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속(救贖)받은 것인가 구원(救援)받은 것인가?(골1:13~14, 빌2:12)_2021-10-31(주일)

by 갈렙 posted Oct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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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구속(救贖)받은 것인가 구원(救援)받은 것인가?(1:13~14, 2:12)

[일시] 20211031(주일) 오전9, 11

[찬송]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PW: 믿음, MIW:

T.S: 믿음이란 이미 예수께서 이루신 위대한 일을 믿고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지난 주간에는 코로나 인하여 할 수 없었으며 미뤄놓았던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느낀 점은 첫째, 우리는 지금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며, 둘째, 지금 우리 교회에서 선포되고 있는 말씀은 매우 심오하고 깊이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깊이 있는 말씀을 들어서 좋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신앙의 초신자들이 듣기에는 너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코로나1달동안 시행해보는 <단계적 일상회복 1차 시기>에 들어왔기 때문, 이제 신앙을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서 기초를 다시 닦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예배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교회에 출석하지 못했던 성도들이 출석해야 할 시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예배의 말씀은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닦는데에 필요한 양식으로 함께 나눌까 합니다.

저는 사실 설교의 관점을 이렇게 나누어 전하고 있었습니다. 주일낮예배는 초신자나 처음 예배드리는 자들이 와서 들어도 들을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자, 주일오후찬양예배는 상당히 신앙의 연륜이 있는 분들이 참여하는 예배이니만큼 신앙의 깊이를 더하는 메시지를 전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수요기도회 때에는 성경을 각 권을 하나씩 하나씩 성경공부식으로 해보자고 나름 정해보았고, 새벽기도회는 정말 신앙 좋은 분들이 출석하는 만큼 진도보다는 말씀을 정말 심도있게 다루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수 년동안 메시지를 증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불어닥친 것입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비대면예배라는 새로운 형태의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대형교회들이 초대형 스크린을 통하여 스크린예배를 드린다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온라인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는데, 갑자기 정부시책에 엄격해짐에 따라 기존의 대면예배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래 말씀 중심의 사람이고, 또한 그동안 새벽기도회도 영상을 송출하지는 않았지만, 설교의 음성을 영상으로 만들어 수년동안 유튜브에 올려왔던 터라, 실시간 예배로의 전환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에는 부분적으로 전했던 메시지를 이번에는 조금 집중해서 전해보자, 어차피 새벽기도회를 비대면으로 온라인으로 드린다는데, 어차피. 이때에는 관심이 있는 분은 참여할 것이니 심도있는 말씀을 전해보자하고는 말씀을 씨리즈로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작년 5월경 부터입니다. 그래서 1)“성령은 누구신가?(25)”, 2)성령의 은사(28)”, 그리고 작년 7월부터는 제 전공인 3)회개와 천국복음(82)”, 그리고 작년 10월경부터는 4)“가짜 천국과 지옥,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35)”, 작년 11월부터는 5)“바른 회개(50)”, 그리고 1월중순부터 8월중순까지는 6)“창세기 강해(172)”을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7)창세기 속편(7)”을 전하고, 8)바른종말신앙(23)”에 이어, 9월 초순부터는 지금까지 전하고 있는 9)“신부씨리즈를 전하고 있고, 그 중간에 신부 신앙의 핵심적인 부분으로서 구약성경인 10)아가서 강해(30)”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영적인 눈을 새롭게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영적인 눈을 뜨고 성경을 보다보니 이전에는 비교할 수 없이 넓고 깊은 하나님의 말씀의 바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지난 7년 동안 구원받는 회개만을 외쳤는데, 사람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영역에, 저주로부터의 해방시켜주는 회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귀신의 사람의 몸 속에 있어서 발생한다는 것을 전하기 시작했으며, 어떻게 하면 귀신의 세력을 내 몸 속에서 제거할 수 있는지까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심오한 말씀 속으로 그리고 영적 세계 속으로 푹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작년 5월경부터는 말씀을 쭉 듣고 따라오지 못하는 분들은 이제 따라잡을 수 없는 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주의 성도의 사업장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7개의 기업체의 대표이사이신 집사님께서 제 설교를 다른 분들에게 들려주었으니 상당히 어렵다고 하더라고 은근 슬쩍 말씀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촉이 있는지라, , 그래, 지금의 메시지는 초신자가 듣기에는 상당히 벅찬 설교가 되었구나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제 코로나도 끝나고 위드코로나가로 접어들어 성도들이 출석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으니, 본래의 특성을 살리는 설교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성경의 기초와 같은 것을 전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기초만 전하는 것이 아니니까, 너무 싱거운 설교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메시지를 전할테니, 이번 기회에 신앙의 기초를 잘 정리하셔서 여러분의 신앙이 기초없이 흔들리는 신앙이 되지 않고, 견고한 반석 위에 믿음을 굳게 세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된 신앙을 세우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자 기초인 구원론에 관하여 우리들을 헷갈리게 하는 구속구원이 어떤 차이가 있으며, 나는 지금 구속구원가운데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붙잡고 가야 구원의 최종적인 완성을 이룰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들은 구속을 받아서 흑암의 권세로부터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으니, 두렵고 떨림으로 이미 얻은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은 구속의 은총을 받아 이미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아 그분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왜 성도들은 계속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럼, 구원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2)청중적 접근

저는 과거 젊었을 때에 사영리라는 책자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는 글없는 책으로 복음을 전했고, 어른들에게는 꿀벌전도법’, 전도폭발전도법 등의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전도한 대상이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하면 그것이 그 영혼을 구원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번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이요 구원은 영원히 안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절반만 맞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해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완성은 내가 천국에 들어가서 기업을 차지해야 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3)본문문제배경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구원에 관한 2가지 아주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이미 구원받았다고 할 때에 구원받았다고 하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며, 또한 내가 앞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고 할 때에 앞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하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먼저, 우리가 이미 구원받았다고 했을 때에 그 개념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오늘 읽었던 골로새서 1:13~14의 말씀입니다.

1:13-14 (아버지)가 우리를 흑암(어둠)의 권세에서(에서부터) 건져내사 [그리고 그가] 그의 사랑의(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왕국)[안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贖良) 곧 죄[들의] 사함(용서)을 얻었도다(가진다, 갖고 있다)

이 말씀은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형제라면 그들은 이미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어둠의 권세에서부터 건짐을 받았으며, 그래서 그분이 성도들을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옮겨놓은 상태이니 성도들은 이미 그 아들 안에서 구속함 곧 죄들 용서함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구속으로서의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미래의 어느 시점에 구원받을 것을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2:12[직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의 임재 안에서처럼 뿐만이 아니라, 지금 많은 것으로 나의 떠나있음 안에서도 항상 복종하였던 것처럼, 두려움과 떨림과 더불어 너희는 너희 자신의 구원을 완수하라(성취하라, 완성하라)

이 말씀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으니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자기가 받고 있는 구원을 완성해 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 왜 사도바울이 구원에 관하여 이랬다 저랬다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 구원은 이미 끝났다는 말만을 믿고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도 그것을 애써 눌러버릴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 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경고의 말씀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 그동안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말씀이 틀릴 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는, 구원은 이미 예정된 대로 될 것인데 여기서 이런 말에 흔들리면 안 돼 하고 자신의 머리를 흔들어 버릴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 구원은 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피공로로 받는 것이니만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이 역사적으로 실제하는 사건이었다면 나의 구원은 영원한 것이야 하고 그냥 넘겨버릴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 구속과 구원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해,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앞으로 받을 것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해 불안한 타협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오늘 구원에 관한 성경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정확히 깨달아, 구원에 있어서 나는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정확히 깨닫게 되기를 바라며, 구원을 완성을 위해서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구속과 구원이란 어떤 의미인가?

구약성경 가운데 복음서라고 일컬어지는 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를 읽어보면, 하나님이 누군지를 이렇게 말씀하는 대목을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49:26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모오쉬에크)요 네 구속자(웨고알레크)요 야곱의 전능자(아비르)인 줄 알리라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은 능하고 강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자가 되시고 구속자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49:26, 60:16).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용어인 구원자구속자는 무슨 뜻일까요?

그럼, 구원자와 구속자는 같은 것에 대한 반복일까요 아니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실은 둘은 같은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정확히는 다른 의미입니다.

우선, 이 둘은 어원적으로 다른 단어들입니다. 히브리어로 구원자는 동사 야솨(save)’에서 온 단어입니다. ‘야솨구원하다. 구출하다, 구조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구속자는 동사 가알(redeem)’에서 온 단어입니다. ‘가알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권리와 의무)을 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출하는 것으로서, 어떤 값을 치르고 되사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구속자고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둘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구출하여 천국에 데려가시는 전 과정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구속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류의 구원을 이뤄가는 당신의 방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를 구속의 은총을 받아서 결국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구속(救贖)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속이라는 말은 우리를 묶어서 억압하고 감금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구속’(拘束: 잡을 구, 묶을 속)이 아니라, 어떤 댓가를 치르고 우리를 구출한다는 뜻의 구속’(救贖: 건질 구, 속바칠 속)입니다. 이것은 어떤 속죄금을 바쳐서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아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구속이란 구원의 방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구속과 구원은 어떻게 다른가?

그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인류를 구속하셨을까요? 사실 구속하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구속의 은혜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공로나 수고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구속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49:8). 그래서 전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입니다.

49:7-8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구속)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런데 우리가 구속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희년법 안에 있는 고엘제도를 알아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위기를 당했을 때는 그 가까운 근족(고엘)이 대신 회복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는데, 이러한 책임을 가진 자를 고엘’(구속자=redeemer)이라고 불렀습니다. 고엘이 져야할 책임을 총 5가지입니다.

첫째, 근족이 토지를 팔았을 경우 그 사람의 땅을 도로 사 주어야 한다(25)는 것입니다.

25: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둘째, 근족이 노예가 되었을 경우에는 돈을 지불하고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47-49)는 것입니다.

25:47-49 47 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48 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49 또는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이 그를 속량하거나 그의 가족 중 그의 살붙이 중에서 그를 속량할 것이요

셋째, 근족이 자식이 없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 과부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주어야 한다(25:5-10; 22:24)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룻기서에 나오는 보아스의 예입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과 그의 맏아들 말룐의 근족이었는데, 서열은 두 번째였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기업 무를 자 곧 고엘이 땅만을 되산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과부를 자기의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은 할 수없다고 하면서 신발을 벗어서 주고는 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보아스가 나오미로부터 그 기업을 사게 되고, 과부인 맏며느리 룻을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여 말룐의 후사를 낳아주게 됩니다.

넷째, 근족이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을 경우에는, 그를 복수해 주어야할 책임이 있다(35:9~28)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째, 친족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경우에 따라 친족의 죄값을 대신 치러주어야 한다(5:8)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우리를 위해 고엘이 되신 예수님을 설명하기 위한 법입니다.

이러한 고엘제도는 인류가 범죄하여 죽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기업을 잃고 쫓겨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류의 근족(고엘)이 되시려고 직접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1)죄는 인류가 지었지만 그로 하여금 영원히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예수께서 대신 죄값을 죽음으로 치르셨습니다. 2)죄를 지음으로 인류가 받아야 고통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3)예수께서 오시어 인류를 죄짓게 만든 원수 사탄마귀의 마귀의 머리를 박살내어 복수해 주었습니다. 4)마귀를 이심으로 예수께서는 죄와 죽음과 사탄마귀로부터 우리 인류를 영원히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또한 5)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원한 신랑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통해 구원받을 자를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6)죄값을 지불하시어 우리가 쫓겨난 에덴동산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하되, 이제는 하늘에 있는 에덴동산 곧 천국을 준비하시고 그곳에 들어가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한 번은 고엘 법이 민족적으로 실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애굽땅에서 종노릇하고 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구속하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는 당시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이 고엘이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에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서 수만 마리의 양이 죽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죽어야 할 사람 대신에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을 피흘려 죽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어린양은 바로 장차 이 땅에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시러 오실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인류의 죄를 그에게 넘기고 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그 유월절 양이 곧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정확히 일러주었습니다.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그리고 사도베드로는 온 인류 가운데 죄없이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유월절 양이 되실 수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주었습니다.

벧전1:18-20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구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된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린 양을 대신 죽게 하여 애굽 땅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속량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24:18). 이것을 구속이라고 부릅니다.

24: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구속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그런데 한 가지 알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구속을 받아 광야로 나왔다고 해서 구원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아야 할 좋은 땅으로 가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 구원을 위해 인류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 고엘로 오시어 사명은 감당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단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죽을 때에 되어지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뤄질 일이므로 항상 미래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잃어버린 천국의 기업은 대체 어떻게 받는 것인가요?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가 가르쳐주고 있으,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므나의 비유가 가르쳐 줍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크기가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이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너와 내가 똑같은 달란트를 받았다면 므나의 비유처럼 더 많이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똑같은 므나를 가졌어도 그것으로 얼마나 남겼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받을 기업의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상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성도들은 어떤 것은 이미 구속을 받은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완전한 구속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 되려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1: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구속)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그런데 지금 믿는 이들 중에는 이미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지 않은 한 완전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속은 이미 과거이며 현재도 진행중인 일이며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광야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속도 우리의 몸이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때에라야 구원인 완성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우리는 어떤 것은 이미 구속의 은총을 받은 상태에 있으니 두렵고 떨림으로 나머지 구원을 이뤄가야 하겠습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이미 예수께서 행하신 구속의 위대한 일을 믿고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우리는 이미 원수마귀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은 받았지만 아직 약속의 땅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했습니. 광야는 거기에 들어가기 합당한 자가 누구인지를 테스트하는 장소이자, 우리가 하늘에서 받을 기업을 장만하는 장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나를 위해 고엘이 되어주신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자 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장차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거기서 받아 누리게 될 기업을 열심히 장만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지금 이미 구속받은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준비하십시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구속’과 ‘구원’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모든 신실한 성도들은 이미 ‘구속’은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지만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구속은 그리스도께 하신 일을 듣고 감사함으로 받고믿을 때에 그것이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교회생활이 곧 광야생활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교회생활을 통해 나는 하늘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을른지 점검받고 있으며, 기업으로 받을 약속의 땅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늘의 기업을 응당 받는 줄 알았고 그것을 준비하는데 게을렀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완성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께서 행하신 구속사건을 굳건히 붙들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날마다 하늘의 기업을 준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맡겨진 일에 충성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믿을 때에 이미 구원은 완성된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을 구원의 완성이라고 믿게 만들어 광야 생활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오늘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갈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에게 신앙의 기초지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구나. 
2. 그리스도는 고엘로 오시어 우리의 구속자가 되셨고 구원자가 되시고 있구나. 
3. 구속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행하신 일이지만, 그것이 내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영역이 여전히 남아 있구나. 
4. 구원을 완성해야 할 성도의 응답과 책임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구원의 중요한 요소였구나. 
5.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이 곧 우리의 교회생활이요 이것이야말로 천국 기업을 차지하는 중요한 변수였구나. 
6. 오늘도 나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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