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가?(빌2:12~13)_2022-01-09(주일)

by 갈렙 posted Jan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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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가?(2:12~13)

[일시] 20220109(주일) 오전9, 11

[찬송]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419장 주 날개밑 내가 편안히 쉬네,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

PW: 믿음, MIW: 완성해가는

T.S: 구원이란 회개와 충성으로 두렵고 떨림과 함께 구원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2022년이 시작되어 벌써 한 주간이 흘렀습니다. 올 해 나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또 한 해를 그냥 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 해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을 어떻게 사셨습니까? 한 주간이되었으니 그냥 한 주간의 일만을 생각하며 사셨습니까? 올 한 해 나는 진정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계획해보셨습니까? 코로나의 상황이니 코로나가 지나가면 그때가서 뭔가 계획을 세워야지 이건 도무지 사람 사는 것이 아니니, 그때까지는 코로나가 안 걸리게 사는 것이 최고야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코로나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데, 대체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할 때까지 그냥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올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그 일을 추진해 가야 하는 것인가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께서 우리에게 일하시는 방식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우리의 구원도 어떻게 시작되며 성취되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말씀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들의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으면,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라라고 하니 그럼, 우리의 행위가 들어가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야, 이 말은 신앙성숙을 위해 힘쓰라는 말일 거야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 구원이 우리가 장차 받을 구원이라면, 대체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성취해야 하는 것인가요?

어떤 분은 말합니다. 구원은 순전히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만약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라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행위구원으로 가기 때문에 그것은 성경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분은 생각은 과연 옳은 것일까요?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성경은 분명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본문이 있습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한량없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이 거져 베풀어주실 은혜를 바라고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요? 코로나도 하나님이 종식시켜주셔야 가능하니, 하나님께서 코로나를 종식시켜줄 때까지 그냥 기다리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코로나의 상황이지만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하는 것인가요?

이 문제는 비단 구원의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도 이와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나의 장래를 위해 열심히 계획하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은혜주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하라고 계시를 주실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대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어가시기를 원하실까요? 그리고 그분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62~63년경 바울로마감옥에 갇혀있었을 때에, 자신이 2차전도여행 때에 개척했던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써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의 모습을 먼저 소개한 후에, 빌립보 교인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들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말씀을 대체 정확히 어떤 뜻인가요? 헬라어원문으로 직역해 보겠습니다.

2:12-13[직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과거에] 순종했던 것 같이, 너희가 나의 임재 가운데서처럼 만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많이 더욱 나의 부재 가운데에서도, 너희들은 두려움과 떨림과 함께 너희자신들의 구원을 [너희자신들을 위하여] [계속] 힘써서 만들고(혹은 완수하고) 있어라. 13 왜냐하면 너희들 안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기뻐하심을 위하여 [계속] 일하고 있음과 그리고 바라고 있음을 [알고 너희도 그 소원을 따라 행하고 있어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역학관계 곧 부분을 이루는 요소들이 서로 의존적으로 일한다는 그 힘의 관계를 잘 모르면, 왜 우리가 구원을 또 이루어야 하는지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역학관계를 잘 모르면, 이미 받은 구원을 잘 보존하라고 하지 않고 이미 얻은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애써서 완수라는 말은 사도 바울이 잘못 말한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역학관계를 잘 모르면, 구원은 이미 끝난 것인데 왜 또 그 문제를 꺼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역학관계를 잘 모르면, 구원은 십자가에서 이미 예수께서 끝낸 것이므로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에 우리의 무슨 역할이 있겠느냐 반문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역학관계를 잘 모르면, 바울이 감옥에 들어가 있다가 보니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역학관계를 잘 모르면, 바울이 말한 것은 구원이 아니라 성화의 문제일 거야 라고 하면서 구원의 문제를 성화의 문제로 애써 축소해 버릴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의 역학관계를 잘 모르면, 왜 구원을 확신이 아니라 굳이 두렵고 떨림으로 완수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들은 사도 바울이 말했던 구원의 역학관계를 잘 이해하고 실천함으로 이미 얻은 구원을 완수해낼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구원의 이중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오늘 사도 바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더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빌립보서 2:12의 말씀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는 에베소서의 말씀과 서로 충돌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분명히 에베소 성도들에게 너희가 그 은혜로 그리고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은 채로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2:8).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런데 헬라어원문은 한글성경과 뉘앙스가 다릅니다.

2:8[직역] 왜냐하면 너희는 그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이미 구원을 받은 채로 [현재]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희에게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렇습니다. 헬라어 원문에 의하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이미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들의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으며 그 상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글성경은 어떻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 그러니 구원의 문제는 이미 끝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헬라어원문에 의하면, 구원은 분명히 과거에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구원이 종료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채로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자신들의] 구원을 이루라고 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구원의 문제에 대해 믿는 자가 더 이상 거론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면 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힘써서 완성해가야 한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문제에 관하여 2가지를 상정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 믿음으로 통하여 단 번에 주어지는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일을 우리가 믿음으로 거져 주어지는 구원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베풀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둘째, 이미 얻은 구원이지만 이것을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구원을 이미 따논 당상으로만 알고 있다가는 큰 코 다칠 일이 생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에 관하여 2가지를 진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나는 믿음과 은혜로 구원받은 상태에 있다. 둘째, 그러나 그 상태가 나의 구원의 영원한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에, 이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힘써서 감당해야 할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로, 믿는 자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면서 동시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오늘 빌립보서 2:12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이란, 믿을 때에 주어지는 중생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장차 종말론적으로 얻을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얻은 자가 장차 천국에 들어갈 온전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구원을 두렵고 떨림과 함께이뤄가야 한다고 말씀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일종의 자세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네 맘대로 살아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네가 이미 얻은 구원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2절의 말씀이 접속사로 시작되는데, “그리고가 아니라 호스테그러므로이기 때문입니다. 앞에 어떤 이유가 있었으니 너희들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이 이뤄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6~8절에 나오는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했느냐를 보라는 것입니다.

2:6-8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안에 계시는 분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간주하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자신]를 비워(비우셨다), 종의 형체를 가지사(취하신 후에)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자신]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지혜와 지식의 보화들이 가득 들어있었고, 못할 것이 없는 능력과 권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기를 낮추시고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아들이신데도 끝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복종하셨는데 우리들은 더 어찌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놓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따논 당상이니 괜찮다가 아니라 이미 얻은 구원을 두렵고 떨림 안에서 계속 이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앞으로 우리가 종말론적으로 얻게 될 구원은 우리자신을 위하여 우리 스스로가 애써서 성취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지 넋놓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얻은 구원이라고 그 구원을 주의하지 않으면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얻은 구원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냥 싹 다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동사구문에 그렇게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의 맨 마지막 동사가 동사 명령법 현재 중간태 수동태 디포문장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12에 나오는 마지막 동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12-13[직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과거에] 순종했던 것 같이, 너희가 나의 임재 가운데서처럼 만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많이 더욱 나의 부재 가운데에서도, 너희들은 두려움과 떨림과 함께 너희자신들의 구원을 [계속] [너희자신들을 위하여] 힘써서 만들고(혹은 완수하고) 있어라.

우리말로 구원이 이루라(카테르가-제스테)”는 말은 헬라어 에르가조마이라는 디포넌트 동사의 중간태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디포넌트라는 말은 동사의 형태가 수동태의 형태이기는 하지만 해석할 때에는 능동태로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이 이뤄어져라가 아니라, “너희가 애써서 구원을 이루라(완수하라, 만들어가라)입니다. 그런데 현재 명령형이기 때문에 이것은 반복적으로 계속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동사는 구원을 계속해서 완수하고 있어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간태 문장입니다. 중간태라는 것은 헬라어동사에만 있는 것으로서 자기가 행하는 것을 자기에게 돌아오게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자기자신을 위하여라는 말을 넣어서 해석하면 그 의미에 가까워집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완수하되 너희자신들을 위하여 힘써서 그것을 행하고 있어라라고 해석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구원이라는 단어 앞에 헤아우투라는 단어, 너희자신들의 구원라고 아예 또 강조해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문장의 뒷 부분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2:12b[직역] 너희들은 두려움과 떨림과 함께, 너희자신들의 구원을 [너희자신들을 위하여] [계속] 힘써서 만들고(혹은 완수하고) 있어라.

이런데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은혜로 얻는 것이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값싸게 만들고 농락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권리가 주님에게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가 받sms 구원을 수동적이지만 이미 은혜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완성해내기 위해서는 능동적인 우리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않으면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구원은 어떻게 애써서 완성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미 얻은 구원을 이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방법은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2:13[직역] 왜냐하면 너희들 안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기뻐하심을 위하여 [계속] 일하고 있음과 그리고 바라고 있음을 알고 [너희도 그 소원을 따라 행하고 있어라]

첫째로, 우리가 힘써서 구원을 완성해가기는 하는 것이지만, 무턱대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을 때에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시는 소원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열심히 하기는 하되, 그분이 우리 안에서 소원케 하시는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 안에서 당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그분이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을 소원하게도 하시고, 또 어떤 것을 행하게도 하시기 때문입니다(13).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미 얻은 구원이지만 그 구원을 우리가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자신을 위하여 오늘도 두렵고 떨림과 함께 애써서 구원을 이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어떤 장치를 마련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내주에 의한 소원을 불러 일으킴입니다.

딤후1:13-14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그분께서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어 우리가 하여금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 일을 기뻐하시겠구나 혹은 그분이 이 일을 하는 것을 원하시는구나하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소원알 갖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내 안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소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기뻐하시는 일과 그분이 원하고 바라는 일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15~16절에 나옵니다.

2:14-16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굳건히 하여)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을 헬라어원문으로 잘 직역한 성경이 있어서 그것으로 이 말씀의 뜻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2:14-16[고영민역] 무슨 일을 하든지 여러분은 불평하거나 다투지 말로 하십시오. 15 그렇게 해서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하게 되어 삐뚤어지고 타락한 세대에서 책망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그들 가운데 이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나도록 하십시오. 16 그리고 생명을 말씀을 굳게 붙들어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게 자랑할 것이 있게 하십시오. 그 이유는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수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날이 도래할 때에 자기 자신을 흠없고 순결하여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깨끗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15~16).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자신들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 오늘도 힘써 달려가야 하는데, 우리 안에서 불러 일으키는 소원을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항상 우리 자신을 더욱더 깨끗하게 하면서 흠도 없는 순결한 상태에서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회개와 충성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오늘도 회개하고 오늘도 충성하여 구원을 완성해가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벌써 새 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상급을 위해 힘껏 달려가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죽습니다. 우리가 나태해집니다. 사탄의 밥이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일년을 보내고 말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이 기뻐하시는 일, 그분의 원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선택하여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올 해 우리 성도님들은 과연 어떤 소원을 붙잡으셨습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강제적으로나 강압적으로 일을 하게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면서 그분이 기뻐하시고 그분이 나에게 바라시는 소원을 붙잡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 자가 마지막에 가서 구원도 받을 것이며 상급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 해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다음의 계획을 들어보시고 자신의 마음에 확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 해 나는 기도와 말씀으로 나의 영적인 신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보겠다.” “올 해 나는 우리 가문의 죄를 없애기 위해 300번을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겠다.” “올 해 나는 내 속에 있는 악한 영을 5%까지 줄여보겠다.” “올 해 나는 잠자기 전에 성경을 30분씩 읽고 자겠다.” “올 해 말씀을 못 읽어도 52주 주일예배는 빠지지 않겠다.”, “목사님께서 매일 올려주시는 말씀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읽겠다”, “올 해 나는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여 기적을 체험하고 그들을 간증하겠다.” ‘올 해는 회개기도문을 10분에게 전달하겠다.”

그렇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러일으킨 소원을 따라 큰 계획을 짜시고 상반기 계획을 짜십시오. 그리고 한 달 계획을 짜십시오. 그리고 한 주간의 계획을 짜고, 하루의 계획을 짜 보십시오. 그러면 바로 이런 자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상도 받게 될 것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사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는 별개의 것입니다. 아들의 성육신으로 인한 대속의 죽음을 우리가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자신들의 구원을 힘써서 완성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위해서는 가만히 넋놓고 기다려서는 아니 됩니다. 계시가 올 때까지, 누가 나에게 뭔가를 시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왜냐하면 사탄마귀가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박수쳐주고 인정해주고 보호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지었으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가 우리에게 달려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마치 내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살아가는 자들처럼 경건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킨 소원에 집중하십시오. 내가 그 소원을 이루지 앟는다면, 마치 구원을 잃어버릴 자인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 결국에서 구원에서 탈락하여 성밖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는 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위 자체가 구원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을 자처럼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날마다 회개하고, 날마다 적극적으로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주님께 주목하여 그분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이라고 감동을 주시면 그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쯤에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아름다운 집과 아름다운 신분과 멋진 면류관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얻으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확실히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구원은 이미 은혜와 믿음으로 받았어도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과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 속에서 역사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을 따라 충성하며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도 들어가고 상도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구원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여 주님이 내 속에 주시는 소원을 소홀히 여겼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적극적으로 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적극적으로 회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적극적으로 소원을 따라 행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께서 바라시는 소원에 집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거만하거나 나태하지 않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가만히 있어도 구원이 완성될 수 있다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께서 내 안에 불러 일으키는 소원에 반응치 못하게 한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에 적극적으로 반응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구원은 믿음과 은혜로 받는 것이지만 가만히 있어야 보존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로구나.

2.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어도 두렵고 떨림으로 나 자신을 위하여 구원을 완수해야 하는구나.

3. 믿는 나는 주께서 내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소원을 따라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할 존재였구나.

4. 아무리 열심을 산다고 해도 회개 없이는 주께서 주신 소원을 완수하기가 어렵겠구나.

5. 주께서 주신 소원을 붙잡고 살아가는 자가 천국에도 들어가며 상급도 받게 되는구나.

6. 믿는 자는 언제나 주께서 주시는 소원에 민감해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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