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강해(04)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불어닥친 시련(단3:1~30)_2020-04-01(수)

by 갈렙 posted Apr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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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GyNrTsN1IHE
날짜 2020-04-01
본문말씀 다니엘 3:1~30(구약 123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느부갓네살왕의금신상,사드락과메삭과아벳느고의신앙,우상숭배강요,하나님의법과세상법의충돌,풀무불,신들의아들형상,신상의낙성식

 

 

1. 들어가며

  다니엘서는 총12장으로 구성된 역사책이자 예언서이며 묵시서에 해당한다. 그중에 전반부(1~6장)은 다니엘의 생애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과 그가 보고 들었던 간접적인 묵시들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면, 후반부(7~12자얘은 다니엘이 직접 보았던 4가지 묵시들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 그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다니엘서 제3장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느부갓네살왕의 금신상경배 거부로 인하여 풀무불에 던져넣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다니엘서 3장을 통해서 무엇을 살펴볼 수 있을까? 그것은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세상권력자들이 승승장구하여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일을 계획하게 되는가 하는 것과 둘째는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충돌할 경우는 성도들은 과연 어떤 법을 따라가야 하는가, 그리고 셋째는 위기상황에 직면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은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관한 것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2. 느부갓네살왕은 왜 금신상을 제작하게 했을까?
  승승장구하는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과연 엄청난 권세가 주어지게 된다면, 그는 대체 무엇을 추구하게 되는 것인가? 사실 성도들은 자신에게 권세가 주어지면 더욱더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할 때에 그가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와 권력을 탐하다가 결국 하늘에서 쫓겨나서 마귀가 되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일어났던 세계 최고의 권력자이자 권세자였던 느부갓네살왕은 과연 그 때에 어떻게 행동했을까? 오늘 다니엘 3:1~7의 말씀을 살펴보니, 그는 자신을 더욱더 과시하려고 거대한 신상을 세우게 했으며, 자기 밑에 있는 나라의 관리들과 백성들로부터 충성심을 보이도록 그 신상에게 경배하도록 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자신을 신격화하는 작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럼, 느부갓네살왕은 언제 어느 시기에 이러한 신격화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한 것일까? 그것은 다니엘2장에 나오는 큰 신상에 관한 꿈을 꾼 직후였을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훗날의 일이었을까? 지난 주에도 살펴보았지만,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해석할 때에는 자신이 3년과정의 왕궁자문학교를 마친 바로 직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다니엘이 학교만 졸업했을 뿐 아직 관직을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해석해준 나이는 약 17~20세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 다니엘로부터 자신의 꿈의 내용과 해석을 들었던 느부갓네살왕의 반응은 과연 어떠했는가? 그는 다니엘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하였고 예물과 향품을 신에게 바치듯 바쳤다(단2:46). 이는 그가 다니엘을 신적 존재로 예우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는 그때 다니엘의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의 하나님은 신들 중의 신이요 모든 왕들의 주재"라고 고백했었다(단2:47). 또한 그분만이 이 세상의 모든 비밀한 것들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분이라고 고백했었다(단2:47). 그 뒤에도 왕은 다니엘에게 귀한 선물을 많이 주게 하였고 그를 세워서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했다. 그리고 그를 바벨론의 지혜자의 어른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청원에 따라, 다니엘의 꿈해석을 위해 중보기도로 도와준 다니엘의 세 친구를 바벨론지방의 관리로 임명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금신상 낙성식은 다니엘 2장의 꿈해석 사건이 있은 직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잊어버린 채 널따란 두라평지에 높이가 60규빗(27m30cm)나 되는 거대한 금신상을 그때 즉시 세울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왕이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축하의식의 하나로서 금신상 제막식을 하였을 개연성이 많으므로, 주변의 열강들을 다 제하고 나서, 특히 유대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신전에 있는 성전기명들을 빼앗아 자기의 신전의 보물창고에 들여놓은 후 축하잔치로서 그 일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금신상의 낙성식(제막식)은 남유다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이후 예루살렘 정복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했을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 것이다(B.C.588~586년경).

  그러므로 전쟁에서 승리한 느부갓네살왕은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고 또한 대소신료들의 충성심을 시험해봄과 동시에 그것을 견고하게 하기위해 금신상 낙성식을 거행하게 했을 것이다. 특별히 신상을 제작하려 할 때에 그것을 자신이 과거에 꾸었던 꿈에 나온대로 신상을 제작하게 하지 않았고(단2:32~33), 신상의 머리부터 발까지 전부를 다 금을 녹여 발라서 만든 것은 자신의 제국 곧 금머리의 나라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신의 속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1절). 이렇듯 이 세상에 속한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능력과 권세가 주어지면 반드시 자신을 높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느부갓네살에게서 사탄마귀의 속성을 여실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다니엘로부터 자신이 꾼 꿈의 해석을 들을 때만 해도 참으로 겸손했었는데, 그가 금새 자신의 치적으로 인해 권세가 놓아지자, 그는 금방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욕망으로 가득채워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 놓일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내게 영광이 돌아올 귀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오직 주 예수만을 높일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3.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충돌할 경우 성도들은 어떤 법을 따라가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배자들에게 권력을 주어 나라를 맡기신 것은 그것을 사용해 자신을 높여 신격화하라고 주신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능력과 권세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권선징악을 실천하고, 외부세력으로부터 자기백성을 지켜낼 뿐만 아니라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으로 하여금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으로 주어진 세상권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지배자가 있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그냥 왕에게 빌붙어서 왕이 하자는대로 다 행하면 되는 것인가? 하나의 법과 왕의 법이 정면으로 충돌하는데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왕의 명령에만 충성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이러한 질문의 대답을 오늘 다니엘의 세친구들이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자신의 주군인 느부갓네살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을 했을까? 그런데 사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갈대인들도 다 알고 있는 유다포로민 중의 속한 자들이었다(단2:8,12).그런데 그들은 다니엘로 인하여 포로민이었지만 왕의 총애를 입고 지방장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의 명령에 충성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받은 관직에 보답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잘 감당하던 그들에게도 시험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그것은 자신의 왕이 제국 내의 모든 지방장관들과 신료대신들 그리고 백성들와 민족들과 언어들이 다른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왕의 금신상 낙성식에 참여한 뒤에, 그 신상에게 절을 하는 의식을 행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순간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태양이 뜨거워서 쓰러진 척하면서 절하는 흉내를 잠시 취하면 되는가? 아니면 그것을 거부한 채 서 있어야 하는가?

  그런데 사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왕에게 불충성하던 신하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왕의 다른 관리들은 그들을 싫어하고 있었다. 아니 미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그들을 무엇인가에 엮어서 없애버리려고 했다. 자기나라 사람도 아닌 주제에 남의 나라에서 높은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기회좋은 날이 왔던 것이다. 갈대아 사람들 몇 명이 금신상 제막식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절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다니엘의 세 친구를 참소한다. 왜냐하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그 엄숙한 제막식에서 왕의 신상을 향해 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적들이 왕에게 고소한 내용을 살펴보면 3가지 중에 첫번째의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첫번째 것은 거짓모함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고발한 것은 첫째로, 그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했다고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다. 왕의 명령을 함부로 거역할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들이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꿈해석 사건 때에 유다의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고 자신이 직접 스스로 한 말과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꼭 잘못된 행동이라고 정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그것은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대적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어찌하든지 왕의 반역자 내지는 왕의 명령 불복자로 만들어서 내치려고 했기에, 그들의 행동을 보고 즉시 고발조치를 한 것이다.

  갈대아 사람들의 고발로 인하여, 왕은 즉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러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짜 그렇게 했는지를 확인한 다음, 한 번 더 기회를 줄테니, 준비하고 있다가 6가지 이상의 악기소리를 들을 때에 금신상에 절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는 왕이 그들을 아마도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푼 은총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그때에 이미 왕은 교만해질대로 교만해진 상태에 있었다. 자신을 신의 위치에 올려놓으려고 지금 제막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입에서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고 반문했던 것이다(단3:15).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태도는 놀랍게도 단호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마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기에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혹시 자기들이 왕의 명령에 따라 풀무불(용광로)에 던져져서 불이 타서 죽은 한이 있더라고 그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충돌할 때에 성도는 과연 어떤 법을 따라가야 하는지를 찾아볼 수 있다. 만약 그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했다면(그것을 국민의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제1계명과 다른 신(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그것을 섬기지도 말라는 제2계명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만약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관직을 발탈당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자신의 가족들도 몰살당할 것이 뻔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왕의 금신상 거부사건은 역적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로 결단하였다. 그렇게 하여 자신도 불에 타서 죽고 가족들도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 신앙은 이처럼 일대일의 결단이다. 그러므로 자기자신이 자기의 가족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가족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지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그들의 미래가 꼭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 그랬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죽기로 결단했던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어려움의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 찾아오시는가? 

  그러자 느부갓네살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말았다(단3:19). 그러자 이미 안색이 변해버린 왕은 평소 때보다 용광로의 온도를 7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또한 이제 가장 힘센 용사들을 시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풀무불에 던져쳐넣으라고 지시하였다. 그때였다. 화염이 얼마나 거세게 올라왔든지 다니엘을 붙들었던 용사들이 그만 불에 타서 죽고 말았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가운데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나님은 과연 성도들이 어떤 상황에 될 때에 개입하시는가?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위해 어떤 선택을 막 시작했을 때인가? 아니면 중간인가? 아니면 막바지의 상황까지 갔을 그때인가?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보시고 개입하신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성도들은 자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한 것을 두고는, 이제는 하나님께서 오셔서 자신을 구해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응당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상의 법을 불순종한 자들이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가 결코 아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기로 결정했지만 세상에 있는 법을 어겼으니 그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하나님의 법도 순종하고 처벌도 받지 않겠다는 것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겠다는 욕심에 해당한다.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만약 자신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기 위해 세상의 법을 거역했다면 세상법에 따라 처벌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세상에 더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해주시겠지만, 때가 되어 이제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마치고 천국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면, 하나님은 그를 그 순간에 결코 구해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시기나 하는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겪는 고통과 환난 중에 과연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신가를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염려할 부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항상 우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신다(이것은 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계명에 순종하다가 그만 죽는 상황을 보시면서 그것을 모른 채 하시거나 일부러 외면하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는 것을 알라.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이 사건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사드락과 그의 친구들이 죽도록 그냥 놔두셨는가 아니면 그들을 살려주셨는가?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펴주신 사건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려다가 목베임을 당하거나, 화형을 당하거나, 사자밥이 되거나, 죽창에 찔려 죽었는지 모른다. 그러면 그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는가? 아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도 사실은 죽어보면 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계시록 12장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이 죽는 현장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말씀을 살펴볼 수 있다(계12:10~11). 그것은 우리가 순교할 때에 실제는 우리가 마귀에게 정복당한 것이 아니라 마귀로부터 승리하고 있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때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개입으로 살게 된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권력자들을 굴복시키는 일이 되는 것이지만, 만약 그때 우리가 죽게 된다면 그때는 마귀가 굴복당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마디로 마귀가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가? 그것은 마귀가 끝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우리들을 볼 때에 감탄해 마지 않으면서 또한 자신의 부하들은 그렇 수 없다는 것을 보고는 낙심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순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내셨던 천사(미가엘로 추정됨)로 인하여 그들이 보호하심을 받았고 살아서 풀무불에서 걸어나온 경우에 해당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러자 이제는 느부갓네살왕이 거꾸리고 말았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고 자신의 교만함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겸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왕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찬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함부로 말라고 경고하면서(자신을 포함하여), 만약 이 명령을 어길 때에는 그 몸을 찢어서 거름더미가 되게 하였다고 했다. 그리고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에서 더욱 더 높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예는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예라고 하겠다. 우리들이 겪어야 할 대부분의 예는 우리들이 순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순교를 결코 비참한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순간에는 오히려 사탄이 비참해지고 있는 순간이니 말이다. 사탄의 권세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순간이니 말이다. 그렇다. 순교자들로 인해 사탄의 권세가 작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권세가 아주 조그맣게 되는 날에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 순교자의 숫자가 참으로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계획해 둔 천국백성의 숫자가 채워지고, 마귀의 권세가 작아졌을 것이니 말이다. 순교자의 숫자가 차야 함은 사실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인 목적도 있지만, 실은 사탄마귀의 권세를 점차 축소시켜 그를 심판하기 위함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나오며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반드시 자신을 높이려는 속성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을 느부갓네살의 금신상 숭배사건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이 세상법과 충돌할 때에 성도는 과감히 하나님의 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물론 그때에는 세상법이 내리는 형벌을 달게 받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억울하게 생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과연 성도들이 환난을 받을 때에 언제 어떻게 개입하는가도 배웠다. 그것은 막바지가 임하는 그 순간까지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왜냐하면 그때에 주님께서 나를 살려주실 것인지 아니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것인지는 주님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여 우리를 건져주신다면 그때에는 세상의 권력자들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되는 순간이 될 것이요, 만약 내가 그때 우리가 순교하게 된다면 그때에는 마귀가 능멸을 받게 되는 순간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흔들림없이 주님께 우리의 목숨을 내어맡길 수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뒷일은 처리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것이다. 아멘.

 

2020년 04월 0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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