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이 땅의 참 성막의 대제사장이셨다(히8:1~6)_2020-03-15(주일)

by 갈렙 posted Mar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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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께서는 이 땅의 참 성막의 대제사장이셨다(8:1~6)

[일시] 20200315(주일) 오전9, 11

[찬송] 10장 전능왕 오셔서, 83장 나의 맘에 근심구름, 260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83장 나의 맘에 근심구름, 260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PW: 믿음, MIW: 붙드는

T.S: 믿음은 성막으로 오셨고, 이 세상에서 속죄사역을 마치시고 지금은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시는 예수님만을 붙드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믿는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시어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제사를 드렸다는데, 예수께서는 아론의 반차를 따라서 온 레위지파 사람도 아니고, 성전에서 속죄제사를 드리지 않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그것이 어떻게 되어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속죄제사가 될 수 있는지 조금 의아하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춘천에 있는 모교회에서는 예수께서 2중제사를 드렸다고 하는데, 그러한 주장을 듣고 있으면 우리는 예수께서 하늘에서 드린 두 번째 제사를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분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속죄제사를 드리시고 하늘의 지성소에 가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또 다른 제사를 드린 것일까요?

우리는 지난주에 성경해석법에 대한 가장 좋은 방법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입니다. 모형론적 혹은 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이란 우리 주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을 해석하실 때에 사용하신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이후에는 사도바울을 비롯하여 사도요한, 사도베드로 등이 사용했던 방법으로서,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구약시대에 이미 나타난 사건이나 인물을 예표론적으로 보고, 그것을 통하여 신약성경을 해석해 가는 방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21장에 나오는 놋뱀사건이 대표적입니다. 하나님께 원망불평을 늘어놓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 물어 죽게 했는데, 그때 살려면 장대위에 높이 매달린 놋뱀을 쳐다보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그것을 그대로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니리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라고 말씀하심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자가 죄의 독에서 해방되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가장 탁월하게 모형론적으로 성경을 해석한 책은 어떤 책일까요? 그것은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모형과 신약의 실체를 철저히 비교해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히브리서에는 천사와 그리스도, 모세와 그리스도, 아론과 그리스도, 옛 언약과 새 언약, 물질적인 성전과 인격적인 성전, 동물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 등 수많은 것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소개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에서 가장 놀라운 표현은 예수님의 몸이 구약의 성막으로 예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막에서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속죄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우리에게 대제사장으로 오셨다는 말은 무슨 뜻이며, 어떻게 대제사장으로 사역했는지를 오늘 이 시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주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믿고 의지할 때 우리는 대체 어떤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일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는 이 땅에 모형이자 그림자인 성막에서 속죄제사를 드린 대제사장으로서가 아니라, 이 땅의 참 성막인 자신의 몸 안에서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이제는 하늘에 있는 참 성막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일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 성전은 모형이자 그림자라고 친다고 할지라도, 예수께서는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대제사장으로 사역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분은 성전에서 제물로 돌아가시지 않고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온 인류의 속죄를 위한 속죄제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예수께서는 지금 하늘에 참 성막에서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시다는데, 정말 하늘에 가면 모세가 지었던 똑같은 성막이 하늘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유대나라의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셨던 예수님이 사실은 인류의 속죄를 위해 이 땅에 성막으로 오신 분이며,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인류를 위한 속죄의 죽음이었다고 증거한다면 얼마나 곧이곧대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65년경 작자미상의 히브리서 기자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흔들리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새 언약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께서 어떻게 속죄제사를 리셨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었는지를 전한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는 자들에게 대제사장이 있는데, 그분은 지금은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지만, 그분은 성소들과 참 성막의 사역자로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예수께서는 골고다 언덕에서 죄인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어떻게 성소와 장막에서 대제사장으로 일하신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의미 없이 죽으신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신 것이 어떻게 인류의 죄를 속하겠느냐면서 반문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인류를 위한 속죄제사였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날 예수께서 속죄제물이 되심과 동시에 또한 대제사장으로서 사역하셨다는 것도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성막의 의미도, 속죄제물의 의미도, 대제사장의 의미도 알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대제사장으로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들은 믿음으로 히브리서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성막으로 오셨다는 것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속죄위한 속죄제물로서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그 일을 직접 집례하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체적인 진실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속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실히 깨닫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예수께서는 이 땅에 세워진 참 성막이었다(1:14,2:19,10:20, 15:38)

우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속죄제사였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는지부터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속죄제사를 드리려면 적어도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제사드릴 장소로서 성막 혹은 성전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자신을 대신하여 죽을 흠없는 속죄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 속죄제물을 잡아서 바칠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제사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속죄제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제사장이 그 제사를 집례해야 합니다.

9:6-7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속죄제사를 드릴 당시의 성막 곧 성전에 가지 아니하시고 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인가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것을 깨닫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 해답은 히브리서9:8에 있습니다.

9: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 장막(성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그럼 첫째 장막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것은 9:1~2에 나와 있습니다.

9:1-2 []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규례들)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준비된 채 있는) [] 장막(성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성막 혹은 성전에서 등잔대와 진설병과 있는 바로 그곳을 성소라고 일컫는데, 그곳을 첫째장막, “첫째 성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 의하면 그것이 서 있는 동안에는 성소들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0:19~20에 의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성소의 휘장(둘째 휘장)이 찢어져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여기서 성소의 휘장이 그분의 육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표적인 해석을 가지고 요한복음을 읽으면 예수님의 성육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성막을 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요, 성막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이 상하시고 죽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으신 것이 곧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막을 지으신 것이라고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해 예수님의 몸은 첫째성막이었고,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첫째 성막이 찢어진 것입니다.

첫째성막을 지나 성소휘장을 걷고 들어가면 그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지성소입니다. 지성소에 안에는 법궤가 놓여있고 그 법궤의 속죄소 위에서 하나님께서 영으로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이 세상에도 성막이 있기는 있었지만, 그것은 예표에 불과하며, 그때에 성막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막의 2가지 기능첫째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주하기 위찬 처소, 둘째는 그곳에서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있는 성전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예수님의 몸 안에 있었으며, 거기에서 드리는 속죄제사는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땅에 참 성막을 다시 세우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 아버지께서 계셨으니, 그분의 영 안이 지성소였습니다. 고로 예수님의 육신은 첫째성막 곧 성소였고, 그분의 영은 둘째성막 곧 지성소였던 것입니다(9:8). 그러므로 9:8의 말씀은 이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9: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예수님의 몸)이 서 있을 동안에는 [하늘의] 성소들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그리고 우리들이 죄를 용서받고 또한 하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몸이 찢겨져야 했고 죽음에 넘겨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은 움직이는 하나님의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움직이는 첫째장막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시든지 다른 어떤 장소에서 돌아가시든지 예수님의 몸이 있는 곳이 곧 성전이었기에 거기가 바로 속죄제사를 드릴 적합한 장소였던 것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둘째휘장이 찢어짐으로 첫째성막 곧 예수님의 몸이 찢겨서 죽음에 넘겨졌음을 언급하고 있으며, 공관복음서에도 그와 같은 사실을 확증해주고 있습니다(27:51,23:45).

27:50-51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23: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오셔서 이 땅의 성막에서 속죄제사를 드리시고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셨다(9:11~12)

이제는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속죄제사를 드리시고 어디로 가셨을까요? 그날 첫째 성막인 예수님의 몸이 찢겨지자 예수께서는 영이 그 육체에서 빠져나와 어디로 가셨습니다. 그분은 요나의 표적의 예언을 따라 3일동안 사망 안에서 음부로 내려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3일 후에는 그곳에서 빠져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덤으로 가셔서 그 육체를 새로운 몸으로 바꾸신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부활을 제일 처음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의 몸을 만지려하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손대지,만지지) 말라 [왜냐하면]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그럼, 예수께서는 왜 굳이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신 것입니까?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사는 2마리의 속죄양(숫염소 2마리)가 사용되었는데,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한 속죄양으로 죽임당해 성전의 지성소의 법궤 위에 앞에 그 피가 뿌려졌고, 또 한 마리의 속죄양은 아사셀양이 되어 사람이 없는 광야로 보내 죽게 해야했기 때문입니다(1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사셀양으로 먼저 대속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의 영문밖에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신 것이요, 또 하나는 그때 자신의 영 안에 자신의 피를 뿌리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예수께서 못박혀 돌아가신 그 언덕의 밑의 바위굴속에 실제로 법궤가 안치되어 있어서, 그때 지진으로 말미암아 피가 흘러들어가서 법궤 위와 앞에 피가 떨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론 와이어트 고고학자가 밝혀낸 사실입니다.

그리고는 첫장막이 찢어지자 예수께서는 이제 하늘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9:24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그림자[](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하늘 자체)에 들어가사(들어가셨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사람들이 지은 성소와 지성소에 피를 가지고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 자체가 성소였고 지성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첫째성막이 찢어진 후 이 땅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하늘의 성소들(성소와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9:24).

어떤 사람은 주장합니다. 지금 하늘에도 성막이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모세 때에는 그 성막이 있어서 그것을 보고 모세가 성막을 지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육체가 찢어질 때에 첫째 성막도 같이 없어짐으로 천국 자체가 성소와 지성소가 하나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늘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재 천국에는 굳이 보면 지성소만 찾을 수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지성소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장소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에 어디로 가셨습니까?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8: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그래서 지금은 하늘에 있는 성소들과 참 장막에서 사역자로 일하고 계십니다(8:1~2).

그러므로 예수께서 피를 가지고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리는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천국에는 물질적인 피가 없을뿐더러, 천국은 피를 가지고 갈 수도 없는 영의 장소인 것이지, 그곳에 예수께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가서 천국에 있는 지성소의 법궤 위에 피를 뿌렸다는 것은 잘못된 착오인 것입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9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9:11-12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예수님의 몸)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이루신 후에)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이 땅의 자기의 몸 안에 있는 영 안에서 속죄제사를 행하신 후에, 성소 곧 하늘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고로 이 땅에서 대제사장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속죄제사를 드린 것은 다 모형에 불과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진짜 제사였던 것입니다.

 

.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아론자손의 대제사장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시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막과 대제사장과 속죄양은 다 모형(견본)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 땅의 속죄제사는 예수님의 진정한 속죄제사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리허설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구약의 아론과 그의 자손들인 대제사장과는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하십니다.

첫째, 죄성에 있어서 다릅니다. 아론과 그후 대제사장들은 죄된 본성을 가진 아담의 자손이었기에 백성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리기 전,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한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5:3,16:11). 하지만 예수께서는 죄없는 육신의 모양만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자기를 위한 속죄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4:15,7:25).

둘째, 반복성에 있어서 다릅니다. 아론 이후 대제사장은 죽기 때문에 계속해서 직분을 감당할 수 없지만(7:23), 예수께서는 항상 살아계신 분이시며 영원히 제사장으로 계시기에(6:20,21),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않습니다(7:24). 그리고 이 땅의 대제사장은 매년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지만(9:25), 예수님은 단회적으로 속죄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9:26,10:10). 그래서 그것을 단번의 영원한 제사라고 부릅니다(10:12).

셋째, 반차(계통)가 다릅니다. 이 땅의 대제사장은 아론 반차를 따라서 제사장이 되었지만, 예수께서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입니다(5:6,10:6,20).

그럼, 멜기세덱은 어떤 제사장입니까? 그것이 히브리서 7장에 빼곡히 나와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시작도 끝도 없는 신분을 가진 자입니다(7:1~3). 둘째로, 그는 아론보다 신분이 더 높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아론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으며,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주었기 때문입니다(7:4~10, 14:18~20). 자고로 낮은 자가 높은 자로부터 복빎을 받는 것입니다. 셋째로, 아론과 그 후손들은 맹세없이 제사장이 되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 되었기 때문입니다(7:11~28, 110:4). 넷째로, 아론과 그 후손들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율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었지만 예수님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7:16). 더구체적인 사항은 이번주 새벽기도 시간에 나누겠습니다.

넷째, 제사 장소가 다릅니다. 이 땅의 대제사장들은 땅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에서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께서는 자의 육체 안에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입니다(8:1~2,9:11,24). 그리고 나서 하늘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다섯째, 제물과 제물의 피가 다릅니다. 이 땅의 제사에서는 동물 즉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사용되어 그것이 예표에 불과하지만(9:12~13,10,10:4) 예수께서는 직접 자신의 피를 흘리셨기에 완전한 속죄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9:12,14).

 

3)청중의 문제와 해결

다시 말해 예수님의 대제사장으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 아론과 그의 후손들이 예표였던 것이지 그들은 실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참 대제사장으로 오시어 자기의 육체 안에서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인류의 모든 죄들을 속죄하시는 것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지 않으셔도 아무 상관이 없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이미 대제사장으로 있다가 이 땅에 대제사장으로 오셔셔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속죄제사를 드리려고 성막이 되셨으며, 자기의 몸 안에서 속죄제사를 드리셨고, 이제는 하늘에 오르시어 거기에서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끝까지 붙드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 청중의 더 큰 복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흠없는 속죄제물이시며, 참 성막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떤 복을 받습니까? 모든 죄들을 용서받게 됩니다. 죄들을 용서받으면 저주가 물러납니다. 가난과 질병이 떠나갑니다. 귀신들도 떠나갑니다. 그러면 복이 옵니다. 죽어서는 예수께서 열어놓으신 하늘길을 따라 하늘성소에 들어가서 살게 됩니다. 또한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사역하시는 예수님의 중보사역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2)결단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나님이 이 땅에 성막을 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언제나 걸어다니는 성막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골고다언덕의 제사는 아세살양을 위한 속죄제사였고 동시에 여호와를 위한 제사였습니다. 그리고 부활후 예수께서는 하늘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늘성소에서 부리는 자이십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어떤 죄를 지었어도 용서를 받게 됩니다. 그분의 대속의 죽음은 영원히 살아서 우리에게 역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축복

예수님만 붙드십시다. 우리를 위해 성막으로 오셨고, 대제사장으로 오셨고, 대속제물로 오신 우리 주 예수님만 붙들면 우리들도 주님께서 열어놓으신 살 길을 따라 천국에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이제는 누가 성막이며 누가 속죄제물이며 누가 대제사장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탄생하심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새로운 성막을 치신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신 완전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골고다 언덕에서 드려진 속죄제사는 아사셀과 여호와를 위한 동시 속죄제사였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으며 하늘길이 열렸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는 아론보다 더 뛰어난 대제사장이신 것을 알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예수께서 성막이신 것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의 몸이 첫째성막이셨던 것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께서 대제사장인 것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는 골고다제사가 완전한 제사였음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예수께서 성막이신 것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은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것을 믿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굳게 붙들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예수께서는 성막이자 속죄제물이며 대제사장이시로구나.

2. 예수님의 성육신은 이 땅에 출현한 새로운 성막이었구나.

3. 예수님은 아사셀과 여호와를 위한 완전한 제물이셨구나.

4. 예수님의 몸은 첫째 성막 곧 참 성소였구나.

5.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로구나.

6. 예수님은 이제 하늘에 있는 참 장막의 사역자이시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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