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14) 세례요한에 대한 재평가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의 증언(요3:22~36)_2022-09-28(수)

by 갈렙 posted Oct 07,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2022년 09월 28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열여섯째주일)
[제  목] 요한복음강해(14) 세례요한에 대한 재평가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의 증언
[찬  송] 찬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 찬 358장 주의 진리 위해, 찬 360장 행군 나팔 소리에
[말  씀] 요3:22~36(신약 145면)
[키워드] 세례요한,신랑,신부,신랑의친구,영생,생명,랍비,위로부터오시는이,땅에서부터있는이

 

1. 서론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가장 심오한 복음서이다. 기적이 7가지가 나오기는 하지만 기적에 대한 찬양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공관복음서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책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가복음이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복음이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가 땅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의 인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서는 하늘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1) 제 목 : 헬라어 원전의 카타 요안넨(요한에 의한)’이라는 원래의 제목에 기쁜 소식을 뜻하는 단어가 덧붙여져서 요한복음으로 명명됨.

2) 저 자 : 예수님의 행적과 사역의 직접 목격자이며(1:14 ; 19:35 ; 21:24.25), ‘예수의 사랑하시는 자(13:23 ; 19:26; 20:2; 21:7,20,24)로 소개된 사도 요한, 초대 교회의 각종 전승들과 교부들의 서신들이 모두 요한의 저작을 확증함.

3)기록연대 : 공관복음서 작성이 완료된 A.D.70년 이후로부터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된 A.D. 95년 사이, 예루살렘 함락(A. D. 70)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 1세기 말에 기록된 요한 서신들보다 앞서 기록되었다고 간주되는 점을 종합하면 기록 시기를 약 A.D. 80-90년 사이로 좁혀서 추정할 수 있음.

4)수 신 자 :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포함한 헬라 세계의 독자들

5)내 용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때 생명을 얻게 됨을 증거하는 복음서 (20:31).

6)요한복음의 구분

크게는 세 부분으로, 서론(1:1~18), 본론(1:19~20), 결론(21)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지만 작게는 5가지 부분으로도 나눠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1:1~18). 둘째, 하나님의 아들의 나타나심(1:19-4). 셋째,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거부(5-12). 넷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교훈(13-17). 다섯째,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과 부활(18-21).

요한복음의 내용 구조는 전체적으로 다섯 부분으로 파악할 수 있다. 1:1-18까지요한복음의 신학적 서론(Prologue), 1:19-12:50까지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와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의 공적 사역, 13:1-17:26까지다락방 강화, 18:1-20:31까지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마지막 21결론(Epilogue) 부분이다. 그러니까 서론과 결론 부분을 제외하면, 예수님의 사역의 개시와 부활에 이르는 전과정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본서의 신학적 서론 부분인 1:1-18성자 예수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또한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어, 세상의 빛으로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서론적으로 밝히고 있다.

다음 1:19-12:50 주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보도하고 있는 공관복음과는 달리, 유대와 예루살렘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보도하고 있다. 이 부분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의 표적들(Seven Signs)그와 연관된 선언들(Proclamations)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성자 예수께서 자신 및 성부 하나님을 세상에 계시하시는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 부분을 좀 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9~2:12예수께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 예수님과 처음 제자들과의 만남제자들의 신앙 고백, 그리고 예수의 신성을 입증한 1표적인 가나 혼인 잔치의 이적을 보도하고 있다. 이는 서론 부분에서 나타난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증거(Witness)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사역이 시작됨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어 2:13~3:36까지는 공생애 사역 개시 후 첫번째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을 기점으로 일정 기간 동안의 사역을 보도하고 있는데, 곧 예루살렘 성전을 숙청하신 사건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유대 지방에서 머무신 내용예수께 대한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거에 관해 보도하고 있다. 이어 제4장은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 다시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오시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사마리아 지역을 경유하실 때 예수께서는 수가 성의 한 여인구원하시고 또 그 일을 통해 많은 사마리아인들을 회심하게 하신다. 그리고 가버나움에 돌아오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2의 표적으로서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신다.

이어 제5장에서는 공생애 시작 후 두번째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3표적으로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이를 둘러싼 사건들을 보도하고 있으며, 6장에서는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4표적으로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오병 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5표적으로서 물 위를 걸으신 이적, 그리고 오병이어의 이적과 관련하여 추종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주신 생명의 떡에 관한 주님의 교훈들을 보도하고 있다. 또 제5, 6장에서는 표적들로 인하여 예수님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됨과 동시에 예수께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배척과 무리들의 오해가 대두되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어 7:1-10:42까지는 다시 예루살렘에서의 초막절을 전후한 사역들을 보도하고 있다. 이 즈음에 이미 예수께서는 명절을 맞아 모여든 군중들의 이야깃거리의 중심이 될 정도로 커다란 관심 및 의혹의 대상이 되어 있었으며,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는 첨예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결국 성전에서의 논쟁을 기회로 예수에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체포령을 내리는계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예수를 배척하게 된다. 한편, 예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위축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공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며,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6표적소경의 눈을 치유하는 이적을 행하시며, 특히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로서의 자기 선언 (Self-Proclamation)을 하신다.

이어 11,12은 유대인들의 배척을 피해 잠시 베레아로 피신하셨던 예수께서 다시 예루살렘 인근 베다니로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의 향유 도유 사건, 그리고 헬라인들의 예수 방문 사건 등을 보도하고 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예수께서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기 위해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 중 마지막 제7표적으로서 가장 큰 표적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요한복음에서 진정한 표적 중의 표적인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력히 예표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또 마리아의 향유 도유 사건과 헬라인들의 방문은 모두 예수님의 수난 사건이 임박하였음을 시사하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볼 때, 11,12장은 표적들의 장(the Chapters of the Signs)이라고 할 수 있는 1:19-12:50까지의 종결 부분이면서, 다음 제13장 이후의 내용으로 이어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13-17장은 소위 다락방 강화(the Upper Room Discourse) 부분으로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 설교(13-16)대제사장적 기도(17)를 보도하고 있다. 유월절 전날 자기가 떠날 때가 된 것을 아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신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시며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다. 또한 당신의 승천 이후 세상에 남아 당신을 대신하여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할 제자들에게 새로운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 주실 것약속하시며, 자신의 죽음과 부활 및 승천에 대해서도 예고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지만 자신이 세상을 이기었으므로 담대하라고 하는 권고를 주심으로 고별 설교를 마치신다. 이어 17장에서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마지막 기도를 드리시는데, 기도의 내용은 곧 자신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제자들을 및 미래의 성도들을 포함한 중보의 기도이다.

다음으로, 18~20장은 성자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보도하고 있다. 세분하면, 18, 19장에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체포에서부터 대제사장과 빌라도의 연속적 심문 과정과 십자가형의 집행시신의 처리와 장례 과정을 사실적이고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으며, 20장에서는 빈 무덤의 장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 도마에게 차례로 현현(顯顯)하신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20:30,31에서 본서의 기록 목적을 밝힘으로써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과 수난 및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보도 내용을 일단락짓고 있다.

마지막 제21장은 본서의 결론 부분으로서,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재회를 보도한다. ,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하여 섬겨 주시며, 세 번이나 거듭 당신을 부인함으로 사도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린 베드로를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그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장면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이 부분은 이미 본서의 기록 목적을 밝힌 이후에 나와 부록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상 베드로의 온전한 회복과 그에게 부여된 사명을 묘사함으로써 교회의 사명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측면에서 볼 때 매끄럽게 끝맺음을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인 21:24,25에서증언자들의 추신(Postscripts)을 기록함으로써 본서의 진정성을 재차 확증해 주고 있다.

 

 

 

2.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요한의 증거 및 증거자로서의 자세(3:22~36)

1)본문내용(3:22~36)

첫째,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유대 땅에서 각각 세례를 베풂(22~24)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에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셨다. 요한도 예루살렘에 가까운 애논이라고 곳에서는 세례를 베풀었다. 이때는 아직 요한이 투옥되기 전이었다.

둘째, 예수의 세례에 대해 요한의 제자들의 불평했다(25~26).

요한의 제자와 한 유대인이 결례 문제와 관련하여 변론이 일어났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세례 받는 자들이 예수께로 집중되었다고 보고하겨 불평한다.

셋째, 세례 요한이 자기는 낮추고 예수를 높이는 대답을 함(27~30).

세례 요한이 모든 권위의 출처는 하늘임을 선언함으로서 예수의 신적 권위를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 앞에 선구자일 뿐이라는 것을 제자들이 오히려 증언해야 한다고 사역의 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요한이 자신에게는 신랑의 들러리로부터의 기쁨이 충만하다면서 메시야를 예비하는 자로서의 자신의 소명에 만족을 표한다. 더 나아가 예수는 흥하고 자신을 쇠하여야 한다면서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기는 사라지려는 자세를 보인다.

넷째, 위로부터 난 예수님과 땅에서 난 세례 요한의 대조(31).

세례 요한이 예수님과 자신의 차이를 위로부터 오셔서 만물 위에 계신 이와 땅에서 난 이로 대조하여 제시한다. 예수는 하늘로서 오셔서 만물 위에 계신 탁월한 분이심을 재 강조한다.

다섯째, 예수의 증거에 대한 사람들의 상반된 반응 지적(32~33)

예수의 확실한 증거를 사람들이 배척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예수의 증거를 받는 자들은 곧 하나님을 참되시다고 인정하여 인친 것임을 강조한다.

여섯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탁월성 및 믿는 자에게 있을 영생과 불신자에게 있을 진노를 선포함(34~36)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한없이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하신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고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라 그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2)영적 교훈

3:22~36음 넓게는 7가지 표적 및 선언을 통한 성자 예수의 자기계시에 대해 보도하는 본서 전반부 1:19~12:50의 연속부분이다. 그리고 좁게는 성자 예수님의 초기사역과 예수의 신성을 입증하는 제1,2표적에 대해 보도하는 1:19~4:54의 연속부분이다. 특히 여기서는 거듭남의 진리와 믿음에 관한 니고데모와 예수님 사이의 대화를 보도하고 있는 3:1~21에 이어, 예수의 초기 유대사역(2:13~3:36)과 관계된 마지막 기사로서, 헤롯 안디바에 의해 투옥 당하기 직전에 있었던 세례요한의 예수에 대한 증거증거자로서의 그의 자세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첫째 전반부인 22~30세례요한 자신의 역할과 관련하여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을 증거하는 최후증언의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이때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의 자기의 임무를 분명하고 직시하고 예수와 경쟁관계가 아닌 겸손한 순종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둘째, 후반부인 31~36세례요한의 예수의 증거에 대한 사람들의 상반된 반응에 대한 지적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탁월성그에 대한 믿음 여부에 따른 영생과 진노의 선포를 보도하고 있다.

 

첫째, 예수께서도 처음에는 세례를 주심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는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22).

둘째, 세례 요한도 그의 사역의 마지막을 세례를 줌으로 자기에게 오는 자는 예수님께 인도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23).

셋째, 세례 요한은 자신이 옥에 던져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했다(24).

참고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때는 A.D.27년 가을이었고, 요한이 처형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A.D.29년 겨울이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요한은 한동안 병행사역을 한 것이다.

넷째, 사람은 언제나 누가 더 크느냐고 하는 논쟁을 한다(25).

당시 사람들은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본 유대인들로 인해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논쟁이 촉발된 것이다.

다섯째, 사람은 자기의 스승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생기면 경계하고 시기한다(26).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기의 스승에 대해 지극한 자부심과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께로 가서 세례를 받게 되자 그들은 예수님의 인기에 불안과 시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자기 스승에게 불평을 쏟아낸 것이다.

여섯째, 자기의 몫과 예수님의 몫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아는 자는 겸손해진다(27).

세례 요한의 신본주의적 신앙과 겸손자신의 몫과 예수님의 몫이 다르다는 것에서 나온다. 그는 사심이 없는 일꾼이었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채 있지 않다면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도적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그에게 붙여준 것이다.

일곱째, 사역자는 자신의 위치를 알 때 흔들리지 않는다(28).

세례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닐 뿌만 아니라, 그분 앞에 파송받은 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불평할 때에도 정확하게 그들의 자신의 사명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덟째, 남을 축복할 수 있는 자는 그와 자신이 경쟁관계가 아니라 서로 협력관계라는 것을 알 때다(29).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신랑으로서 이 땅에 신부를 취하러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를 잘 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신랑이 신부들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는 기뻐했다. 그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홉째, 자신을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30).

세례 요한은 자신은 이제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야 할 존재이지만, 예수께서는 세상에 드러나서 그분이 누군지를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가리켜, 그분은 점차로 커지게 혹은 사역은 증가되어야 할 것이지만 자신은 점차로 작아지고 사역은 감소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세례받으러 오던 이들이 예수님께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그는 시기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기뻐했. 그것이 그의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목적은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열째, 예수님은 위로부터 곧 하나님에서부터 오신 분이요 만물 위에 지배권을 가지고 계신다(31).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출생이 다르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으로서 만물 위에 지배권을 가지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신적 기원과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영광 중에 계신 분이시다(17:5). 하지만 세례요한은 죄악 중에 출생한 죄인으로서 땅에 속한 사람이요 육으로 난 자. 그러므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1:6-10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26-27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1:33-34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5:35-36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열한째,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본 채 있는 것과 들은 채 있는 말씀을 말씀하시는 것이다(32)

5:19-20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6: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8: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8: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8: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열두째, 예수님을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는 참이신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게 된다(33)

열셋째, 예수께서는 공생애의 모든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은 성령을 무제한적으로 공급받으셨기 때이다(34).

열넷째, 예수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사람의 아들이 되심으로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5:22), 공생애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심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28:18). 그리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까지 가지고 계신다(1:18)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5:27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열다섯째,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시대의 생명'(영생 = 다음 시대의 생명)을 가지지만, 그렇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다(36).

사실 영생이란 아이오니오스 조에로서, ‘시대의 생명을 가리키는데, 이는 사람이 죽은 후 다음 시대에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생명을 가지킨다. 그것은 시간적으로는 내세에 받을 생명이기 때문이며(18:29~30), 들어가는 장소적인 생명이기 때문이다(18:8~9).

18:29-30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이 시대 안에서)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오고 있는 시대 안에서) 영생(시대의 생명)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18: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 요한복음 3:22~36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는 최종적으로 요한복음의 말씀으로 결론지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로 큰 자이며, 선지자들보다 더 나은 자요, 사명에 충실했던 겸손한 자였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잘 마치고 천국에 입성함으로서 실제적으로 천국에서 매우 큰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세례 요한은 땅에서 난 자요 땅에 속한 죄인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자요 하늘에 속한 자이며 만물의 지배자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본 채 있는 것과 들은 채 있는 것들을 그대로 전하셨던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사람이 되심으로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셨고, 공생애의 완전한 임무 수행으로 인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얻게 되셨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생이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다음 시대의 생명'으로서, 내세인 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계속 그에게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안과 마음의 눈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나이다.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제대로 평가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겸손히 살아가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맡겨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더욱 더 낮아지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막아온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막아온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세례요한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세례요한은 사명에 충실하였고 천국에 큰 자로서 들어갔구나.

2. 예수님은 하늘에서 온 자요 하늘에 속한 자로서 만물의 지배권을 가지신 분이로구나.

3. 예수님의 말씀은 곧 아버지의 말씀이로구나.

4. 지금 예수님은 심판하는 권세와 하늘과 땅의 권세,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시는구나.

5. 영생이란 성도가 죽은 후 다음 시대에 받을 생명으로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었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요한복음 3장 헬라어 직역

(22) 이 일들 후에 예수께서 가셨다.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이 유대 땅 안으로 [갔다]. 그리고 그분은 거기에서 그들과 함께 유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세례를 주고 있었다.

(23) 그런데 요한도 역시 살렘에서 가까운 애논 안에서 세례를 주고 있으면서 있던 중이었다. 왜냐하면 거기에 많은 물들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당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세례를 받고 있었다.

(24) 왜냐하면 요한이 아직 옥 안으로 던져진 채 있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25) 그러므로 요한의 제자들 중에서부터(에크) 한 유대인과 함께 정결의식(결례)에 대하여 논쟁이 있게 되었다.

(26) 그리하여 그들이 요한을 향하여 갔다. 그리고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랍비여, 당신과 함께 요단 [] 저편에서 있어 왔던 그러한 이가 곧 당신이 증언한 채 있는 이가, 보십시오, 이이가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그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27) 요한이 대답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만일 하늘에서부터(에크) 그에게 주어진 채 있지 않다면, 사람이 하나도 [계속] 취하는(받는) 것을 할 수 없다.

(28) 바로 그들인 너희 자신들이 나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하였다는 것을,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오히려 저분 앞에 파송받은 채 있는 이로 있다는 것을.

(29) 신부를 가지고 있는 이는 신랑이다. 그런데 [이미] 그의 음성을 듣고 있는 이인 신랑의 친구가 신랑의 음성 때문에 기쁨으로 기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속한 이 기쁨이 충만하게 된 채 있느니라.

(30) 저분은 반드시 [계속] 증가해야(성장해야, 향상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반드시] [스스로] [계속] 감소되어야(보다 못하게 되어야) 한다.”

 

(31) 위로부터 오시고 있는 이는 모든 것들(만물)의 위에 계신다. 땅에서부터(에크) 있는 이는 땅에서부터(에크) 속해 있다. 그리고 그는 땅에서부터(에크) 말하고 있다. 하늘에서부터(에크) 오시고 있는 이는 모든 것들(만물) 위에 계신다.

(32) 그분은 본 채 있는 바와 그리고 들었던 이런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분의 증언을 아무도 취하지(받지) 않고 있다.

(33) 그분의 증언을 취했던(받았던) 이는 하나님이 진실하다는(참이신 분으로 있다고) 인쳤다(도장찍었다).

(34)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런 그분을 파송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입말씀들(레마타)을 발언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 영을 분량에서부터가 아니게(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분은 모든 것들(만물)을 그의 손 안에 주신 채 있다.

(36) 아들 안으로 믿고 있는 이는 시대의 생명(영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들에게 불순종하는 이는 [장차] 생명[스스로] 보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이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크기변환]2022-09-28 설교방송수요.jpg


Articles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