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나엘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요1:43~51)_2018-06-03(설교전문)

by 갈렙 posted Jun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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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다나엘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1:43~51)

[일시] 201863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8장 거룩 거룩 거룩,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PW: 믿음, MIW: 고백하는

T.S: 믿음이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 곧 메시야이신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평생에 기도제목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저는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더 알기 원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예수님이 누군지를 더 잘 알 수 있을까요? 성경을 더 많이 읽고 연구하면 더 잘 알 수 있을까요? 기도를 더 많이 하면 더 잘 알 수 있을까요? 아니면 묵상을 더 많이 하거나, 신앙체험을 더 많이 하면 더 잘 알 수 있을까요?

확실한 것은 만약 우리가 그분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믿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살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자신의 삶에 어떤 어려운 문제가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낙심치 않고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어떻게 더 잘 알고 믿느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빌립의 친구였던 나다나엘의 삶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 우리는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으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비로서 주님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고, 어떤 축복까지 받게 되었는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친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에게 나왔던 나다나엘이 예수께서 자기에 관하여 하신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고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 곧 메시야로 고백을 하게 됨으로, 주님으로부터 더 큰 축복을 약속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나다나엘은 어떻게 되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왕 곧 메시야이신 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일까요?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그냥 그분이 누군지를 알아 볼 수 있는 것인가요? 마지 못해 나아온다고 할지라도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해온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7년경 공생애초기에 첫 네 제자들인 안드레와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의 제자들을 얻으신 예수께서, 이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에 빌립과 나다나엘이라는 제자들을 더 얻으시는 장면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때 빌립은 자기가 먼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자신의 친구인 빌립을 찾아내어 그에게 자기가 만난 메시야를 소개한 후, 그를 데리고 예수께 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나사렛출신이라는 말을 들은 빌립은 마지 못해서 예수님께 갑니다.

그때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로다(알레도스 이스라엘이테스). 이 사람 안에는 간교함이 있지 않도다(엔 호 돌로스 우크 에스틴).”

그러자 깜짝 놀란 나다나엘에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부터 나를 알고 계십니까?그러자 예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느니라

그러자 나다나엘에 순식간에 그분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랍비여(선생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을 보아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이 가진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을 붙들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을 눈 앞에서 보고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을 눈 앞에서 보고서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하지만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고는 즉시 그분 앞에 자신의 생각을 낮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 곧 메시야이신 것을 고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나다나엘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렇다면, 나다나엘은 어떻게 되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이신 것을 알아보게 되었을까요?

사람은 평소 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 단 한 마디의 대화만을 나누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야이신 것을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먼저, 나다나엘, 그는 누구인지부터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그에 관하여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과 그의 이름이 바돌로매라고도 불렸으니, 그의 아버지는 아마도 돌로매라는 것 정도입니다.

어찌되었든 신약성경을 통틀어 살펴보면, 첫째, 그가 12제자들 중의 한 명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그가 갈릴리 가나출신이었다는 것입니다(21:2). 그리고 셋째, 오늘 읽었던 말씀을 통해서 그의 친구가 빌립이었던 것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이름이 거론 때에는 꼭 빌립과 짝이 되어 나오기 때문입니다(10:3, 6:14).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그는 율법지식에 관하여 상당히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 속한다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아마도 토라 곧 모세오경의 말씀 특히 그것 중에서 야곱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 그는 어떻게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는가?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는 어떤 과정이나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다나엘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 덕분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예수님과 몇 마디 말씀을 나눈 뒤 곧바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이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가는 과정에 다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여기서 우리는 최소한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면, 자신의 가진 얄팍한 지식만으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45~46).

1:45-46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 법 []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이미 발견한 채 있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에게서부터 있는, 출신의]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있을)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너는 계속해서] 와서 [그리고 단번에] 보라 하니라

그렇습니다. 나다나엘은 메시야는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할 것이라고 기록된 미가의 예언(5:2)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말했던 모세가 율법 안에 기록하였고 선지자들이 기록하였던 그분은 바로 메시야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사렛출신이라는 말에 그만 그건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빌립은 완강했습니다. “아니야, 와서 보면 알게 될거야하면서 나다나엘을 끌고 예수님께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왜 공생애 시작전까지 나사렛에서 사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사렛이란 말은 원래 히브리어 이라는 뜻의 네쩨르라는 말에서 기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어린 시절을 왜 나사렛에서 보냈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신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이미 선지자로 하신 예언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것은 어떤 예언입니까? 사실 이 예언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지어 유대인 랍비들도 잘 몰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는데, 예수님 당시에 나다나엘도 당연히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예언입니까? 그것은 이사야11장에 나오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으로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나오는 자로서 그가 이새의 뿌리에서 나는 싹 곧 히브리어로 네쩨르라고 예언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글성경은 이 말씀을 거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줄기=호테르)이 나며 [] 뿌리에서 한 가지(=네쩨르)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런데 네쩨르는 묘목으로 사용되는데, 당시 나사렛은 어린 감람나무 묘목 산지로 유명한 동네였습니다. 그 마을의 원래 이름이 네쩨르(어린 감람나무의 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네쩨르라는 마을에 가서 사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다나엘이 살고 있던 시기에 나다나엘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사11:1의 예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알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얄팍한 지식으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판단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그는 영이 가난하고 겸손했기에 예수님과 나눈 몇 마디 대화를 통해서도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알아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2가지입니다.

첫째로는 나다나엘은 예수께서는 놀라운 신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47). 왜냐하면 자기가 얼마나 참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대로 믿으려하는 사람이며, 간교함이 들어있지 않는 순수한 사람인 것을 예수께서 알아보시고 자신을 만나자마자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고 있]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간계, 간교함, 교활함)이 없도다(있지 아니하도다)

여기서 간사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돌로스라는 단어인데, 이는 야곱을 지칭하는 표현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을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간사한 사람이었는데도 어찌하여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을까?”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에게는 그러한 간사함이 없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나다나엘은 예수께서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어디서부터 자신을 알고 있는지를 물어보았을 때, 예수께서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기 전에 이미 나다나엘에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셨다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었는지를 사실 빌립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왜냐하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기 전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처음만난 예수께서 빌립이 자기를 부르러 오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그 장면을 보셨다고 말씀하셨으니, 나다나엘은 그분 앞에 자신의 모든 지식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버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공생애 시절 다시 말해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지를 알려주는 귀한 단서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셨지만 그분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몇 가지 사건들과 말씀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2가지는 사건이요, 2 가지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본문의 사건입니다(1:48). 예수께서는 나다나엘과 떨어진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이미 나다나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고 계셨습니다(6:48). 둘째는 제자들이 풍랑 속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에 걸어서 오신 사건 속에 나옵니다. 이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보낸 후에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의 모습을 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와 넷째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알려줍니다. 셋째는 두 세 사람이 모여서 한 마음으로 기도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도 그들 가운데 계신다고 하신 말씀에 나옵니다(18:20). 넷째는 예수께서 비록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었어도 그분은 날마다 하늘에 올라간 채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3:13).

 

.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했는가?

그때였습니다. 나다나엘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전부 다 알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자신의 얄팍한 지식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분,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은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고 계시는 분 앞에 완전히 꼬꾸라졌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고백했습니다. 49절의 말씀입니다.

1:49 나다나엘이 [그에게]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You are the Son of God)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You are the king of israel)”

그렇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은 2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한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분이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이것은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왕 곧 메시야이신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신앙고백은 놀랍게도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전, 육신을 입고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가장 완전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짧은 성경지식만으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다 안다고 말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순간순간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셔야 비로소 완전한 성경지식에 도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를 비롯하여 신앙의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 수 있습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한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서 그분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이란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것을 아시고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보고 계시는 전능자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러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로 고백했던 나다나엘은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2가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장차 2가지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첫째, 그는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더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50절의 말씀입니다.

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고 말했던 것 때문에] 하므로 [네가 나를] 믿느냐 이[것들]보다 더 큰 일[][장차] 보리라

그렇습니다. 있는 자는 더 풍족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신앙고백을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더 큰 일을 보여주시고 더 큰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12[직역] [현재] 가지고 있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이 그에게 [장차]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풍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지 아니한 자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도 그에게서 [장차] 빼앗기게 될 것이다.

 

둘째, 그는 비록 예수님께서 자기의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누구나 기도하기만 하면 하늘과 땅의 중보자인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51절의 말씀입니다.

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이미] 열리고[열려진 채 있는 것과] 하나님의 사자들(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는 것을 [장차] 보리라 하시니라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셔서 이미 그분이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에 하늘이 그에게 열려졌기 때문입니다(3:16).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야곱이 보았던 환상처럼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이제는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중보자가 되셨기에 그분을 통하여 모든 기도가 응답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때 야곱이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을 때, 야곱이 받은 축복은 무엇입니까?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할 것이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합니다. 그러니 혼자 가는 여정도 외롭지 않을 것이며, 혼자 행하는 모든 일에도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 곧 신약의 예수님이 바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자신이요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또한 그분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장소에 동시에 거하시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십니다. 그분은 모든 장소에 동시에 가서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장소에 동시에 가서 일하실 수 있도록 천사를 보낼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우리가 주님에 대해 온전한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면, 우리도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첫째, 우리들도 앞으로 더 큰 일들과 더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들도 기도할 때면, 보이지는 않아도 하늘과 땅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엄청난 기도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그분은 지금 사람의 마음까지 다 살피시는 전지하신 분이자 전능자이십니다(2:23). 또한 그분은 동시에 전 세계에 있는 예배자들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자, 전 세계인이 구하는 기도에 동시에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2)결단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가 알고 있는 쥐꼬리만한 성경지식에 너무 매달려 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깨닫게 해주시지 아니하면 알 수 없는 것이 성경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늘 겸손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성경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도록 더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과 대화, 오늘날은 성령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우리가 주님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을 때에는 즉시 그분에 대한 신앙고백을 표현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가지고 있는 자는 더 풍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큰 것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만물 가운데 충만히 거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사정이 주님께 알려지고 그분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축복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간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안다고 해도 말씀 앞에 늘 겸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게 되면 즉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안전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언제든지 보호함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제대로 신앙고백한 자들이 받을 축복들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자신의 얄팍한 지식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서야 주님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삶의 체험을 통해서 주님이 누군지를 비로소 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이야말로 전능자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이신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의 교만함과 완악함을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교만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자만하지도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겸손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내 지식을 과감히 내려놓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이 하신 말씀에 귀기울이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주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방해한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님이 전능자와 무소부재(無所不在)한 하나님이심을 보지 못하게 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지식에 취하지 말지어다. 성령님 앞에서 늘 겸손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자신의 얄팍한 지식을 내려놓을 때에 성령님도 깨닫게 도와주시는구나.

2. 사람은 누구든지 기록된 말씀과 삶의 체험을 통해서 주님이 누군지를 알아가는구나.

3. 예수님은 전능자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이로구나.

4.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아버지 앞에 전달되고 있구나.

5.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는 성경공부나 묵상으로서는 주님을 제대로 알 수 없구나.

6.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은 우리를 더 풍성한 삶과 안정된 삶으로 안내해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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