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06)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 비밀한 하나님의 지혜(고전2:6~16)_2021-04-28(수)

by 갈렙 posted Apr 28,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2021년 04월 28일(수) 수요기도회설교(부활절후넷째주일)
[제  목] 고린도전서강해(06)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 비밀한 하나님의 지혜
[찬  송] 찬 536장 죄짐에 눌린 사람은, 찬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찬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말  씀] 고전2:6~16(신약 264면)
[키워드] 비밀한하나님의지혜,세상의지혜,성령으로만깨달을수있는하나님의지혜,영광의주

 

 

1. 서론

. 고린도전서의 기본 이해

본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여러 통의 서신 중 신약 성경에 보존된 두 편의 서신 가운데 제1서신으로서, 헬라어 원전의 제목은 프로스 코린디우스 알파이다. 이에 따라 한글 개역성경에서도 고린도전서로 명명되었다. 본 서신의 저자는 사도 바울(1:1,16:21)이다. 고린도전·후서의 기록 시기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하는 바,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기간(A, D, 53-58) 중 에베소에 머물던 시기인 A.D. 55년 봄 무렵(16:5-8; 20:31)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본 서신의 수신자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한 곳이며,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다. 그리고 본 서신의 내용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교회 생활과 관련한 제반 질문 사항에 대한 목회적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의 배경 이해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영적 ·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및 신앙생활 현안들에 대한 목회적 답변의 서신서라고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각 서신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먼저 수신자 문제와 관련하여, 본 서신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A.D.49-52) 약 일년 반 동안 사역하며 개척한(18:11)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일차적 수신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당시 고린도(Corinth)는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헬라의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우선 고린도는 헬라의 상업 중심 도시였다.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협(地峽)의 남쪽 2km 지점에 위치한 고린도는 수많은 여행자와 상인들의 필수적 통행로였다. 고린도는 좁은 지협 양쪽으로 동쪽으로는 겐그레아(Cenchrea) 항구를, 서쪽으로는 레게움(Lechaeum)이라고 하는 항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 항구를 통해 이탈리아, 스페인, 소아시아, 페니키아, 이집트 등지로부터 온 많은 양의 상품들이 유통되었다.

또한 고린도는 문화적으로 보면 비록 아테네와 같은 교육과 문화의 도시는 아니었으나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헬라 문화의 특징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 헬라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그 영향으로 지혜를 높이 평가하였다. 종교적으로도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태양의 신 아폴로(Apollo), ()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등을 숭배하는 12개의 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거대 상업 도시들이 으레 그렇듯이 고린도 역시 다양한 외부 문화에 개방적이었으며 어떤 부도덕한 풍습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하지 않았다. 특히 성() 문제는 그 사회의 도덕적 척도라 할 수 있는데, 고린도는 성적으로 문란하기로 유명한 도시였다. 한 예로 고린도의 가장 높은 곳인 아크로 고린도에 세워진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1,000여 명의 신전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매춘을 자행하는 종교적 창녀들이었다. 고린도가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하였는지 고린도화하다 (Corinthianize)’ 라는 말은 곧 성적 부정을 행하다라는 뜻으로 통용될 정도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린도 교회가 많은 도덕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약 성경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본 서신 이전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서신을 보낸 바 있었다(5:9). 즉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기 이전에도 고린도 교회에는 음행을 비롯한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본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을 이미 시작하여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에 있었는데(16:8,9), 거기서 바울은 여러 경로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1:11:16:17). 바울에게 들려온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이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빠졌다는 것이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음행 문제 뿐 아니라 심각한 분쟁까지 발생하였으며, 그 분쟁의 양상 또한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들의 인맥(人脈)을 중심으로 분파(分派)가 생기는가 하면, 또한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또 패가 갈라져 다투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영적 은사를 받은 자들이 저마다 자기의 은사를 내세우며 자랑하였고 주의 만찬은 오용(誤用)되고 있었으며, 예배는 무질서하였다. 또한 교리적으로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마치 독소처럼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당시 고린도 교회의 형편과 특징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여 제시할 수 있다. 즉 고린도 교회는 분명 지식이 풍족하며 영적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다(1:5-7).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하고(immature) 신령하지 못한 (unspiritual) 교회였다(3:1-4).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은 이처럼 은사는 풍족하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여전히 미숙하고 육신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고린도 교회의 오류들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교회의 분쟁, 성적 부도덕, 세상 법정에서의 소송, 결혼 및 이혼, 우상 제물의 식사, 주의 만찬, 영적 은사의 사용, 예배의 질서, 부활의 교리 등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목회적 관점(pastoral view)’에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고린도 교회 내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목회적 상황에 대해, 목회자의 심정(a pastor’s heart)을 가지고 진심 어린 책망과 권면 및 바른 진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서신은 특정 상황(occasion)과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 속에서 복음의 원리가 교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1세기의 고린도 교회가 처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복음에 입각하여 그 해결 지침과 원리들을 제시한다. 바울이 본 서신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중요한 관심사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 일부 문제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 속에만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오늘의 문화적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적적, 교리적 문제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복음의 원리는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관계없이 중요하다.

시대에 따라 교회를 분열시키고 오염시키는 문제들의 양상과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였던 복음의 원리들, 예를 들어 교회의 유일한 기초로서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령의 전으로서의 성도의 몸, 회의 성결을 유지하기 위한 권징(勸懲)의 시행,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는 목적과 원리, 부활의 교리 등은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 서신은 불변하는(unchanging) 복음의 진리가, 변화하는(changing) 시대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중요한 목회적 통찰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고린도전서 내용분해(목차)

1) 인사말(1:1-3)

2) 고린도 교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1:4-9)

3) 고린도 교회의 파당과 분열(1:10-4:21)

A. 고린도 교회의 파당에 대한 보고(1:10-17)

B. 십자가의 미련한 지혜(1:18-25)

C. 하나님이 미련한 자들을 선택하심(1:26-31)

D. 인간의 지혜 대 하나님의 영과 능력(2:1-5)

E.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성령의 계시(2:6-16)

F. 하나님의 종들의 사역을 평가함(3:1-17)

G.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법과 타인을 평가하는 법(3:18-4:5)

H. 십자가의 지혜의 모델로서의 사도들(4:6-13)

I. 그들의 아버지 바울을 본받으라는 호소(4:14-21)

4) 근친상간, 소송, 매춘(5:1-6:20)

A. 근친상간의 사례(5:1-8)

B. 교회 안에서 죄를 관용한 것에 대해 새롭게 경고함(5:9-13)

C. 소송들에 반대하는 권고(6:1-11)

D. 창녀를 찾아가지 말라는 권고(6:12-20)

5) 성관계, 이혼, 혼인에 대한 가르침(7:1-40)

A. 혼인 안에서의 성관계(7:1-5)

B. 미혼자들과 과부들의 독신 생활 및 혼인(7:6-9)

C. 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 및 비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에게 주는 이혼에 대한 가르침(7:10-16)

D. 논의의 기저에 있는 지도 원리: 현재 상태로 있으라(7:17-24)

E. 약혼자들과 과부들의 혼인의 적절성(7:25-40)

6) 우상에 바쳐진 음식에 대한 논쟁(8:1-11:1)

A. 우상에 바쳐진 음식 문제의 소개(8:1-6)

B.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치는 위험으로 인해 그들의 행위를 논박함(8:7-13)

C. 그의 권면을 뒷받침하는 바울 자신의 예(9:1-27)

D.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부정적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13)

E. 주의 만찬의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4-22)

F. 이교도적 환경에서 우상의 음식 문제를 다루기 위한 실천적 충고(10:23-11:1)

7) 공적 예배에서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11:2-16)

8) 주의 만찬에서의 분열(11:17-34)

9) 공적 예배에서의 영적 은사의 사용(12:1-14:40)

A. 영적 은사의 소개(12:1-3)

B.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12:4-11)

C. 몸의 지체들의 다양성과 상호 의존성(12:12-31)

D. 사랑: 가장 좋은 길(13:1-13)

E. 방언과 예언의 대조(14:1-19)

F. 예언을 선호함(14:20-25)

G. 예배를 위한 규정과 영적 은사에 대한 결론적 가르침(14:26-40)

10) 부활(15:1-58)

A. 서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선포와 믿음(15:1-11)

B.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12-19)

C. 죽은 자들의 부활이 사실이므로 생겨나는 결과(15:20-28)

D.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29-34)

E. 부활의 육체적 성격(15:35-49)

F. 모두가 변화될 것임(15:50-58)

11) 연보에 대한 가르침과 여행 일정(16:1-12)

12) 끝인사(16:13-24)

 

 

. 고린도전서의 내용

고린도전서의 내용은 1:1-9의 도입부, 1:10-15:58의 본론부, 그리고 16장의 종결부로 구분할 수 있다.

 

1)도입부(1:1~9)

도입부에서는 당시의 일반적인 서신 형식을 따라 칭찬과 감사 등 통상적 인사를 담고 있으며, 종결부에서는 본론부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당부와 문안 인사를 담고 있다.

 

2)본론부(1:10~15:58)

그리고 본론부 1:10-15:58은 내용에 따라 다시 1:10-6:20까지의 전반부7-15장까지의 후반부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먼저 전반부 1:10-6:20 주로 고린도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 및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 제7-15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서신을 통해 질문한 신앙 현안들에 대해 바울이 목회적 관점에서 답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A. 전반부(1:10~6:20)

·후반부 두 부분으로 크게 양분한 본론부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0-6:201:10-4:21과 제5, 6장으로 다시 세분할 수 있는데, 이중 1:10-4:21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분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바울은 글로에의 집편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분열 소식을 전해들은 것을 밝히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했던 자신의 고린도 전도사역을 회상시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지혜이자 능력으로서 성도에게는 오직 예수만이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나서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들의 인맥(人脈)을 따라 분파를 지어 다투는 문제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지적하며 책망한다. 더 나아가 교회의 유일한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도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며 우주적 연합체라는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분파를 지어 서로 다투는 것은 결국 그들의 교만 때문임을 지적하며 부성애(父性愛)에 기초하여 분쟁을 종식할 것을 권면한다.

이어 5, 6고린도 교회의 윤리 문제, 도덕적 무질서의 문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세 가지 문제, 근친상간의 죄, 도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문제, 그리고 음행 죄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심지어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자까지도 용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하며, 그 죄를 범한 자에 대한 단죄를 선언함과 동시에 교회가 누룩 없는 떡이 되기 위해서,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징을 시행해야 함을 촉구한다. 그리고 성도간의 문제는 교회 내에서 판단할 것이지 결코 세상 법정에서 불신자들의 판단에 맡기지 말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음행 죄와 관련하여서는, 성도들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 및 성령이 거하는 성령의 전이라는 관점에서 음행 죄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성전을 더럽히는 심각한 죄임을 경고하고 있다.

 

B. 후반부(7~15)

다음으로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제기한 질문에 대한 목회적 답변 형식을 띠고 있는 7-15장은 결혼과 이혼, 우상 제물의 취식, 공적 예배시의 질서, 부활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제기되던 신앙 생활 현안 중 중요한 네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7장은 결혼과 관련된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혼자의 결혼 문제 뿐 아니라, 부부 생활, 이혼 문제, 불신 배우자와 결혼했을 경우의 처신, 과부의 재혼 등 혼인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각각의 경우들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과 더불어 포괄적인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8:1-11:1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첨예한 의견 대립의 요소가 되었던 바,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지식적으로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가 아닌 사랑과 자유 절제의 차원에서 접근하여 답변을 제시한다. 즉 원칙적으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성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에도 자유하지만,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해서 그 자유를 절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직접 자신을 권리와 자유를 절제한 모범으로 제시하여 고린도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을 것을 촉구하고, 또한 이스라엘의 자유를 남용한 부정적인 본보기를 제시하여 성도는 자유를 절제할 것과 또한 먹고 마시는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유익을 위하라고 권면한다.

이어 11:2-14:40 공적 예배에 관한 교훈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공적 예배의 질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성찬 문제, 영적 은사의 사용 등 세 가지 문제에 상당 분량을 할애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바울은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영적 질서와 창조 원리 및 당시의 문화적 규례에 따라 여성은 순종의 표시로서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찬의 문제에 있어서는, 성찬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거룩한 의식임을 일깨움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성찬 참여자의 바른 자세를 교훈한다.

특히 영적 은사에 관한 바울의 교훈은 특기할 만한데, 바울은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조화롭게 교훈한다. 즉 교회에 나타나는 은사는 다양하지만 그 은사들은 모두 한 분 성령께 기원을 두고 있으며, 또한 각 은사들의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심도있게 제시하고 있다. 영적 은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문맥 속에 사랑을 주제로 노래한 유명한 제13장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곧 모든 영적 은사들의 사용의 원리가 곧 사랑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은사에 대한 결론적 권면에서 모든 은사를 질서있게 사용하고 또한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이 방언에 비해 예언의 은사를 높이 평가하고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권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 예언이 방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어 제15장은 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 기독교 신앙의 근거이자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되는 그리스도 부활의 의의, 부활 이후의 몸의 상태, 부활 신앙과 성도들의 삶의 실질적 관계 등을 심도있게 제시함으로써 당시 고린도 교회에 퍼져 있던 부활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3)종결부(16)

마지막으로 본 서신의 종결부인 16장은 본론부에서 다루지 않은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질문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의 문제에 대해 바울은 그 연보 수집 및 전달 방법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 디모데와 아볼로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후, 교회 내 충성스러운 일꾼들에 대해 존경과 복종을 보이라는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써 본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 메시지 요약

 

1) 타락한 세속 문화 속에서의 교회의 위상 정립

본 서신에 언급되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윤리적 문제들 중 상당 부분은 당시 고린도의 혼탁한 도덕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교회 내 근친 상간자를 용납할 정도로 심각했던 음행의 문제고린도의 부도덕한 분위기에 교회가 그대로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 서신의 행간(行間)에는 불신 세계의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고린도 교회의 위상에 대한 바울의 깊은 탄식이 서려 있다. 세속 문화에 대해서 각 지교회가 어떤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본 서신 전반에 걸친 행간의 메시지이다.

 

2) 분쟁하는 교회를 향한 메시지

고린도 교회는 분쟁으로 갈라져 있는 교회였으며 분쟁의 양상도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를 따라 패를 갈라 다투고,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또한 서로 반목하였다. 교회의 분쟁이 어디 고린도 교회에만 해당되는 문제이겠는가? 오히려 분쟁과 반목이 없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아닌가? 바울 사도는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부성애적(父性愛的) 책망과 권면 및 분쟁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교훈을 본 서신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비록 분쟁의 양상과 종류는 다르다 할지라도, 분열과 반목에 빠져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은 바울의 책망과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윤리 실천과 신앙 성숙의 관계

고린도 교회는 지식과 영적 은사들이 풍성한 교회였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성숙한 성도들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의 유치성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분파를 형성하여 서로 다투고, 교만하고, 세상 법정에 소송하고, 남의 유익보다 자신의 유익만 중시하는 등 윤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 성숙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은사를 가지고 능력을 행하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성숙한 신앙은 윤리적인 면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서신 전반에 흐르는 교훈의 맥락이다.

 

4) 성도의 몸은 곧 성전

바울은 음행 (sexual immorality)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성도가 음행 죄를 피해야 할 보다 본질적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의 몸은 곧 성전(holytemple)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 처소였다면, 신약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內住)하시는 실제적 임재의 처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음행의 죄를 비롯하여 몸으로써 짓는 죄를 멀리해야 할 본질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5)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중요 현안으로 떠올랐던 우상 제물의 식사 문제에 대해 가부(可否)의 차원에서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다. 사실 우상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그 문제를 둘러싼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였다. 즉 그것을 지식의 차원에서만 해결하려고 하고, 교회의 덕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지식에 앞서 사랑으로 해결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옳고 그름을 따지는 지식의 차원을 떠나, 자기보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복음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면,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지식에 앞선 사랑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원리이다.

 

6)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diversity and unity)

고린도 교회는 영적 은사가 풍성하였으나 저마다 자기 은사를 자랑할 뿐 그 은사들을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세우는 데 잘 활용하지 못했다. 바울은 제12장에서 각각의 성도들은 다양한 은사를 받았는데, 그 은사들을 주신 분은 동일한 성령이시며, 성령께서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의 유익이라고 하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서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달리 말하면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교회는 각 사람이 가진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고, 또한 다양한 은사들을 교회의 유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7) 사랑과 건덕

은사 사용의 대원칙. 바울은 제12-14장의 긴 지면을 할애하여 영적 은사에 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사랑과 건덕(love and edification)을 은사 사용의 대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은사의 바른 활용은 사랑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며, 은사 활용의 목적은 오직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건덕의 원칙 위에 은사들이 활용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더욱 조화와 질서 속에서 아름답게 성장해 갈 것이다.

 

8) 공적 예배의 바른 시행

고린도 교회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찬의 잘못된 시행, 은사의 남용 및 오용 등의 원인으로 인해 공적 예배의 질서가 무너졌다. 공적 예배의 질서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그 교회 성도 신앙 생활 전반이 무질서하고 체계가 잡히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율법적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반대로 아무 원칙도 질서도 없는 것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무질서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혼란과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모든 공적 예배는 반드시 조화와 질서 속에 드려져야 한다.

 

9) 부활 신앙과 성도의 삶

교리의 문제는 성도의 실제적 삶과 직결된다. 즉 성도들의 신앙과 사상과 삶의 태도는 그들이 믿고 있는 특정 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토대로서, 부활에 대해 불신한다면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만다. 바울은 소위 부활장이라 불리는 제15장에서 기독교 신앙이 허공 위에 세워지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하는 확고한 역사적 사실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과 최후의 승리를 보증한다는 것을 제시한 후, 성도들이 부활 신앙에 굳게 서서 주의 일에 수고하는 자들이 되기를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부활이야말로 성도의 최대, 최고의 소망이며, 주 안에서 인내하고 수고하는 모든 삶에 확실한 보상이 될 것이다.

 

 

2. 온 교회가 함께 받은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고전2:6~16)

1)본문내용(고전2:6~16)

첫째, 비밀한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언급함(6~7)

이제 온전한 자들 곧 성령의 역사로 진리를 깨닫는 자들에게 지혜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하고자 언급한다. 이 지혜는 현재의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며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님을 밝힌다. 즉 이 지혜는 하나님의 비밀한 지혜로서 성도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정해두시고 감추어두신 지혜다.

둘째,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 없음(8-~9)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통치자들 중 아무도 알지 못했다.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들이 일찍이 보지도, 듣지도,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셋째, 오직 성령만이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깨달아 알게 하심(10~11)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를 깨닫게 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 곧 하나님의 심오한 뜻과 속성과 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헤아려 살피신다. 사람의 속사정을 그 사람의 영 외에는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인 성령 외에는 알 수 없다.

넷째, 성도들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된 자들임(12~16)

성도들은 세상의 영이 아인 하나님께로서 온 영 곧 성령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증거할 때에 사람의 지혜의 말이 아닌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서만 전하는 바 영적 진리는 영적 표현으로 전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곧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하나님의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신령한 자 곧 거듭나서 성령이 내재하고 있는 사람은 영적인 것에 관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으며,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아니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 주를 가르치겠느냐는 구절이 있으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마음 곧 성령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2)영적 교훈

첫째, 인간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십자가의 도와 관련된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6).

둘째, 고린도교회의 분열이 하나님의 지혜를 온전히 깨닫지 못함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6)

셋째, 온전한 사람이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킨다(6).

넷째, 이 세상의 지혜나 통치자들의 지혜로서는 결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없다(6~7).

다섯째, 하나님의 지혜는 감추어져 있던 것으로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해 놓은 것이다(7).

여섯째, 하나님의 지혜는 은밀한 가운데 우리의 영광을 위해 예비하신 것이다(7).

일곱째, 이 세대의 통치자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8).

여덟째, 예수님은 영광의 주님이시다(8). 그리스도의 신성과 권위를 최고로 강조하는 칭호로서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이 참여할 영광의 유일한 근원이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미래를 완성하실 분이시다. 이런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홉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것들은 실로 엄청나다(9).

열째, 오직 성령만이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깨달아 알게 하신다(10).

열한째,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이 알고 있듯이, 하나님의 일도 오직 하나님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알지 못한다(11).

열두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있는 영을 받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을 받은 자들이다(12).

열셋째,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달아 알 수 있다(12).

열넷째, 영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13). 즉 성령이 계시한 것은 성령이 가르쳐준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열다섯째, 혼적인 사람은 자기의 영에 성령을 받지 못해 아직 영이 살아나지 못한 사람(새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으로서 물질적 차원에서 사는 자연인을 가리키며, 영적인 사람은 성령을 받아 영적인 차원에서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혼적인 사람은 미성숙한 상태에 있는 자며, 젖을 먹어야 할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숙한 자들을 가리키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성인들을 가리킨다.

열여섯째, 하나님의 비밀으러운 지혜와 경륜은 오직 영적으로만 분별된다(14).

열일곱째, 자연인이 아무리 많은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알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다(14).

열여덟째, 성령을 가진 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다(16).

열아홉째, 진정한 영원한 진리의 교과서는 성령의 지혜를 기록한 오직 성경 뿐이다(6).

스무째,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귀빈들이다(7).

스물한째,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만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예비하신 하나님의 지혜다(7).

스물두째, 하나님의 지혜는 비밀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7).

스물셋째,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드러내기 전까지는 비밀에 쌓여 있어 아무도 알 수 없다(7).

스물넷째, 하나님의 비밀한 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7).

스물다섯째,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복음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비밀로서 사람의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요, 보지도 못했던 것이요, 귀로도 듣지 못한 것이었다(8).

스물여섯째,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스도의 표적,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계시되었다(8).

스물일곱째, 전도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하는 것이다(9). 고로 이 세대의 통치자들 중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주님께서 오셔서 그토록 많은 말씀과 표적을 보여주었음에도 말이다.

스물여덟째,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으려면 반드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9).

스물아홉째, 이 세상에 있는 것도 너무 커서 볼 수 없고, 너무 작아도 볼 수 없는데, 영적인 세계에 계신 하나님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 하나님을 알 방법은 더 이상 없는 것이다(9).

서른째, 하나님의 지혜는 성령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10).

서른한째, 인간의 지혜로서는 도무지 도달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가 접근할 수 있다(10).

서른두째,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려면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야 한다. 성령의 조명하심과 깨닫게 하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13)

서른셋째, 성령을 통해서만 신령한 것들을 분별하고 설명할 수 있다(13). 신령한 것이란 사실 성령과 우리의 영이 하나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신령한 섭리도 느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받을 수도 있다.

서른넷째, 신령하게 사는 성도는 사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자을디다(15).

서른다섯째, 영에 속한 자는 다른 사람에게 판단받지 아니한다는 뜻은 결국 성령받은 성도가 세상 최고의 위치에 서 있을 수 있음을 말한다(15).

서른여섯째, 여호와의 영이나 그리스도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영도 시대마다 다른 모양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가짜가 진짜같이 행동하는 시련에 있기 때문이다(16).

서른일곱째,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다 드리는 것이다(16).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그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실한 마음, 온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16).

서른여덟째,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자라야 장차 임할 천국에서 예비각료가 될 수 있다(16).

 

 

예수님은 영광의 주님으로서 여호와를 대신하는 존재인가 또 다른 제 삼위의 하나님인가?

주님에 대한 호칭으로서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1318), 예수(919)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719).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칭호로 주님이 무려 6,156회나 사용되었다. 그리고 구약을 인용할 때에도 주님이라는 칭호는 계속 사용되었으며, 특별히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 여호와는 주님”(아도나이)로 번역되어 사용됨에 따라, 신약의 성경기자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에 여호와는 다 70인역에 따라 주님으로 인용했다. 그런데 신약시대 사람들이 주님을 부를 때나 제자들이 주님을 호칭할 때에도 주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주님이라는 칭호는 하나님과 예수님 둘 다 사용된 특별한 칭호다.

 

그렇다면, 바울은 주님이라는 칭호를 어떻게 사용했을까?

우선 첫째, 바울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와라는 칭호를 신약에서 인용할 때에 주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구약인용문에서 여호와를 대신하는 용어로서 주님이라는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4:7-8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0:13 누구든지 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2:32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40: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고전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40:13-14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고전3:20 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94: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고전10: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우선 둘째, 구약인용문을 제외하고는 주님이라는 용어는 오직 예수님에게 사용하여, “주 예수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며, 하나님에게는 아버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 아버지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셋째,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기독론적 칭호로서 주님은 이제 오직 예수님만을 칭하고 신앙고백하는 용어가 되었다.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4:4-6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고전12:4-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전8:5-6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특히 요한복음에 있어서주님(퀴리오스)”가 총53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을 지칭하는 모두가 다 예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그 용례를 구분해보면, 첫째, 부활기사 이전에는 퀴리에라는 호칭이 쓰이지만, 부활기사부터는 호 퀴리오스즉 정관사가 붙은, 독립적이면서 완전한 형태의 기독론적 칭호로 등장한다. 요한복음에는 오직 등장인물이 예수님을 칭하는 용어로 퀴리에로 호칭되는데, 요한복음의 전반부(1~12)에서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이 예수님을 퀴리에라고 칭하지만, 13장부터~17장에서는 제자들이 주님을 퀴리에라고 칭한다. 그리고 부활이후부터에는 완벽한 기독론적 칭호로서 호 퀴리오스”(주격), “톤 퀴리온”(목적격)이 등장한다. 물론 호격은 퀴리에이다.

 

 

< 고린도전서 2:6~16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십자가를 못박힌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비밀이었고 하나님의 지혜였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지혜는 이 세대의 지혜나 이 세대의 통치자들의 지혜로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지혜였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은밀히 감추어 있던 것으로서, 예수님의 세대 가운데 누구도 그 비밀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만세 전에 미리 정해놓으신 하나님의 지혜였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인류의 속죄와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영광의 주님의 등극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은밀한 지혜였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광의 주님으로서 우리 주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령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고 믿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여, 만세전에 품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우리 주 성령님을 통해서 계시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 믿는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온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동안 성령님을 의지하지 못했고 성령님의 인도를 간절히 사모하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주여, 이제는 성령님의 깨우쳐주심을 사모합니다.

주여, 이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사모합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만을 나의 주님으로 섬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성령으로 하나가 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지혜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한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령만이 하나님의 뜻과 비밀을 깨닫게 해주는 모사이신 것을 알지 못하게 방해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사모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십자가의 못박힌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나온 구원방법이었구나.

2.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은 만세전에 미리 정해놓으신 하나님의 구원방법이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었구나.

3.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과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을 수가 없구나.

4.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사탄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성령을 받은 자들이로구나.

5. 혼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가 없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고린도전서 헬라어 직역

2

(01) 그리고 나도 역시 너희를 향하여 간 후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전파하고 있으면서, 말과 지혜의 탁월함을 따라서 간 것은 아니다.

(02) 왜냐하면 너희 안에서 만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채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알아차린 채 있지 않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03) 그리고 나 역시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허약함 안에서 그리고 두려움 안에서 그리고 많은 떨림 안에 있게 되었다.

(04) 그리고 내 말과 그리고 내 선포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들 안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나타나심 안에서와 능력 안에서 [있게 되었다]

(05) 이는 너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 안에 [계속해서]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게 하려는 것이라.

(06) 그런데 우리가 완전한 자들 안에서 지혜를 발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대의 지혜를 말함이 아니요 또 이 세대의 없어지게 되는(폐하여지고 있는) 통치자들의 지혜를 말함도 아니다.

(07) 오히려 우리는 비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발언하고 있다. 이미 감추어진 채 있는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그 세대들 앞에 예정했던 그것(지혜).

(08) 이 세대의 통치자들은 아무도 그것(지혜)을 알아온 채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09) 오히려 그것이 기록된 채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자들에게 준비하셨던 그것들은 그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고, 사람의 마음 위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10)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영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내셨다(계시하셨다). 왜냐하면 그 영은 모든 것들 곧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자세히 살피시기 때문이다.

(11) 왜냐하면 사람의 일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라면, 사람들 중의 누가 알아온 채 있기 때문이냐?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들도 역시 만일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면 아무도 알아온 채 있지 못한다.

(12)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영을 취하지(받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는 영을 취하였으니(받았으니), 이는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졌던 것들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13) 우리도 역시 그것들을 발설하고 있다. 사람의 지혜의 가르침들의 말들 안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영의 가르침들 안에서. 영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들로 분별(비교)하고 있으면서.

(14) 그런데 혼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그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에게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그것들을 [단번에]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15) 그런데 영적인 자는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

(16) 왜냐하면 누가 주의 생각(이성=누스)을 알았기 때문인가? 그가 그분을 [장차] 가르칠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각(이성=누스)을 가지고 있다.

 

[크기변환]20210427_23084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