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나님의 동역자인가?(고전3:6~9)_2020-01-05(주일)

by 갈렙 posted Jan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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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가 하나님의 동역자인가?(고전3:6~9)

[일시] 202015일 오전9,11시 주일낮예배

[찬송]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507장 저 북방 얼음산과

PW: 믿음, MIW: 하나님의 동역자

T.S: 믿음이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2020년 경자년 새 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은 작년 연말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매년 연말이 되어 여기저기 송년회를 쫓아다니다 보면 금새 12월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특히 목회자에게 12월은 더할 나위 없이 바쁜 한 때입니다. 왜냐하면 성탄예배 준비하랴 송구영신예배 준비하랴 바쁜데, 거기에다가 새 해의 일꾼까지 새로 임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역자가 권면하면 그대로 아멘하고 순종하면 참 좋겠는데, 그렇지 않는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1월 첫째주가 되면 교회의 일꾼을 임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교회의 일꾼으로 세울 때에는 무엇을 보고 세워야 할까요? 그가 가진 은사와 달란트일까요? 아니면 그가 가진 성품일까요? 아니면 그가 가진 다양한 경험일까요? 어찌 되었든 목회자는 새로운 일꾼을 뽑는데 동역자가 되어야할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바울에게도 이러한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16: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동역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동역자라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바울은 여러 명의 사람들을 일컬어, 당신의 동역자들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서 동역자들이라는 일컬어진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에는 바울이 아볼로에게도 동역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와 아볼로에게 바울은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동역자 중에서도 하나님의 동역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표현이며, 대체 어떤 사람이 이러한 말로 불려질 수 있는 것인가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동역자라는 말은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지, 특별히 하나님의 동역자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기왕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아 천국에서 하늘의 기업을 물려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말씀은 바울이 자신과 더불어서 아볼로 등을 가리켜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을 들을 수가 있는 것인가요? 어떻게 하루에도 열 두 번 마음이 변하고 성질부리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요? 혹시 하나님의 하인이라고 해야 할 말을 잘못 표현한 것은 아닌가요? 어떻게 되어서 바울은 자신과 그리고 자신과 함께 일하는 아볼로같은 친구들을 가리켜서, 이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말했던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위대한 인물의 동반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뛰어난 인물 정도가 아니라 전능한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더 기쁘겠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55년경 바울이 3차전도여행(A.D.53~58)을 하다가 자신의 2차전도여행(A.D.49~52)을 하다가 개척하여 세운 고린도교회에서 보낸 첫 번째 편지로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을 분쟁에 휘말려 있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나는 바울파요 아볼로파요, 아니 나는 게바파요 나는 그리스도파라고 하면서 분열을 일삼고 있는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그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부름을 받아 일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현재 일하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주이 종이나 하나님의 동역자일 뿐, 자신과 같은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해버립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가치 없게 여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지금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면,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버림당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제 믿음으로 나 자신이 비록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부름받아 살고 있음을 깨닫고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동역자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는가?

동역자(, 쉰에르고스)”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헬라어로 보았을 때, 아르곤이 합쳐져서 생긴 단어입니다. 함께, 같이라는 뜻이며, ‘에르고스일하는 자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쉰에르고스라는 말은 함께 일하는 짝(파트너)”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쉰 아르고스동역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다음과 같은 3가지 대상과 관련해서 언급하였습니다. 첫째로 그는 자신을 비롯한 아볼로로 같은 사역자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들”(고전3:9)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고전3:9[직역]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기 때문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경작지요 하나님의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는, 바울 자신이 바울의 개인의 동역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하려 할 때에 사용했습니다. 그때 사도바울은 그들을 나의 동역자들혹은 우리의 동역자들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16: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그런데 바울에게 동역자들에는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늘 계속해서 바울과 같이 함께 일하던 동역자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사람으로는 디모데나 의사 누가가 있습니다.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리고 또 하나는 바울이 어떤 사역자인지를 알게 된 자들이 비록 바울과 함께 계속해서 일하지는 못했지만 바울을 지속적으로 도와주었던 동역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 빌립보교회에 있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분투하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들의]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누가 하나님의 동역자인가?

여기서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동역자들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불리려면 오직 점과 티도 없는 완벽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에서 복음을 위해 분투하던 두 여인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들을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두 여인은 어떤 여인들이었습니까? 두 여인은 지금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서로 다툼과 분쟁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 여인에게 개별적으로 권면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에게 권면합니다. 그리고 내게 순두게에게 권면합니다라고 말이죠. 둘 다 서로에게 마음이 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두 여인은 바울이 한 때에 복음을 위해 함께 고군분투했던 여인들이었으며, 그들의 이름들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하려고 하면, 그가 뭐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도 때로는 마음이 서로 맞지 않아 싸우고 때로는 분쟁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멀리 있는 사람을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울의 첫 번째 동역자였던 바나바와 바울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안디옥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이방선교의 첫발을 내딛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항상 협력하면서 복음을 전파했을까요? 아닙니다. 1차 전도여행 때의 일입니다. 바나바가 자신의 조카 마가요한을 데리고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가요한이 힘들다고 중간에(밤빌리아 버가에서) 되돌아가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무말 안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2차전도여행에 떠나려고 하는데, 바나바가 한사코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합니다. 저번에는 아이가 고생을 안 해봐서 그만 돌아가 버렸지만 이제는 자신의 잘못도 잘 깨달았고 이제는 굳은 각오가 되었으니, 이 친구를 훈련시켜 앞으로 우리의 사역을 대신할 자로 만들려면 이번 여행 꼭 데려가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전도여행이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힘들다고 돌아가버리는 어린 애같은 마음을 가진 자는 안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을 보니, 바울이 그 문제 때문에 바나바와 심히 다투었다고 말합니다. 둘이 갈라설 정도로 말입니다(15:39).

그런데 여러분, 바나바는 원래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매우 유순한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도 매우 좋아서 자신의 밭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의 발앞에 내놓았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의 성품이 얼마나 좋았던지 사도들이 그에게 별명을 지어서 불렀는데, 그에게 바나바라고 별명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원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위로의 아들, 격려의 아들, 위안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바울과 바나바는 심히 다투었습니다.

15: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15:39[직역] 그들에게 피차로부터 단번에 갈라지게 되도록, 날카로운 말다툼이 일어났다. 이에 바나바는 마가를 취한 후에 구브로 안으로 출항하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흠이 있는 자들인데도 왜 성경은 그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과 그리고 자기가 속한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바나바와 바울이 심히 다투었고, 유오디아와 순두게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기는 했지만 그들은 자신과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지를 아는 자들이어씁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자들이었습니다.

비록 성품상에 흠이 있고,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바나바와 바울은 사도로서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일에 자신의 물질과 삶을 기꺼이 기쁨으로 투자했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부터 11독의 목표를 세우고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성경을 읽었는데, 읽다가 하나님께서 올 해 우리에게 주신 교회의 표어, 가장 아름다운 협력을 이루는 해라는 관점에서 하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셨을까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과 짝할 자로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혼자 있는 것이혹은 혼자인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에제르 네게드=짝할만한 돕는 자)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건축하시고 그를 아담에게 이끌어오셨습니다. 그러자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와 살 중이 살이라고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관점에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보면,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했고(5:14), 아담과 하와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형이라고 했기 때문에(5:32), 그리스도가 혼자인 것이 좋지 않아서, 그를 위하여 아담과 짝할만한 돕는 자로서 하와가 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와가 여자로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그것의 그림은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옵니다. 여가 아이를 낳고 낳고 낳으면 거기에서 메시야가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와가 한 명의 자녀만을 낳는 것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자녀들을 낳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결국 하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천국에 들어갈 자녀들을 생산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와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하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짝할 자로서 인간이 창조된 그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목적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동역자들인 것입니다. 그에게 비록 성품상에 흠이 있어서, 남자로서는 성질을 잘 참지 못하는 구석이 있어도, 여자로서는 미움과 시기질투심이 있어도, 하와를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그일에 분투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동역자들인 것입니다.

 

. 성도는 어떻게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보다 더 그리스도를 잘 돕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머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머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분을 따라가는 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즉 그리스도의 배필로서 하와를 창조하실 때에, 하와를 만든 재료를 아담의 머리뼈를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라 아담의 갈비뼈를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나중에 하와를 보고 탄성을 질렀던 것을 보면, 아담의 갈비뼈만이 하와의 재료가 아니라, 아담의 살도 하와의 재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의 머리뼈가 아니라 아담의 갈비뼈와 살로 하와를 만들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사도바울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고전11:8-10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예표인 아담과 교회의 예표인 하와 사이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남자가 머리이고 여자가 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풀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의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의 머리로부터 취하지 않고 갈비뼈(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을 취하여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동역하는 것은 우리의 머리를 써서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하나님과 동역해야 합니다. 그것은 머리를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손과 발이 되어 드리면 됩니다.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는 자기에게 조그마한 직분이라도 주어지면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부리는 자, 머리가 되고자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높은 직분을 맡을수록 더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머리로서 코치만 하려고 할 뿐 자신이 직접 손과 발이 되어 섬기는 위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3:6-7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우리는 어떤 이는 심는 자로서 사역할 자도 있을 것이며, 어떤 이는 물을 주는 자로 사역할 자도 있겠지만, 우리가 영혼을 자라게 하는 이가 아니라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오늘날에도 조금만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 자신이 뭔가를 이룬 것으로 착각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원래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흠도 많고 점도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알고 그 일에 힘쓰는 것을 보시고 우리를 어여삐 여기셔서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맣지만 열매를 맺어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게 되면, 자신이 생명을 낳는 줄로 착각하고 교만해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이신 그분의 몸인 것이지 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우리 자신이 부족하지만 처음부터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가장 귀하게 창조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있는 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그분에게 우리가 손과 발이 되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열매를 남겼다고 할지라도 나는 다만 그분의 말씀에 순종한 것 뿐입니다는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손과 발을 가지고 그분을 돕는 자로서 지음을 받았음을 알고 생명을 낳는 일을 계속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결국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의 신부로 취하는 것입니다. 그때 진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영원한 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진짜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그분과 떨어지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과 영원히 천국에서 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2:24 이러므로 [] 남자가 [자기의]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붙어서)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기서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인 것입니다. 천국으로부터 더 이상 쫓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지, 지금 이 세상의 부부처럼 육체가 하나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실 능력있는 천사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그러한 위대한 은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신부가 되는 것은 천사도 흠모하는 일입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흠이 있어도 우리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에 힘쓰는 자들이 된다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그러나 진정 그날에 영원히 떨어지지 아니할 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그분의 손과 발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내 손과 내 발을 사용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불신자를 섬기지 않고, 군림하려 하고 지시하려고 하면 그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 주님으로부터 끊어질 수 있습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겸손히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드립시다. 오직 머리되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씨를 가진 자녀가 탄생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을 위해 사용합시다. 내 친절함도 영혼을 낳는 데에 드립시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위해 하늘나라의 상급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누가 하나님의 동역자들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비록 흠이 있는 자라도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인간창조의 목적을 알고 그 뜻에 부응하는 자가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인간은 원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를 돕는 배필로서 창조되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진정한 동역자는 자신이 머리로서가 아니라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는 자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부끄러운 삶을 살았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동역자로서 부끄럽게 않게 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동역자로서 떳떳하게 살아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을 머리로서 섬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만 자랑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내가 어떤 존재로 지음받았는지를 알지 못하게 방해한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가 하나님의 동역자인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처음부터 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창조되었음을 믿을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창조되었구나.

2. 비록 흠이 있어도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향해 가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동역자로구나.

3. 진정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려면 그리스도를 머리로 붙들어야 하는구나.

4. 진정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려면 내가 그분의 손과 발이 되어드려야 하는구나.

5. 하나님의 동역자의 끝은 그분과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그의 신부가 되는 것이로구나.

6. 하나님은 당신의 동역자를 위하여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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