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성도는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벧전2:5,9)_2020-01-19(주일)

by 갈렙 posted Jan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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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목회자와 성도는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벧전2:5,9)

[일시] 2020119(주일) 오전9,11

[찬송] 12장 다함께 주를 경배하세,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PW: 믿음, MIW: 협력하는

T.S: 믿음은 목회자와 성도가 협력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목회자와 일반 성도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목회자란 어떤 신분의 사람입니까? 국어사전에 보면, “기독교 교회 안팎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여 신도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단의 헌법 책에는 목회자라는 직책도 없고, “성도라는 신분도 사실은 없습니다. “목사와 교인이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럼, 목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 교단 헌법에 의하면, 목사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고 되어 있습니다.

1.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인 교인을 양육하는 목자이며(3:15, 벧전5:2-4), 2. 목사는 그리스도를 봉사하는 종 또는 사자이며(고후 5:20, 6:20), 3. 목사는 모든 교인의 모범이 되어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이며(벧전5:1-3), 4. 목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깨우치는 교사이며(1:9, 딤후1:11), 5. 목사는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도인이며(딤후4:5), 6. 목사는 그리스도의 설립한 율례를 지키는 자인고로 하나님의 도를 맡은 청지기이다(12:42, 고전4:1-2).

그렇습니다. 우리교단에서는 목사를 목자종이자 사자이며, ‘장로교사전도인이며 청지기라는 6가지 신분을 가진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분 중에서 목사는 어떤 직무를 잘 수행해야 하는 것일까요? 다 잘해야 합니다. 특별히 목회자는 말씀을 맡은 자로서 성도들에게 지도력을 가지고 목양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만한 것은 여기서 왜 목사는 제사장이나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와서 교회에 십일조를 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이후 시대는 누구든지 다 제사장이 되었기에, 구약시대에 레위인인 제사장에게 바치는 십일조를 왜 교회의 목사에게 바쳐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왜 십일조를 냅니까? 교인들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목사를 먹여살리려고 하는 것입니까? 첫째,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인정하면서, 둘째, 하나님께서 나의 건강과 가족과 직장을 지켜주시고 천국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면서, 셋째,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말씀사역에 전념하여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주십사는 마음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제사장이기 때문에 제사장을 먹여 살리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목회자와 성도는 다 같이 왕같은 제사장들이 되었으니,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는 어떤 구별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목회자와 성도 간에는 정말로 아무런 구별이 없는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모든 성도다 다 제사장들인가를 한 번 살펴보고, 제사장의 직무란 대체 어떤 것이며, 목회자와 성도는 어떻게 협력해야 올바른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택하심을 받아 그분의 소유가 된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아름다운 은총들을 전파하는 거룩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여, 교회를 잘 건축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사도바울은 거룩한 제사장의 직무가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왜 그것을 성도들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목회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까?

 

2)청중적 접근

오늘날에는 회중교회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목회자와 성도간에 구별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서로를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형제교회라는 말이 사용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도 모두가 다 제사장이 되었으니, 모두가 한 번씩 돌아가면서 설교하고, 모두가 한 번씩 돌아가면서 축도하고, 모두가 한 번씩 돌아가면서 성례를 집행해야 옳은 것일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64년경 사도베드로가 로마에서 본도와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말씀입니다.

사도베드로는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원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로서 긍휼을 얻지 못한 자들이었는데,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백성이 되었고 긍휼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받은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하면서 베드로전서 2장을 쓰고 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벧전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베드로의 말을 잘못 이해하면,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베드로의 말을 잘못 이해하면, 스스로 길을 잘못 들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베드로의 말을 잘못 이해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모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베드로의 말을 잘못 이해하면, 직분에 혼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베드로의 말을 잘못 이해하면, 목회자와 성도는 다 똑같은 것이 아니냐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베드로의 말을 잘못 이해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신분이 각자의 위치에서 교회를 세우도록 주어진 소중한 직분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여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성도는 다 제사장인가?

그렇다면, 성도는 다 제사장인가요? 어떤 이는 루터가 만인제사장론을 가지고 종교개혁을 외쳤다고 하면서, 목회자만 제사장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요 모두가 제사장이라고 주장합니다. 아까도 우리가 들었지만 목사의 직무 가운데 그 어디에도 사실 제사장이라는 직무는 들어가 있지 아니합니다. 혹 목회자가 제사장의 정신을 이어받아 일할 수는 있지만 오늘날의 교회의 목회자는 구약의 제사장의 후예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목회자는 구약의 제사장이 해야 했던 중요한 직무를 감당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구약의 제사장들은 무엇을 하는 자들이었습니까? 그들의 중요 직무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도록 구별하여 세운 자들로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일 곧 제사를 드리는 일하나님의 성막에서 봉사하는 임무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제사장은 제사드리는 일을 하였고, 또한 성막 안에서 들어가서 일곱금촛대에 향을 사르고 정리하며, 향단에 향을 사르고, 안식일마다 떡상에 떡을 진설하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지금 하늘 성소에서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사역의 예표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중에 대제사장은 11차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부수적인 일도 했습니다. 백성을 재판하는 , 제사후에 축복하는 일 그리고 율법규정에는 거의 나타나 있지 않지만 나중에는 백성을 율법으로 가르치는 일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때는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이미 마지막 제사를 드린 후 시대이므로, 목회자는 더 이상 제사드리지 않아도 되며, 성막에 가서 어떤 일도 수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부수적인 일들을 행할 뿐입니다. 목회자가 하는 일은 제사장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날 목회자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배를 집례하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합니다. 물론 이 때에 기도도 드리고 찬양도 합니다. 둘째,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일을 합니다. 셋째, 환난당하거나 일이 있는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여 위로하고 격려하고 축하하는 일을 합니다. 넷째, 그리고 가끔씩은 세례와 성찬을 집례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는 구약의 제사장과는 많이 다른 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루터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게 된 것인가요? 그것은 사제에게 가야만 죄용서를 받을 수 있고, 사제가 있어야만 미사를 드릴 수 있고, 사제의 중보기도 있어야 기도도 응답받을 수 있다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즉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에 참여하기 전에, 먼저 사제 앞에서 가서 고해성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부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각각의 신자들은 성직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직접 사죄의 기도를 드릴 수 있고, 예배도 드리고 다른 사랑믈 위해 중보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인제사장론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루터는 평신도도 설교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인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는 십일조를 바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도베드로는 무엇 때문에 소아시아에 흩어진 성도들을 향해 제사장이라고 편지를 쓴 것입니까? 그것은 우선 오해를 풀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성도를 가리켜 제사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도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라고 썼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벧전2:5,9에만 딱 두 번 나오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히에라튜마라는 단어입니다. 우리 한글성경에서는 제사장이라고 번역했는데, 제사장이란 용어는 정확히 히에류스입니다. 그렇다면, “히에라튜마라는 단어는 어떤 단어입니까? 그것은 히에라튜오에서 온 말인데, 그것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다는 뜻입니다. 고로 히에라튜마라는 용어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라고 번역해야 맞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아니더라도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대표적인 경우가 엘리제사장 때 쓰임받은 사무엘의 경우입니다. 그는 레위지파의 아론자손의 후손이 아니라, 그는 에브라임지파 사람으로서, 나실인으로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우리 성도들이 진정한 제사장이 되는 날은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서라는 사실입니다.

5: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20: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이처럼, 제사장의 직무는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제사를 끝으로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제사드리는 일이나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무는 없어졌습니다. 그럼, 천국에서 성도는 무엇을 합니까? 그것은 2가지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하나는 찬양하는 일이며, 또 하나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천국에서 제사장으로서 성도들은 찬양하고 기도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서 그분에게 경배를 드립니다.

그럼, 오늘날 성도들은 어떤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죄인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감당하는 일을 합니다. 성도들은 어두운 곳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불러내어 예수님의 놀라운 빛 안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교회를 건축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닌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오늘도 영적인 집을 짓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한다는 것은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구원받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생활을 잘 감당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제사장의 직무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직무인 것이지, 너도 나도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할 수 있다는 의미의 직무가 아닌 것입니다.

말씀사역의 직무는 오순절 이후에 비로소 생겨난 새로운 직무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말씀사역을 감당하는 직무는 구약시대에는 없었던 직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베드로가 말했던 일반 성도가 힘써야 할 제사장의 직무란 누구나 다 전도하여 죄인을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고, 교회를 세워가는 직무를 가리키는 것이지, 성도들이 다 설교할 수 있다는 직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원시교회는 사도들과 성도들이 어떻게 구별되기 시작했는가?

그러나 초대교회였던 예루살렘교회는 처음에는 120명으로 시작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꺼번에 3천명이 회개하여 들어왔기에, 교회의 직무를 따로 해야 할 필요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점차 말씀으로 섬기는 사역자들식탁들을 섬기는 봉사자들로 구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의 일은 주로 사도들이 집행하였고 뒤의 일은 오늘날 집사들이 집행하였습니다.

6:2-4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식탁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전념하리라) 하니

사실 교회의 규모가 작을 때에는 말씀사역과 봉사사역의 두 개 사역이 특별히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규모가 커지고 활성화 되자, 말씀만을 전념하는 자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말씀을 맡은 자와 봉사를 맡은 자들이 서로 구별되어 사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지금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

그렇지만 둘 다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있어서는 동일한 직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성도는 일상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일들을 수행하는 자들이고, 목회자는 말씀사역과 기도에 열중하면서 그 일을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둘의 협력은 교회를 세우는 데에 매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한국교회 가운데 미자립 교회의 숫자가 이미 31%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개척했지만 교회의 성도가 작다보니 교회가 재정자립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단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이중직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장 합동총회는 지난해 정기총회에서 총회 규칙 제931조에 생계, 자비량 목회 등의 사유로 소속 노회 특별한 허락을 받은 자는 이중직을 허락하는 예외 규정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재정자립을 만회하면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 어떤 목회자는 까페교회를 세우기도 하고, 방과후학습교실을 운영하기도 하고,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해보기도 하고, 문화학습선타를 만들어 운영해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잘 안 되었을 때에는, 목회자들도 직업일선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직접 나가지 못할 형편이 되면 사모님들이 일선에 뛰어들어서 일을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야간대리운전을 하기도 하고, 주차안내를 하기도 합니다. 사모님은 유치원이나 학교교사로 취직하기도 하고, 노동일마저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성도들의 영적인 일을 책임져야할 목회자들이 그만 사회노동에 시달리다보니 지쳐서 목회의 직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지게 됩니다. 제대로 준비하려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사회 일선에 뛰어들어 그 일을 감당하려 하니 이중고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목회자의 성실한 직무를 통해 잘 준비된 영적인 꼴을 먹어야 성장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여 목회자가 하여금 목회의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각오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에는 밭과 집을 팔아서 재산을 헌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은 십일조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다만 성도가정 10~20가정에서만이라도 십일조 생활을 하게 되면, 목회자는 주중에서 사회 일선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목회자는 성도들을 위해 정말로 준비되고 풍성한 양질의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다만, 교회가 처음으로 세워질 무렵에는 교회의 규모가 워낙 작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기에, 십일조와 같은 헌신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영적인 분야를 전담하는 자가 나오게 되었을 때, 교회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교회 가운데에 정착이 된 것이 십일조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영적인 양식으로 섬기는 말씀사역자들을 위하여 성도들은 자신의 육적인 것을 가지고 섬겨야겠다는 기본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오직 성도들의 구원과 영적인 성장을 위해 말씀을 철저히 준비하고, 그들을 위해 목숨걸고 목회를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말씀을 맡은 목회자와 봉사를 맡은 성도들이 교회를 바로 세우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서로서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오늘은 제가 우리 성도들을 조금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십일조를 90%이상이 다 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올 해 들어와서는 기도와 봉사가 확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주일식사준비를 담당하는 어느 집사님께서 사정이 생겨 못나오시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권사님들과 집사님 4분이 뛰쳐나오셨습니다. 와보니 서로서로가 나라도 나가야 도와야겠다는 마음으로 나온 것입니다. 놀라웠습니다. 주일 식사준비가 엉망이면 어떡하나 생각이 들었던 것 이죠.

그리고 요즘에 금요기도회에 참석해보셨습니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자집사님들이 자리를 딱 메구어주니 기도소리가 성전을 흔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 우렁찬 찬송소리와 함께 부르짖는 기도소리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가 막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기도가 없으면 사실 사상누각이 됩니다. 아무리 잘 세워놓은 것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탄마귀가 공격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흥과 발전의 시작은 기도입니다. 그것도 부르짖어 기도하는 통성기도입니다. 요즘 우리교회가 기도소리가 이처럼 뜨거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도가 있는 곳에 초자연적인 역사가 있으며, 놀라운 은혜와 응답이 있습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삽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전도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성도와 목회자인 저가 함께 서로 협력하면, 우리는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첫째,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건축되기 때문입니다. 부르짖는 기도와 성령충만한 말씀으로 건축된 교회는 결코 무너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개교회 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까지 다 천국으로 안내해주는 온전한 회개와 천국복음말씀이 선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혹 정치이야기는 가감할 수 있어도, 성경은 결코 가감하지 않습니다.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습니다. 오직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전까지는는 자발적인 십일조가 이루어졌는데, 이제 올 해부터는 자발적인 봉사가 이뤄지고, 자발적인 기도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천국복음은 상당한 괘도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회개와 천국복음 가운데 살고 있고, 더불어 삶 속에서 실천을 통해서 교회의 부흥과 발전이 이루는 한 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매우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상급을 대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봉사하는 만큼 하늘에서 들어가서는 상을 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약속하고 있습니다(딤후4:7~8). 놀라운 일입니다. 올 해는 뭔가가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목회자와 성도간의 협력이 너무나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파트너십이 대단합니다. 우리 성도들을 축복합니다. 아멘.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목회자와 성도간의 협력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목회자는 영적인 봉사를, 성도는 육적인 봉사를 수행하는 것이 곧 협력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사역자가 가장 바람직한 목회자 상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는 봉사와 섬김을 위해 세운 사역자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목회자가 성도가 서로 협력할 때 건강한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내 위치를 잘 파악하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제 위치에 서 있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제 위치를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제 직무를 잘 감당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제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최선을 다해 목회자를 돕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목회자와 성도간의 협력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게 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협력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자신의 위치에 서 있을지어다. 제 직무에 최선을 다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교회에는 목회자와 성도가 있구나.

2. 성도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로구나.

3. 목회자와 성도는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는 자들이로구나.

4. 목회자는 말씀사역과 기도의 사역자로 부름받았구나.

5. 성도는 구제와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로구나.

6. 목회자와 성도간의 상호협력은 기적을 낳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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