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45) 거대한 폭풍 가운데에서도 바울과 함께 하신 예수님(행27:1~26)

by 갈렙 posted Sep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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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6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열여섯째주일)

[제  목] 사도행전강해(45) 거대한 폭풍 가운데에서도 바울과 함께 하신 예수님

[찬  송]

찬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찬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찬 399장 어린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말  씀] 행27:1~26(신약 234면 )

[키워드] 

바울의 로마여행, 지식과 경험, 분별력, 재물의 한계, 의인 한 사람의 능력, 자연 앞에서의 인간의 나약함

1. 서론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편이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면서 남기신 지상대명령이 주의 사도들에 의해 건립된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실행되어 갔던 역사의 기록이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최초 30년간의 기독교회의 역사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다룬 4복음서들과 연속선상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누가복음의 연작으로서 누가복음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사도행전을 복음을 전파한 인물중심으로 그 내용을 구분한다면, 베드로행전과 바울행전으로 나눌 수 있다. 1~12장까지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복음전파를, 13~28장까지는 사도바울을 중심으로 한 복음전파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행1:8에 의한 지역적 지리적인 구분에 의해 그 내용을 구분한다면, 1~7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설립과정과 성장과정을, 8~12장까지는 사마리아와 온 유대에서의 복음전파, 13장~21장 상반부(16절)까지는 수리의 안디옥을 중심으로 소아시아와 유럽으로의 복음 전파(여기에 1~3차 바울의 전도여행이 들어 있다), 21장하반절부터 28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의 복음전파(제 4차 바울의 로마전도여행)를 다루고 있다.

  이 중에서 사도행전 3장에서 7장까지는 예루살렘교회의 폭발적이 성장과 팽창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8장부터 12장까지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안디옥까지의 교회 확장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13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의 전도사역을 통해, 로마에까지 교회가 확장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크게는 2부분으로, 적게는 3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행1~12장까지는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사도 베드로를 통한 유대인을 향한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다면, 행13~28장까지는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사도 바울을 통한 이방인을 향한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다. 앞부분인 행1~12장은 다시 1~7장까지와 8~12장까지로 나눠볼 수도 있는데, 1~7장에서는 예루살렘교회의 탄생과 성장을 보도하고 있으며, 8~12장까지는 과도기로서 유대와 사마리아지역으로 복음이 확장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행13~28장까지는 본격적인 이방인 중심으로 복음증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지역적으로 본다면 안디옥에서 로마까지의 복음전파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3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 바울은 성난 유대인들에 의해 붙잡혔다. 그들은 처음에는 바울을 율법무시죄, 성전모독죄, 유대백성비방죄로 비방하다가(행21:8), 나중에는 성전모독죄와 유대선동죄(반란모의죄)(행24:5)라는 거짓 죄목으로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바울은 무려 5번에 걸쳐 자신의 무죄함을 변호해야 했다. 행22장은 유대백성들 앞에서(행22:1~22), 행23장에서는 산헤드린공회 앞에서(행23:1~6), 행24장에서는 벨릭스 유대총독 앞에서(행24:10~21), 행25장에서는 새로 부임한 베스도 유대총독 앞에서(행25:6~12).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26장에서는 아그립바왕 앞에서(행26:1~12) 말이다.

  오늘은 바울이 미결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떠나는 여행에서 있었던 이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그때는 A.D.60년 초가을이었다. 하지만 바울이 탄 선박은 큰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하여 떠내려갔고 간신히 멜리데섬에 멈춰섰는데, 거기서 3달동안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인 A.D.61년 봄에 로마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A.D.61~63년까지 2년간은 가택연금상태에 있으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을 방문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고, 그때 소위 옥중서신이라는 엡, 빌, 골, 몬을 저술하게 된다. 그리고 바울은 A.D.63년에 석방되었다. 이 기간동안 그는 딤전과 디도서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A.D.67년경 다시 2차로 로마감옥에 투옥되는데, 그때에 딤후를 기록하고,A.D.68년에 로마의 네로황제에 의해 순교를 당하게 된다.

  특히 행27:1~8은 바울의 로마여행의 시작과 그레데 섬의 미항에 이르기까지의 항해여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행27:9~44에서는 바울일행이 탄 배가 항해 도중에 ‘유라굴로’라고 하는 거대한 광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멜리데섬에 난파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2. 바울의 로마송치 개시 및 가이샤라에서 그레데 섬 미항까지의 여정(행27:1~8)

1)본문내용(행 27:1~8)

첫째, 바울이 배편으로 로마로 호송되는 일이 결정됨(1~2절)

  배편으로 바울을 비롯한 죄수들을 로마로 호송할 일이 결정되고, 호송책임은 아구사도 부대 소속의 백부장 율리오가 맡는다. 그래서 아드라뭇데노 배로 소아시아 연안 각처로 향하는 배에 승선하게 된다. 이때 마케도냐의 데살로니가 출신인 아리스다고가 바울과 동승하게 된다.

둘째, 가이사랴에서 중간 기착지 미항까지의 여정을 소개함(3~8절)

  시돈에 정박한 바울일행이 백부장의 호의로 시돈 성도들과 교제를 한다. 시돈에서 이제 구브로 해안을 따라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성(城)에 이른다. 무라 성에서 알렉산드리아 배로 옮겨 타고 니도 앞 바다까지 이른다. 풍향이 맞지 않아 배의 항로를 바꾸어 그레데 섬의 살모네 항구를 통과하여 그레데 섬 남단에 위치한 미항(美港)에 이른다.


2)영적 교훈

첫째, 사탄의 어떠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시되,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이루신다(1절).

  바울은 3차에 걸쳐 약 10년간 아시아와 마케도냐와 아가야지방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파한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로마제국의 중심이자 곧 세계의 중심이기도 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소원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로마전도계획을 3차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세웠고(행19:21), 고린도에서는 뵈뵈집사를 통해 로마서를 써서 로마 성도들에게 자신의 로마에서의 복음전파 계획을 알리기도 하였다(롬1:15). 또한 이러한 일은 예수님께서도 인정해주신 일이다(행23:11).

  하지만 그의 로마전도계획은 처음부터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예루살렘에 가서 최종적으로 오순절을 지키고 출발하려 했는데, 그만 유대인들의 난동으로 붙들려 죽게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돕는 사람을 붙여주셨고, 무려 5차례에 걸쳐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려 변호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로마에 가서 재판받을 수 있도록 상소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로마로 출발하는 항해를 시작했지만 그것은 죽음의 바다항해였다. 이 정도가 되면 그가 사람이라면 낙심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로마전도여행은 하나님의 뜻이자 계획이므로 반드시 이뤄질 줄 믿고 낙심하지 않았다.

  사실 바울이 스스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면, 거기까기 가는데 얼마나 많은 경비가 소요되었을 것이며, 계속해서 그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의 위험을 어떻게 이기고 로마까지 갈 수 있었겠는가? 뿐만 아니라 그가 미결수이지만 죄수의 신분이 되지 않았다면 어찌 72명의 산헤드린공회 앞에서와 2명의 로마총독과 1명의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모든 일에 사탄의 공격과 방해가 있음에도 하나님의 뜻은 그 뜻을 준행하려는 자를 통해 성취되고야 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선교사역은 혼자서 행할 수 없다. 동역자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원한 동역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다(1~2절)

  바울의 놀라운 선교업적은 끝까지 같이하는 동역자가 있어 힘이 되었고, 이름없는 성도들의 말없는 희생이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동행하시는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의 진짜 힘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1~2절) 바울의 전도여행에 있어서 딱 2사람은 특별하다. 그들은 바울을 만난 이후 끝까지 바울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동행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누가요, 또 한 사람은 데살로니가사람은 아리스다고이다. 첫 번째로, 누가는 사실 바울의 2차전도여행 당시 드로아에서 바울전도단에 합류한 동역자이지만 바울의 명령에 따라 잠깐 떨어져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로마의 감옥에서 죽는 그날까지 함께 한 바울의 동역자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아리스다고다. 그는 마케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으로서, 2차전도여행 때에 바울을 만나 행19장에서는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를 전파하다가 붙들려 곤욕을 치렀으나(행19:29) 끝까지 바울곁을 떠나지 아니한 동역자였다. 사실 바울의 놀라운 업적은 아리스다고처럼 이름없이 빛도 없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바울을 도왔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바울에게만 해당되지 아니한다. 바울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모든 영적 지도자들의 뒤에는 이름없이 수고하며 말없이 희생하는 사역자들이 있었다. 누가 알아주는 이 없지만, 상을 주는 이도 없지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말없이 수고하고 봉사하는 성도들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은 지금도 끊어지지 아니하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우리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께서는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다(마28:19).

셋째, 성도들의 인생길은 홀로 걷는 외로운 방랑길이 아니다(3절)

  바울이 탄 배가 시돈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호송책임자인 율리오 백부장의 선처로 시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볼 수가 있었다. 사실 시돈에 있는 성도들이 바울로부터 직접적으로 복음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은 마치 형제와 친구처럼 바울을 맞이해주었다. 비록 이 땅에서 생이 고달프고 힘겨울지라도 함께하는 성도들로 인하여 언제나 위로를 얻으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성도들은 세상에 맞서는 용기를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피해가는 지혜도 가져야 한다(4절)

  내 앞 길에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드라뭇데노 배가 중간기착지인 루기아성(城)의 무라시(市)에 가려고 북서방향의 항해를 시작했지만 맞바람을 맞게 되자 지중해해안선을 따라 구브로와 중간 사이를 지나 루기아성(城)의 무라시(市)에 이르게 된다. 무턱대고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무모함이 용기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동네에서 핍박하면 저 동네로 피하라고 하였다(마10:23). 무조건 맞서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때로는 피할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피해서는 아니 되는 상황에서는 과감히 맞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할 때에는 뱀처럼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10:16).



3. 유라굴로 광풍으로 인한 혼란 및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바울의 위로와 격려(행27:9~26)

1)본문내용(행 27:9~26)

첫째, 백부장이 바울의 권고를 뿌리치고 행해강행을 결정함(9~12절)

  그레데섬의 미항에서 비교적 오래 체류하여 추분 무렵이 지나갔다. 그때 바울은 이번에 행선하면 하물과 배 뿐만 아니라 인명에도 큰 타격이 있을 것이니 겨울을 지나고 출항하자고 권면한다. 그때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하여 미항보다는 과동하기가 좀 더 적합한 뵈닉스에서 과동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뵈닉스항은 그레데섬의 미항 서쪽에 위치한 항구로서 서남쪽과 서북쪽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둘째, 바울 일행의 배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됨(13~20절)

  처음에는 순한 남풍을 만나 그레데섬 남부연안으로 순항하게 된다. 하지만 항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된다. 그 바람이 워낙 거세 배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그냥 바람 따라 끌려가게 된다. 그래도 급박한 풍랑 속에서 선언들은 최선을 다했다. 가우다라는 섬을 북쪽으로 끼고 돌 무렵에 그동안 위태하게 매달려 끌려오던 구명정을 간신히 배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배가 풍랑에 파손당하지 않도록 선체를 밧줄로 동여매었다. 하지만 돛을 단 채 있으면 아프리카 리비아의 모래톱까지 끌려가 처박힐까 봐 돛을 접고 표류하기로 했다. 이튿날에도 광풍이 계속 불자 선원들이 배의 화물을 바다에 던진다. 이처럼 여러 날을 악천후 속에서 애썼으나 풍랑은 그치지 않았다. 그러자 이제는 모든 승선자들이 절망에 빠지기 시작한다.

셋째, 바울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 무리를 위로하고 격려함(21~26절)

  바울은 출항 당시 자신의 권고를 무시했던 것을 회상시킨다. 바울이 그러나 배만 손실될 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은 모두 보존될 것이라고 하면서 안심하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전날 밤에 자신이 속해있고 또 자신이 섬기고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전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천사가 자신의 옆에 나타났고, 그때에 먼저 바울아 두려워 말라 하였으며, 바울 자신은 살아서 가이사 앞에 서야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동승한 자들을 바울 자신에게 다 주셨다고 말했다고 했다. 바울은 이제 자신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 승선자들을 재차 안심시킨다. 또한 곧 배가 어느 한 섬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예언한다.


2)영적 교훈

첫째, 사람의 다양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받아서 움직여야 한다(9~13절).

  바울은 미항이 좀 불편해도 그곳을 떠나서 항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항해를 시작한다면, 배와 화물 그리고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하면서 미항에 머물자고 하였다. 하지만 미항은 항구가 작고 겨울을 지내기에는 불편했다. 그래서 그레데섬의 서북쪽에 위치한 뵈닉스 항구로 가서 거기서 겨울을 보내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때였다. 출항의 여부를 결정하는 백부장이 물었다. 그러자 선장과 선주들은 바울의 의견을 무시한 채, 뵈닉스 항구로 간다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그들의 지난 날의 지식과 풍부한 경험이 말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부장은 출항을 명령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을까? 그레데해안을 끼고 서북쪽에 있는 뵈닉스 항구로 이동하는데 처음에는 순풍이 불었다. 모두가 다 잘 결정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얼만 안 있어 갑자기 유라굴로라고 하는 동북풍의 폭풍이 몰아치고 말았다. 배가 휩쓸리기 시작했고, 바람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가는대로 밀려갔다. 그러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룻배(구명정)을 끌어올리고 선체를 밧줄로 감았다. 그리고 모래톱에 걸리지 않도록 배에 있는 연장들을 버리고, 짐들을 버리고, 배의 기구까지 버렸다. 하지만 여러날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았고 큰 풍랑은 계속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구원의 소망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배와 화물 뿐만 아니라 배안에 이는 276명의 사람들마저 죽을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첫째, 백부장이 항해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이는 경험보다는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험만 믿고 분별력이 없이 행동했던 것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더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는데, 괜찮다면서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밀어붙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보다는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백부장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바울의 말보다는 결국 사람들의 말을 더 신뢰한 것이다. 하나님을 모른다면 사람은 합리적인 말에 따라가기 마련이다. 둘째, 다수의 의견을 따랐다는 점이다. 미항을 떠나는 것은 바울을 제외한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다수의 의견이 어찌 보면 객관성이 있어보이고, 타당성이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보다 훨씬 정당하고 옳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소수의 의견도 무시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 작은 불편을 견디어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레데섬의 남쪽 중간에 위치한 미항은 작고 불편했다. 그래서 좀 더 편히 겨울을 날 수 있는 곳을 그들은 찾았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서 북서쪽에 위치한 뵈닉스 항구로 가고자 한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불편한 것이 있어도 그것을 참고 견디어내야 한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좀 더 편하자고 선택한 것이 오히려 더 큰 불행의 화근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 처음에 만나는 순탄한 길을 좋은 징조로 보았기 때문이다. 초반에 순풍이 불어어고 순탄한 뱃길이 열리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축복의 길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상의 사실처럼 처음의 순탄한 길이 항상 축복의 길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길은 대부분 좁은 길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지만 생명의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없는 것이다(마7:13~14).

둘째,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는데도 형통하다면 그것은 멸망의 징조다(13절).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폭풍 속에 던져진 배와 같기 때문이다(15절)

  처음에 바울의 만류가 있었지만 항해가 순탄하자 아마도 그들은 바울을 비난하고 조롱했을 것이다. 죄수 주제에 어디를 함부로 나서느냐고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한 일이 처음에는 형통하게 보였지만 그것이 곧 멸망의 길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한다고 곧장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을 따라간다면 결국 폭풍을 만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종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따라갔을 때 결국 폭풍우를 만나고 만다. 그러자 조종을 포기한 채 바람부는 대로 마냥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인생의 모습이다. 하나님 없는 인생이란 처음에는 순탄한 것 같으니 나중에는 거대한 폭풍 앞에서 서 있는 작은 배와 같아서, 바람부는 대로 떠밀려다니다가 마침내 침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생명을 구하는 일에서는 어떤 재물이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18절). 그때에는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생명을 건질 수가 있다.

  거센 풍랑에 배가 파선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서둘러 자신의 짐들을 버려야 했다. 그것들이 다음 항구에 무사히 도착할 수만 있었다면 그것은 커다란 돈이요 수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센 풍랑 속에 목숨이 경각간에 달린 그 순간에 재물은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단축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기들이 의지하던 재물이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넷째, 내 능력의 한계상황을 만났을 때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낫다(16~17절)

  알렉산드리아 배는 거대한 배였지만 거대한 유라굴로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물체에 불과했다. 만약 돛을 달아버리면 풍랑으로 인해 반대쪽으로 쓸려갈 수가 있기에 돛도 달아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선원들이 풍랑에 맞서 돌진해가려하면 풍랑 때문에 배가 뒤집힐 수가 있다. 그때는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풍랑이 지나가도록 말이다.

다섯째, 사명을 가진 의인과 함께 하는 자가 복이 있다(24절).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세력도 즉 유대인들도, 거대한 풍랑도 바울을 제거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인간과 환경의 배후에서 일하는 사탄마귀라 할지라도 사명을 가진 자의 앞 길을 막을 수가 없다. 이처럼 시대의 의인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런 자가 있을 때에 절망적인 상황도 바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들이지만 바울 때문에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의인된 한 사람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다른 생명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27:1~26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어떠한 사탄마귀의 방해에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뜻의 성취는 하나님의 사명을 깨달은 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선교사역은 혼자가 아니라 동역자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봉사로 인해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들은 세상의 힘에 맞서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피해가는 지혜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아무리 사람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행하는데도 형통하다면 그것은 멸망의 징조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재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자신의 능력의 한계상황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라는 신호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내게 주신 사명을 찾고 그 뜻대로 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변함없는 협력자가 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지혜와 분별력을 구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구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순풍을 만날수록 더 깨어있는 자가 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의지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지금도 하나님의 사역자들 주위에서 선교를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내세우는 사탄의 계략은 소멸될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갈지어다. 시시때때로 지혜롭게 행동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어떠한 사탄마귀의 방해해도 하나님의 뜻은 성취되는구나.

2.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명을 감당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 복을 받는구나.

3. 모든 하나님의 일은 돕는 동역자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노력이 합해져서 결실을 맺는구나.

4. 인도하는 사람에게는 순발력있는 지혜와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구나.

5. 처음에 만난 순탄한 길이 항상 축복의 길이 되지 않을 수도 있구나.

6. 사람의 지식과 경험보다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구나.

7. 내 능력의 한계에 부딪혔을 경우에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려야 하는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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