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11) 그리스도인의 결혼 이혼 재혼 독신에 관한 질문에 답하다(고전7:1~40)_2021-06-02(수)

by 갈렙 posted Jun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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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02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첫째주일)
[제  목] 고린도전서강해(11) 그리스도인의 결혼 이혼 재혼 독신에 관한 질문에 답하다
[찬  송] 찬 536장 죄짐에 눌린 사람은, 찬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찬 421장 내가 예수 믿고서

[말  씀] 고전 7:1~40(신약 269면)
[키워드] 그리스도의 부부생활, 미혼자의 결혼, 불신자와의 이혼, 과부의 재혼, 독신생활, 부름받은 은사

 

1. 서론

. 고린도전서의 기본 이해

본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여러 통의 서신 중 신약 성경에 보존된 두 편의 서신 가운데 제1서신으로서, 헬라어 원전의 제목은 프로스 코린디우스 알파이다. 이에 따라 한글 개역성경에서도 고린도전서로 명명되었다. 본 서신의 저자는 사도 바울(1:1,16:21)이다. 고린도전·후서의 기록 시기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하는 바,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기간(A, D, 53-58) 중 에베소에 머물던 시기인 A.D. 55년 봄 무렵(16:5-8; 20:31)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본 서신의 수신자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한 곳이며,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다. 그리고 본 서신의 내용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교회 생활과 관련한 제반 질문 사항에 대한 목회적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의 배경 이해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영적 ·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및 신앙생활 현안들에 대한 목회적 답변의 서신서라고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각 서신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먼저 수신자 문제와 관련하여, 본 서신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A.D.49-52) 약 일년 반 동안 사역하며 개척한(18:11)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일차적 수신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당시 고린도(Corinth)는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헬라의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우선 고린도는 헬라의 상업 중심 도시였다.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협(地峽)의 남쪽 2km 지점에 위치한 고린도는 수많은 여행자와 상인들의 필수적 통행로였다. 고린도는 좁은 지협 양쪽으로 동쪽으로는 겐그레아(Cenchrea) 항구를, 서쪽으로는 레게움(Lechaeum)이라고 하는 항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 항구를 통해 이탈리아, 스페인, 소아시아, 페니키아, 이집트 등지로부터 온 많은 양의 상품들이 유통되었다.

또한 고린도는 문화적으로 보면 비록 아테네와 같은 교육과 문화의 도시는 아니었으나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헬라 문화의 특징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 헬라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그 영향으로 지혜를 높이 평가하였다. 종교적으로도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태양의 신 아폴로(Apollo), ()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등을 숭배하는 12개의 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거대 상업 도시들이 으레 그렇듯이 고린도 역시 다양한 외부 문화에 개방적이었으며 어떤 부도덕한 풍습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하지 않았다. 특히 성() 문제는 그 사회의 도덕적 척도라 할 수 있는데, 고린도는 성적으로 문란하기로 유명한 도시였다. 한 예로 고린도의 가장 높은 곳인 아크로 고린도에 세워진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1,000여 명의 신전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매춘을 자행하는 종교적 창녀들이었다. 고린도가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하였는지 고린도화하다 (Corinthianize)’ 라는 말은 곧 성적 부정을 행하다라는 뜻으로 통용될 정도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린도 교회가 많은 도덕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약 성경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본 서신 이전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서신을 보낸 바 있었다(5:9). 즉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기 이전에도 고린도 교회에는 음행을 비롯한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본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을 이미 시작하여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에 있었는데(16:8,9), 거기서 바울은 여러 경로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1:11:16:17). 바울에게 들려온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이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빠졌다는 것이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음행 문제 뿐 아니라 심각한 분쟁까지 발생하였으며, 그 분쟁의 양상 또한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들의 인맥(人脈)을 중심으로 분파(分派)가 생기는가 하면, 또한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또 패가 갈라져 다투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영적 은사를 받은 자들이 저마다 자기의 은사를 내세우며 자랑하였고 주의 만찬은 오용(誤用)되고 있었으며, 예배는 무질서하였다. 또한 교리적으로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마치 독소처럼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당시 고린도 교회의 형편과 특징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여 제시할 수 있다. 즉 고린도 교회는 분명 지식이 풍족하며 영적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다(1:5-7).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하고(immature) 신령하지 못한 (unspiritual) 교회였다(3:1-4).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은 이처럼 은사는 풍족하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여전히 미숙하고 육신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고린도 교회의 오류들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교회의 분쟁, 성적 부도덕, 세상 법정에서의 소송, 결혼 및 이혼, 우상 제물의 식사, 주의 만찬, 영적 은사의 사용, 예배의 질서, 부활의 교리 등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목회적 관점(pastoral view)’에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고린도 교회 내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목회적 상황에 대해, 목회자의 심정(a pastor’s heart)을 가지고 진심 어린 책망과 권면 및 바른 진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서신은 특정 상황(occasion)과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 속에서 복음의 원리가 교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1세기의 고린도 교회가 처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복음에 입각하여 그 해결 지침과 원리들을 제시한다. 바울이 본 서신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중요한 관심사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 일부 문제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 속에만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오늘의 문화적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적적, 교리적 문제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복음의 원리는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관계없이 중요하다.

시대에 따라 교회를 분열시키고 오염시키는 문제들의 양상과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였던 복음의 원리들, 예를 들어 교회의 유일한 기초로서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령의 전으로서의 성도의 몸, 회의 성결을 유지하기 위한 권징(勸懲)의 시행,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는 목적과 원리, 부활의 교리 등은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 서신은 불변하는(unchanging) 복음의 진리가, 변화하는(changing) 시대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중요한 목회적 통찰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고린도전서 내용분해(목차)

1) 인사말(1:1-3)

2) 고린도 교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1:4-9)

3) 고린도 교회의 파당과 분열(1:10-4:21)

A. 고린도 교회의 파당에 대한 보고(1:10-17)

B. 십자가의 미련한 지혜(1:18-25)

C. 하나님이 미련한 자들을 선택하심(1:26-31)

D. 인간의 지혜 대 하나님의 영과 능력(2:1-5)

E.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성령의 계시(2:6-16)

F. 하나님의 종들의 사역을 평가함(3:1-17)

G.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법과 타인을 평가하는 법(3:18-4:5)

H. 십자가의 지혜의 모델로서의 사도들(4:6-13)

I. 그들의 아버지 바울을 본받으라는 호소(4:14-21)

4) 근친상간, 소송, 매춘(5:1-6:20)

A. 근친상간의 사례(5:1-8)

B. 교회 안에서 죄를 관용한 것에 대해 새롭게 경고함(5:9-13)

C. 소송들에 반대하는 권고(6:1-11)

D. 창녀를 찾아가지 말라는 권고(6:12-20)

5) 성관계, 이혼, 혼인에 대한 가르침(7:1-40)

A. 혼인 안에서의 성관계(7:1-5)

B. 미혼자들과 과부들의 독신 생활 및 혼인(7:6-9)

C. 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 및 비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에게 주는 이혼에 대한 가르침(7:10-16)

D. 논의의 기저에 있는 지도 원리: 현재 상태로 있으라(7:17-24)

E. 약혼자들과 과부들의 혼인의 적절성(7:25-40)

6) 우상에 바쳐진 음식에 대한 논쟁(8:1-11:1)

A. 우상에 바쳐진 음식 문제의 소개(8:1-6)

B.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치는 위험으로 인해 그들의 행위를 논박함(8:7-13)

C. 그의 권면을 뒷받침하는 바울 자신의 예(9:1-27)

D.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부정적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13)

E. 주의 만찬의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4-22)

F. 이교도적 환경에서 우상의 음식 문제를 다루기 위한 실천적 충고(10:23-11:1)

7) 공적 예배에서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11:2-16)

8) 주의 만찬에서의 분열(11:17-34)

9) 공적 예배에서의 영적 은사의 사용(12:1-14:40)

A. 영적 은사의 소개(12:1-3)

B.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12:4-11)

C. 몸의 지체들의 다양성과 상호 의존성(12:12-31)

D. 사랑: 가장 좋은 길(13:1-13)

E. 방언과 예언의 대조(14:1-19)

F. 예언을 선호함(14:20-25)

G. 예배를 위한 규정과 영적 은사에 대한 결론적 가르침(14:26-40)

10) 부활(15:1-58)

A. 서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선포와 믿음(15:1-11)

B.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12-19)

C. 죽은 자들의 부활이 사실이므로 생겨나는 결과(15:20-28)

D.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29-34)

E. 부활의 육체적 성격(15:35-49)

F. 모두가 변화될 것임(15:50-58)

11) 연보에 대한 가르침과 여행 일정(16:1-12)

12) 끝인사(16:13-24)

 

 

. 고린도전서의 내용

고린도전서의 내용은 1:1-9의 도입부, 1:10-15:58의 본론부, 그리고 16장의 종결부로 구분할 수 있다.

 

1)도입부(1:1~9)

도입부에서는 당시의 일반적인 서신 형식을 따라 칭찬과 감사 등 통상적 인사를 담고 있으며, 종결부에서는 본론부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당부와 문안 인사를 담고 있다.

 

2)본론부(1:10~15:58)

그리고 본론부 1:10-15:58은 내용에 따라 다시 1:10-6:20까지의 전반부7-15장까지의 후반부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먼저 전반부 1:10-6:20 주로 고린도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 및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 제7-15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서신을 통해 질문한 신앙 현안들에 대해 바울이 목회적 관점에서 답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A. 전반부(1:10~6:20)

·후반부 두 부분으로 크게 양분한 본론부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0-6:201:10-4:21과 제5, 6장으로 다시 세분할 수 있는데, 이중 1:10-4:21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분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바울은 글로에의 집편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분열 소식을 전해들은 것을 밝히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했던 자신의 고린도 전도사역을 회상시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지혜이자 능력으로서 성도에게는 오직 예수만이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나서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들의 인맥(人脈)을 따라 분파를 지어 다투는 문제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지적하며 책망한다. 더 나아가 교회의 유일한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도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며 우주적 연합체라는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분파를 지어 서로 다투는 것은 결국 그들의 교만 때문임을 지적하며 부성애(父性愛)에 기초하여 분쟁을 종식할 것을 권면한다.

이어 5, 6고린도 교회의 윤리 문제, 도덕적 무질서의 문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세 가지 문제, 근친상간의 죄, 도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문제, 그리고 음행 죄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심지어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자까지도 용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하며, 그 죄를 범한 자에 대한 단죄를 선언함과 동시에 교회가 누룩 없는 떡이 되기 위해서,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징을 시행해야 함을 촉구한다. 그리고 성도간의 문제는 교회 내에서 판단할 것이지 결코 세상 법정에서 불신자들의 판단에 맡기지 말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음행 죄와 관련하여서는, 성도들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 및 성령이 거하는 성령의 전이라는 관점에서 음행 죄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성전을 더럽히는 심각한 죄임을 경고하고 있다.

 

B. 후반부(7~15)

다음으로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제기한 질문에 대한 목회적 답변 형식을 띠고 있는 7-15장은 결혼과 이혼, 우상 제물의 취식, 공적 예배시의 질서, 부활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제기되던 신앙 생활 현안 중 중요한 네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7장은 결혼과 관련된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혼자의 결혼 문제 뿐 아니라, 부부 생활, 이혼 문제, 불신 배우자와 결혼했을 경우의 처신, 과부의 재혼 등 혼인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각각의 경우들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과 더불어 포괄적인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8:1-11:1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첨예한 의견 대립의 요소가 되었던 바,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지식적으로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가 아닌 사랑과 자유 절제의 차원에서 접근하여 답변을 제시한다. 즉 원칙적으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성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에도 자유하지만,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해서 그 자유를 절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직접 자신을 권리와 자유를 절제한 모범으로 제시하여 고린도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을 것을 촉구하고, 또한 이스라엘의 자유를 남용한 부정적인 본보기를 제시하여 성도는 자유를 절제할 것과 또한 먹고 마시는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유익을 위하라고 권면한다.

이어 11:2-14:40 공적 예배에 관한 교훈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공적 예배의 질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성찬 문제, 영적 은사의 사용 등 세 가지 문제에 상당 분량을 할애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바울은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영적 질서와 창조 원리 및 당시의 문화적 규례에 따라 여성은 순종의 표시로서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찬의 문제에 있어서는, 성찬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거룩한 의식임을 일깨움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성찬 참여자의 바른 자세를 교훈한다.

특히 영적 은사에 관한 바울의 교훈은 특기할 만한데, 바울은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조화롭게 교훈한다. 즉 교회에 나타나는 은사는 다양하지만 그 은사들은 모두 한 분 성령께 기원을 두고 있으며, 또한 각 은사들의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심도있게 제시하고 있다. 영적 은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문맥 속에 사랑을 주제로 노래한 유명한 제13장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곧 모든 영적 은사들의 사용의 원리가 곧 사랑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은사에 대한 결론적 권면에서 모든 은사를 질서있게 사용하고 또한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이 방언에 비해 예언의 은사를 높이 평가하고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권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 예언이 방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어 제15장은 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 기독교 신앙의 근거이자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되는 그리스도 부활의 의의, 부활 이후의 몸의 상태, 부활 신앙과 성도들의 삶의 실질적 관계 등을 심도있게 제시함으로써 당시 고린도 교회에 퍼져 있던 부활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3)종결부(16)

마지막으로 본 서신의 종결부인 16장은 본론부에서 다루지 않은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질문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의 문제에 대해 바울은 그 연보 수집 및 전달 방법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 디모데와 아볼로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후, 교회 내 충성스러운 일꾼들에 대해 존경과 복종을 보이라는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써 본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 메시지 요약

 

1) 타락한 세속 문화 속에서의 교회의 위상 정립

본 서신에 언급되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윤리적 문제들 중 상당 부분은 당시 고린도의 혼탁한 도덕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교회 내 근친 상간자를 용납할 정도로 심각했던 음행의 문제고린도의 부도덕한 분위기에 교회가 그대로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 서신의 행간(行間)에는 불신 세계의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고린도 교회의 위상에 대한 바울의 깊은 탄식이 서려 있다. 세속 문화에 대해서 각 지교회가 어떤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본 서신 전반에 걸친 행간의 메시지이다.

 

2) 분쟁하는 교회를 향한 메시지

고린도 교회는 분쟁으로 갈라져 있는 교회였으며 분쟁의 양상도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를 따라 패를 갈라 다투고,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또한 서로 반목하였다. 교회의 분쟁이 어디 고린도 교회에만 해당되는 문제이겠는가? 오히려 분쟁과 반목이 없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아닌가? 바울 사도는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부성애적(父性愛的) 책망과 권면 및 분쟁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교훈을 본 서신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비록 분쟁의 양상과 종류는 다르다 할지라도, 분열과 반목에 빠져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은 바울의 책망과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윤리 실천과 신앙 성숙의 관계

고린도 교회는 지식과 영적 은사들이 풍성한 교회였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성숙한 성도들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의 유치성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분파를 형성하여 서로 다투고, 교만하고, 세상 법정에 소송하고, 남의 유익보다 자신의 유익만 중시하는 등 윤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 성숙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은사를 가지고 능력을 행하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성숙한 신앙은 윤리적인 면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서신 전반에 흐르는 교훈의 맥락이다.

 

4) 성도의 몸은 곧 성전

바울은 음행 (sexual immorality)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성도가 음행 죄를 피해야 할 보다 본질적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의 몸은 곧 성전(holytemple)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 처소였다면, 신약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內住)하시는 실제적 임재의 처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음행의 죄를 비롯하여 몸으로써 짓는 죄를 멀리해야 할 본질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5)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중요 현안으로 떠올랐던 우상 제물의 식사 문제에 대해 가부(可否)의 차원에서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다. 사실 우상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그 문제를 둘러싼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였다. 즉 그것을 지식의 차원에서만 해결하려고 하고, 교회의 덕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지식에 앞서 사랑으로 해결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옳고 그름을 따지는 지식의 차원을 떠나, 자기보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복음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면,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지식에 앞선 사랑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원리이다.

 

6)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diversity and unity)

고린도 교회는 영적 은사가 풍성하였으나 저마다 자기 은사를 자랑할 뿐 그 은사들을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세우는 데 잘 활용하지 못했다. 바울은 제12장에서 각각의 성도들은 다양한 은사를 받았는데, 그 은사들을 주신 분은 동일한 성령이시며, 성령께서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의 유익이라고 하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서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달리 말하면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교회는 각 사람이 가진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고, 또한 다양한 은사들을 교회의 유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7) 사랑과 건덕

은사 사용의 대원칙. 바울은 제12-14장의 긴 지면을 할애하여 영적 은사에 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사랑과 건덕(love and edification)을 은사 사용의 대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은사의 바른 활용은 사랑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며, 은사 활용의 목적은 오직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건덕의 원칙 위에 은사들이 활용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더욱 조화와 질서 속에서 아름답게 성장해 갈 것이다.

 

8) 공적 예배의 바른 시행

고린도 교회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찬의 잘못된 시행, 은사의 남용 및 오용 등의 원인으로 인해 공적 예배의 질서가 무너졌다. 공적 예배의 질서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그 교회 성도 신앙 생활 전반이 무질서하고 체계가 잡히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율법적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반대로 아무 원칙도 질서도 없는 것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무질서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혼란과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모든 공적 예배는 반드시 조화와 질서 속에 드려져야 한다.

 

9) 부활 신앙과 성도의 삶

교리의 문제는 성도의 실제적 삶과 직결된다. 즉 성도들의 신앙과 사상과 삶의 태도는 그들이 믿고 있는 특정 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토대로서, 부활에 대해 불신한다면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만다. 바울은 소위 부활장이라 불리는 제15장에서 기독교 신앙이 허공 위에 세워지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하는 확고한 역사적 사실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과 최후의 승리를 보증한다는 것을 제시한 후, 성도들이 부활 신앙에 굳게 서서 주의 일에 수고하는 자들이 되기를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부활이야말로 성도의 최대, 최고의 소망이며, 주 안에서 인내하고 수고하는 모든 삶에 확실한 보상이 될 것이다.

 

 

 

2. 결혼여부에 대한 기본 원칙 제시 및 부부생활에 대한 일반적인 교훈(고전7:1~7)

1)본문내용(고전7:1~7)

첫째, 이제 고린도 교회의 질문 중 성도의 결혼관련문제를 답변하고자 함을 밝힘(1a)

둘째, 성도의 결혼여부에 대한 기본원칙 제시(1b~2)

원칙적으로는 남녀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 그러나 본능에 따라 음행의 문제가 있으므로 결혼하라는 지침을 제시한다.

셋째, 부부생활에 대한 일반적인 교훈(3~5)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의무를 다해야 한다. 결혼한 사람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배우자가 주장해야 한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명한다. 다만 기도하기 위하여 부부가 합의하에 잠시 분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성적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문제로 사탄이 틈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다시 합해야 한다.

넷째, 결혼에 대한 교훈에 대한 바울 자신의 입장표명(6~7)

지금까지 말한 결혼에 대한 자신의 교훈은 개인적인 권도이며, 절대적인 명령은 아니라고 먼저 밝힌다. 자신은 모든 사람이 자신처럼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원한다. 그러나 결혼에 관하여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고 말한다.

 

2)영적 교훈

첫째, 성도가 음행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독신으로 지내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더 옳다(1). 즉 남녀가 결혼하는 이유로서 음행의 죄를 피하기 위한 것도 있는 것이다(2).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결혼할 필요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둘째, 부부사이의 성적관계는 금욕의 대상이 아니며, 지극기 건강하며 정상적인 것이다(3). 다만 결혼의 관계 안에서 성관계가 영혼의 거룩을 유지하고 더럽히지 않게 한다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셋째, 부부는 자기의 몸을 자기가 주관할 수 없고 배우자가 주관할 수 있다(4).

넷째, 교회의 성도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도 아니며, 극단적 자유주의자도 아니다(5). 육체는 추하고 영혼은 순수하다는 헬라의 이원론사상이 교회에 들어오자, 두 극단이 나왔다. 하나는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순수하기 때문에 육체를 어떻게 사용해도 상관이 없다는 측이다. 이들은 음행과 방탕을 일삼았다. 그리고 또하나는 육에와 그 본능이 악한 것이기 때문에 육체를 부정하고 억눌러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금욕생활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래서 결혼도 안 하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양극단을 배격한다.

다섯째, 부부가 분방하는 시간은 오직 기도할 때 뿐이고 그것도 합의상 얼마동안만 그렇게 할 수 있다(5).

여섯째,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대로 살아야 하지만,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독신으로 살기를 바랬다(7). 성도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결혼을 하는 것이 더 옳다.

일곱째, 결혼은 음행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 된다(2). 이는 결혼이 음행을 피하기 위한 주요목적으로 하나라는 것이지 음행을 피하기 위한 것이 결혼의 전체목적은 아니다.

여덟째, 하나님께서는 결혼제도를 세우셨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홀로 할 수 없는 사명을 서로 협력하여 이룰 수 있기 때문이요, 둘째로, 인간에게는 서로 사랑하려는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로, 인간으로 하여금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는 주님의 명령을 준행하기 위함이기도 하다(2)

아홉째, 부부간의 성생활은 서로의 사랑을 제확인하는 것이요 부부사이의 정을 나누는 것이므로 부부생활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3~4). 이것이 안 되면 불화의 요인이 되고 이혼까지 가기도 한다.

열째, 부부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방을 나눠쓰지 말아야 한다. 부부간의 성적인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5). 분방은 오직 한 가지 기도할 때로 한정되어야 한다. 별거생활을 자주하면 음행의 유혹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열한째, 성도는 절대적인 문제가 아닌 이상 이웃 성도의 의사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6).

열두째, 성도는 이웃이 무조건 나와 같기를 바래서는 아니 된다(7). 주의 재림이 가깝다고 해서 바울처럼 독신을 권할 수 있으나,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독신은 은사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3. 미혼자와 과부에 대한 독신생활 권장 및 기혼자의 이혼문제에 대한 교훈(고전7:8~16)

1)본문내용(고전7:8~16)

첫째, 미혼자와 과부에 대한 독신생활 권장(8~()

미혼자들과 과부들을 향해 자신처럼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그러나 정욕을 절제할 수 없으면 혼인하는 것이 낫다고 권면한다.

둘째, 성도간에 결혼한 부부를 향한 이혼금지 명령(10~11)

주께서 직접 명하신 대로 결혼한 사람들은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 부득이 그 명령을 어긴 경우 재혼하지 말고 그대로 있든지 아니면 헤어졌던 배우자와 재결합해야 한다.

셋째, 불신자와 결혼한 사람의 이혼 문제에 관한 교훈(12~16)

이제 주께서 직접 명령하신 기준이 없는 문제 곧 불신 배우자를 둔 사람들에 대해 교훈하고자 함을 밝힌다. 불신 배우자와도 배우자가 원하지 않는 한, 이혼해서는 안 된다. 불신 배우자가 믿는 배우자의 영향을 통해 거룩하게 될 수 있음을 언급하며 그 증거로 그들 사이의 자녀가 거룩함을 제시한다. 그러나 불신 배우자가 이혼을 원하는 경우는 응하라고 답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 성도를 부르셨음과 불신 배우자의 구원의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서 이미 결혼한 자들은 가급적 이혼을 피할 것을 권면한다.

 

2)영적 교훈

첫째, 바울은 미혼자와 과부들에게 혼인을 권장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을 권고 하고 있다(8).

둘째, 그러나 자신의 정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은 결혼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9).

성적인 욕망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주체할 수 없는 성욕으로 인하여 긴장과 갈등이 계속되어 영적인 평화와 성장에 방해가 된다면 결혼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것이다.

셋째, 예수믿기 전에 불신자였던 가정의 한 쪽이 예수님을 믿어 성도가 되었을 때에는 불신자의 이혼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이혼해서는 아니 된다(10~11). 예수믿는 배우자가 먼저 이혼을 요구해서도 아니 된다.

넷째, 이미 결혼한 성도들은 서로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9). 하나님께서 짝지어준 것을 결코 나눠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특히 불신 배우자라고 하나님께서 짝지어준 배필로 인정하고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다섯째, 이미 이혼한 성도들은 재혼하지 말 것이며, 만약 합쳐서 부부생활을 다시 시작하려면 헤어졌던 배우자와 재결합하는 것이 가장 좋다(10). 그리스도인 부부는 남편이든 아내든 결코 이혼을 요구할 수 없고 만일 부득불 이혼하더라도 이혼한 상태로 그대로 지내든지 아니면 다시 화합해야 한다.

여섯째, 현재 불신자와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하지 않을 때는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믿지 아니하는 배우자가 믿는 배우자로 인하여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14)

여기서 거룩하게 된다는 말은 구원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배우자가 지속적으로 불신 배우자에게 신앙적인 감화를 끼친다면 그 배우자 역시 그 영향으로 구원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신앙은 갖지 않은 배우자가 신앙인 배우자에게 이혼을 요구하지 않은 상태라면,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이미 어느정도 호의적인 감정을 가진 것으로 구원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불신 배우자가 믿는 배우자의 신실한 신앙과 옳은 행실을 보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주를 영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곱째, 부부중 한 쪽이 믿는 성도라면 부부가 믿지 않은 성도라면 자녀가 훨씬 더 구원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14). 그런데 만약 한쪽의 불신자인 부부가 이혼하게 된다면, 그 자녀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 비록 한쪽 부모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로 인해 그의 자녀는 주님을 알아 구원으로 인도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여덟째, 성도들은 불신배우자를 감동시키는 생활을 해야 한다(14). 변화된 모습으로 배우자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4. 민족적 구분 및 세상의 신분과 처지에 초연한 성도의 삶의 자세(고전7:17~24)

1)본문내용(고전7:17~24)

첫째,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대로 행할 것에 대한 첫 번째 권면(17)

둘째, 할례 유무의 여부에 초연할 것에 대한 권면(18~19)

할례자로 부름을 받았던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았건 부르심을 받은 당시의 상태 그대로 있으라고 하다. 중요한 것은 할례의 유무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다.

셋째,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대로 행할 것에 대한 두 번째 권면(20)

넷째, 자유자냐 종이냐의 여부에 초연할 것에 대한 권면(21~23)

종의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은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 것을 말하다. 자유자의 신분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기회를 사용하라고 말하다. 주 안에서는 비록 종의 신분으로 부르심을 받았을지라도 주께 대해서는 자유인이며, 또한 자유인의 신분으로 부르심을 받았어도 주께 대해서는 종이라고 하다.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자들이므로 궁극적으로 사람보다 주께 대해 종된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고 권면하다.

다섯째,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대로 행할 것에 대해 세 번째 권면(24)

 

 

2)영적 교훈

첫째,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신 그대로 거하는 것이 좋다(17).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기가 처해있는 어떤 상황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남을 전도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신이 처해있는 영역 안에 머물러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인인 자신이 어떤 위치나 신분에 있든지 초연해야 한다(18). 특히 할례자로 부름을 받았으면 다시 무할례자가 되기를 힘쓰지 말아야 하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면 할례자가 되기 위해 힘쓸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와 무할례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구원론적인 어떤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이 진정 구할 것은 외적인 어떤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신앙의 변화여야 한다(19)

넷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할례자냐 무할례자냐, 종이냐 자유인이냐와 같은 외부적인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 자신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20).

다섯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신이 속박받은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21). 노예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였지만 자유할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거부하지 말고 그 기회를 적극 자유스럽게 활용해야 한다.

여섯째, 성도들은 사획적인 신분여하에 상관없이, 모두 주 안에서 자유자이면서 종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22).

일곱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값으로 우리르 사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소속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으니 사람의 뜻에 따라 좌고우면해서는 아니 된다(23). 다시 말해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홉째, 세상적인 신분과 처지가 어찌하든지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그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17)

열째, 성도들 삶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세속적인 신분과 처지를 상승시키려는 데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데에 있다(19).

열한째,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거하라는 말은 성도들이 현실생황에 자기 의무와 책임을 다하되 또한 부단히 작의 발전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20).

열두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삶의 처지나 신분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다(17).

열셋째, 성도에게는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가 중요하다(18). 주님을 믿으면 물질축복을 많이 받아 부자가 되고 범사에 잘되어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풍성하게 얻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고, 오직 자기의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어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열넷째, 성도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21).

열다섯째, 성도는 세속적인 신분에 상관없이 영원한 자유인이다(22). 죄에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열여섯째, 성도들은 자유인이지만 그리스도의 영원한 종들이다(22).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이다.그리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에게 헌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열일곱째, 성도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종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23). 그러므로 성도들은 거짓선지자나 지도자의 말에 함부로 넘어가서 아니되며, 불법과 타협해서도 아니 된다.

 

 

5. 미혼자의 결혼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교훈 및 과부의 재혼에 관한 교훈(고전7:25~40)

1)본문내용(고전7:25~40)

첫째, 미혼자의 결혼여부 문제와 관련한 바울의 개인적인 권면(25~28)

처녀의 결혼문제와 관련하여 주님의 직접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바울 자신의 신중한 의견을 피력하고자 함을 밝힌다. 곧 임박한 환난을 고려하여 그냥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기혼자는 독신생활을 구하지 말고, 미혼자는 결혼생활을 구하지 말라고 함으로써 결혼문제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 것을 권면하다. 그러나 결혼자체가 죄는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다만 임박한 종말을 고려할 때에 결혼생활의 책임과 의무로 인해 육신에 고난이 가중될 것임을 염려하는 자신의 마음을 밝힌다.

둘째, 결혼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 종말이 임박한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29~31)

주의 재림의 때가 가까웠음을 시사한다. 기혼자들은 미혼자처럼 행하라고 하여 결혼생활에 지나치게 매이지 말 것을 권면한다. 세상사의 변화를 따라 울고 웃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재물이나 소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 것을 교훈한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결국 사라져버릴 것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 주를 섬김에 있어서 독신의 유익성에 대한 설명(32~35)

미혼남자는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주의 일에만 골몰하지만 기혼남자는 아내도 기쁘게 하기 위해 세상일에 마음이 나누인다. 미혼여자는 주의 일에만 골몰하며 몸와 영을 다 헌신하지만 기혼여자는 남편을 기쁘게 하는 일로 마음이 나누인다. 독신생활에 대해 권하는 것은 성도들을 속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분산됨이 없이 주를 섬기도록 하기 위한 권면의 차원임을 밝힌다.

넷째, 혼기가 찬 딸을 둔 부모에 대한 권면(36~38)

딸을 혼기가 지나도록 붙들어둘 것이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되어 결혼시켜야 한다고 느끼면 가책받지 말고 결혼을 시키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결혼시켜야 할 부득이할 상황도 아니며 자유로운 결정으로 딸을 그대로 두기로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라고 하다. 딸을 시집보내는 것도 잘하는 것이지만 시집보내지 않는 것도 더 잘하는 것임을 첨언한다.

다섯째, 남편과 사별한 과부의 재혼에 관한 교훈(39~40)

남편과 사별한 과부는 재혼할 수는 있으나 주 안에서만 곧 성도와만 하라고 하다. 그러나 과부는 가급적 재혼하지 말로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되다고 하다. 이 권면은 성령의 권위에 입각한 것임을 밝힌다.

 

2)영적 교훈

첫째, 성도는 항상 임박한 환난을 대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25~26). 어떤 핍박을 당해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각오을 해야 한다.

둘째,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버릴 때에 환난날에 덜 괴롭다(27). 환난날에 혼자인 사람과 가족이 있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고통을 당하겠는가? 우리도 환난받을 때에 주를 섬기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될 것들을 버려야 한다. 세상에 대한 애착과 탐심,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셋째, 재림의 때가 더욱 단축된 시대에 걸맞는 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29~31). 재림의 때가 가까울수록 세상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고 재림을 맞을 방해되는 것을 정리해야 한다.

넷째, 성도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를 향한 헌신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32~34). 미혼자가 결혼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주를 향한 헌신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다.

다섯째, 성도는 배우자를 우상화하지 말아야 한다(34). 시집간 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는데 이는 배우자를 우상화하는 것이다. 배우자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배우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잘 듣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배우자의 행복만을 우선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섯째, 종말의 때일수록 더욱 정상적인 생활에 힘써야 한다(36~38).

일곱째,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하는 성도가 지혜로운 성도다(37~38). 이를 위해서는 재림을 사모하고, 기도하며, 사명에 충실하며, 열심히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덟째, 성도들의 결혼은 주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39). 과부들은 다시 결혼하든지 혼자 지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주 안에서만 가능하다.

아홉째, 처녀의 결혼문제는 임박한 환난을 고려하여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으나 결혼자체가 죄는 아니다(25~28).

열째, 기혼자는 독신생활을 구하지 말고, 미혼자는 결혼생활을 구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성도가 결혼문제 자체에 대해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27).

열한째, 주를 섬김에 있어서 독신이 유익하기는 하지만 결혼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32~35).

열두째, 이혼자는 재혼할 수 없으나 과부는 재혼할 수 있다. 하지만 주 안에서만 해야 한다(39~40).

 

 

 

고린도전서 전반부인 1~6장은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훈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에 반해 본론 후반부인 제7-15장은 고린도 교회가 편지를 통해 바울에게 질문한 중요한 신앙 생활 현안들에 대한 바울의 목회적 답변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결혼(marriage), 우상 제물의 취식 (idolmeats eating), 공적 예배(public worship), 부활(resurrection) 등의 문제를 차례로 다루고 있는데, 7장은 그 중 첫 번째 문제로서 결혼에 관한 포괄적인 교훈을 다루고 있다.

 

고린도 교인들이 이처럼 결혼 문제에 대하여 질문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육체는 추하고 악하며 영혼만 순수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헬라의 이원론적 철학 사상에 영향을 받아 두 극단에 치우쳐 있었다. 한쪽은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순수하기 때문에 육체를 어떻게 사용해도 상관없고 본능이나 육욕을 충분히 만족시켜도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반면 또 다른 한쪽은 육체와 그 본능은 악한 것이기에 영혼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육체를 억압하여야 하며 육체가 지닌 본능과 욕망은 모두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전자의 사람들은 음행과 방탕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결혼과 이혼도 아주 거리낌없이 하였다. 반면 후자의 사람들은 극단적인 금욕 생활을 하며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고린도의 성향은 고린도 안에 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더욱이 당시 교회 내에는 임박한 종말 사상이 팽배하여 성도들 사이에서는 꼭 결혼을 해야 하는지, 또 결혼 생활을 지속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결국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결혼 문제에 대하여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되었고, 그로 인해 바울에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자문을 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먼저 첫 문단인 7:1-7에서 결혼 여부에 관한 기본 원칙과 부부 생활에 대한 개략적 권면을 주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 라고 함으로써(1) 일단은 결혼하는 것보다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더 유익함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바울이 결코 독신주의자이거나 금욕주의자였기 때문에 준 권면은 아니다. 왜냐하면 곧이어 바울은 음행의 연고로 남녀는 각각 결혼하라고 명하고 있으며, 부부 생활의 의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바울이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한다 (7)라고 밝힌 것은 단순히 자신과 같은 독신 상태를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성적 욕구에 대해 절제가 가능한 은사를 받은 상태인 것을 의미한다. 바울의 요지는 '절제할 수 있는 자' 에게는 독신이 유익하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혼인하라는 것이다. 더욱이 여기서 바울이 독신을 권장한 것은 당시 임박한 종말 사상과 관계가 깊다. 즉 바울은 당시 팽배하였던 임박한 종말 사상에 근거하여 독신생활을 권장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을 대환난의 때에는 독신자보다는 결혼한 사람이 가족 등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당할 것인 바 절제만 할 수 있다면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결혼하는 것보다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주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더 갖게 된다는 점에서도, 종말이 임박했다고 여긴 바울이 결혼보다는 독신으로 지내기를 권장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이어 7:8-16은 결혼 문제에 대한 구체적 교훈으로 미혼자와 과부의 결혼과 기혼자의 이혼에 관한 교훈이다. 먼저 바울은 미혼자와 과부의 결혼에 대하여 교훈한다 (8,9). 여기서 결혼 여부에 대한 바울의 기본 입장은 이미 앞에서 밝힌 대로 '자기와 같이 그냥 지내라'는 것이다(8). 곧 독신 생활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고 함으로써 (9) 자신이 독신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아님과 더불어 결혼 여부는 독신과 결혼 중 어느 것이 자기에게 더 유익한가를 따라 결정해야 할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바울은 기혼자의 이혼 문제와 관련해서는 먼저 주의 직접적 명령임을 상기시키며 혼인한 자들은 이혼하지 말 것을 분명히 밝힌다(10, 11). 이어 주께서 직접 명하시지 않은 두 가지 특수한 경우, 이미 이혼한 자들에게와 불신 배우자와 결혼한 자들에 대해 언급하며 추가적인 교훈을 제시한다. 당시 이미 이혼한 상태에 있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며, 불신자와 결혼한 후 회심하여 교회에 들어온 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해 바울은 이미 이혼한 자들은 그대로 지내든지 아니면 다시 갈린 배우자와 재결합하든지 하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불신 배우자를 둔 자들에 대해서는 불신 배우자가 먼저 이혼을 요구하지 않는 한 이혼해서는 안됨을 교훈하고 있다.

이어 7:17-24은 지금까지 결혼 생활에 대해 관련하면서 적용시켰던 원리를 보다 확장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반에까지 적용한 것으로 성도가 세상의 신분과 처지에 대해 초연할 것에 대해 교훈하는 내용이다. 이 문단에서 바울은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는 말을 세 차례나 반복하고 있다(17, 20,24).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할례자였건 무할례자였건, 혹은 자유자의 신분이었건 종의 신분이었건, 그러한 세상적인 처지와 신분에 초연하여 하나님을 섬길 것을 거듭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는 바울의 교훈은, 결혼에 관한 교훈을 하고 있는 전체 문맥상으로 볼 때 성도가 혼인 상태이든 미혼 상태이든, 혹은 불신 배우자와 혼인 상태이든 그러한 상황을 인위적으로 바꾸려 할 것이 아니라 그 처지와 상황에 초연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라는 권면인 것이다. 또 이를 성도의 삶 전반과 관련시켜 보면, 이는 성도들의 삶이 단순히 세속적 신분과 처지를 향상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데 있음을 교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각기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7:25-407:8,9에 이어 미혼자의 혼인 문제 및 과부의 재혼 문제에 관해 보다. 구체적으로 교훈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바울은 미혼자 및 과부에게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복되다고 한다(26, 40). 그러나 동시에 미혼자나 과부가 결혼하는 것이 결코 죄가 아니며 얼마든지 결혼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빠뜨리지 않는다(28,36, 39). 바울이 이처럼 독신의 유익을 거듭 언급하며 권장하는 것은 혼인 당사자의 영적 유익을 위한 차원에서의 교훈이지 결코 올무가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35). 위에서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고 한 교훈처럼, 때가 박한 때에 성도들이 마음의 분산이 없이(undivided) 주를 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울의 의도인 것이다.

이상에서 결혼 및 이혼에 관한 바울의 교훈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은 일부 고린도 금욕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독신을 결코 성적 순결(sexual purity)의 기준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신이 영적으로 유익한 것은 그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여' (34) 단심(丹心)으로 주를 섬길 수 있을 때이며, 그것은 또한 독신의 특별한 은사를 받아 성적 욕구를 절제할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7,9). 그러나 사람마다 각각 주께 받은 은사가 있으니(7) 어떤 이는 바울처럼 '독신의 은사', 그리고 어떤 이는 '결혼의 은사' 를 받았다. 절제하지 못한다면 미혼자들은 결혼해야 한다. 그리고 기혼자들 역시 절제하지 못하여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진정한 성적 순결(true sexual purity)이란 결혼하지 않는 것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독신의 은사를 받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결혼은 성적 순결을 지키는 길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맺어주신 정상적인 결혼 관계에 충실함으로써, 성도는 절제 못함을 인하여 빠질 수 있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신분이나 처지, 특히 결혼에 대해서까지도 초연한 자가 되어 한마음으로 주께 헌신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진정 더욱 복된 자라고 할 수 있다.

 

< 고린도전서 7:1~40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성도에게 있어서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과 독신생활에 관한 바른 지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는 결혼보다는 임박한 환난과 주를 봉사할 기회를 위해서는 독신으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누구라도 성적인 욕구를 절제할 수 없을 때에는 결혼해야 하며, 독신생활은 독신은사자에 한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부부 사이는 자기가 자기의 몸을 주장할 수 없고 배우자가 주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도들은 이혼하지 말아야 하며, 재혼이란 사별의 경우만 허용되며, 그것도 주 안에서만 허용되고, 한 번 이혼했으면 혼자 살든지 아니면 이전 배우자와 다시 합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불신 배우자라도 이혼하기를 원하지 않으면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은 믿는 배우자로 인하여 그가 거룩해지고 구원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모든 사람은 자신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대로 살아가되, 세상적인 신분과 처지에 얽매이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합당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처녀나 미혼자는 임박한 환난과 주님을 좀 더 자유롭게 섬기기 위해서 독신으로 살 수는 있으나 결혼하는 것이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기혼자는 굳이 독신생활을 구하지 말고, 미혼자는 굳이 결혼생활을 구하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구하며 사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결혼과 이혼, 재혼과 독신생활에 대해 성경의 원칙도 모른채 함부로 판단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환경에 만족하며 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결혼을 하든지 안 하든지 주신 은사를 따라 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음행의 연고 외에는 이혼을 절대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이혼하더라도 절대 재혼은 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과부라서 재혼한다면 주 안에서만 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결혼과 이혼, 재혼과 독신생활에 관한 성경적인 원칙을 알지 못하게 방해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혼과 재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성도는 결혼과 가정을 귀하게 여기고, 이혼과 재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성도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자가 되어서도 아니되며 극단적인 방탕주의자가 되어서도 아니되는구나.

2. 결혼이란 생육과 번성, 사랑과 협력, 음행방지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해준 귀한 안전장치로구나.

3. 독신생활은 독신의 은사자에 한해서만 가능하구나.

4. 결혼을 해도 임박한 환난과 주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구나.

5. 성도는 결코 이혼하지 말아야 하며, 재혼은 사별이 아닌 경우는 처음부터 안 되는 것이었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7

(01) 그런데 너희가 기록했던 바들에 관하여 [말하겠다], 남자는 여자를 접촉하지 않는 것이 좋다.

(02) 그런데 음행들 때문에 남자마다 자기 자신의 아내를 [계속] 가지고(두고) 있어라. 그리고 여자마다 자신에게 속한 남편을 [계속] 가지고[두고] 있어라.

(03)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를 계속 행하고 있어라. 그런데 마찬가지로 아내도 역시 남편에게 [그렇게 하고 있어라]

(04) 아내는 자기 자신의 몸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남편이 [행사한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남편도 자기 자신의 몸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아내가 [행사한다]

(05) 너희는 서로를 빼앗지 말고 있어라. 만일 시점을 향하여(얼마동안) 동의함에서부터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는 너희가 기도에 열중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너희는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너희의 절제 못함 때문에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06) 그런데 내가 명령을 따라서가 아니라 허용으로서 말하고 있다.

(07) 그런데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 자신처럼 역시 계속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각자는 하나님에서부터 자기 자신에게 속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 참으로 그는 이러하고 그런데 그는 저러하다.

(08) 그런데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그리고 과부들에게 말한다. 만일 그들이 나 자신과 같이 역시 머문다면 그들에게 좋으니라.

(09) 그런데 그들이 만일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혼하라. 왜냐하면 [정욕이] 불타게 되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10) 그런데 [이미] 결혼한 채 있는 자들에게 내게 명령한다. 내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이시다.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나누어지지 않게 하라.

(11) 그런데 만일 역시 그녀가 나누어졌다면(헤어졌다면) 그녀는 결혼하지 말고 [계속] 지내라. 아니면 그녀는 남편에게 화목하게 되어라. 그리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않도록 [하라]

(12) 그런데 그 남은 이들에게 내가 말한다. 이는 주님이 아니라 나다. 만일 어떤 형제가 믿지 아니하는 아내를 가지고 있는데 그리고 그녀가 그와 함께 사는 것을 동의한다면 그는 그녀를 [계속] 버리지 말고 있어라.

(13) 그리고 만일 어떤 여자가 믿지 아니하는 남편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이이가 그녀와 함께 [계속] 살기를 동의한다면, 그녀는 그 남편을 버리지 말고 있어라.

(14) 왜냐하면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그 아내 안에서 거룩하게 된 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그 남편 안에서 거룩하게 된 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너희의 자녀들도 그런 까닭에 깨끗하지 못한 이들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거룩한 이들로 있다.

(15) 그런데 만일 믿지 아니하는 자가 나누어지겠다면 그는 나누어지게 하고 있어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것들 안에서 종으로 매인 채 있지 않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른 채 있다.

(16) 왜냐하면 아내여! 만일 네가 남편을 [장차] 구원할 것인지 누가 알아온 채 있으며, 남편이여! 만일 네가 네 아내를 [장차] 구원할 것인지 누가 알아온 채 있느냐?

(17)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셨던 것처럼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이 각자를 부르신 채 있는 것처럼 그와 같이 그는 걸어가고(행하고) 있어라. 그리고 내가 모든 교회들 안에서 이와 같이 지시(명령)하고 있다.

(18) 누가 할례를 받은 채로 부르심을 받았느냐? 그는 스스로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 말고 있어라. 누가 무할례자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냐? 그는 할례를 받게 되지 말고 있어라.

(19)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들의 지킴이 [중요하다]

(20) 각자는 부르심을 받았던 바, 그 부르심 안에서 [계속] 머물러 있어라.

(21) 네가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너에게 그것이 염려가 되지 않게 하고 있어라. 그러나 만일 참으로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다면, 너는 더욱 더 사용하라.

(22) 왜냐하면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던 자는 종일지라도 그는 주님의 자유인이요, 마찬가지로 자유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던 자라도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팔렸다. 너희는 [계속] 사람들의 종들이 되지 말고 있어라.

(24) 형제들아! 너희 각자는 부르심을 받았던 것 안에서, 이것 안에서 하나님 곁에 [계속] 머물러 있어라.

(25) 그런데 처녀들에 대하여 내가 주님의 명령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주님에 의하여 신실하게 되어서 긍휼하심을 입은 자처럼 내가 의견을 준다(낸다).

(26) 그러므로 나는 이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가온 채 있는 재난 때문에 사람에게는 이와같이 있는 것이 좋다고.

(27) 네가 아내에게 묶인(매인) 채 있느냐? 너는 놓임을 찾지 말고 있어라. 네가 아내로부터 놓인 채 있느냐? 너는 아내를 찾지 말고 있어라.

(28) 그런데 만일 네가 역시 결혼할지라도 너는 죄짓는 것이 아니요 그리고 만일 처녀가 결혼할지라도 그녀가 죄짓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들은 육신에게 [장차] 환난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나 자신은 너희를 아낀다.

(29) 그런데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한다. 그 시점()이 단축된 채 있는 것으로 있다. 이제부터는 아내를 가지고 있는 자들 역시 가지고 있지 않는 자들처럼 [하고 있어라]

(30) 그리고 울고 있는 자들은 울고 있지 않는 자들처럼 [하고 있으며], 그리고 기뻐하고 있는 자들은 기뻐하지 않는 자들처럼 [하고 있고], 사고(매매하고) 있는 자들은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자들처럼 [하고 있어라]

(31) 그리고 세상을 이용하고 있는 자들은 충분히 이용하고 있지 않는 자들처럼 [하고 있어라]. 왜냐하면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가기 때문이다.

(32) 그런데 나는 너희가 염려없이 있기를 원한다. 결혼하지 않은 자는 어떻게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고 주의 일들을 염려한다.

(33) 그런데 결혼한 자(남자)는 어떻게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고 세상 일들을 염려한다.

(34) 그래서 그는 [마음이] 나뉘어진 채 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그리고 처녀는 주의 일들을 염려한다. 이는 그녀가 몸으로도 그리고 영으로도 다 거룩하게 있기 위함이다. 그런데 결혼했던 여자는 어떻게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여 세상 일들을 염려한다.

(35) 그런데 내가 이것을 너희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말한다. 이는 내가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합당함을 향하여 혼란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다.

(36) 그런데 만일 누가 자기의 처녀[]에 대하여 처사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만약 그녀가 때를 놓친 상태라면, 이와 같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는 그것을 원하는 대로 행하고 있어라. 그는 죄짓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결혼하게 하고 있어라.

(37) 그런데 그런 그가 그의 마음 속에 확고한 채 있고, 필요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뜻에 대하여 권세를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자기의 마음 속에서 그 자신의 처녀[]을 지키기로 결정한 채 있다면, 그는 잘 행한 것이다.

(38) 그래서 그 자신의 처녀[]을 결혼시키고 있는 이도 역시 잘 행하는 것이며, 그리고 결혼시키지 아니하는 이도 역시 더 잘하는 것이다.

(39) 아내는 자기의 남편이 살아있는 시간만큼 많이 묶인(매인) 채 있다. 그런데 만일 잠들었으면 그녀는 자기가 결혼하게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서 자유롭다. 오직 주안에서만 [말이다].

(40) 그런데 만일 그녀가 머문다면 그녀가 더욱 복이 있다. 나는 내 의견을 따라서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역시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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