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08) 고린도전서강해(08) 하나님의 성전훼손 경고와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헌신적인 수고와 책망(고전3:16~4:21)_2021-05-12(수)

by 갈렙 posted May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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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12일(수) 수요기도회설교(부활절후여섯째주일)
[제  목] 고린도전서강해(08) 하나님의 성전훼손 경고와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헌신적인 수고와 책망
[찬  송] 찬 496장 새벽부터 우리, 찬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찬 505장 온 세상 위하여
[말  씀] 고전 3:16~4:21(신약 265면)
[키워드] 하나님의성전,교만,교회는하나님의것,복음사역자들에대한판단금지,겸손의모범,고린도교회성도들의교만,부성애적권면,디모데파송,말과능력

 

 

1. 서론

. 고린도전서의 기본 이해

본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여러 통의 서신 중 신약 성경에 보존된 두 편의 서신 가운데 제1서신으로서, 헬라어 원전의 제목은 프로스 코린디우스 알파이다. 이에 따라 한글 개역성경에서도 고린도전서로 명명되었다. 본 서신의 저자는 사도 바울(1:1,16:21)이다. 고린도전·후서의 기록 시기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하는 바,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기간(A, D, 53-58) 중 에베소에 머물던 시기인 A.D. 55년 봄 무렵(16:5-8; 20:31)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본 서신의 수신자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한 곳이며,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다. 그리고 본 서신의 내용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교회 생활과 관련한 제반 질문 사항에 대한 목회적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의 배경 이해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영적 ·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및 신앙생활 현안들에 대한 목회적 답변의 서신서라고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각 서신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먼저 수신자 문제와 관련하여, 본 서신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A.D.49-52) 약 일년 반 동안 사역하며 개척한(18:11)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일차적 수신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당시 고린도(Corinth)는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헬라의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우선 고린도는 헬라의 상업 중심 도시였다.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협(地峽)의 남쪽 2km 지점에 위치한 고린도는 수많은 여행자와 상인들의 필수적 통행로였다. 고린도는 좁은 지협 양쪽으로 동쪽으로는 겐그레아(Cenchrea) 항구를, 서쪽으로는 레게움(Lechaeum)이라고 하는 항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 항구를 통해 이탈리아, 스페인, 소아시아, 페니키아, 이집트 등지로부터 온 많은 양의 상품들이 유통되었다.

또한 고린도는 문화적으로 보면 비록 아테네와 같은 교육과 문화의 도시는 아니었으나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헬라 문화의 특징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 헬라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그 영향으로 지혜를 높이 평가하였다. 종교적으로도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태양의 신 아폴로(Apollo), ()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등을 숭배하는 12개의 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거대 상업 도시들이 으레 그렇듯이 고린도 역시 다양한 외부 문화에 개방적이었으며 어떤 부도덕한 풍습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하지 않았다. 특히 성() 문제는 그 사회의 도덕적 척도라 할 수 있는데, 고린도는 성적으로 문란하기로 유명한 도시였다. 한 예로 고린도의 가장 높은 곳인 아크로 고린도에 세워진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1,000여 명의 신전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매춘을 자행하는 종교적 창녀들이었다. 고린도가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하였는지 고린도화하다 (Corinthianize)’ 라는 말은 곧 성적 부정을 행하다라는 뜻으로 통용될 정도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린도 교회가 많은 도덕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약 성경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본 서신 이전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서신을 보낸 바 있었다(5:9). 즉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기 이전에도 고린도 교회에는 음행을 비롯한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본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을 이미 시작하여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에 있었는데(16:8,9), 거기서 바울은 여러 경로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1:11:16:17). 바울에게 들려온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이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빠졌다는 것이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음행 문제 뿐 아니라 심각한 분쟁까지 발생하였으며, 그 분쟁의 양상 또한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들의 인맥(人脈)을 중심으로 분파(分派)가 생기는가 하면, 또한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또 패가 갈라져 다투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영적 은사를 받은 자들이 저마다 자기의 은사를 내세우며 자랑하였고 주의 만찬은 오용(誤用)되고 있었으며, 예배는 무질서하였다. 또한 교리적으로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마치 독소처럼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당시 고린도 교회의 형편과 특징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여 제시할 수 있다. 즉 고린도 교회는 분명 지식이 풍족하며 영적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다(1:5-7).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하고(immature) 신령하지 못한 (unspiritual) 교회였다(3:1-4).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은 이처럼 은사는 풍족하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여전히 미숙하고 육신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고린도 교회의 오류들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교회의 분쟁, 성적 부도덕, 세상 법정에서의 소송, 결혼 및 이혼, 우상 제물의 식사, 주의 만찬, 영적 은사의 사용, 예배의 질서, 부활의 교리 등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목회적 관점(pastoral view)’에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고린도 교회 내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목회적 상황에 대해, 목회자의 심정(a pastor’s heart)을 가지고 진심 어린 책망과 권면 및 바른 진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서신은 특정 상황(occasion)과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 속에서 복음의 원리가 교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1세기의 고린도 교회가 처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복음에 입각하여 그 해결 지침과 원리들을 제시한다. 바울이 본 서신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중요한 관심사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 일부 문제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 속에만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오늘의 문화적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적적, 교리적 문제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복음의 원리는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관계없이 중요하다.

시대에 따라 교회를 분열시키고 오염시키는 문제들의 양상과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였던 복음의 원리들, 예를 들어 교회의 유일한 기초로서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령의 전으로서의 성도의 몸, 회의 성결을 유지하기 위한 권징(勸懲)의 시행,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는 목적과 원리, 부활의 교리 등은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 서신은 불변하는(unchanging) 복음의 진리가, 변화하는(changing) 시대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중요한 목회적 통찰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고린도전서 내용분해(목차)

1) 인사말(1:1-3)

2) 고린도 교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1:4-9)

3) 고린도 교회의 파당과 분열(1:10-4:21)

A. 고린도 교회의 파당에 대한 보고(1:10-17)

B. 십자가의 미련한 지혜(1:18-25)

C. 하나님이 미련한 자들을 선택하심(1:26-31)

D. 인간의 지혜 대 하나님의 영과 능력(2:1-5)

E.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성령의 계시(2:6-16)

F. 하나님의 종들의 사역을 평가함(3:1-17)

G.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법과 타인을 평가하는 법(3:18-4:5)

H. 십자가의 지혜의 모델로서의 사도들(4:6-13)

I. 그들의 아버지 바울을 본받으라는 호소(4:14-21)

4) 근친상간, 소송, 매춘(5:1-6:20)

A. 근친상간의 사례(5:1-8)

B. 교회 안에서 죄를 관용한 것에 대해 새롭게 경고함(5:9-13)

C. 소송들에 반대하는 권고(6:1-11)

D. 창녀를 찾아가지 말라는 권고(6:12-20)

5) 성관계, 이혼, 혼인에 대한 가르침(7:1-40)

A. 혼인 안에서의 성관계(7:1-5)

B. 미혼자들과 과부들의 독신 생활 및 혼인(7:6-9)

C. 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 및 비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에게 주는 이혼에 대한 가르침(7:10-16)

D. 논의의 기저에 있는 지도 원리: 현재 상태로 있으라(7:17-24)

E. 약혼자들과 과부들의 혼인의 적절성(7:25-40)

6) 우상에 바쳐진 음식에 대한 논쟁(8:1-11:1)

A. 우상에 바쳐진 음식 문제의 소개(8:1-6)

B.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치는 위험으로 인해 그들의 행위를 논박함(8:7-13)

C. 그의 권면을 뒷받침하는 바울 자신의 예(9:1-27)

D.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부정적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13)

E. 주의 만찬의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4-22)

F. 이교도적 환경에서 우상의 음식 문제를 다루기 위한 실천적 충고(10:23-11:1)

7) 공적 예배에서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11:2-16)

8) 주의 만찬에서의 분열(11:17-34)

9) 공적 예배에서의 영적 은사의 사용(12:1-14:40)

A. 영적 은사의 소개(12:1-3)

B.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12:4-11)

C. 몸의 지체들의 다양성과 상호 의존성(12:12-31)

D. 사랑: 가장 좋은 길(13:1-13)

E. 방언과 예언의 대조(14:1-19)

F. 예언을 선호함(14:20-25)

G. 예배를 위한 규정과 영적 은사에 대한 결론적 가르침(14:26-40)

10) 부활(15:1-58)

A. 서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선포와 믿음(15:1-11)

B.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12-19)

C. 죽은 자들의 부활이 사실이므로 생겨나는 결과(15:20-28)

D.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29-34)

E. 부활의 육체적 성격(15:35-49)

F. 모두가 변화될 것임(15:50-58)

11) 연보에 대한 가르침과 여행 일정(16:1-12)

12) 끝인사(16:13-24)

 

 

. 고린도전서의 내용

고린도전서의 내용은 1:1-9의 도입부, 1:10-15:58의 본론부, 그리고 16장의 종결부로 구분할 수 있다.

 

1)도입부(1:1~9)

도입부에서는 당시의 일반적인 서신 형식을 따라 칭찬과 감사 등 통상적 인사를 담고 있으며, 종결부에서는 본론부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당부와 문안 인사를 담고 있다.

 

2)본론부(1:10~15:58)

그리고 본론부 1:10-15:58은 내용에 따라 다시 1:10-6:20까지의 전반부7-15장까지의 후반부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먼저 전반부 1:10-6:20 주로 고린도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 및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 제7-15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서신을 통해 질문한 신앙 현안들에 대해 바울이 목회적 관점에서 답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A. 전반부(1:10~6:20)

·후반부 두 부분으로 크게 양분한 본론부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0-6:201:10-4:21과 제5, 6장으로 다시 세분할 수 있는데, 이중 1:10-4:21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분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바울은 글로에의 집편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분열 소식을 전해들은 것을 밝히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했던 자신의 고린도 전도사역을 회상시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지혜이자 능력으로서 성도에게는 오직 예수만이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나서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들의 인맥(人脈)을 따라 분파를 지어 다투는 문제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지적하며 책망한다. 더 나아가 교회의 유일한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도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며 우주적 연합체라는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분파를 지어 서로 다투는 것은 결국 그들의 교만 때문임을 지적하며 부성애(父性愛)에 기초하여 분쟁을 종식할 것을 권면한다.

이어 5, 6고린도 교회의 윤리 문제, 도덕적 무질서의 문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세 가지 문제, 근친상간의 죄, 도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문제, 그리고 음행 죄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심지어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자까지도 용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하며, 그 죄를 범한 자에 대한 단죄를 선언함과 동시에 교회가 누룩 없는 떡이 되기 위해서,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징을 시행해야 함을 촉구한다. 그리고 성도간의 문제는 교회 내에서 판단할 것이지 결코 세상 법정에서 불신자들의 판단에 맡기지 말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음행 죄와 관련하여서는, 성도들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 및 성령이 거하는 성령의 전이라는 관점에서 음행 죄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성전을 더럽히는 심각한 죄임을 경고하고 있다.

 

B. 후반부(7~15)

다음으로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제기한 질문에 대한 목회적 답변 형식을 띠고 있는 7-15장은 결혼과 이혼, 우상 제물의 취식, 공적 예배시의 질서, 부활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제기되던 신앙 생활 현안 중 중요한 네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7장은 결혼과 관련된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혼자의 결혼 문제 뿐 아니라, 부부 생활, 이혼 문제, 불신 배우자와 결혼했을 경우의 처신, 과부의 재혼 등 혼인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각각의 경우들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과 더불어 포괄적인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8:1-11:1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첨예한 의견 대립의 요소가 되었던 바,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지식적으로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가 아닌 사랑과 자유 절제의 차원에서 접근하여 답변을 제시한다. 즉 원칙적으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성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에도 자유하지만,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해서 그 자유를 절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직접 자신을 권리와 자유를 절제한 모범으로 제시하여 고린도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을 것을 촉구하고, 또한 이스라엘의 자유를 남용한 부정적인 본보기를 제시하여 성도는 자유를 절제할 것과 또한 먹고 마시는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유익을 위하라고 권면한다.

이어 11:2-14:40 공적 예배에 관한 교훈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공적 예배의 질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성찬 문제, 영적 은사의 사용 등 세 가지 문제에 상당 분량을 할애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바울은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영적 질서와 창조 원리 및 당시의 문화적 규례에 따라 여성은 순종의 표시로서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찬의 문제에 있어서는, 성찬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거룩한 의식임을 일깨움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성찬 참여자의 바른 자세를 교훈한다.

특히 영적 은사에 관한 바울의 교훈은 특기할 만한데, 바울은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조화롭게 교훈한다. 즉 교회에 나타나는 은사는 다양하지만 그 은사들은 모두 한 분 성령께 기원을 두고 있으며, 또한 각 은사들의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심도있게 제시하고 있다. 영적 은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문맥 속에 사랑을 주제로 노래한 유명한 제13장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곧 모든 영적 은사들의 사용의 원리가 곧 사랑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은사에 대한 결론적 권면에서 모든 은사를 질서있게 사용하고 또한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이 방언에 비해 예언의 은사를 높이 평가하고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권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 예언이 방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어 제15장은 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 기독교 신앙의 근거이자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되는 그리스도 부활의 의의, 부활 이후의 몸의 상태, 부활 신앙과 성도들의 삶의 실질적 관계 등을 심도있게 제시함으로써 당시 고린도 교회에 퍼져 있던 부활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3)종결부(16)

마지막으로 본 서신의 종결부인 16장은 본론부에서 다루지 않은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질문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의 문제에 대해 바울은 그 연보 수집 및 전달 방법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 디모데와 아볼로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후, 교회 내 충성스러운 일꾼들에 대해 존경과 복종을 보이라는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써 본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 메시지 요약

 

1) 타락한 세속 문화 속에서의 교회의 위상 정립

본 서신에 언급되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윤리적 문제들 중 상당 부분은 당시 고린도의 혼탁한 도덕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교회 내 근친 상간자를 용납할 정도로 심각했던 음행의 문제고린도의 부도덕한 분위기에 교회가 그대로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 서신의 행간(行間)에는 불신 세계의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고린도 교회의 위상에 대한 바울의 깊은 탄식이 서려 있다. 세속 문화에 대해서 각 지교회가 어떤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본 서신 전반에 걸친 행간의 메시지이다.

 

2) 분쟁하는 교회를 향한 메시지

고린도 교회는 분쟁으로 갈라져 있는 교회였으며 분쟁의 양상도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를 따라 패를 갈라 다투고,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또한 서로 반목하였다. 교회의 분쟁이 어디 고린도 교회에만 해당되는 문제이겠는가? 오히려 분쟁과 반목이 없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아닌가? 바울 사도는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부성애적(父性愛的) 책망과 권면 및 분쟁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교훈을 본 서신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비록 분쟁의 양상과 종류는 다르다 할지라도, 분열과 반목에 빠져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은 바울의 책망과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윤리 실천과 신앙 성숙의 관계

고린도 교회는 지식과 영적 은사들이 풍성한 교회였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성숙한 성도들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의 유치성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분파를 형성하여 서로 다투고, 교만하고, 세상 법정에 소송하고, 남의 유익보다 자신의 유익만 중시하는 등 윤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 성숙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은사를 가지고 능력을 행하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성숙한 신앙은 윤리적인 면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서신 전반에 흐르는 교훈의 맥락이다.

 

4) 성도의 몸은 곧 성전

바울은 음행 (sexual immorality)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성도가 음행 죄를 피해야 할 보다 본질적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의 몸은 곧 성전(holytemple)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 처소였다면, 신약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內住)하시는 실제적 임재의 처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음행의 죄를 비롯하여 몸으로써 짓는 죄를 멀리해야 할 본질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5)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중요 현안으로 떠올랐던 우상 제물의 식사 문제에 대해 가부(可否)의 차원에서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다. 사실 우상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그 문제를 둘러싼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였다. 즉 그것을 지식의 차원에서만 해결하려고 하고, 교회의 덕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지식에 앞서 사랑으로 해결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옳고 그름을 따지는 지식의 차원을 떠나, 자기보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복음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면,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지식에 앞선 사랑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원리이다.

 

6)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diversity and unity)

고린도 교회는 영적 은사가 풍성하였으나 저마다 자기 은사를 자랑할 뿐 그 은사들을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세우는 데 잘 활용하지 못했다. 바울은 제12장에서 각각의 성도들은 다양한 은사를 받았는데, 그 은사들을 주신 분은 동일한 성령이시며, 성령께서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의 유익이라고 하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서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달리 말하면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교회는 각 사람이 가진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고, 또한 다양한 은사들을 교회의 유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7) 사랑과 건덕

은사 사용의 대원칙. 바울은 제12-14장의 긴 지면을 할애하여 영적 은사에 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사랑과 건덕(love and edification)을 은사 사용의 대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은사의 바른 활용은 사랑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며, 은사 활용의 목적은 오직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건덕의 원칙 위에 은사들이 활용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더욱 조화와 질서 속에서 아름답게 성장해 갈 것이다.

 

8) 공적 예배의 바른 시행

고린도 교회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찬의 잘못된 시행, 은사의 남용 및 오용 등의 원인으로 인해 공적 예배의 질서가 무너졌다. 공적 예배의 질서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그 교회 성도 신앙 생활 전반이 무질서하고 체계가 잡히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율법적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반대로 아무 원칙도 질서도 없는 것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무질서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혼란과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모든 공적 예배는 반드시 조화와 질서 속에 드려져야 한다.

 

9) 부활 신앙과 성도의 삶

교리의 문제는 성도의 실제적 삶과 직결된다. 즉 성도들의 신앙과 사상과 삶의 태도는 그들이 믿고 있는 특정 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토대로서, 부활에 대해 불신한다면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만다. 바울은 소위 부활장이라 불리는 제15장에서 기독교 신앙이 허공 위에 세워지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하는 확고한 역사적 사실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과 최후의 승리를 보증한다는 것을 제시한 후, 성도들이 부활 신앙에 굳게 서서 주의 일에 수고하는 자들이 되기를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부활이야말로 성도의 최대, 최고의 소망이며, 주 안에서 인내하고 수고하는 모든 삶에 확실한 보상이 될 것이다.

 

 

2. 성령이 거하는 성전인 교회의 훼손에 대한 경고 및 교회분열의 원인이 되는 교만에 대한 경계(고전3:16~23)

1)본문내용(고전3:16~23)(

첫째, 교회는 곧 하나님의 성전으로 이를 훼손하는 자는 멸망될 것을 경고함(16~17)

성도 공동체 곧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신다. 누구든지 이같은 고귀한 교회를 훼손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성도들이 곧 성전이다.

둘째, 세상 지혜를 따라 특정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침으로 교만하지 말 것을 명함(18~21a)

자기를 속여 지혜있는 자로 여기지 말 것과 오히려 세상의 기준으로 지혜로운 자는 미련한 자가 되어야만 영적으로도 진정 지혜로운 자가 될 것이라고 역석한다. 욥기와 시편 구절을 각각 인용하여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는 오히려 미련한 것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세상 지혜를 따라 특정지도자를 내세우지 말 것을 권고한다.

셋째, 만물은 교회에,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속하며, 결국 하나라는 교회의 우주적인 유기성을 강조함(21b~23)

만물이 다 교회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의 것임을 밝힌다. 구체적으로 바울, 아볼로, 게바 등ㅊ 복음사역자들을 포함하여 우주만물과 그 속의 모든 현상들이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다. 또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인 바, 교회는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의 대유기체임을 강조함으로써 교회분열의 부당성을 거듭 시사한다.

 

2)영적 교훈

바울은은 이제 본 문단에서 각 성도를 향하여 보다 직접적으로 성령이 거하는 성전인 교회를 훼손시키는 일에 대한 경고를 줌과 동시에 교회분열의 원인이 되는 교만을 경계한다.

첫째, 성도는 교회로서 하나님의 경작지(농장)이요, 하나님의 건축물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성전이다(16)

둘째,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성소=나오스)이라고 함은 교회가 구약시대에 성막이나 성전과 같다는 것인데, 여기서 성전이란 지성소와 성소만을 언급함으로,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서 거룩한 것임을 말한다(16).

셋째,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인데 성전을 더럽히게 되면 하나님께서 교회에 징계를 내리신다(17)

고린도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처소인데 교회 안에는 분쟁, 성적방종, 세상법정제소, 우상제물취식문제, 은사문제, 부활논쟁 등이 있었다. 고로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고린도교회를 멸망시키고 말 것이다. 성도들은 자신의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처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넷째,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자기 꾀에 빠질 뿐임으로 성도들은 지혜있는 줄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18~20). 세상의 지혜를 내세워 분열을 일삼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독한 어리석음인 것이다.

다섯째, 세상의 지혜는 무력하고 공허하다(20)

여섯째, 교회가 교회지도자와 같은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교회의 사역자들은 교회를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21).

일곱째, 모든 것들은 교회를 위해 있고,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해 있으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해 있으니, 모든 것들 곧 교회의 지도자들까지도 다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있는 것이다(22~23).

여덟째, 교회의 성도들은 고귀한 존재다. 왜냐하면 장차 만물의 주권자요 상속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23).

아홉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역의 일부로서 종속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과 뜻을 성취하기 때문이다(23).

 

 

3. 복음사역자들에 대한 판단금지 명령(고전4:1~5)

1)본문내용(고전4:1~5)

첫째, 복음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들로 간주되어야 함(1).

둘째, 복음의 청지기인 사역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뿐임(2)

셋째, 복음사역자들에 대한 판단은 최종적으로 주께 달려 있음(3~5)

그 역시 한 사람의 사역자인 바울자신은 타인의 판단에 개의치 않으며, 자신 역시 자신조차 판단치 않고 있다. 또한 바울 자신은 스스로 자책할 것이 없으나 그 사실이 자기를 의롭게 하지는 못하며, 오직 자신을 판단하실 분은 주님뿐이시다. 따라서 성도들도 주께서 오시기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 오실 때에 감추인 일들과 마음의 동기까지 모두 드러내심으로 각 사람은 그에 합당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영적 교훈

바울은 복음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이므로 인간적인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첫째, 교회의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사환)이며서 동시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이다(1)

여기서 일꾼이라는 말은 배 아래에서 노를 젓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였으나 점차 충성을 다하는 일꾼이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단어는 디아코노이(사역자들)”와 동일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고전3:5). 동시에 복음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다. 감취었다고 공개된 것으로 그것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설명하는 자가 보라 하나님의 사역자들인 것이다. 복음사역자들은 양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 복음사역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이다(2)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좋은 언변이나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충성됨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주인의 뜻을 살펴 그분에게 적극적으로 충성해야 한다.

셋째, 복음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라고 보낸 사역자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인간적인 잣대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3~5).

넷째, 교역자를 판단하는 것은 교만한 일이다(3). 왜냐하면 주님의 평가에 비해 인간의 평가는 불완전하며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인간적인 평가를 절대화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판단마저 절대화하지 않는다고 하였다(3~4).

다섯째,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자책할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의롭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심판하시는 이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4). 오직 완전하신 예수님만이 심판날에 재판관이 되신다.

여섯째, 주께서 재림하시어 심판하는 것만이 완전하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기준을 절대적인 가치를 여기며 타인에 대해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유일한 심판주로 오시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월권행위를 하는 것이다(5). 너무 조급하고 경솔하게 남을 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완전하고 확정적인 평가는 최후 심판의 날이기 때문이다. 각 사람에 대한 확정판결권은 오직 주님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일곱째, 오직 예수님만이 감추인 것을 모두 드러내서 심판하실 것이다(5). 그때 종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직무를 따라 그들이 감당했던 것에 대하여 칭찬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할 것이다(5).

여덟째,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말씀으로 성도를 돌보고 양육하는 일이다(1). 이를 위해 목회자는 말씀연구와 묵상 그리고 기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홉째, 교회와 성도는 교역자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대접해야 한다(1). 왜냐하면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꾼이요 말씀맡은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땅히 목회자를 존경하며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높여 추종해서는 아니 된다.

열째, 복음사역자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가져야 한다(3). 그것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할 일을 다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진리라는 것을 직시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4. 사도들의 겸손의 모범에 대조되는 고린도교인들의 교만에 대한 책망(고전4:6~13)

1)본문내용(고전4:6~13)

첫째, 바울 자신과 아볼로는 공히 겸손의 본을 보였음을 밝힘(6)

바울과 아볼로는 서로를 대적하거나 판단치 않은 겸손의 본을 보였다. 사도들이 본을 보인 것은 곧 고린도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본받아 서로 대적하는 교만을 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둘째, 사도들과 대조적으로 스스로 왕노릇하는 고린고 교인들의 영적인 교만을 지적함(7~8)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냐라고 질문함으로써 서로 분파를 만들어 자랑하는 고린도 교인들이 서로에 대해 자신을 낫게 여길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않다고 지적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 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도들에게 배운 자들이면서도 사도들을 따르지 않고 이미 배부르고 부요한 자처럼 왕노릇하는 그들의 교만을 지적한다. 사도들도 저들과 함께 왕노릇하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이 진정 왕노릇하기를 원한다 함으로써 아직 종말론적 차원에서 왕노릇할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왕노릇하는 그들의 교만을 간접적으로 지적하며 책망한다.

셋째, 복음을 위한 사도들의 끝없는 고난과 겸손을 열거함으로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교만을 간접적으로 책망함(9~13)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도들을 세상의 가장 말석에 처하게 하셨으며, 원형 경기장에서 죽임당하는 죄수처럼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미련하교 약하고 비천하게 되었으나 고린도교dslemf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로우며, 강하고 존귀하게 되었음에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교만해하는 부당성을 지적한다. 처절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와 겸손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사도들의 눈물겨운 모습을 묘사한다.

 

2)영적 교훈

사도바울은 스스로 왕노릇하는 교만한 고리든 교인들과 복음을 위해 끝없이 고난을 받으며 겸손의 본을 보이는 사도들을 대조하며 기록함으로서 고린도교인들의 교만을 책망한다.

첫째, 주의 말씀사역자들은은 서로 경쟁관계가나 적대관계가 아니라 협력을 추구하는 동역자관계다(6). 즉 바울과 아불로는 심는 자와 물 주는 자, 터를 닦은 자와 건축하는 자로서 셔로 협력관계로서 모범을 보였다.

둘째, 교회의 사역자들은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6).

셋째, 자기자신을 자화자찬하는 교만한 마음에서 교회의 분쟁과 분열이 생긴다(6).

넷째, 받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배운 것인데 마치 그것을 자기 것인량 해서는 오만해지고 그릇된 자만심과 교만함으로 발전할 수 있다(7~8). 고린도교회는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과 모든 은사를 하나님께로부터 풍족하게 받았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자기의 것인량 생각했다. 그것을 교만이라고 한다.

다섯째, 바울사역팀은 가장 낮은 자가 되어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전락할만큼 어려움을 당했으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벌써 다 이룬 것이량 서로 왕노릇하려고 했다(9)

여섯째, 복음전도자들은 자신을 구경거리와 세상의 쓰레기와 만물의 찌꺼기가 된다고해고 복음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것을 감당하는 자다(9,13)

일곱째, 힘써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로 배우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6). 배우는 자의 자셰가 나쁘면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여덟째, 진정으로 신령하고 진리를 아는 자는 일정한 한계와 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넘어가지 않는 자이다(6). 자유와 방종의 한계를 혼돈하지 않는 것이다.

아홉째, 성도는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날 때 신앙의 정도에서 벗어나게 된다(6)

열째, 성도들이 가진 모든 것은 사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받은 것들이다(7).

열한째, 성도들은 지금 왕관을 쓸 때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그분이 씌워주는 왕관을 받아써야 한다(8).

열두째, 고난 중에서도 선으로 악을 갚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이다(11~13)

 

 

5. 고린도교회의 분쟁종식을 위한 바울의 부성애적 권면(고전4:14~21)

1)본문내용(고전4:14~21)

첫째, 고린도교인들로 바울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함(14~16)

분열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직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는 자녀처럼 권면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 안에서 스승은 많으나 아비는 많지 않은 바 자신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아비의 심정으로 복음사역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고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자신을 본받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한다.

둘째, 디모데 파송 사실을 밝힘(17)

고린도 교회에 자신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파송함을 밝힌다. 바울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천하고 있으며 각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디모데가 일깨워줄 것이라고 한다.

셋째,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경계하며 바울의 직접 방문 가능성을 밝힘(18~21).

고린도교회 교인일부는 바울자신이 직접 고린도 교회에 방문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교만하여졌다. 그러나 자신은 주께서 허락하시면 속히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교만한 자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알아볼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매를 가지고 갈지,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갈지는 무엇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교만을 경계한다.

 

2)영적 교훈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쟁종식을 위해 부성애적인 권면을 한다. 그리고 디모데를 파송한다는 말을 함으로 그들이 바른 길로 오기를 바랬다.

첫째, 주의 종에게는 책망을 해도 아버지가 자녀를 훈계하듯 사랑 안에서 책망해야 한다(14).

둘째, 능력이 없는 웅변이나 세상적인 지혜는 그저 사라지고 말 연기와 같은 것이다(19).

셋째, 듣고 회개하면 평강이 올 것이요 듣지 않고 거부하면 징계가 뒤따른다(21)

넷째, 회초리는 드는 자의 마음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를 수 있다(14).

다섯째, 훈계와 책망이라고 사랑이 전제 되어야 한다(14).

여섯째, 참된 복음사역이란 말씀으로 한 영혼을 살라는 것이다(15).

일곱째, 오늘은 말씀이 아니라 모범이 단절된 비극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비극이다(16).

여덟째, 주님께서 매를 가지고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매를 맞더라도 회개하는 것이 더 낫다(18).

아홉째, 하나님의 나라는 말로 전달되지만 그 핵심은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다(19).

열째, 사역자들은 항상 엄격함과 더불어 부드러움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21).

 

 

 

< 고린도전서 3:16~4:21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교회의 분열과 분쟁은 교만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더럽히는 자는 멸망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만 자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들은 교회의 사역자들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역자들을 판단하실 수 있는 이는 완전하신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역자들은 모범을 보이는 존재요 성도들이 본받기를 사모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역자들은 엄격함과 아울러 부드러움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교만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교회를 더럽히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만 자랑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말씀사역자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말솜씨가 아니라 능력있는 자가 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구변과 지식과 은사를 가진 자들로 부추겨 자신이 무엇인가 된 것처럼 교만하게 만들어온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주의 종을 함부로 판단하게 하고 교회를 분열하게 만들어온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오늘도 겸손히 행하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있는 자가 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거룩한 교회를 더럽히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멸하시고 마는구나.

2. 성도는 사람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만을 자랑해야 하는구나.

3.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사역자들은 성도의 사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비밀한 말씀을 맡은 청지기들이로구나.

4. 함부로 사역자들을 판단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판의 권리를 자신이 월권하는 행위였구나.

5. 하나님의 나라는 말 잘하는 것으로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었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고린도전서 헬라어직역

3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소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온 채 있지 아니하느냐?

(17) 만일 어떤 이가 하나님의 성소를 부패시키고(파멸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그이를 [장차] 파멸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소는 거룩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그러한 이들이다.

(18) 아무도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속이고 있지 말아라. 만일 너희 안에서 누구든지 이 세대 안에서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단번에] 어리석게 되어라. 자기가 지혜롭게 되기 위하여.

(19) 왜냐하면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록된 채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들의 교활함 안에서 빠뜨리고 있는 분이 [있다]

(20) 그리고 다시 [기록된 채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들(디아로기스모스)을 그것들이 헛된 것들이라고 아신다.

(21) 그 결과 아무도 사람들 안에서 자랑하지 말고 있어라. 왜냐하면 모든 것이 너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22) 그리고 만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죽음(사망)이나, 현존한 채 있는 것들이나 장차 오려고 하는 것들이라도 모든 것들은 너희들의 것이다.

(23)

그런데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런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

 

4

(01) 이와같이 사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환들(휘페레타스)처럼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들의 청지기들(오이코노무스)처럼 [계속] 여기고 있어라.

(02) 여기에 나머지 것은 청지기들 안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는 누구든지 신실한 이로 발견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03) 그런데 그것은 내게는 가장 작은 일 안으로 있다. 이는 내가 너희에 의하여 혹은 사람의 날에 의하여 판단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

(04)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에게 아무것도 함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 안에서 의롭게 된 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심문(조사)하고 있는 이는 주님이시다.

(05) 그 결과, 너희는 정한 때 전에 곧 주께서 오실 때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고 있어라. 이런 그분이 역시 [장차] 감추인 것들을 밝히 비추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장차] 마음들의 의도들을 드러내실 것이다. 역시 그 때에 각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장차] 있게 될 것이다.

(06) 그런데 형제들아 내가 너희 때문에 이 일들을 나 자신과 아볼로 안으로 적용시켰다. 이는 너희가 우리 안에서 기록된 채 있는 바 그것들(말씀들)인 그것 밖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너희가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너희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대적하여 교만하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07) 왜냐하면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분별)하기 때문이냐? 그런데 네가 취하지 않았던 바 무엇을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냐? 그런데 만일 네가 역시 취했다면(받았다면) 너는 어찌하여 취하지(받지) 않았던 것처럼 자랑하고 있느냐?

(08) 너희는 이미 배부르게 된 채 있다. 너희는 이미 풍성하였다. 우리 없이도 너희는 왕으로 통치하였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왕으로 통치하기를 원한다. 우리도 역시 너희와 함께 왕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09)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도들인 우리를 죽음이 선고된 이들처럼 맨 마지막으로 이들(사도들)로 임명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10) 우리 자신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이들이다. 그런데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현명한 이들이다. 우리는 연약하나 그런데 너희는 힘있는 이들이다. 너희는 영광스러우나 우리는 명예스럽지 못한 이들이다.

(11) 지금 이 시각까지 우리도 역시 굶주리고 있고 그리고 목마르고 있으며 그리고 헐벗고 있으며 그리고 주먹질당하고(매맞고) 있으며 그리고 정처가 없으며

(12) 그리고 우리 자신의 손들로 일을 하면서 수고하고 있다. 우리는 모욕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축복한다. 우리는 박해를 받고 있으면서도 참는다.

(13) 우리는 비방을 받고 있으면서도 권면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쓰레기들처럼 모든 것들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고 있으면서(하려고) 이것들을 쓰고 있지 않다. 오히려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들같이 훈계하려고 한다.

(15) 왜냐하면 만일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의(무수한) 스승들을 갖고 있더라도, 오히려 많은 아버지들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기 때문이다.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면한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들이 되고 있어라.

(17) 이것 때문에 내가 주 안에서 나의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인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다. 이런 그이는 너희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것들인 나의 길들을 [장차] 생각나게 할 것이다. 내가 모든 곳 곧 모든 교회 안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대로.

(18) 그런데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를 향하여 가지 않고 있는 것처럼 교만하였다.

(19) 그런데 만일 주께서 원하신다면 내가 너희를 향하여 [장차] 속히 갈 것이다. 그리고 교만하게 된 채 있는 이들의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능력을 [장차] 알아볼 것이다.

(20)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말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능력 안에 있기 때문이다.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 안에서 너희를 향하여 가야 하는가? 혹은 사랑 안에서 또 온유한 영 안에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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