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가 되어(행6:1~6)(구약적인 부르심과 신약적인 부르심의 차이는 무엇인가?)_2019-03-17(주일)

by 갈렙 posted Mar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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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가 내가 되어(6:1~6)(구약적인 부르심과 신약적인 부르심의 차이는 무엇인가?)

[일시] 2019317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65장 내 영혼아 찬양하라, 311장 내 너를 위하여,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PW: 믿음, MIW: 직분

T.S: 믿음이란 구약시대 특별히 선택받은 자가 이제는 내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맡겨진 직분에 충성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사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적인 부르심이요 하나는 신약적인 부르심입니다. 구약적인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직접 불러내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은 예수님의 12제자까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내어 자신의 제자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적인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을 불러서 세운 부르심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 부르심은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불러내는 부르심이 아닌 다른 방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이후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느날 임직식을 통해 자신이 교회에서 직분을 받기는 받았는데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분들도 있으며, 이 직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헤아리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대체 신약시대의 부르심은 어떻게 바뀐 것일까요?

그래서 오늘은 신약적인 부르심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과연 사람은 어떻게 부르심을 받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자가 부르심을 받게 되는지 그리고 부르심을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12사도들이 예루살렘교회 안에서 성령과 지혜 그리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세워서 그들을 안수하여 직분을 맡겼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직분자를 세우는데, 과연 교회공동체가 선택하여 세워도 되는 것인가요?

사도들도 사람들인데 그들이 안수하여 직분을 맡기면 정말 그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자가 되는 것인가요?

그렇게 해서 세워진 직분자들을 과연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이라고 인정해주실까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직분자를 세우는데 과연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직분자를 세워도 되는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교회에서도 선거를 통하여 교회에서 일할 일꾼들을 선출하고 그들을 안수하여 항존직을 맡기면 그들은 정말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직분자가 되는 것인가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3년경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지 약3년이 지난 어느날, 예루살렘교회에서 일어난 직분 수여식 장면입니다.

이미 3년전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으로 15개국에서 찾아왔던 유대인들은 마가다락방에서 일어난 120명 성도들의 방언 말함으로 인하여 몰려듭니다. 거기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 모든 일들이 이미 구약성경에 기록된 약속된 말씀이 성취된 결과라는 것을 듣게 되는데, 그들이 그때 50일 전에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되었던 메시야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을 회개하였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받아들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자가 무려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 성전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40세 된 거지가 서서 걷게 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더욱이 베드로의 그림자만 덮여도 병이 떠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가 날로 부흥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런데, 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먼저는 성령을 속이는 사건이 일어나 즉사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또 하나는 구제의 일로 인하여 교회 안에 불평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인들로만 이루어진 교회였지만, 거기에는 두 개의 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히브리파 본토태생의 유대인들이 있었고 또 하나는 헬라파 외국 태생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 살다가 왔던 헬라파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보다 구제(음식제공)에 있어서 불평등하게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불평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원망했습니다. 이에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던 12제자들은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중간지도자로서 행정과 봉사를 위한 직분자를 세우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교회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을 일곱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사도들 앞에 두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그들에게 기도하고 안수하여 그들을 구제를 위한 사역자로 삼게 됩니다.

문제는 구약시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신앙공동체에서 중간지도자들을 세워 봉사하게 한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사역자가 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온 회중으로부터 선출받은 자가 과연 안수받고 사역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구약적인 부르심과 신약적인 부르심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사람이 뽑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세우셔야지 사람이 어떻게 사역자를 세울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사람이 선출하고 사람이 안수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사역자로 선출된 본인도 과연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사역자인지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가 사역자로 선출되었지만 어떻게 사역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가 사역자로 부름받은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가 사역자로 부름받은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모른 채 직분을 소홀히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사역자로서 충성되어 맡겨진 직분을 성실하게 감당할 때에 자신이 진정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역자로서 빚어져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러므로 우리들은 비록 교회공동체가 선출하고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직임을 맡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믿고 자기에게 맡겨진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약적인 부르심과 신약적인 부르심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 오순절 이후에는 누가 직분자가 될 수 있었는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적어도 2가지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구원의 문이 모든 이방인에게까지 다 개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유대인들에게만 구원이 문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유대인들의 타락과 거짓된 위선을 보셨고, 그들이 얼마나 믿음에서 떠나 있는지를 보셨습니다. 주님은 가버나움의 이방인 백부장과 두로사람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순절 이후에는 둘째로, 구원의 문이 열려짐과 동시에 직분의 문도 활짝 열려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누구나가 직분자가 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스스로 나는 이제부터 장로다, 나는 이제부터 목사다라면서 장롷애세를 목사행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공동체로부터 인정을 받고 선출받고 세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공동체에서 직분을 맡을 자가 되려면 교회공동체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직분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공동체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공동체로부터 그 사람은 교회의 일꾼되기에 합당한 자라고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교회에서는 봉사의 직무를 맡기기 위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을 선정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3가지 조건이 나와 있습니다(6:3,5).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이제는 헬라어원문으로 직역해보겠습니다.

6:3[직역] 그런데 형제들아, 너희들로부터 영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증언되고 있는 남자들 곧 일곱을 택하라(주의하여 찾아보라).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그들에게 장차 맡길 것이다.

6:5[직역] 이에 온 군중들 앞에서 그 말이 기쁨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남자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였다.

그렇습니다. 조건은 3가지였습니다.

첫째,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나이가 많으냐 적으냐, 오래 믿었느냐 적게 믿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성령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영 안에 성령이 가득 차 있어야하지, 자신의 생각이나 성질이 가득찬 자는 직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귀신을 성령으로 알고 따라가거나 죄된 본성에게 쓰임받다가 멸망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령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9가지 은사들 중에서 제 1번 은사입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치는 은사,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 분별함, 각종방언말함, 방언들 통역함9가지 은사들 중에서 제일 첫 번째 은사가 지혜였기 때문입니다. 사탄마귀도 지혜롭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놈보다 더 지혜로워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자신의 제자들을 내보내면서 너희는 뱀들처럼 지혜롭게 되고 비둘기들처럼 순결하게 되라(10:16)”고 명령했겠습니까? 지혜가 없으면 거짓된 영들에게 속아 넘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의심하거나 불신하는 자는 자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자는 직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한다면 그 말씀은 진리이고 반드시 그 말씀대로 일어난다는 믿음이 가져야 합니다. 환경을 보고 흔들리는 자는 직분자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현상을 실제로 믿는 자는 결코 직분자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말씀대로 믿는 자가 직분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자 사도들은 교회공동체 의해 인정을 받아 선택된 7명의 사람들에게 안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직임을 맡겼습니다(6:6). 이처럼 직임의 최종적인 절차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선택을 받아서 사역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안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약시대에는 성령과 지혜 그리고 믿음이 충만한 자라면 누구나 다 주님의 일꾼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오순절 이후에는 주님께서 직접 지명하여 부르지 않아도 교회공동체가 선출하여 세워놓은 일꾼들이라면 그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구약시대에는 누구나가 직분자가 될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과연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직분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직분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구약시대에 직분(직임, 직무)의 시작은 모세 때부터였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때에 비로소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영도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고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5: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리고 사사시대부터는 성령이 임한 자가 사사(판관)로 부름받아 쓰임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성령을 받은 자가 선택받아 왕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의 처음 두 지도자는 다 성령이 위에 내려옴으로 선택을 받았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선지자들은 모두가 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습직이었던 제사장과 훗날 왕직이라도 다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에 직임을 맡아 일하는 자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배웠다시피 구약시대에는 성령을 받은 자 곧 성령이 그 사람. 위에 내려온 자는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직임을 맡은 자가 만약 그 직임에 소홀할 때에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엄청난 징계가 뒤따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제사장이었던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대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제사장으로의 직무를 잘못 수행할 때가 있었습니다. 번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성막에 들어가 분향했어야 했는데, 번제단의 불이 아니라 다른 불을 담아다가 향로의 향을 살랐는데, 그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말았습니다(10:1~2).

그리고 사무엘이 나실인이 되어 제사장으로서 훈련받고 있을 때에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들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를 멸시하고 회막에 수종드는 여인과 간음을 저지르는 불량자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쟁이 터졌고, 그들이 비록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나갔지만 그들은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들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던 98세 먹은 엘리제사장도 그 소식 때문에 목이 부러져 죽음으로, 이다말 가문의 제사장은 그만 멸문가문이 되고 말았습니다(삼상4:12~22).

한편, 이스라엘의 사울왕은 어떠했습니까? 처음에는 겸손했지만 사람의 눈치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더니 나중에는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버렸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령에게 괴롭힘을 받다가, 결국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게 되는데, 잘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 자기의 칼에 자기가 엎드려저 죽으려고 몸부침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12번째 마지막 사사였던 삼손은 여자를 좋아하다가 그만 나실인의 서원을 깨뜨렸고 두 눈이 뽑혀 블레셋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마지막에 가서 회개를 했기에 그나마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16:23~31). 그리고 므낫세왕은 남유다의 14번째 왕이었는데, 그는 부친 히스기야왕과는 정반대로 못된 짓만 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웠고, 바알과 아세라상을 만들어 섬겼으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했고, 힌놈의 아들들의 골짜기에 자신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 보내 죽게 했으며, 점치는 자와 박수를 신임하였기 때문입니다(대하33:1~9). 그러자 하나님께 그를 앗수르에 넘겼고, 그는 쇠사슬에 결박당한 채 바벨론에 끌려갔지만 환난을 당해 회개하였기에 그가 용서받았으며, 그나마 마지막의 여생을 말씀대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대하33:10~20).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공동체인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아무나 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사역했던 특별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역자로 잘못 행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는 징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냥 평민으로 지냈더라면 겪지 않았을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못한 자는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맛보아야 했고, 지옥에 떨어진 자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 교회의 직분 맡은 자가 된 자들은 어떻게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하는가?

그렇지만 오늘날 A.D.30년 오순절이후 에 교회에 있는 직분자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사실 오늘날 교회에서 직분은 누구나 다 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잘 따라가면 지혜도 임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런 자는 믿음으로 살면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회공동체로부터 선택함을 받아 직분자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공동체로부터 선택함을 받아 직분자가 되는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를 직분자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공동체에 의해 직임을 맡은 자가 되었을 때 어떤 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게 해서 직분을 맡은 자는 구약시대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다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자신의 직분에 소홀히 한 자는 평소 때에는 상관은 없지만 자신이 죽는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사실 믿는 자 모두에게 성령께서 내주하시면서 그를 끝까지 도와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고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안에 계신 성령님을 슬프게 하고 그분의 뜻에 어긋난 삶을 산다면 그는 그날 심판 때에 주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 직분을 맡은 자라도 잘못 행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떨어져 나가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그에게] 나으니라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청중의 문제와 해결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까?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구약의 특별하게 선택받았던 몇몇의 그가 이제는 신약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성령과 그리고 직분을 이제는 주의 은혜로 내가 받았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시대보다 더 충성스럽게 내게 맡겨진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직임을 맡은 7명의 일꾼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중에서도 스데반과 빌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스데반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돌아맞아 죽으면서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기에 있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여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갔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사마리아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거기서 능력을 행했고 이디오피아 내시도 전도했습니다. 그들은 중간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것에 충성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맡은 직분에 합당하게 살아갔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다 직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 받은 직분은 천국에서도 동일하게 취급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맡은 직분의 충성도가 자기자신의 구원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직분은 정말 귀한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맡아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교회공동체 의해 직분맡은 자가 되었지만 구약시대보다 더 엄격하게 자신을 다뤄야 합니다. 마지막에 가서 주님으로부터 버림당하는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충성된 자라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한편 직분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해,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복음전하는 자와 교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잘 나고 똑똑해서 자신에게 그러한 직무가 주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그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이것은 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내 자신에게 직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적당히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직분 때문에 나는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남이 띠띠우는 인생으로 살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띠띠고 걸어갔습니다. 천국에서 누릴 상급도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충성하기 위해서라도 직분은 꼭 맡을 이유가 있습니다.

 

. 결단의 축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늘의 직분을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직분을 맡았으면 더욱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직분을 통해 나를 쓰시기를 원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늘에서 큰 상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직분이 없으면 게으르게 살 수도 있을텐데, 나에게 직분을 주심으로 내가 보다 더 열심을 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십시오.

저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목사라는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비록 오순절 이후에는 교회공동체가 나를 선택하여 직분을 주었지만 직분은 나를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나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자라도 교회공동체가 뽑아 직분을 주었다면 충성하십시오, 그러한 자를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그를 하늘에서 크게 보십니다. 그러한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구약과 신약시대에 있었던 부르심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교회는 교회공동체를 통한 선출과 교회공동체 지도자들의 안수를 통해 직분자가 세워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직분자를 세워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교회의 직분은 누구나 맡을 수 있지만 직분맡은 자는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맡겨진 직분은 충성할 때에 분명해지며 더 온전해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직분을 사모하지 못했고 충성하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교회의 직분을 사모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그 직분에 충성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더 엄격하게 직분을 수행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직분에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직분맡음에 감사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직분의 영광을 깨닫지 못하게 한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늘의 귀한 직분에 눈뜨지 못하게 방해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직분을 사모할지어다. 직분에 충성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주님의 부르심에는 구약적인 부르심과 신약적인 부르심이 있었구나.

2. 신약적인 부르심은 교회공동체를 통해 인정되며 이들에 의해 선택받는 것이로구나.

3. 성령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자가 직분자로 선택받는 것이로구나.

4. 구약시대에는 특별했던 사람이 오늘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해야 하는구나.

5. 오순절 이후에는 구원의 장벽과 직분자에 대한 부르심의 장벽도 함께 무너졌구나.

6. 부르심에 충성할 때 자신의 부르심이 갈수록 더 선명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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