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10)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주신 승천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계3:7~13)_2017-09-06

by 갈렙 posted Sep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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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06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열셋째주일)
[제  목] 요한계시록강해(10)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주신 승천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
[찬  송] 찬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찬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찬 365장 마음 속에 근심있는 사람
[말  씀] 계3:7~13(신약 402면)
[키워드] 소아시아일곱교회, 빌라델비아교회, 형제사랑실천교회, 핍박견디는교회, 시험의때로부터보호, 하나님의소유, 천국의 주인공

 

1. 서론

요한계시록의 원 제목은 아포칼륍시스 이오안누(요한의 계시)”. 이 책의 저자는 사도요한이다(1:1,4,9, 22:8). 그리고 이 책은 로마 제10대 황제였던 도미시안황제의 통치(A.D.81~96)의 말기이자 요한이 밧모섬에 갇혀 있었던 시기인 A.D.95~96년경에 쓰여졌다. 이 책의 수신자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를 비롯하여(1:4,11), 로마제국의 핍박 및 황제숭배를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한 A.D.1세기 말엽의 그리스도인들이 1차 수신 대상이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역사적 종말론 차원에서의 교회의 환난과 승리 및 신천신지의 도래를 통한 지상역사의 종결 및 구속사의 완성 과정이다.

요한계시록은 형식상 계시(묵시)와 예언과 서신의 책이다. 첫째, 요한계시록은 묵시서. 신적 계시의 책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문학적인 상상력이나 헛된 환영의 산물이 아니다. 특별히 유대묵시문학을 닮았는데, 유대묵시문학과 다른 점은 가명(에녹, 아브라함, 에스라 등)이 아니라 저자가 누군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며, 많은 환상과 시각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요한계시록은 예언서(1:3, 22:7,10,18,.19).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장차 되어질 일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종말을 다루고 있다. 심오한 상징을 사용한다. 셋째, 서신의 책이다. 발신자(사도요한)와 수신자(초대교회 당시의 소아시아일곱교회 성도들) 및 내용으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종의 회람서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내용상 위로 소망의 책이며, 완성과 결론의 책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상징적인 표현들과 암시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잘 해석하려면 , 과거주의적인 관점(1세기 상황)과 둘째, 미래주의적 관점(미래의 종말), 셋째, 역사주의적 관점(초대교회부터 종말에 이르는 전역사), 넷째, 이상주의적 관점(악에 대한 선의 승리, 영적 세례의 실체, , 짐승은 적그리스도)으로 보아야 한다.

사도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통치 말년에 본서를 기록하였는데, 이때는 황제숭배가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네로보다 더 폭군이었던 도미시안은 스스로를 신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주와 하나님으로 부를 것을 명하였다. 이러한 황제칙령에 의해 로마전역에 황제숭배를 위한 신전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성도들은 황제가 주인지 예수님이 주인지 선택할 것을 강요받았다. 그때 안디바는 죽음을 선택하였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어떠한가? 크게 보면, 재림이전에 있을 환난과 심판(1~20), 재림이후에 있을 신천신지의 도래(21~22)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계1:19의 기준에 따라 과거(1), 현재(2~3), 미래(4~22)으로도 볼 수 있다. 즉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서신으로 볼 때에는 시작하는 말(1:1~8)과 본론부(1:9~22:5) 그리고 끝맺는 말(22:6~21)로 대별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본론부는 본 것(1:9~20)과 이제 있는 일(2~3), 장차 될 일(4:1~22:5)로 구성되어 있다.

종말에 대한 예언4~18장에 걸쳐서 나오는데, 37중재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나선형순환구조로서, 환상이 연속될수록 재앙의 강도가 더해가는 특징을 지닌다. 4~5장의 하늘보좌 및 어린양의 환상은 배경이자 출발점이다. 그리고 19~22:5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백보좌심판 및 신천신지의 도래를 기록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총 10가지다. 첫째, 신적 계시로서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둘째, 교회들을 향한 성령의 음성이 들어있다. 셋째, 인간역사의 진정한 주관자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한다.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주인이다. 넷째, 천국생활의 본질이 찬양과 경배인 것을 말한다. 하늘보좌 주변에 있는 네 생물과 24장로들, 천사들, 구속받은 무리들이 보좌에 계신 이 곧 주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다섯째, 박해와 환난에 대한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를 노래한다. 여기서 교회는 전투적인 교회다. 여섯째, 세속문명에 대한 성도의 바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 세상은 큰 음녀의 파멸과 순결한 여인의 복을 이야기한다. 일곱째, 인류의 원수인 사탄의 최후 멸망을 보여준다. 사탄은 유황불못에 던져진다. 여덟째, 만물의 갱신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을 말한다. 아홉째, 고난을 이긴 성도들의 위로와 안식을 말한다. 눈물과 수고가 변하여 기쁨이 되고 수고를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열째,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성도의 합당한 생활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서신으로 볼 때, 시작하는 말과 본론부와 끝맺는 말로 구분할 수 있는데, 본론부는 본 것(1:9~20)과 이제 있는 일(2~3), 장차 될 일(4:1~22:5)로 구분해볼 수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제 있는 일(2~3)의 내용 중에서 에베소교회와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살펴보려고 한다.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게 보낸 편지였던 요한계시록은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서 실제 존재하고 있는 일곱교회를 향해서 사도요한이 써 보낸 편지이다. 그렇다면 소아시아 일곱교회의 유형은 사도요한 그때 교회만 존재하는 교회였을까? 아니다. 왜냐하면 일곱교회의 말미에 있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후렴구들(2:7, 11, 17, 29, 3:6, 13, 22)이 각 서신들의 내용이 특정교회 하나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곱교회들을 향한 편지는 대체로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데, 받는 자(~교회의 사자에게) 쓰라는 명령 보내는 자(예수님의 자아와 명칭) 칭찬과 격려 책망(회개)과 경고 성령의 촉구(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약속(이기는 자들)으로 되어있지만 각 수신교회에 따라 차이가 있기도 하다.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는 책망없이 칭찬만 있는 교회이며, 라오디게아교회는 칭찬없이 책망이 있는 교회이며, 나머지 4개교회는 칭찬도 있고 책망도 있는 교회들이다.

 

그리스도의 칭찬 및 책망의 내용에 따라 일곱 교회들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에베소교회는 인내로서 정통신앙을 유지하며 외적으로 나타나는 행위의 열매들도 있었으나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다. 즉 교리나 행위에 있어서 바르고 성숙한 교회였으나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와 성도간의 교제 면에서 소원해져버린 교회였던 것이다.

둘째, 서머나교회는 환난과 궁핍이라는 힘든 처지에 있었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여 칭찬을 듣는 교회였다.

셋째, 버가모교회는 핍박의 때에 순교자를 배출하기까지 하는 등 귀한 영적 유산과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교회였으나 일부 교인들이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름으로서 세속화될 위기를 맞고 있는 교회였다.

넷째, 두아디라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많은 교회였지만 이세벨이라고 하는 거짓선지자를 용납한 교회였다. 즐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성장을 거듭하는 교회였지만, 이단을 용납하고 타협함으로서 진리를 훼손시키는 교회였다.

다섯째, 사데교회는 사람들의 평가와 주님의 평가가 대조되는 교회로서, 즉 사람들에게는 살아있는 교회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주님에게는 죽은 교회라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은 교회인 것이다. 한 마디로 사데교회는 인본주의적인 교회였던 것이다.

여섯째,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으로도 믿음을 지킨 교회 즉 교회의 외적인 규모나 힘은 미약했지만 그 믿음은 진실하여 교회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잘 감당한 교회였던 것이다.

일곱째, 라오디게아교회는 한 마디로 미지근한 교회였다. 즉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아무런 환난도 없으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신앙적으로 열의를 상실하고 영적인 곤고와 헐벗음에 처한 교회였던 것이다.

이상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는 사도요한 당시 역사적으로 실존하는 교회였다. 하지만 이들 교회는 모든 시대에 다양한 유형의 교회들을 대표하는 교회들이다. 즉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대상으로 한 편지의 내용은 바로 오늘날 각 유형의 교회들을 향한 주님의 메시지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한편,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주제와 교회의 역사적인 시대로 본다면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에베소교회는 거짓이단적 교리를 분별하다가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로서, 기독교초기시대의 교회(주후1세기교회)를 가리킨다(A.D.65~95).

둘째, 서머나교회는 죽기까지 신앙을 지킨 교회 즉 유대인들과 로마에 의해 핍박을 받는 교회로서, 로마 박해시대의 교회(순교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95~313).

셋째, 버가모교회는 핍박을 면하기 위해 잘못된 교리를 받아들인 교회, 곧 타협하는 교회로서 로마국교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313~590).

넷째, 두아디라교회는 영적지도자가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인정하고 사는 교회, 중세 로마카톨릭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590~1517).

다섯째,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그들과 똑같이 사는 교회로서, 종교개혁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1517~1700).

여섯째, 작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의 말씀을 보존하는 교회로서, 종교개혁의 잘못된 것에서 다시 원래의 초기교회의 신앙으로 회복하는 교회를 가리킨다(A.D.1700~1900).

일곱째,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뜨뜻 미지근한 교회로서, 말세의 교회를 가리킨다(A.D.1900~주님 재림전).

 

 

2.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여섯번째 편지(3:7~13)

1)본문내용(3:7~13)

첫째, 여섯 번째 편지의 수신자와 송신자(7)

여섯 번째 편지의 수신자로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거명된다.

송신자인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진실하시며,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으며,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이시다.

둘째,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칭찬과 격려(8~11)

빌라델리비아교회를 향해 열린 문을 둘었으며, 그 문을 능히 닫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복을 선언하신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의 말씀을 지키며,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인정하며 칭찬하신다. 영적으로 사단의 무리에 속하여 유대인임을 자랑하며 핍박하는 자들로 교회 앞에 무릎 꿇게 만듦으로써, 당신이 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시겠다고 다짐하신다. 주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으므로 주께서 또한 그들을 지켜 장차 온 세상에 임할 큰 시험의 때로부터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주께서 속히 임할 것이므로 가진 바 믿음을 굳게 잡아 누구에게도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고 격려하신다.

셋째, 모든 교회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약속 및 성령의 말씀 청종 촉구(12~13)

이기는 자에게 대한 약속의 말씀 곧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또한 그사람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성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새겨 기록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교회들을 향한 성령의 말씀을 청종할 것을 촉구하신다.

 

2)본문이해

. 빌라델비아와 빌라델비아교회

빌라델비아는 사데로부터 동남방향으로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헤르무스 강의 지류인 코가무스(Cogamus)강 남쪽 계속 고원에 세워진 도시이다. 도시의 웅장함이나 역사면에 있어서는 다른 소아시라 도시들에 비해 매우 초라하지만, 미시아, 리디아, 프리기아를 포괄하는 아시아 동북지역으로 뻗친 무역로의 교차지로서 소위 동방의 관문으로 불렸던 도시다.

이 도시에 붙혀진 이름 빌라델비아(Philadelphia)’B.C. 150년경 페르가몬 왕 앗탈로스 2에 의해 건설됐다가, A.D.130년 로마에 귀속된다. 사실 빌라델비아라는 이름은 앗탈로스 2(Attalus II)의 이름인 앗탈로스 필라델푸스(Attalus Philadelphus)’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이름과 함께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앗탈로스 2세는 페르가몬(Pergamon) 왕국, 앗탈로스 왕조의 4대왕인 유메네스 2세의 동생이었다. 유메네스 2세는 전쟁에 나갈 때마다 정치와 군사에 대한 지식이 많은 동생 필라델푸스 즉 앗탈로스 2세에게 내정을 맡겼다. 그런데 당시 로마는 인기가 많은 필라델푸스를 빌라델비아의 통치자로 세워놓고 자기들 뜻대로 이용하려고 충동하였으나, 앗탈로스는 그 꾀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형 유메네스 2세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자 유메네스 역시 죽을 때 자식이 아니라 동생인 필라델푸스(앗탈로스 2)에게 왕위를 계승해 주게 된다. 앗탈로스 2세는 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고 동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이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도시 이름은 자기의 원래 이름을 따서 필라델피아(Philadelphia, 빌라델비아)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도시는 A.D.17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인하여 크게 파괴되었다가, 로마의 티베리우스(Tiberius)황제 때에 재건되었고, 그를 기리기 위해서 새로운 황제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네오 가이사랴(Neo Caesarea)로 명명되기도 했으며, 그후에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 때에는 성인(聖人) 플라비아(Flavia)의 이름이 도시명이 되기도 했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도시는 북쪽지역에 화산평원이 펼쳐져 있는데, 비옥한 그 평야에서 재배되는 도포와 그것으로 빚은 포도주가 매우 유명했다. 이러한 도시의 특징을 반영이라고 하듯 이 도시를 지키는 수호신은 술의 신혹은 식물의 신으로 불리는 디오니소스이었다. 그리고 이 도시는 비단 포도나 포도주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직물과 피혁, 농업과 상업이 골고루 발달한 매우 부유한 도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아시아의 다른 지역이 그러하듯 이 도시 역시 수많은 헬라신전과 많은 이교적 행사를 치렀던 도시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빌라델비아는 작은 아테네라고 불리웠는데, 이는 빌라델비아 지역의 영적 특성을 능히 가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오늘날에는 알라의 도시라는 뜻으로 알라세히르(Alasehir)’로 불리며, 14세기에 터키군이 항복한 이후부터는 그리스도교가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얻어 교세를 확장했으며, 인구 1,500명 가운데 삼분의 일인 5,000명이 가량이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 도시에는 서머나처럼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해서 살았는데,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자 하나님으로 믿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고 심지어 죽이는 데까지 서슴없이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한편, 빌라델비아 교회의 기원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이 자신의 친척 누기오를 빌라델비아 교회의 감독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으로는 이 도시의 첫 교회 감독은 요한이 임명한 데메트리우스였다고 합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빌라델비아는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아시아가 이슬람 교도에 의해 짓밟힐 때 기독교의 유일한 보루로서 신앙적인 면에서 가장 칭찬을 받은 교회.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졌지만 충성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 교회는 비교적 가난하고 약했으며, 그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많은 멸시와 핍박을 받았지만 생명과 활력은 넘치는 교회였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쓴 지 10년이 지난 주후 105, 빌라델비아 교회는 로마로 압송당하던 안디옥의 주교 이그나티우스가 트로이에서 쓴 편지를 받아 보게 된다. 이그나티우스는 빌라델비아 교회 감독에게 교회의 분열과 잘못된 교리를 막고, 할 수만 있으면 하나로 연합하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도시에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초기 기독교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A.D.100~160년경 암미아(Ammia)라는 여선지자의 탁월한 활약으로 교회가 왕성하게 발전했다는 사실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즉 암미아라는 여선지자가 빌라델비아 교회를 섬기면서부터 큰 부흥이 일어났는데, 암미아는 초대교회 내에서 빌립 집사의 네 딸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으며, 그녀의 예언과 은사는 교회의 부흥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던, 사도 시대의 빌라델비아는 자주 일어나는 지진으로 인해 성도들이 매우 불안해했지만, 이 불안은 도리어 이들의 신앙을 더욱 뜨겁게 해 준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교회는 서머나교회처럼 책망하나 없이 오직 칭찬만을 들었던 교회에 속한다.

그리고 이 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비록 탁월한 능력은 부족하지만 오직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고 실천하는 회복된 교회시대를 가리킨다. 아마도 18~19세기의 교회시대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리라.

 

 

. 빌라델비아 교회(직역강해)

(7) 그리고 빌라델비아교회 안에 [있는] 메시지 전달자에게 [단호히] 편지하라(쓰라). 거룩하신 이, 진실하신 이, 다윗의 열쇠를 [현재] 가지신 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가 이것들을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예수께서는 이미 요한계시록1장에 계시된 자기자신의 모습을 편지앞에 말씀하셨다. 하지만 빌라델비아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에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플래시백기법으로 자신의 누군지를 소개하지 않고, 매우 독자적이고도 자유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4가지다. 첫째, 거룩하신 분이요(요일2:20), 둘째, 참되신(alledinos) 이요(3:14), 셋째,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22:22), 넷째,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

특히 예수님은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소개하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에게 다윗의 열쇠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어, 빌라델비아 성도들로 그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는 이사야서에서 국고를 맡고 있는 셉나 대신에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 열쇠를 맡아 다윗의 집 전체를 관리하는 권세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본문에서 '다윗의 열쇠'다윗의 집 즉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로서 하나님 나라의 특성인 영생의 수여권을 시사한다(Ladd, Beasley-Murray).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을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하신다(Johnson).

한편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에 대한 부가적인 해석으로 당시 빌라델비아의 정황을 반영한다. 당시 빌라델비아에 많이 거주하였던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다윗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 살던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라고 계시한 것 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선민 의식에 대한 반론이며, 그리스도 자신이 천국의 주권을 가진 메시야이심을 강조함으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위로하신 것이다(1:18;28:18;1:22;3:6). 하여튼 열쇠는 주권의 싱징이다. 주님은 천지와(28:18), 만물과(1:22), 교회와(16:18), 음부와 사망(1:18)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8) [나는] 네 행위들을 [이미] 안 채로 있다. 보라! 내가 너의 앞에 [이미] 열려진 채로 있는 문, 그것을 능히 닫을 사람이 없는 문을 [이미] 둔 채로 있다. 왜냐하면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네가] 내 말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가] 내 이름을 [너를 위하여] 배반치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빌라델비아가 어떻게 행동해왔는지를 이미 아시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열려진 채 있는 문을 두셨다. 예수께서 다윗의 열쇠를 받아서 이미 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은 천국문을 가리킨다. 이는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는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하시겠다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특히 메시지 전달자인 목회자)작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 때문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켰고, 핍박을 받아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까지 인내했기 때문이다(10). 믿음의 지조를 지켰던 것이다. 특히 내 말로 지칭되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마도 서로 사랑하라. 내거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포도의 주산지에서 사는 것만큼 많은 포도주를 만들어 성찬식에 사용하도록 주변의 모든 교회에게 공급했다고 한다.

 

 

(9) 보라! 자기자신을(자칭) 유대인이라고 [현재] 말하고 있는 자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탄의 회당으로부터(ek) 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자신을 위하여]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내가] [그들을] [장차] 오도록 그리고 너의 발 앞에 [단번에] 절하도록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는 것을 [단번에] 알도록, [그들을] 만들 것이다.

한편,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서머나교회처럼 그 지방에 많이 이주해 살고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핍박과 고난을 받았다고 한다. 왜 핍박을 받았는가? 예수의 이름 때문이었다.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인 것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여호와 외에 다른 분에게 주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믿고 따르는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유대들에게 다윗의 열쇠(천국문의 열쇠)가 없으며, 그들은 단지 사탄의 모임일 뿐이다. 그러니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 유대인들을 붙혀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그들이 와서 절하면 용서를 빌게 될 것이고, 오직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10) [왜냐하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또한 내가 땅 위에 거주하는 자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장차 온 거주지 위에 오는 시험의 때로부터(ek) 너를 지킬 것이다.

빌라델비아 성도들이 칭찬을 들었던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이고, 둘째,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셋째,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참고 견디어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온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시험하는 시험의 때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실 것이라고 약속해주셨다. 이것은 환난전휴거설(리베라신부, 영국의 어빙이나 세대주의자들인 존 넬슨 다비나 스코필드, 무디)이 틀렸음을 말해준다. 환난은 모든 성도들이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3가지 것을 지켜왔기에 빌라델비아성도들에게는 이런 것들로부터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실 것이라고 했다.

 

(11) 보라! [내가] 속히 가고 있다. [너는] [네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계속해서] 굳건히 붙잡고 있으라. 너의 면류관을 아무나 [단번에]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주님은 그때고 오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끝이 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만나뵈옵기 전까지 우리는 결단코 뒤로 물러서면 안 된다. 이미 우리에게 주실 것으로 약속되어진 생명의 면류관을 우리가 놓치지 않도록(2:10),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으로 배반치 않고,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켜내는 것이다.

 

(12) [현재] 이기고 있는 자는 [내가] 그를 나의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는] 기둥(으로) [장차] 만들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나의 하나님의 이름과 나의 하나님께로부터(apo) 하늘로부터(ek) [현재] 내려오고 있는, 새로운(질적으로) 예루살렘의, 나의 하나님의 성의 이름나의 새로운(질적으로) 이름을 그 사람 위에 [] 기록할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2가지 상을 약속하신다. 하나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천국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따로 없고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성전이시다(21:22,22:4). 결국 어린양의 소유가 되게하실 것이며, 그것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상급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지진으로 빌라델비아도시가 파괴되었지만 기둥만큼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3가지 이름을 새기겠다고 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이요, 둘째는 새 예루살렘성의 이름이요, 셋째는 예수님의 새 이름이다. 이것은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새 예루살렘성의 주인이 되며, 예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3) [현재] 귀를 가지고 있는 자는 그 영이 교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단호히] 들으라.

그리고 최종적으로 귀를 가진 자라면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 요한계시록 3:7~13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주님께 칭찬듣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작은 능력을 소유했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교회가 칭찬듣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와도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부인하지 않는 자가 칭찬듣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신앙의 지조를 지켜 끝까지 인내하는 자가 칭찬듣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은 거룩하시고 참되시며, 천국 열쇠를 가지신 절대주권자이신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이며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사탄에 속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작은 능력으로도 형제사랑을 실천하고,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자는 모든 사람의 시험의 때로부터 보호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형제를 사랑하고 고난을 견디는 자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천국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말씀에 순종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신앙을 끝까지 수호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믿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어떤 고난이라도 달게 받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참된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한 분 하나님만 믿을지어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끝까지 사수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았지만 형제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였구나.

2.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밖에 없었지만 신앙의 지조를 끝까지 지키는 교회였구나.

3. 빌라델비아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았구나.

4. 형제사랑을 실천하고 고난을 견디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구나.

5. 형제사랑을 실천하고 고난을 견디는 자가 주님의 소유가 되며 천국의 주인이 되는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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