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우리 아버지(눅15:25~32)_2020-05-10(주일)

by 갈렙 posted May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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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 우리 아버지(15:25~32)

[일시] 20200510(주일) 오전9,11

[찬송] 21장 다 찬양하여라, 578장 언제나 바라봐도,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PW: 회개란, MIW: 시인, 용서하는

T.S: 회개란 어떠한 죄를 지었더라도 지은 죄에 대해 징계를 받을 때에 자신의 죄를 인정한 후에 단호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를 비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생명을 다하여서 우리들을 낳으셨고 길러주신 어버이의 은혜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부모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주신 존재입니다. 사람은 자식을 낳고 기름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깨닫고 얻게 됩니다. 고로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가장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우리의 영적인 부모입니다. 특별히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자녀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분만이 전능하신 분이요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일 이뤄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인물들은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삼상1:11)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바벨론포로 후기에는 주여(아도나이)”라는 주님을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어떤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가장 좋은 호칭은 우리 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 들어있습니다(6:9).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이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기도하라 하늘[들 안]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단번에]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는 기왕이면 전능하신 하나님, 주 우리 여호와여라는 호칭보다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구약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식이 된 자가 없었기에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꼭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해주는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믿고 섬기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항상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버지로부터 어떤 것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첫째 아들이, 탕자였다가 돌아온 자기의 동생 위해서 아버지가 베푼 잔치를 보고서는 불평을 마구 쏟아냈다는 말씀입니다.

왜 아버지는 열심히 일을 하는 첫째를 위해서는 염소새끼 한 마리 잡지 않으시고 둘째 아들을 위해서는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베풀어 주셨던 것일까요?

아버지가 참으로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열심히 일한 자에게는 상을 주어야 마땅하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버지는 둘째아들을 위해서는 상다리 부러져라고 잔치를 차려주고, 첫째아들을 위해서는 염소새끼 한 마디로 잡아주지 않았던 것입니까? [이것은 아버지의 책임이 아니라 아들이 자기의 아버지를 잘못 알고 있던 첫째아들의 책임입니다.]

 

2)청중적 접근

오늘날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섬기고 있는 것일까요?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버지로 섬기고 있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9년경 그러니까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지 약 2년이 지난 어느 시점,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에게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주시는 3가지 비유의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때 잃었다가 다시 찾게 된 자의 기쁨을 말해주는 3가지 비유를 들어 언급하셨습니다. 그 첫번째는 어떤 목자의 잃은 양의 비유였으며, 두 번째는 어떤 여인의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였고, 마지막 세 번째는 어떤 아버지의 잃은 아들의 비유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말씀은 잃은 둘째아들의 비유(15:11~24)에 이어서 등장하고 있는 잃은 첫째아들의 비유15:25~32)의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날 해질 무렵 첫째 아들(원문: 더 나이가 많은 아들, 프레스뷔테로스) 밭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집에 가까이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풍류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첫째아들은 남종 하나를 불러내어 무슨 일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종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동생이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있는 그를 도로 맞이들여서 기쁜 나머지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그러자 나이가 많은 형제는 분노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나와서 그 아들을 달래었습니다. 그러자 큰 아들이 대뜸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여러 해들을 아버지를 종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라도 명령(계명)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게 염소새끼라도 주어서 나와 내 벗이 함께 즐기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런 놈의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는 당신은 그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다. 그러니 나에게 속한 것은 너의 것이지 않느냐? 그런데 이 네 형제는 죽은 자로 있어왔는데 살아왔으며, 잃은 채로 있어왔는데 발견되지 않았느냐? 그러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니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자기가 열심히 일한 것을 가지고서 이내 불평만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 딴에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자기보다 못한 자가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부모를 밖으로 나오게 하금 하여 부모를 함부로 대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의 말과 태도로서 부모에게 불효하고 있지만 그것을 불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무엇이 참된 효도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부모를 위해 열심히 일해온 것을 생각할 뿐 진정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제 아버지가 지금 어떤 분으로 마음을 달리 먹고 있는지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어렸을 적에 아버지께 야단을 맞던 그 기억 속에 계속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열심있는 행위만이 부모를 기쁘게 한다고 여길 뿐, 자신이 부모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가 부모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것을 전혀 깨우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제 자기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끝까지 깨닫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들은 돌이켜 회개함으로 진정 부모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깨닫고 부모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잃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구약에 계시된 하나님과 어떻게 다른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동생보다 나이가 더 많은 형이 아버지에게 대해서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아버지에 대해서 율법주의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29절 이하에 나와 있습니다.

15:29~30 아버지께 대답하여 [그가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보십시오] 내가 여러 해[들을] 아버지를 [종처럼] 섬겨(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계명)을 어김이 없거늘(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그런데] 아버지(당신)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놈의] 아들이 돌아오매, [당신은] ()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그렇습니다. 그는 그때까지 아버지를 종이 주인을 섬기듯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명을 하나라도 어긴다면 받은 아버지의 재산를 잃어버리거나, 더 받을 재산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고달픈 노동이었지만 계속해서 그것을 인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산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31절에 나와 있습니다.

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너는 동생처럼 다른 곳에 가지도 아니하고 줄곧 나와 함께 계속해서 있었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나는 이미 내 것을 다 너에게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단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첫째아들은 행여나 자신이 실수하여 아버지께 받은 재산을 빼앗기거나 받을 재상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해가지도록 밭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온 것입니다. 그것도 몇 년동안을 말이죠.

이것은 첫째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섬기되, 꼭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던 방식과 같이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기라도 한다면 징계가 떨어지므로 무서워서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자식들에게 자신의 살림을 나눠줄 때에 아버지의 마음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첫째, 자기에게 주어진 재산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주길르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해 혹시 사업에 망하거나, 허랑방탕하게 재산을 낭비해 거지가 된다 할지라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자신에게 돌아오기만 하면 다 용서해주고 다시 받아줄 것을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고로, 아버지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들을 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전에는 잘못하면 즉시 회초리를 대던 시절과는 다르게 자식들을 대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릴 적에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들에게 어떤 명령을 내렸고, 명령 내린 것을 듣지 아니하면 그들을 혼내고 야단치고 징계를 내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식이 어느 정도 컸기 때문에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전에 대하던 방식으로 대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대하려고 이미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째아들은 아버지의 그러한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적에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첫째아들은 만약 자신이 성실히 살아가지 않고, 명대로 준행하지 않는다면 아버지께서 책망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그는 고된 노동을 하고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첫째아들의 삶은 그날도 퍽퍽했겠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마지 못해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축 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미 자신에게 재산을 분배해 준 것은 맞지만, 자기가 허투루 살면 다시 아버지가 재산을 빼앗아가기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하고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둘째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내치지도 않았고, 때리지도 않았으며, 쫓아내지도 않고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들을 위해 첫째가는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러니 집에서 안 들어가서 밖에 서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밭으로 나간 아들이 언제나 돌아오나 기다리디가, 해가 지도록 돌아오지 않자,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첫째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첫째아들을 달래어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첫째아들과 둘째아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첫째아들은 아버지가 자기에게 재산을 나눠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이라도 아버지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자신이 가진 재산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늘 불안한 삶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자기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첫째아들에게 아직 주지 않은 것까지 다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둘째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불효했지만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시인하고 아버지께 돌아가려고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아버지를 멀리 떠나 아버지가 주신 재산을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자기 맘대로 한 번 살아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껏 놀았습니다. 돈도 해프게 썼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다른 나라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밥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싫어하는 가축 곧 돼지를 사육하는 자로 취직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습니니다.

15:17 이에 [그가] 스스로 돌이켜(제 정신이 들어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내 아버지의 품꾼들은 양식들이 얼마나 풍족한가?) [그런데] 나는 여기서 주려(굶어) 죽는구나

그리고 마음에 결단을 합니다. 이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자. 아버지가 나를 패죽인다고 해도 여기보다는 낫지 않을까, 설령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나를 품꾼으로 하나로 써달라고 부탁하자. 그러면 여기보다는 더 낫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집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1. 그 길고 긴 방황의 늪을 지나 다시 주님 품에 안겼네 상한 나의 이 몸 찢기어진 나의 마음 모두 가진 채로 나의 욕심 때문에 나의 헛된 꿈 때문에 그렇게 방황했던 나의 인생을 이제 주께 맡기려네 이제 아버지의 집으로 이제 영원한 안식처로 돌아와 눈물 흘리며 엎디니 오 주여 나를 받으소서

2. 그 멀고 먼 근심의 계곡을 지나 이제 평안의 집에 왔네 그 아무도 내게 참된 평안 줄 수 없어 얼마나 괴로웠었는지 나의 욕심 때문에 나의 헛된 꿈 때문에 그렇게 방황했던 나의 인생을 이제 주께 맡기려네 이제 아버지의 집으로 이제 영원한 안식처로 돌아와 눈물 흘리며 엎디니 오 주여 나를 받으소서

그런데 그의 모습은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저만치 아버지가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외쳤던 첫 음성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 내가 하늘을 거슬러 죄를 지었고, 아버지 앞에도 죄를 지었습니다. 이 못난 죄인은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를 어떻게 했습니까? 그냥 내쳤습니까? 그를 막대기로 휘둘러 팼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는 그를 기쁘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연신 입을 맞추고는 자신의 종들을 시켜, 그를 씻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제일가는 옷을 입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그에게 발에는 신까지 신기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아버지는 자신이 제일 아끼던 살진 그 송아지를 잡아 그것을 먹고 즐기자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당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후에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엄한 구약의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이제는 긍휼이 풍성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이든지 내주려는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혹시 자식이 떠나갔어도 그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어떤 죄든지 용서해주고 그를 다시 아들로 맞아주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 첫째 아들은 무엇을 몰랐는가?

그렇습니다. 이 비유는 오늘날 예수님시대 이후, 양자의 영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믿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4:4-6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 여자(여인)에게서(으로부터)[밖으로] 나게(있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있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자격)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왜냐하면]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안으로)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맏아들이신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하여 달라지신 것입니다.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적하고 꾸짖고 책망하는 방식을 사람을 대하셨습니다.

하지만 맏아들이 생겨난 이후부터는 하나님과 함께 있기만 해도 뭐든지 다 주시며,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돌이켜 회개하여 자신에게 나아오기만 하면 다 용서해주는 방식으로 새롭게 전환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아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시게 된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것을 다 아셨습니까? 당신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시면서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지를 다 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이후에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나오는 자를 다 용서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살려준 사건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첫째 아들은 여전히 자신이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만 자신의 재산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잔치하는 것을 보고는 분노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생각에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했는데도 그를 아버지가 받아준 것만도 대단한 것이었는데, 아버지게서 그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날까지도 자신의 아버지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식들을 대하게 되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입니다.

 

.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이 되셨을까?

사실 구약의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을 엄격히 심판하시고 벌하시고 징계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 반복되었지만 사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에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보인 반응은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당신이 베풀어준 온갖 기적들을 자기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음에 불구하고 그들은 변화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책망하고 징계하고 고난을 허락했을 때에 그들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첫째, 율법조항에 걸리지만 않게금 행동하는 가증스러운 방식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이렇듯 완악한 것입니다. 적어도 율법조항에 걸리지 않아야만,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주신 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떠나있어도,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조항에만 걸리지만 않도록 자신의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첫째 아들도 그러한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둘째, 그들은 자신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겉으로 돌이키는 시늉을 한 뿐 그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죄지은 자에게 아무리 징계를 내려도 그들이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은 아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바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고, 돌이키게 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받을 형벌을 당신이 사람이 되시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떠한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오기만 하면 다 용서해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물론,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것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당신이 인간이 받을 벌을 대신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처럼 선한 행동을 많이 하면 복을 주고, 나쁜 행동을 하면 즉시 징계를 내리던 방식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두 손들고 아버지께 나아오기만 하면 용서해주시는 방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을 베푸심으로 그것을 깨달은 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 방법이야말로 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어떠한 죄를 지었더라도 자신이 지은 죄를 죄라고 인정한 후에 하나님께 나아와서 용서는 비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 뒤 첫째아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징계와 채찍의 방식에서 용서와 사랑의 방식으로 바뀐 아버지의 마음을 첫째아들이 헤아렸는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다만 우리는 지금이라도 아버지의 새로운 방식을 알고 그것에 반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결단

사람은 죄를 지을 때에 죄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직접 경험합니다. 둘째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물쓰듯 쓰면서도 상당히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그 안에 양심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자신의 둘째아들이 죄를 지을 것이라는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지는 않으셨습니다. 그가 죄악 가운데에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를 경험하도록 놔두신 것입니다. 이런 이유가 바로 신약시대가 되었지만 구약의 십계명을 폐지하지 않고 그냥 놔두신 이유입니다.

지금은 하나님 앞에 어떤 행동을 잘 하려고 해서 칭찬을 듣는 시대가 아닙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아들의 영을 받았을지라도 연약함에 쌓여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우리가 주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첫째, 주님의 것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둘째, 혹시 범죄하여 주님의 곁을 떠났어도,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죄를 지었든지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고 주님께 나오는 자를 꾸짖지 않고 받아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들로 오실 때부터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가 아버지 곁에 머물러만 있어도 주님의 것을 내 것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서 아버지인 자들은 죄를 지어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율법주의적인 사고에 갇혀있는 자들은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들고 쉽게 지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회개를 철저히 하지 못해 스스로 웅덩이를 팠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무조건 회개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잘못했어도 주님께 나아가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율법주의적인 삶을 청산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철저히 회개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경륜이 달라졌음에도 아직까지 율법주의적인 사고를 못 벗어나게 하는 악한 영들을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지 못하게 방해하는 악한 영들을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할지어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갈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하나님은 이제 우리의 아버지시로구나.

2. 우리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구나.

3. 아버지께 붙어있기만 해도 풍성함이 가득차게 되는구나.

4.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가는 자는 용서받고 징계로부터 벗어나게 되는구나.

5. 구약시대에 살았어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자가 있었으며, 신약시대에 살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구나.

6. 구약의 하나님이나 신약의 하나님이나 사실은 한 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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