계속해서] 행한다면 복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은 분깃이 없거나 작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종으로 섬기면 분깃이 아주 많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더 잘 섬기어 우리더러 더 큰 분깃을 얻도록 하기 위해, 그분은 주인인데도 종의 위치로 낮아지셔서 종들을 섬겼습니다. 종은 영원히 종의 위치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종을 섬김으로 종으로 하여금 종의 위치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2)결단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은 미친 짓으로 보일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권세를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하지 않고, 남을 섬기는 데에 사용하고 있으니 분통터질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일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피조물인 인간을 섬기셨습니다. 사실 우리의 섬김은 피조물이 피조물을 섬기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를 섬기는 것과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섬기는 것은 그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큰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굳이 그렇게까지 섬기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분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제물로 그냥 주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기꺼이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그들도 또한 변화하여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기꺼이 낮아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섬김의 도입니다. 이것이 제자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러므로 베드로의 마음에 세족식은 영원히 기억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겸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동이십시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결단의 축복

자신이 주인이지만 종의 위치로 내려가보지 못한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주인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온 몸이 깨끗해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종의 위치로 내려가지 못하고 종을 주인처럼 섬기지 못한다면 그는 첫째, 하늘에 가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분깃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둘째, 그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또 섬기는 자가 되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첫째,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에 더 분깃을 얻도록, 주인(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종이 되어 다른 사람을 주인처럼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나의 그 섬김으로 남들도 나를 닮아 또 다른 사람을 그렇게 섬길 수 있도록 본을 보입시다. 나의 섬김이 또 다른 사람을 예수님의 섬김의 본으로 살게 도와주는 것이 제대로 된 섬김인 것입니다.

그렇게 된 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분깃을 많이 얻을 것입니다. 그런 자가 하늘에서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가 하늘에서 큰 자가 될 것입니다. 왕노릇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섬김의 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섬김이란 주인이 종이 되어, 종을 주인처럼 섬기는 것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섬기는 자가 하늘에서 분깃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늘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요 으뜸된 자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주여, 예수님의 섬김은 스스로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섬김이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섬기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낮은 곳에 있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도록 힘쓰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섬김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처럼 행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조금이 잘 되어도 교만한 마음을 갖게 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교만을 조장하는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겸손할지어다. 주인일지라도 종의 태도로서 가질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베드로에게 세족식은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었구나.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사람으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구나.

3. 예수께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게 된 것도 힘써서 얻은 것이었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구나.

4. 예수께서 주와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제자들도 그러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구나.

5. 속죄의 은총을 받은 자에게 섬김은 의무와 같은 것이었구나.

6. 이 땅에서 섬기는 자가 하늘나라에 가면 섬김을 받는 존귀한 자가 되는구나.

 

 


Articles

2 3 4 5 6 7 8 9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