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04) 오순절성령강림과 베드로의 대설교(2)(행2:14-36)

by 갈렙 posted Oct 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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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4-10-22
본문말씀 사도행전 2:14-36(신약 18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대변혁을 가져온 사건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시대나 신약의 예수님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나타나 활동하셨지만 오순정 성령강림 이후에는 믿는 자들 모두에게 나타나 활동하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시대나 신약예수님 시대에는 몇몇 사람들만 제한적으로 주님을 만나볼 수 있었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으로부터 환상과 계시를 체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나이와 성별과 장소와 민족에 상관없이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방식에 있어서 대전환이 일어난 사건이 바로 오순절 사건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회개하여 예수님을 영접한다면 당신은 제한없이 성령을 체험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성령과 예수님을 별 개의 하나님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셨다. 하지만 그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은 보이는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셨다(요1;14).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사역을 완수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님은 예수님과는 상관없이 단독적으로 무엇인가를 행하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으로서, 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자신이자 그분이 이 세상에 파송하신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성령님도 또한 다른 하나님이시니 그분에 대해서 따로 알아야 하고 그분을 따로 체험해야 한다는 가르치는 것은 큰 일 날 일이다. 그분이 곧 예수님의 영이기 대문이다.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영으로 이 세상의 믿는 자들에게 오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면 우리가 세 분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만난다. 보좌에 앉아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요, 지금 믿는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역사하시는 성령님도 곧 예수님 자신이시다. 이것을 똑바로 알지 못하면 이단에 빠진다. 이단을 보라. 자기가 보혜사라고 야단이다. 자기가 성령님이라도 야단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박태선이가 예수님인가? 문선명이가 예수님인가? 아니면 이만희가 예수님인가? 결코 아니다. 한 인간이 어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을 때에 우리는 이단이 빠지지 않게 되며,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님께서 인간에게 오실 때에는 2가지 방식으로 오셔서 역사하시는 점이다. 하나는 믿는 자들 속에 오시어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가르쳐 주신다. 이것을 성령님의 내적 사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또 하나는 성령님께서는 믿는 자들 위에 오셔서 사역하신다. 이때에는 믿는 자들에게 어떤 보이는 현상이나 능력이 나타난다. 그래서 예언을 하기도 하고, 방언을 말하기도 하며, 꿈과 환상을 보기도 하고, 능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기도 한다. 이것을 성령님의 외적 사역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내 안에 들어오시어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하게 되며, 동시에 우리 바깥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을 충만하게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성령님으로부터 인격의 선한 열매를 맺게 된다. 그리고 만약 우리 바깥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우리가 충만하게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능력으로 무장되어 담대함을 얻어 증인의 사역을 잘 감당하게 된다. 혹 전도할 때 담대하게 전도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바깥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충만을 받으라. 그것은 오직 기도함으로 얻게 되는 것이니 기도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눅11:13). 한편 내 안에서 역사하사 우리의 인격을 바꾸어주는 성령님을 체험하려면 성경을 많이 읽어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고 있어야 하고, 또한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금도 내 안에서 계셔서 말씀하시는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게 되면 그분으로부터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모든 운동에서 균형감각이 필요하듯 신앙생활에서도 균형감각이 아주 중요하다. 왜나하면 우리는 바깥에서 역사하는 성령님과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혹 바깥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을 더 많이 알고 싶은가? 그려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읽어보라. 그러나 혹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을 더 많이 알고 싶은가? 그러면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를 읽어보라. 우리에게 성경66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사도행전의 위치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도행전은 복음의 증인으로 활동하는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므로, 대부분 바깥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바깥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성령님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때 성령님은 믿는 자들 위에 부어지셔서 그들로 하여금 만국 방언을 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어 담대한 복음전파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사도행전 2장을 읽어보라. 이제 그는 갈릴리 촌 사람 베드로가 아니다. 그는 수천명 앞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떨지도 않고 설교하고 있다. 외적으로 성령충만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120명의 제자들이 기도하는 만국 방언을 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은 대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리고 놀라서 베드로와 사도들 앞에 모여든 군중들을 향해 베드로는 과연 어떤 설교를 했을까? 그리고 대체 무엇을 말했길래 그들은 가슴을 치며 회개하여 3천명이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 오늘 설교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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