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19) 사탄의 종이었던 사울의 회심(행9:1~19)

by 갈렙 posted Feb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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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11일(수) 수요기도회설교(주현절후다섯째주일)
[제  목] 사도행전강해(19) 사탄의 종이었던 사울의 회심
[찬  송] 찬 309장 목마른 내 영혼, 찬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찬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말  씀] 행9:1~19(신약 202면)
[키워드] 사울의 회심, 무지한 열심, 신념과 신앙, 계시, 영적 소경, 기도, 사명, 성경이 최종적인 판단의 잣대, 영육간의 균형적인 건강유지, 행9장강해



1. 서론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편이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면서 남기진 지상대명령이 주의 사도들에 의해 건립된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실행되어 갔던 역사의 기록이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최초 30년간의 기독교회의 역사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다룬 4복음서들과 연속선상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누가복음의 연작으로서 누가복음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사도행전을 복음을 전파한 인물중심으로 그 내용을 구분한다면, 베드로행전과 바울행전으로 나눌 수 있다. 1~12장까지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복음전파, 13~28장까지는 사도바울을 중심으로 한 복음전파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8에 의한 지역적 지리적인 구분에 의해 그 내용을 구분한다면, 1~7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설립과정과 성장과정, 8~12장까지는 사마리아와 온 유대에서의 복음전파, 13~21장 상반부(16)까지는 수리의 안디옥을 중심으로 소아시아와 유럽으로의 복음 전파(여기에 1~3차 바울의 전도여행이 들어 있다), 21장하반절부터 28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의 복음전파(4차 바울의 로마전도여행)를 다루고 있다.

이 중에서 사도행전 3장에서 7장까지는 예루살렘교회의 폭발적이 성장과 팽창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8장부터 12장까지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안디옥까지의 교회 확장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13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의 전도사역을 통해, 로마에까지 교회가 확장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9:1~31의 말씀은 박해자 사울 곧 바울의 회심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이중에서 오늘 살펴보게 될 말씀은 행9:1~910~19절의 말씀이다. 이것들 중에서 첫 문단인 행9:1~9은 박해자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을 보도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9:10~19에서는 사울이 아나니아라고 하는 한 제자의 안수를 통해 다시 시력을 회복하고 세례를 받게 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2. 다메섹 도상에서의 박해자 사울을 향한 부활하신 예수의 현현(9:1~9)

1)본문내용(9:1~9)

첫째,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다메섹에 갈 공문을 요청함(1~2)

사울은 여전히 주의 제자들을 향해 살기가 등등하였다. 그리고 사울은 대제사장에게 다메섹의 회당들 앞으로 공문을 요청한다. 이는 사울이 다메섹에까지 까서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여 무차별로 잡앙두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둘째, 부활하신 주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나타나심(3~7)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중 (정오에) 별안간 하늘의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추게 된다. 그러자 체포권을 가지고 당당히 길을 가던 사울이 그만 땅에 엎드려진다. 그때 한 음성이 들린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러자 사울은 누구시냐고 여쭙는다. 그러자 그분은 나는 네게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니라고 하신다. 그리고 주께서는 사울에게 성으로 들어갈 것을 명하시며, 그가 무엇을 행할지를 일러줄 자가 있으리라고 예고하신다. 그때 사울과 동행했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여 아무 말로 못하고 그저 놀란 채 서 있었다.

셋째, 사울이 눈이 어두워져 타인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감(8)

넷째, 사울이 사흘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함(9)

 

2)영적 교훈

첫째, 무지한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에 대한 적극적인 훼방이 된다(1~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유대교에 지나치게 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히브리인들 중의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들 중의 바리새인으로써 당대의 유명한 교법사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던 철저한 유대교인이었다. 그리고 유대교에 대한 그의 지나친 열심은 자연스럽게 유대교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여겨진 그리스도교에 대한 극심한 박해로 나타나게 된다. 즉 그는 유대에서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박해를 피하여 흩어진 그리스도인까지 잡기 위해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갈 정도였다.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데에 열성적이었는지는 그가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위협살기등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이와 같은 지나친 열심은 분명히 유대교와 율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그는 자신이 행하는 일이 율법의 권위를 수호하는 일이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의 이와 같은 신념은 참된 진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것이었다. 따라서 그러한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된 그의 열심은 율법의 권위를 수호하거나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일을 적극적으로 훼방하는 그릇된 열심이자 사탄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무지에서 비롯된 열심은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 대부분도 다 그랬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서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한다.

둘째, 신념과 신앙은 구분되어야 한다(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대해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는 그의 흥분된 모습 속에서도 적나나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신념과 신앙은 다른 것이다. 신념이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에 근거하여 스스로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신앙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지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신념은 그릇된 사실에 근거할 수가 있다. 하지만 신앙은 절대 진리의 말씀을 근거로 한다. 그리고 신념은 결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수 없지만, 신앙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념의 사람이 아니라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근거하여 자의적으로 어떤 사실을 확신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의 조명하심을 힘입어 진리를 깨닫고 믿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아무리 강퍅한 심령이라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사람이 달라지게 된다(3~6).

아무리 강퍅한 심령이라도 주님을 만나게 되면 사람이 달라지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전까지는 자신의 출신과 배경과 능력과 지식을 자랑하고 의지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버리게 된다.

3:4-9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사울은 거침없이 질주하는 기차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 꼬꾸라졌다. 그는 강렬한 빛을 보았고, 거기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계셨다. 그는 그날부로 그의 인생을 다시 쓰게 된다. 이처럼 아무리 똑똑하고 지식적인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절대 손해보는 일이 없다(4~6, 참고, 7:54~8:3).

초대교회는 유대교의 핍박으로 인하여 교회의 가장 성령충만한 일곱집사의 한 사람인 스데반집사를 잃었다. 스데반집사를 잃은 것만을 볼 때 교회적으로는 하나의 크나큰 손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결코 공짜가 없다. 그날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사탄의 앞잡이로 일하고 있는 한 사람을 보셨다. 그는 가장 미래가 총망된 유대교의 율법주의자요, 가장 경건한 바리새인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선 사람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은 산헤드린공회의 사람들이 돌로 스데반을 쳐 죽일 때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증인들의 옷을 맡은 자였다. 사울은 당시 스데반이 죽임당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거스르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스데반은 죄가 있어 그날 죽은 것이 아니다. 그날 산헤드리공회원들은 산헤드린공회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의 법을 어긴 것이다. 즉 그날 스데반을 즉결심판하여 그날 사형을 집행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사형집행권한이 없는 그들이 그날 사형을 집행했던 것이다. 사탄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고, 유대교는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결코 손해보는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날 스데반을 내준 대신에 사울이라는 청년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초자연적으로 그에게 역사했다. 빛으로 그를 둘러쌌고, 직접 주님께서 그를 찾아갔고 그에게 음성으로 말을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운데 전무후무한 일이다.

다섯째, 주님과의 만남은 사람을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5)

사울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날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자신을 둘러비추었을 때 사울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땅에 엎드려지고 만다. 그때 사울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는 처음에 말하는 그분이 누구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가 말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주여 그 목소리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하나님이거나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의 목소리라는 것을 그는 즉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럼에두 그가 확실히 누구인지를 몰랐기에 그는 그의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다시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서 그 도시 안으로 들어가라.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너에게 일러 줄 자가 있느니라.

여기서 사울은 자신의 사고의 대전환을 하게 된다. 분명 그의 생각에 예수는 죽었고 없어진 존재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는 성전과 율법을 어긴 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주의 죽음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분이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분은 죽지 않고 살아나셨으며 지금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고 증거하는 자들 즉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미쳤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분이 자기 앞에 나타나 그를 책망하고 있지 않은가? 믿을 수 없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그는 자신의 살을 꼬집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그에게 더 말씀하셨다. 그것이 그의 간증에 나온다.

26:16-18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비로소 그는 그날 모든 것을 새롭게 정리해야 했다. 그는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자기가 들었던 것을 되뇌여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동안 신뢰하여 추구해왔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어리석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봐야 달라지는 것이다.

여섯째, 어떤 주의 일꾼이라도 다 자기가 받은 계시대로 사역한다(5).

그날 사울은 2가지를 보았다. 하나는 십자가에 죽고 없어졌어야 했지만 살아계시는 주님을 보았다. 그리고 그분이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주님의 몸이요 주님과 하나라는 것을 보았다. 교회가 곧 단체적인 그리스도인 것을 보았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분의 몸된 교회가 핍박당할 때 당신이 그들과 함께 고통당하신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이 사건은 그의 모든 신학(교회론과 그리스도론)의 기초가 되어서,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요,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인 것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일곱째, 세상에는 눈을 떴으나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8).

사울은 세상은 눈을 뜨고 보고 다녔다. 하지만 영적인 것에는 완전히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보지 못했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메섹동상으로 그를 불러내었다. 종교적인 어떤 틀 밖으로 불러내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했다. 그것은 그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비로소 자신이 소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의 귀는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그 현장에 있던 자들은 빛을 보았고 어떤 소리같은 것을 들었으나 그것이 무슨 말인지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사울은 빛을 보면서 자기의 눈이 감겨버렸지만 그의 귀가 열려있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3.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를 통한 사울의 회복과 수세(9:10~19)

1)본문내용(9:10~19)

첫째, 주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사 사울을 회복시켜 주라고 명하심(10~16)

주께서 다메섹의 한 제자 아나니아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신다. 주께서는 아나니에게 가서 사울을 만나라 하신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직가라는 거리에 있는 유다라는 사람 집에 가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고 하신다. 이는 그가 지금 기도중이라고 알려주신다. 그도 미리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신을 안수하여 낫게 하는 것을 보여주셨다고 하심으로 가서 안수하여 바울을 낫게 하라고 간접적으로 명하신다. 이에 아나니아는 사울이 핍박자로서 악명 높으며 다메섹에도 다름 아니라 주의 제자들을 잡으러 왔음을 고한다. 이에 주께서는 사울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신다. 바로 이 현재의 핍박자 사울이야말로 예수 자신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도록 택한 자신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사울도 자기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를 위하여 이제는 오히려 그가 얼마나 핍박을 받아야 하는지를 사울에게 보이리라고 선언하신다.

둘째,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고 세례를 줌(17~19)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아가 주의 명령을 전하며 안수한다. 아나니아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사울을 만나 안수한다. ‘형제 사울아라고 부름으로써 사울을 같은 제자로 인정한다. 그리고 사울에게 다메섹도상에서 목격하였던 그 예수께서 자신을 보내어 사울을 다시 보게 하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고 말한다. 그러자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다시 보게 된다. 사울은 그 자라에서 자신이 핍박하고자 했던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그제서야 사울은 음식을 먹고 기운을 회복하고서 그곳의 제자들과 며칠을 유한다.

 

2)영적 교훈

첫째, 어디든지 주님을 대신하여 일을 해 줄 하나님께서 숨겨둔 사람들이 있다(10). 꼭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사울이 변화되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보내 그를 형제로 받아주라고 하신다. 당시 아나니아진실한 그리스도인이자 경건한 사람으로서 다메섹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던 사람이었다(22:12). 그는 묵묵히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 사울에게 가서 안수함으로써 눈을 뜨게 해주고 성령충만을 받게 한다.

둘째, 영적으로 새로운 눈을 뜨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은 정말 기도다(11)

사울은 눈이 멀었고 그래서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의 직가라 하는 거리의 유다의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3일동안 식음을 전폐한 가운데 기도에 집중하였다. 그는 기도하다가 아나니아의 방문을 받고 그의 눈이 떠지고 성령충만을 받게 된다.

셋째, 모든 사람은 부름을 받는 순간 사명이 주어진다(15~16)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부름받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사울은 이방인들(민족들)과 임금들(왕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주님으로부터 택함받은 그릇이었다(2:8; 24:10~23, 25~26, 9:3). 하지만 그가 너무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함으로써 자신의 사역에도 엄청난 고난이 따를 것임도 주어져 있었다.

넷째, 나중된 자를 섬기는 것은 먼저 된 자의 의무다(11~12)

만약 사울이라 할지라도 아나니아와 같은 형제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울은 오랫동안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먼저 믿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먼저 된 그리스도인은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을 섬겨줌으로 쉽게 공동체 안에서 들어올 수 있다.

다섯째, 성도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모든 판단의 최종적인 권위로 인정해야 한다(17~18).

아무리 경건했고 아무리 칭찬듣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잔인한 핍박자였던 사울을 형제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아나니아는 주님의 명령을 자신의 생각과 판단보다 앞세웠다. 다시 말해 성도라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모든 생각과 판단을 접을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모든 판단의 최종적인 권위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자기의 육체의 건강도 돌볼 줄 알아야 한다(19)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을 사람은 자기의 육체도 돌볼 줄 아는 자라야 한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완수하려면 반드시 강인한 체력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역자들은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적으로 강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육은 악하고 무가치한 것이라고 여기며, 오직 영만이 거룩하고 존귀한 것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아니다. 내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담는 성전임과 동시에 주님의 일을 감당케 해 줄 귀한 도구로 쓰임받는다 것도 알아야 한다.

 

사도행전 8:26~40에 나오는 장자권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무지한 열심은 하나님의 나라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은 주님을 만날 때에 비로소 자기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는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모든 사람은 부르심에 따른 자기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세상에는 눈은 떴으나 영적으로는 소경된 자들과 영적으로 귀먹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당신을 위해 일한 사람을 숨겨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자를 안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내 맘과 내 고집대로 행할 때가 많았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신념과 신앙을 구분하는 자가 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잊지 않고 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나도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육신의 눈과 귀만 아니라 영적인 눈과 귀도 열리게 하옵소서.

주여, 이제는 내 생각과 판단보다 주님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여, 이제는 육체의 건강도 주의 나라를 위해 돌보는 자가 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지금도 분노와 시기질투를 이용하여 나를 하나님의 나라의 훼방자로 만들려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예수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우리의 눈과 귀를 붙잡고 있는 귀신들은 이제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고집과 혈기를 버릴지어다.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무지한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해가 되며 사탄의 종으로 사는게 되는구나.

2. 사람은 비로소 주님을 만나서야 자신을 알게 되는구나.

3. 주님의 판단과 심판은 언제나 공평한 것이로구나.

4.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에서도 영의 눈과 귀가 열리지 않은 사람도 있구나.

5.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위해 일한 사람을 준비해두시는구나.

6. 마음에 맞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다운로드하기] 2015-02-11 사도행전강해(19) 사탄이 종이었던 사울의 회심(행9;1-1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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