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붙들려 억지로 십자가를 진 사람(막15:20~22)_2018-06-10(설교전문)

by 갈렙 posted Jun 1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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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쩌다 붙들려 억지로 십자가를 진 사람(15:20~22)

[일시] 2018610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21장 다 찬양하여라,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315장 내 주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PW: 믿음, MIW: 억지로

T.S: 믿음이란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주님과 접촉해보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성경에서는 율법적인 신앙생활복음 안에서 자원하는 신앙생활을 구분하여 말합니다. 율법적인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일을 행하지 않으면 벌받을까봐,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직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무서워서 하는 신앙생활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이 기도하는 것은 기도 안 하면 사고가 일어날까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드리는 헌금도, 봉사도, 전도도 사실은 다 무서워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원하는 신앙생활이란 내가 예수복음 안으로 들어온 것 만큼,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남을 섬기고 봉사하고 희생하되 기쁨으로 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율법적인 신앙생활과 자원하는 신앙생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우선 율법적인 신앙생활의 특징은 그 안에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회개도 억지로라도 하니 회개한 것 같아 좋은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의무만 남게 되고, 기쁨은 사라지게 되며,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외식하는 행동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자들은 혹시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주어질 상급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원하는 신앙생활이란 복음 안에 들어온 자가 자발적으로 섬기고 희생하며 봉사하는 것인데, 이러한 생활특징은 주고도 섬기고도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 실시한 전교인야외예배를 통해서 놀라운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성도들이 자원하여 섬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자원하여 사모님과 자기돈 들여가며 같이가서 시장도 봐오고, 음식도 장만하는데에 같이 하고, 못 올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해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수박과 참외, 토마토 등 과일은 또 얼마나 풍성했는지, 점심을 먹기 전에 먹었던 통닭은 몇 마리며, 백화점에 현재 진열된 상품은 또 얼마인지, 놀랍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교회의 수준이 이 정도는 되었구나!”하고 기뻐했습니다.

사실 저는 율법적인 신앙인이 아닌지라 사람으로 하여금 억지로 무엇인가를 시키는 일들을 잘 못합니다. 차라리 내가 해버리지 남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을 잘못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의 집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조금 더디 가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무슨 행사를 한다고 하면, 내가 이 행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고는 여전도회 회장이나 사모님과 상의하여 일을 척척 해나가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우리교회는 율법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자원하는 신앙, 사랑으로 섬기며, 믿음으로 행하는 복된 신앙으로 성숙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너무나 좋습니다. 아니 개인적으로 너무나 행복합니다. 이번 행사를 치르고 나서 한 실은 이틀 동안은 행복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도 아득히 먼 기억 속에 자리잡아있는 듯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자원은 아니었지만,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한 사람을 만나볼 것입니다. 어쩌다 붙들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간 한 사람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치 않은 것이었으나 주님과 연결된 어떤 일을 억지로라도 했을 때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살펴볼까 합니다. 그래서 내게 억지로 주어진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내게 복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가다 지쳐 쓰러졌을 때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와서 그 옆을 지나가고 있던 구레네사람 시몬이 어쩌다 붙들려 억지로 십자가를 대신 지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어떻게 되어서 십자가를 대신 지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니까? 그는 진정 자원해서 십자가를 대신 진 것입니까? 아니면 원치 않았는데 어쩌다가 재수없게 걸려서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까? 구레네 시몬은 불행한 사람이 아닌가요? 체격이 좋은 것도 죄라는 말입니까? 구레네 시몬은 어떻게 되어서 십자가를 재신 지고 주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까?

 

2)청중적 접근

오늘날 우리도 우연히 길을 가다가, 아무런 이유없이 어떤 사건과 엮여서 내가 감당하기 힘겨운 일을 맡게 되었다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0년경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직전 당일 아침, 20kg정도 되는 십자가 형틀의 가로목을 지고 가다가 그만 쓰려졌을 때의 사건을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미 기진이 다 쇠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날밤 초저녁부터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고, 마가다락방에서 기도했고, 곧장 기드론시내를 건너가 겟세마네동산에 가셔서 또 3번씩이나 간절히 철야기도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곧바로 대제사장들이 보낸 하속들에 의해 붙들림을 받은 후에는 끌려가 밤새도록 가야바라는 하는 대제사장과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심문을 받았으며, 또한 새벽에는 로마군병으로부터 심한 채찍질을 받고는 몸이 만신창이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드시지도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언덕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이미 힘은 다 소진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십자가를 지고 성문을 나섰을 때쯤에 이르러서, 예수께서는 그만 길바닦에 쓰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로마병사는 예수께서 어떤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두리번거리다가, 건장한 체격의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로마병사는 그로 하여금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주님의 뒤를 따르도록 강제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구레네 시몬은 우연히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가다가 붙들려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되게 운이 되게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로마군병에게 걸린 것을 두고는 재수 더럽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쩌다 붙들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된 것은 두고는,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이런 고약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라고 하면서 머리를 줘박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과 어떤 접촉점을 가지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해주신 기회를 기분 나쁜 일로만 여겨버릴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것이 자신의 삶에 나쁜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판정해버릴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레네시몬은 자신에게 불어닥친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거기에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로 말미암아 자신을 비롯하여 자신의 모든 가족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구레네 사람 시몬, 그는 누구인가?

길을 가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진 사람은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아마 흑인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데, 남유다의 멸망이후 세계로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의 후손으로서, 구레네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당시 구레네라는 도시북아프리카에 있는 리비아의 수도였로서, 매우 번성하고 화려한 항구도시였는데, 그 도시 안에는 참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구레네 사람들은 자신들의 회당을 예루살렘 안에 두기도 했습니다(6:9).

또한 사도행전에 보면, 구레네출신의 유대인들이 남다드레 율법에 열심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 뿐만 아니라 오순절과 같은 절기에도 구레네 출신의 많은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방문했기 때문입니다(2:10). 그런데 스데반의 일로 인하여 핍박이 일어났을 때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는데, 그들 중에는 지중해의 구브로출신의 사람과 북아프리카의 구레네출신의 몇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안디옥에 가서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결국 안디옥에 최초의 이방인교회인 안디옥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안디옥교회 안에 있는 핵심인물들 중에는 구레네 사람 루기오도 들어있었습니다(13:1).

 

그런데 우리는 구레레 시몬에게는 두 아들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15:21[직역] 그리고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에서부터 오고 있으면서 지나가고 있는데, 그들(로마군인들)이 그를 예수의 십자가를 [단번에] 지도록 그에게 억지로 시켰다.

시몬의 아들들의 이름은 알렉산더루포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들은 히브리식의 이름이 아니라 헬라식의 이름들입니다. 아마도 시몬은 자신의 부모가 자기의 이름을 히브리식 이름으로 지어주었지만, 그의 아들들만큼은 이방인들이 쓰는 이름으로 자식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시몬이 좀 배운 사람이었음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굳이 시몬의 이름만 기록해도 되는데, 시몬의 두 아들들의 이름 곧 알렉산더와 루포의 이름까지 기록하게 된 것은 아마도 마가복음의 독자들 중에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로마서의 말씀을 통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교회의 성도들 중에 루포와 루포의 어머니가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6:13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때는 이미 최소한 시몬의 아들 루포와 그의 아내가 로마교회의 핵심멤버가 되어 있었으며, 사도바울은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신앙적인 어머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만큼, 사도바울을 많이 도와주었던 신앙심이 깊은 여인으로 보여집니다.

 

 

. 억지로라도 주님께 붙들리게 된 것도 복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되어 이 가정이 송두리째 예수믿는 가정이 되었던 것일까요?

성경의 기록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가지입니다.

첫째, 적어도 시몬이나 시몬의 두 아들들인 알렉산더와 루포 그리고 그의 아내가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기 전까지는 예수믿는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로마군병에게 붙들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대신 지고 주님을 따라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가정이 전부다 예수믿는 가정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것이 그 가정 구성원들이 신앙을 갖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때 주님과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었든지, 주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체험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났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최소한 이러한 변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첫째, “내가 과연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로마군병에게 붙들린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왜 죄인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을까를 생각한 것입니다.

둘째, 보통 사람 같으면, “재수가 더럽게 없네라고 생각하고는 불평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되게 운 없는 사람이야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몬은 참으로 모든 일에 우연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셋째,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서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장면과 돌아가실 때에 이상한 징조들을 보면서, 그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말 궁금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누군지를 더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대체 이분은 누구며,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게 된 것인지를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결국 시몬은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이 소망하고 있는 구약성경의 메시야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 강제의 힘은 한 영혼과 한 가족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나에게 일어나게 되는 어떤 안 좋은 일이라도 그것이 주님과 접촉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나에게 복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억지로 당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과 관계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만나볼 기회가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시몬과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시몬과 같은 긍정적인 해석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어떤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며, 해석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게 된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시몬에게 있어서, 억지로 지워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예수님을 못 만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많이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진정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예루살렘 올라올 때에 그날처럼 자신에게 재수없는 사건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을 만나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면,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도 좋은 것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자체만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를 분별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모든 사건들 속에서 심지어 자신에게 불행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일들이라도 그것이 내가 주님과 접촉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은 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이 억지로 되어지는 것이요, 강제성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내가 주님을 만나게 되고, 내가 주님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라면 그것이 내게 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시몬은 자신에게 억지로 일어난 사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했을 때, 어떤 결과가 그에게 나타났습니까?

첫째, 자신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자기 뿐만 아니라 자기로 말미암아 자기의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중추적인 일꾼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시몬의 가정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의 아내는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는 로마 교회의 중추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16:13).

 

. 청중의 더 큰 복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떠한 불행한 일이라도 그것이 내가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께 더 나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주님께 기도하고 감사한다면, 그것이 내게 결국 복이 되는 것입니다.

 

2)결단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시몬처럼 억지로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져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기꺼이 그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면 그 모습 그대로가 곧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의 삶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23:26).

23:26 그들(로마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고 있]는 것을 붙들어(둔 후에)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진 채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억지로였지만, 시몬은 그때 그러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의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쓰임받은 복된 가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결단의 축복

그렇습니다. 어떤 것을 내가 억지로 떠맡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주님과 관계된 일이라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나에게 주님을 발견하게 도와주는 도구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억지로 떠맡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일이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반드시 복이 되어 오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어려운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귀가 그 사람을 시험하여, 그 사람이 주님과 멀어지도록 하기 위해 그 사람에게 질병을 줄 때도 있습니다. 좋지 않은 사건을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질병이나 사건도 믿는 자에게는 불행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질병을 통해서 더욱 더 주님을 만날 것이고,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건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자 열망하고, 주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한다면, 사탄마귀의 시험거리는 오히려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왜냐하면 우리는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서 주님을 더 견고히 붙잡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서 더욱 더 내가 겸손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서 제자된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짧지만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의 공사였던 태영호 공사의 간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북한에 처음으로 억지로 봉수교회를 세울 때에 현장에 있었던 산 간증인입니다. 그는 어떻게 봉수교회에 있던 가짜성도들이 어떻게 진짜 성도가 되어가게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 영상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5분짜리 영상을 보겠습니다.

제목: 태영호 공사의 간증.mp4

(https://youtu.be/gBG1o7i75iw)

 

어떻게 영상을 잘 보셨습니까?

믿음이란 억지로 내게 떠맡겨진 일이라도 그것이 주님과 관계된 일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나에게 복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아무리 그것이 내게 좋지 않은 일이요, 불행한 일이라 한다 하더라고 그것이 주님께 연결되어질 수만 있다면 그것은 내게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강제로 일을 떠맡는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이 져야할 십자가의 일부분을 자신이 대신 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기분 나쁜 일이 아니며, 불행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발견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일어나는 어떤 고통스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말라. 그러면 그것은 마귀의 도구가 되겠지만, 그것은 나로 하여금 내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줄 계기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것은 나에게 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아내, 내 자식에게 이르기까지 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우리의 인생에 과연 어떤 것이 복인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떠한 불행한 일이라도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내게 복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억지로 되어지는 것이요 강제성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과 연결되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내게 복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가장 바람직한 것은 복음 안에서 기쁨으로 섬기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면 반드시 좋은 일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기꺼이 행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감사함으로 행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기쁨으로 행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자원함으로 행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억지로라도 행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일의 유불리(有不利)만 따지게 하여 불평불만으로 이끌어가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것을 불행 쪽에서만 보게 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모든 일에 감사하고, 모든 일에 주님의 뜻을 찾아낼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신앙생활에는 율법적인 신앙생활과 자원하는 신앙생활이 있구나.

2. 억지로라도, 강제로라도 그것이 나와 주님과 연결되는 일이라면 그것은 결국 내게 복이 되는구나.

3. 어떤 사건이라도 불행한 것은 없으며 거기에서 주님의 뜻을 발견한다면 불행은 곧 행복으로 바뀌게 되는구나.

4. 자원함으로 섬기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의 최고 바람직한 삶이로구나.

5. 세상 어떤 일이라도 믿는 자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로구나.

6. 사건 자체만을 늘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건을 믿음으로 해석하는 좋은 틀을 갖추어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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