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12)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괜찮은가?(고전8:1~13)_2021-06-09(수)

by 갈렙 posted Jun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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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09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둘째주일)
[제  목] 고린도전서강해(12)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괜찮은가?
[찬  송] 찬 257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찬 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서, 찬 250장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말  씀] 고전 8:1~13(신약 272면)
[키워드] 성도의결혼관,우상의제물취식문제,사랑과절제,방종과자유의한계,믿음이연약한자,귀신과우상숭배,우상의정의,우상의실체

 

1. 서론

. 고린도전서의 기본 이해

본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여러 통의 서신 중 신약 성경에 보존된 두 편의 서신 가운데 제1서신으로서, 헬라어 원전의 제목은 프로스 코린디우스 알파이다. 이에 따라 한글 개역성경에서도 고린도전서로 명명되었다. 본 서신의 저자는 사도 바울(1:1,16:21)이다. 고린도전·후서의 기록 시기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하는 바,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기간(A, D, 53-58) 중 에베소에 머물던 시기인 A.D. 55년 봄 무렵(16:5-8; 20:31)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본 서신의 수신자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한 곳이며,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다. 그리고 본 서신의 내용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교회 생활과 관련한 제반 질문 사항에 대한 목회적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의 배경 이해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영적 ·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및 신앙생활 현안들에 대한 목회적 답변의 서신서라고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각 서신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먼저 수신자 문제와 관련하여, 본 서신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A.D.49-52) 약 일년 반 동안 사역하며 개척한(18:11)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일차적 수신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당시 고린도(Corinth)는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헬라의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우선 고린도는 헬라의 상업 중심 도시였다.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협(地峽)의 남쪽 2km 지점에 위치한 고린도는 수많은 여행자와 상인들의 필수적 통행로였다. 고린도는 좁은 지협 양쪽으로 동쪽으로는 겐그레아(Cenchrea) 항구를, 서쪽으로는 레게움(Lechaeum)이라고 하는 항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 항구를 통해 이탈리아, 스페인, 소아시아, 페니키아, 이집트 등지로부터 온 많은 양의 상품들이 유통되었다.

또한 고린도는 문화적으로 보면 비록 아테네와 같은 교육과 문화의 도시는 아니었으나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헬라 문화의 특징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 헬라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그 영향으로 지혜를 높이 평가하였다. 종교적으로도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태양의 신 아폴로(Apollo), ()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등을 숭배하는 12개의 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거대 상업 도시들이 으레 그렇듯이 고린도 역시 다양한 외부 문화에 개방적이었으며 어떤 부도덕한 풍습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하지 않았다. 특히 성() 문제는 그 사회의 도덕적 척도라 할 수 있는데, 고린도는 성적으로 문란하기로 유명한 도시였다. 한 예로 고린도의 가장 높은 곳인 아크로 고린도에 세워진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1,000여 명의 신전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매춘을 자행하는 종교적 창녀들이었다. 고린도가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하였는지 고린도화하다 (Corinthianize)’ 라는 말은 곧 성적 부정을 행하다라는 뜻으로 통용될 정도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린도 교회가 많은 도덕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약 성경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본 서신 이전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서신을 보낸 바 있었다(5:9). 즉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기 이전에도 고린도 교회에는 음행을 비롯한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본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을 이미 시작하여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에 있었는데(16:8,9), 거기서 바울은 여러 경로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1:11:16:17). 바울에게 들려온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이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빠졌다는 것이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음행 문제 뿐 아니라 심각한 분쟁까지 발생하였으며, 그 분쟁의 양상 또한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들의 인맥(人脈)을 중심으로 분파(分派)가 생기는가 하면, 또한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또 패가 갈라져 다투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영적 은사를 받은 자들이 저마다 자기의 은사를 내세우며 자랑하였고 주의 만찬은 오용(誤用)되고 있었으며, 예배는 무질서하였다. 또한 교리적으로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마치 독소처럼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당시 고린도 교회의 형편과 특징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여 제시할 수 있다. 즉 고린도 교회는 분명 지식이 풍족하며 영적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다(1:5-7).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하고(immature) 신령하지 못한 (unspiritual) 교회였다(3:1-4).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은 이처럼 은사는 풍족하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여전히 미숙하고 육신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고린도 교회의 오류들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교회의 분쟁, 성적 부도덕, 세상 법정에서의 소송, 결혼 및 이혼, 우상 제물의 식사, 주의 만찬, 영적 은사의 사용, 예배의 질서, 부활의 교리 등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목회적 관점(pastoral view)’에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고린도 교회 내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목회적 상황에 대해, 목회자의 심정(a pastor’s heart)을 가지고 진심 어린 책망과 권면 및 바른 진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서신은 특정 상황(occasion)과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 속에서 복음의 원리가 교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1세기의 고린도 교회가 처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복음에 입각하여 그 해결 지침과 원리들을 제시한다. 바울이 본 서신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중요한 관심사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 일부 문제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 속에만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오늘의 문화적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적적, 교리적 문제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복음의 원리는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관계없이 중요하다.

시대에 따라 교회를 분열시키고 오염시키는 문제들의 양상과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였던 복음의 원리들, 예를 들어 교회의 유일한 기초로서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령의 전으로서의 성도의 몸, 회의 성결을 유지하기 위한 권징(勸懲)의 시행,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는 목적과 원리, 부활의 교리 등은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 서신은 불변하는(unchanging) 복음의 진리가, 변화하는(changing) 시대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중요한 목회적 통찰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고린도전서 내용분해(목차)

1) 인사말(1:1-3)

2) 고린도 교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1:4-9)

3) 고린도 교회의 파당과 분열(1:10-4:21)

A. 고린도 교회의 파당에 대한 보고(1:10-17)

B. 십자가의 미련한 지혜(1:18-25)

C. 하나님이 미련한 자들을 선택하심(1:26-31)

D. 인간의 지혜 대 하나님의 영과 능력(2:1-5)

E.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성령의 계시(2:6-16)

F. 하나님의 종들의 사역을 평가함(3:1-17)

G.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법과 타인을 평가하는 법(3:18-4:5)

H. 십자가의 지혜의 모델로서의 사도들(4:6-13)

I. 그들의 아버지 바울을 본받으라는 호소(4:14-21)

4) 근친상간, 소송, 매춘(5:1-6:20)

A. 근친상간의 사례(5:1-8)

B. 교회 안에서 죄를 관용한 것에 대해 새롭게 경고함(5:9-13)

C. 소송들에 반대하는 권고(6:1-11)

D. 창녀를 찾아가지 말라는 권고(6:12-20)

5) 성관계, 이혼, 혼인에 대한 가르침(7:1-40)

A. 혼인 안에서의 성관계(7:1-5)

B. 미혼자들과 과부들의 독신 생활 및 혼인(7:6-9)

C. 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 및 비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에게 주는 이혼에 대한 가르침(7:10-16)

D. 논의의 기저에 있는 지도 원리: 현재 상태로 있으라(7:17-24)

E. 약혼자들과 과부들의 혼인의 적절성(7:25-40)

6) 우상에 바쳐진 음식에 대한 논쟁(8:1-11:1)

A. 우상에 바쳐진 음식 문제의 소개(8:1-6)

B.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치는 위험으로 인해 그들의 행위를 논박함(8:7-13)

C. 그의 권면을 뒷받침하는 바울 자신의 예(9:1-27)

D.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부정적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13)

E. 주의 만찬의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4-22)

F. 이교도적 환경에서 우상의 음식 문제를 다루기 위한 실천적 충고(10:23-11:1)

7) 공적 예배에서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11:2-16)

8) 주의 만찬에서의 분열(11:17-34)

9) 공적 예배에서의 영적 은사의 사용(12:1-14:40)

A. 영적 은사의 소개(12:1-3)

B.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12:4-11)

C. 몸의 지체들의 다양성과 상호 의존성(12:12-31)

D. 사랑: 가장 좋은 길(13:1-13)

E. 방언과 예언의 대조(14:1-19)

F. 예언을 선호함(14:20-25)

G. 예배를 위한 규정과 영적 은사에 대한 결론적 가르침(14:26-40)

10) 부활(15:1-58)

A. 서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선포와 믿음(15:1-11)

B.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12-19)

C. 죽은 자들의 부활이 사실이므로 생겨나는 결과(15:20-28)

D.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29-34)

E. 부활의 육체적 성격(15:35-49)

F. 모두가 변화될 것임(15:50-58)

11) 연보에 대한 가르침과 여행 일정(16:1-12)

12) 끝인사(16:13-24)

 

 

. 고린도전서의 내용

고린도전서의 내용은 1:1-9의 도입부, 1:10-15:58의 본론부, 그리고 16장의 종결부로 구분할 수 있다.

 

1)도입부(1:1~9)

도입부에서는 당시의 일반적인 서신 형식을 따라 칭찬과 감사 등 통상적 인사를 담고 있으며, 종결부에서는 본론부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당부와 문안 인사를 담고 있다.

 

2)본론부(1:10~15:58)

그리고 본론부 1:10-15:58은 내용에 따라 다시 1:10-6:20까지의 전반부7-15장까지의 후반부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먼저 전반부 1:10-6:20 주로 고린도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 및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 제7-15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서신을 통해 질문한 신앙 현안들에 대해 바울이 목회적 관점에서 답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A. 전반부(1:10~6:20)

·후반부 두 부분으로 크게 양분한 본론부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0-6:201:10-4:21과 제5, 6장으로 다시 세분할 수 있는데, 이중 1:10-4:21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분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바울은 글로에의 집편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분열 소식을 전해들은 것을 밝히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했던 자신의 고린도 전도사역을 회상시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지혜이자 능력으로서 성도에게는 오직 예수만이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나서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들의 인맥(人脈)을 따라 분파를 지어 다투는 문제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지적하며 책망한다. 더 나아가 교회의 유일한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도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며 우주적 연합체라는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분파를 지어 서로 다투는 것은 결국 그들의 교만 때문임을 지적하며 부성애(父性愛)에 기초하여 분쟁을 종식할 것을 권면한다.

이어 5, 6고린도 교회의 윤리 문제, 도덕적 무질서의 문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세 가지 문제, 근친상간의 죄, 도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문제, 그리고 음행 죄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심지어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자까지도 용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하며, 그 죄를 범한 자에 대한 단죄를 선언함과 동시에 교회가 누룩 없는 떡이 되기 위해서,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징을 시행해야 함을 촉구한다. 그리고 성도간의 문제는 교회 내에서 판단할 것이지 결코 세상 법정에서 불신자들의 판단에 맡기지 말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음행 죄와 관련하여서는, 성도들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 및 성령이 거하는 성령의 전이라는 관점에서 음행 죄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성전을 더럽히는 심각한 죄임을 경고하고 있다.

 

B. 후반부(7~15)

다음으로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제기한 질문에 대한 목회적 답변 형식을 띠고 있는 7-15장은 결혼과 이혼, 우상 제물의 취식, 공적 예배시의 질서, 부활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제기되던 신앙 생활 현안 중 중요한 네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7장은 결혼과 관련된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혼자의 결혼 문제 뿐 아니라, 부부 생활, 이혼 문제, 불신 배우자와 결혼했을 경우의 처신, 과부의 재혼 등 혼인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각각의 경우들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과 더불어 포괄적인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8:1-11:1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첨예한 의견 대립의 요소가 되었던 바,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지식적으로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가 아닌 사랑과 자유 절제의 차원에서 접근하여 답변을 제시한다. 즉 원칙적으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성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에도 자유하지만,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해서 그 자유를 절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직접 자신을 권리와 자유를 절제한 모범으로 제시하여 고린도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을 것을 촉구하고, 또한 이스라엘의 자유를 남용한 부정적인 본보기를 제시하여 성도는 자유를 절제할 것과 또한 먹고 마시는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유익을 위하라고 권면한다.

이어 11:2-14:40 공적 예배에 관한 교훈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공적 예배의 질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성찬 문제, 영적 은사의 사용 등 세 가지 문제에 상당 분량을 할애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바울은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영적 질서와 창조 원리 및 당시의 문화적 규례에 따라 여성은 순종의 표시로서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찬의 문제에 있어서는, 성찬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거룩한 의식임을 일깨움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성찬 참여자의 바른 자세를 교훈한다.

특히 영적 은사에 관한 바울의 교훈은 특기할 만한데, 바울은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조화롭게 교훈한다. 즉 교회에 나타나는 은사는 다양하지만 그 은사들은 모두 한 분 성령께 기원을 두고 있으며, 또한 각 은사들의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심도있게 제시하고 있다. 영적 은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문맥 속에 사랑을 주제로 노래한 유명한 제13장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곧 모든 영적 은사들의 사용의 원리가 곧 사랑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은사에 대한 결론적 권면에서 모든 은사를 질서있게 사용하고 또한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이 방언에 비해 예언의 은사를 높이 평가하고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권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 예언이 방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어 제15장은 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 기독교 신앙의 근거이자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되는 그리스도 부활의 의의, 부활 이후의 몸의 상태, 부활 신앙과 성도들의 삶의 실질적 관계 등을 심도있게 제시함으로써 당시 고린도 교회에 퍼져 있던 부활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3)종결부(16)

마지막으로 본 서신의 종결부인 16장은 본론부에서 다루지 않은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질문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의 문제에 대해 바울은 그 연보 수집 및 전달 방법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 디모데와 아볼로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후, 교회 내 충성스러운 일꾼들에 대해 존경과 복종을 보이라는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써 본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 메시지 요약

 

1) 타락한 세속 문화 속에서의 교회의 위상 정립

본 서신에 언급되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윤리적 문제들 중 상당 부분은 당시 고린도의 혼탁한 도덕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교회 내 근친 상간자를 용납할 정도로 심각했던 음행의 문제고린도의 부도덕한 분위기에 교회가 그대로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 서신의 행간(行間)에는 불신 세계의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고린도 교회의 위상에 대한 바울의 깊은 탄식이 서려 있다. 세속 문화에 대해서 각 지교회가 어떤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본 서신 전반에 걸친 행간의 메시지이다.

 

2) 분쟁하는 교회를 향한 메시지

고린도 교회는 분쟁으로 갈라져 있는 교회였으며 분쟁의 양상도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를 따라 패를 갈라 다투고,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또한 서로 반목하였다. 교회의 분쟁이 어디 고린도 교회에만 해당되는 문제이겠는가? 오히려 분쟁과 반목이 없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아닌가? 바울 사도는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부성애적(父性愛的) 책망과 권면 및 분쟁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교훈을 본 서신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비록 분쟁의 양상과 종류는 다르다 할지라도, 분열과 반목에 빠져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은 바울의 책망과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윤리 실천과 신앙 성숙의 관계

고린도 교회는 지식과 영적 은사들이 풍성한 교회였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성숙한 성도들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의 유치성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분파를 형성하여 서로 다투고, 교만하고, 세상 법정에 소송하고, 남의 유익보다 자신의 유익만 중시하는 등 윤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 성숙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은사를 가지고 능력을 행하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성숙한 신앙은 윤리적인 면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서신 전반에 흐르는 교훈의 맥락이다.

 

4) 성도의 몸은 곧 성전

바울은 음행 (sexual immorality)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성도가 음행 죄를 피해야 할 보다 본질적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의 몸은 곧 성전(holytemple)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 처소였다면, 신약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內住)하시는 실제적 임재의 처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음행의 죄를 비롯하여 몸으로써 짓는 죄를 멀리해야 할 본질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5)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중요 현안으로 떠올랐던 우상 제물의 식사 문제에 대해 가부(可否)의 차원에서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다. 사실 우상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그 문제를 둘러싼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였다. 즉 그것을 지식의 차원에서만 해결하려고 하고, 교회의 덕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지식에 앞서 사랑으로 해결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옳고 그름을 따지는 지식의 차원을 떠나, 자기보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복음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면,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지식에 앞선 사랑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원리이다.

 

6)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diversity and unity)

고린도 교회는 영적 은사가 풍성하였으나 저마다 자기 은사를 자랑할 뿐 그 은사들을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세우는 데 잘 활용하지 못했다. 바울은 제12장에서 각각의 성도들은 다양한 은사를 받았는데, 그 은사들을 주신 분은 동일한 성령이시며, 성령께서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의 유익이라고 하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서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달리 말하면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교회는 각 사람이 가진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고, 또한 다양한 은사들을 교회의 유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7) 사랑과 건덕

은사 사용의 대원칙. 바울은 제12-14장의 긴 지면을 할애하여 영적 은사에 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사랑과 건덕(love and edification)을 은사 사용의 대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은사의 바른 활용은 사랑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며, 은사 활용의 목적은 오직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건덕의 원칙 위에 은사들이 활용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더욱 조화와 질서 속에서 아름답게 성장해 갈 것이다.

 

8) 공적 예배의 바른 시행

고린도 교회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찬의 잘못된 시행, 은사의 남용 및 오용 등의 원인으로 인해 공적 예배의 질서가 무너졌다. 공적 예배의 질서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그 교회 성도 신앙 생활 전반이 무질서하고 체계가 잡히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율법적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반대로 아무 원칙도 질서도 없는 것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무질서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혼란과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모든 공적 예배는 반드시 조화와 질서 속에 드려져야 한다.

 

9) 부활 신앙과 성도의 삶

교리의 문제는 성도의 실제적 삶과 직결된다. 즉 성도들의 신앙과 사상과 삶의 태도는 그들이 믿고 있는 특정 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토대로서, 부활에 대해 불신한다면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만다. 바울은 소위 부활장이라 불리는 제15장에서 기독교 신앙이 허공 위에 세워지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하는 확고한 역사적 사실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과 최후의 승리를 보증한다는 것을 제시한 후, 성도들이 부활 신앙에 굳게 서서 주의 일에 수고하는 자들이 되기를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부활이야말로 성도의 최대, 최고의 소망이며, 주 안에서 인내하고 수고하는 모든 삶에 확실한 보상이 될 것이다.

 

 

 

2. 미혼자의 결혼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교훈 및 과부의 재혼에 관한 교훈(고전7:25~40)

1)본문내용(고전7:25~40)

첫째, 미혼자의 결혼여부 문제와 관련한 바울의 개인적인 권면(25~28)

처녀의 결혼문제와 관련하여 주님의 직접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바울 자신의 신중한 의견을 피력하고자 함을 밝힌다. 곧 임박한 환난을 고려하여 그냥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기혼자는 독신생활을 구하지 말고, 미혼자는 결혼생활을 구하지 말라고 함으로써 결혼문제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 것을 권면하다. 그러나 결혼자체가 죄는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다만 임박한 종말을 고려할 때에 결혼생활의 책임과 의무로 인해 육신에 고난이 가중될 것임을 염려하는 자신의 마음을 밝힌다.

둘째, 결혼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 종말이 임박한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29~31)

주의 재림의 때가 가까웠음을 시사한다. 기혼자들은 미혼자처럼 행하라고 하여 결혼생활에 지나치게 매이지 말 것을 권면한다. 세상사의 변화를 따라 울고 웃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재물이나 소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 것을 교훈한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결국 사라져버릴 것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 주를 섬김에 있어서 독신의 유익성에 대한 설명(32~35)

미혼남자는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주의 일에만 골몰하지만 기혼남자는 아내도 기쁘게 하기 위해 세상일에 마음이 나누인다. 미혼여자는 주의 일에만 골몰하며 몸와 영을 다 헌신하지만 기혼여자는 남편을 기쁘게 하는 일로 마음이 나누인다. 독신생활에 대해 권하는 것은 성도들을 속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분산됨이 없이 주를 섬기도록 하기 위한 권면의 차원임을 밝힌다.

넷째, 혼기가 찬 딸을 둔 부모에 대한 권면(36~38)

딸을 혼기가 지나도록 붙들어둘 것이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되어 결혼시켜야 한다고 느끼면 가책받지 말고 결혼을 시키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결혼시켜야 할 부득이할 상황도 아니며 자유로운 결정으로 딸을 그대로 두기로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라고 하다. 딸을 시집보내는 것도 잘하는 것이지만 시집보내지 않는 것도 더 잘하는 것임을 첨언한다.

다섯째, 남편과 사별한 과부의 재혼에 관한 교훈(39~40)

남편과 사별한 과부는 재혼할 수는 있으나 주 안에서만 곧 성도와만 하라고 하다. 그러나 과부는 가급적 재혼하지 말로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되다고 하다. 이 권면은 성령의 권위에 입각한 것임을 밝힌다.

 

2)영적 교훈

첫째, 성도는 항상 임박한 환난을 대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25~26). 어떤 핍박을 당해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각오을 해야 한다.

둘째,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버릴 때에 환난날에 덜 괴롭다(27). 환난날에 혼자인 사람과 가족이 있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고통을 당하겠는가? 우리도 환난받을 때에 주를 섬기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될 것들을 버려야 한다. 세상에 대한 애착과 탐심,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셋째, 재림의 때가 더욱 단축된 시대에 걸맞는 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29~31). 재림의 때가 가까울수록 세상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고 재림을 맞을 방해되는 것을 정리해야 한다.

넷째, 성도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를 향한 헌신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32~34). 미혼자가 결혼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주를 향한 헌신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다.

다섯째, 성도는 배우자를 우상화하지 말아야 한다(34). 시집간 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는데 이는 배우자를 우상화하는 것이다. 배우자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배우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잘 듣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배우자의 행복만을 우선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섯째, 종말의 때일수록 더욱 정상적인 생활에 힘써야 한다(36~38).

일곱째,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하는 성도가 지혜로운 성도다(37~38). 이를 위해서는 재림을 사모하고, 기도하며, 사명에 충실하며, 열심히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덟째, 성도들의 결혼은 주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39). 과부들은 다시 결혼하든지 혼자 지내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주 안에서만 가능하다.

아홉째, 처녀의 결혼문제는 임박한 환난을 고려하여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으나 결혼자체가 결코 죄는 아니다(25~28).

열째, 기혼자는 독신생활을 구하지 말고, 미혼자는 결혼생활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성도가 결혼문제 자체에 대해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27).

열한째, 주를 섬김에 있어서 독신이 유익하기는 하지만 결혼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32~35).

열두째, 이혼자는 재혼할 수 없으나 남편을 잃은 과부는 재혼할 수 있다. 하지만 주 안에서만 해야 한다(39~40). 그러나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3. 우상제물 취식 문제에 대한 지침으로서의 사랑 및 자유절제의 교훈(관련문단, 14:1~23)

1)본문내용(14:1~23)

첫째, 우상 제물 문제에 관하여는 지식보다 사랑이 중요함(1~3)

지식을 자랑하는 고린도 교인들의 행실을 지적하며,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움을 가르친다. 스스로 지식이 있다고 하는 자는 아직 지식이 없는 자라고 함으로써 지식을 자랑하는 고린도 교인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시는 자라고 함으로써, 사랑은 지식에 비할 수 없이 월등한 것임을 강조한다.

둘째, 원칙적으로는 우상 제물도 먹을 수 있음(4~6)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허상에 불과하며, 참 신은 오직 하나님 뿐임을 말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도 그 자체로는 무슨 큰 일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세상에 신이요 인생의 주라 칭하는 우상들이 많이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오직 만물의 기원과 목적은 오직 성부, 성자 하나님께만 있다는 진리를 재차 강조한다.

셋째, 동시에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함(7~9)

그러나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바 우상 제물을 먹을 수 있다는 고도의 영적 확신과 지식은 모두가 가진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과거의 우상 숭배의 습관으로 인해, 지금도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을 우상과 교제하는 것이라 여기며, 먹음으로써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오염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우상 제물이나 기타 음식을 먹고 안 먹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좌우하거나 인생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우상 제물을 먹는 자는 그들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거리끼는 일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넷째, 자유와 지식의 남용으로 형제를 실족시켜서는 안됨(10~12)

가령 우상 제물에 대한 자유의 지식이 있는 자가 우상 신전에서 제물을 먹는 것을 보면 믿음이 약한 자도 양심의 거리낌을 가진 채 담력을 얻어 우상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경우 지식 있는 자의 지식 때문에 약한 자가 죄에 오염되는 것이다. 결국 그 지식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에게 죄를 지은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다.

넷째, 형제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바울 자신의 각오를 밝힘(13)

 

 

2)영적 교훈

고린도전서는 1:1-9의 도입부, 1:10-15:58의 본론부, 16장의 종결부로 구분된다. 그리고 본론부는 내용에 따라 다시 전반부 1:10~6:20후반부 제7-15으로 양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본론 전반부인 1:10~6:20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훈계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에 반해 본론 후반부인 제7-15장은 고린도 교회가 안고 있는 신앙 생활의 중요한 현안들에 관해 바울이 제시하는 목회적 답변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별히 후반부 제7-15장에서 바울은 결혼, 우상 제물의 취식, 공적 예배, 부활 등의 문제를 차례로 다루고 있는데, 8:1-11:1은 그 중 두 번째 문제인 우상 제물(idol meats)의 취식 문제에 관한 교훈을 다루고 있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조상들에 대한 제사 문제만큼이나 신앙 생활에 있어 초미의 관심사요 현안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그리스-로마의 도시들에는 우상의 신전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시민들의 생활은 우상 신전에서의 제의(祭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었다. 예컨대 도시의 시민들은 정기적으로 우상 신전에 참석하여 제사를 드렸고, 많은 대중 집회들이 우상의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또한 고기를 비롯하여 우상의 제물로 바쳐진 엄청난 양의 제물들은 다시 일반 시장으로 유통되어 시민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고린도에서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본서가 기록될 A.D. 55년 무렵 고린도에는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태양의 신 아폴로(Apollo),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등을 숭배하는 12개의 신전이 있을 정도로 우상 숭배가 극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신전들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들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이 문제에 심각하게 봉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가 이교 문화 사회에서 보편적 현상이 될 것을 직시한 초대 교회는 A.D. 49년 예루살렘 공의회(the Jerusalem Council)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방침을 정한 바 있다. 곧 교회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인들에게 율법의 짐을 지우지 않되,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음행, 목매어 죽인 동물의 고기, 네 가지를 멀리하라는 요구 사항을 제시하였던 것이다(15:20, 29). 물론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 제시된 이 네 가지 사항은 구원의 조건으로서 제시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 익숙한 유대인들의 양심을 고려하여 이방인들이 지켜주기를 요청한 것이었다.

고린도 교회는 A. D, 49-52년 사이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시기에 개척된 교회였다. 따라서 바울은 예루살렘 공의회의 이러한 결정을 알고 있었지만, 고린도 교회 개척 당시에는 십자가 복음을 중심으로 전도하였기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수년이 흘러 이 문제가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 생활에 중요 현안으로 떠오르게 되자 바울은 본 서신을 통해 이에 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에 대해 단순히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을 따라 가부를 통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문제를 좀 더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하도록 교훈한다. 바울은 사랑과 자유의 절제차원에서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나타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을 개괄하자면, 먼저 8:1-13에서 바울은 우상 제물의 식사 문제를 언급하며 사랑과 자유의 절제라고 하는 문제 해결의 지침을 제시한다. 여기서 바울은 원칙적으로 우상 제물을 먹을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밝힌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 자체가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세상 만물이 다 하나님께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지식을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있다. 지식을 가진 자가 그 지식을 자랑하며 우상 제물을 함부로 먹는다면 믿음이 약한 자가 양심에 상처를 입게 되고, 심지어는 실족할 수도 있는 바 결국 그 지식을 가진 자는 자신의 지식으로써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셈이 되는 것이다(12). 왜냐하면 믿음이 연약한 형제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으로 값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소유일 뿐만 아니라, 형제를 실족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지체,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에 바울은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가부(可否) 여부를 밝히기 보다는, 오히려 지식에 앞선 사랑을 강조하며 (1), 또한 지식 있는 자의 자유가 약한 자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자유의 절제를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9).

 

이어 9장의 세 문단은 우상 제물 취식 문제에 대해 자유 절제의 지침을 제시한 바울이, 그 자유 절제에 대한 실례로서 자기 자신의 모범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바울은 사도로서 교회의 부양을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었다(5, 7, 11,14). 또한 바울은 자유자로서 그 누구에게도 속박될 필요가 없는 자였다(19). 그러나 바울은 사도로서 교회의 부양을 받을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또한 자유자로서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 바울이 이처럼 스스로의 권리와 자유를 '포기' 할 정도까지 절제한 동기는 궁극적으로 복음을 위해서였다(13, 23). 즉 바울은 자신의 어떤 것으로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되기를 원치 않았으며, 할 수 있는 대로 복음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원했고, 그리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진정한 상급을 얻기 원했던 것이다(18, 27).

이어 10:1-13에서 바울은 9장의 사례와는 정반대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한 자유 남용의 실례를 제시한다. 과거 홍해를 건너 출애굽한 이스라엘 조상들은 광야에서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았으며,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낸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큰 기적과 은혜를 체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였던 그들은 광야에서 곧 방종에 빠져 우상 숭배와 간음과 원망의 죄를 자행하다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바울은 이러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역사가 곧 신약 성도들에게 거울과도 같다고 함으로써, 신약 성도들이 자유의 남용으로 멸망한 이스라엘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훈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 남용과 그 결과로서의 멸망의 사례를 제시한 바울은, 10:14-22에서 당시 고린도인들이 자유를 남용함으로써 가장 빠지기 쉬운 문제에 대해 경고한다. 곧 이방 신전의 제사에 참석함으로써 우상 숭배에 빠지는 문제에 대한 경고이다. 우상 제물을 먹는 것과 우상 제의에 참석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귀신에게 제사하는 이방 신전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지 말기를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0:23-11:1에서우상 제물 취식 문제에 대한 결론적 권면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23)라고 함으로써, 우상 제물의 식사 문제는 () - 불가(不可)’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과연 유익한지 혹은 덕을 끼치는지의 차원에서 접근하도록 한다. 그리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며,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31,32)고 최종적으로 권면하고 있다.

이상에서 바울은 '사랑과 자유 절제' 의 지침을 통해 우상 제물의 식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도, 더 나아가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 이라고 하는 보다 고양된 목적에 관심을 기울이기를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우상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그 문제를 둘러싼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였다. 즉 그것을 지식의 차원에서만 해결하려고 하고, 교회의 덕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 분쟁 역시 지식의 결핍보다는 사랑의 결핍 때문에 발생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복음의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라면 교회는 어떠한 양보도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당시의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처럼 복음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부차적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태도는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하고 확대시킬 뿐이다. 지식보다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자유 행사보다 교회의 덕을 먼저 생각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세를 가질 때, 교회 내 문제의 대부분은 아름답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우상의 제물 취식의 문제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임으로 사랑의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1).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먹어도 된다는 사람과 일체 먹을 수 없다는 사람이 같이 있었다. 전자는 대부분 기독교에 개종한 이방인출신 그리스도인들이요, 후자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다.

둘째, 사랑없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덕을 세우지 못한다(2). 사랑없는 지식은 덕 없는 교만일 뿐이다. 참된 지식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라야 한다. 성도가 지식을 함부로 사용하면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실족할 수 있으므로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은 필요하지만 지식만으로 충분하지 않다(2). 믿음이 약한 형제를 해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로 성도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단편적인 지식은 오히려 남을 해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 이 세상에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즉 허상에 불과하다. 오직 살아계신 분은 한 분 하나님 뿐이시다(4). 여기서많은 신들이라는 우상을 가리키 것이다.

다섯째, 한 분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며, 한 분 주님은 예수님이시다(6). 하나님 아버지는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통치자이며, 성도들의 영적인 아버지이시다. 한 주 예수님은 주와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이시다. 그러나 헬라사람들은 다신론자였다. 그들은 최소 12명의 신들을 섬겼다. 고로 고린도의 신전에는 하늘을 관장하는 제우스 그의 아내 헤라태양을 관장하는 아폴로사냥과 출산의 여신 아르테미스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곡물과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전쟁과 지혜의 여신은 아테네군대의 신인 아레스전령들의 신 헤르메스불과 대장간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등의 신상이 모셔져 있었으며, 12신 외에도 26신을 섬겼다. 거기에다가 황제를 주 곧 신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인간의 유일한 섬김의 대상이시다.

여섯째, 우상제물의 취식문제는 믿음이 약한 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그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설정되어야 한다(7).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성숙한 자는 우상의 제물이라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지식과 영적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하게 하지 않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일곱째, 우상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우상에게 바쳐진 것을 먹으면 그것은 그의 양심을 약하게 만들어 더럽게 한다(7).

여덟째,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를 행사할 경우 사랑에 근거해서 행해야 하며, 형제들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8). 즉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제 마음대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자유가 상대방에서 미칠 영향에 대하여 예민한 판단을 가지고 사랑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아홉째, 우상은 허상이지만 그 배후에는 귀신이 있기에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명백한 우상숭배다(10). 그러므로 자신이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음식을 먹는 것은 미성숙한 형제들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해도 괜찮은 것으로 만들어서 결국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우상숭배를 하게 만들고 우상숭배 음식도 먹어서 그리스도의 성찬을 더럽힐 수가 있다.

열째, 사랑이 결핍된 지식은 믿음이 약한 자를 멸망으로 끌어갈 수 있다(11). 고로 자신의 신앙양심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자의 시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열한째,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 죄를 짓게 하며 그의 양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12).

열두째, 나에게 주어진 신앙의 자유가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그 신앙의 자유는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13). 형제들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소유한 자유를 기꺼이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열셋째,

열셋째, 사랑이 지식보다 더 우월하다. 고로 성도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사랑이다. 지식도 필요하나 진정으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인 것이다(3)

열넷째, 성도의 자유는 사랑으로 절제되어야 한다(9~13). 성도의 사랑없는 무분별한 행동은 죄가 된다(12).

 

< 고린도전서 8:1~13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성도의 결혼관과 우상의 제물 취식의 문제에 대해 바른 지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는 주의 재림을 앞두고 임박한 환난을 앞두고 그냥 지내는 것이 좋지만 장가가도 시집가는 것도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독신으로 지내면 좀 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결혼적령기에 있는 딸이나 약혼녀는 본인과 부모나 약혼자의 결정에 따라 결혼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과부는 오직 주안에서 자유로이 재혼할 수 있지만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을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상은 존재하지 않기에 우상의 제물도 원칙적으로 자유로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상의 제물 배후에는 귀신이 도사리고 있기에 성도라도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도 아니 되며, 우상제물취식은 믿음이 약한 형제를 넘어지게도 할 수 있기에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자유로 인하여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짓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지식보다는 사랑과 절제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지식으로 행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사랑으로 행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내게 주어진 자유라도 절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다른 형제를 생각하며 행동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이혼과 재혼을 너무나 쉽게 결정하게 만들어온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형제를 사랑함으로 절제해야 함에도 지식의 자유로움을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자유를 가지고 방종하지 말고 절제함으로 사랑을 실천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처녀가 결혼을 선택한다고 할지라도 주를 기쁘시게 하는 가정을 만들어야 하는구나.

2. 재혼은 과부에게 허용되기는 하나 주 안에서 가능한 것이로구나.

3.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지식의 관점이 아니라 사랑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구나.

4.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신 아버지 뿐이고, 오직 주님도 한 분이신 예수님 뿐이로구나.

5.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었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고린도전서 제8장 헬라어직역

(01) 우상의 제물들에 관하여, 우리는 모두가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온 채 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그런데 사랑은 건축한다(세운다).

(0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인가를 아는 채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는 아직도 마땅히 아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요

(03) 그런데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으면, 이이는 그분에 의하여 알려진 채 있는 것이다.

(0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들을 먹음에 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 안에서 아무 것도 아니며 그리고 하나님은 한 분 외에 없다는 것을 알아온 채 있다.

(05) 그리고 왜냐하면 실로 하늘 안에서든지 또는 땅 위에서든지 신들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신들과 그리고 많은 주들이 있는 것처럼.

(0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분 하나님 곧 아버지가 [있다]. 만물이 그분에서부터(에크) [있고] 그리고 우리도 그분을 위하여 [있다]. 그리고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있으니] 만물이 그를 통하여 [있고] 그리고 우리도 그분을 통하여 [있다]

(07) 그러나 그 지식은 모든 사람 안에 있지 않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의 것을 관습으로서 우상의 제물로 먹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양심이 약해지고 더럽혀지고 있다.

(08) 그런데 먹는 것(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옆에 내세우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먹지 않을지라도 부족하지 아니하며, 만일 우리가 먹을지라도 넘치지 않는다.

(09) 그런데 어떻게든지 권세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너희는 [계속] 주의하고 있어라.

(10) 왜냐하면 만일 지식을 가지고 있는 네가 우상의 신당 안에서 기대어 앉은 채로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본다면, 약한 그의 양심이 우상의 제물들을 먹는 것에 관하여 [장차] 담력을 얻게 되지 않겠는가?

(11) 왜냐하면 연약한 자가 네게 속한 지식 안에서 멸망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던 바 그 형제가 [] 때문에.

(12) 그런데 이와 같이 너희가 형제들 안으로 죄를 짓고 있으면서, 연약한 양심에 상처를 주고 있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그 시대까지) 고기들을 먹지 아니할 것이다.

 

[참고] 고린도전서 8장 킹제임스흠정역

1 이제 우상들에게 바친 것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로 아나니 지식은 우쭐대게 하나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

2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바를 아직 전혀 알지 못하느니라.

3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께서도 바로 그 사람을 아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그것들을 먹는 것에 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한 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들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어 (신들도 많고 주들도 많으나)

6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분 안에 있노라. 또 한 []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7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그 지식이 있지는 아니하나니 어떤 사람들은 이 시각까지도 우상을 의식하며 우상에게 바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먹으므로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러워졌느니라.

8 그러나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어도 더 낫지 아니하고 먹지 않아도 더 못하지 아니하니라.

9 오직 너희의 이 자유가 약한 자들에게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이 있는 네가 우상의 전에서 음식 앞에 앉은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약한 그 사람의 양심이 담대하게 되어 우상들에게 바친 그것들을 먹게 되지 아니하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 약한 형제가 멸망하리니 그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느니라.

12 그러나 너희가 이와 같이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느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하면 나는 세상이 서 있는 한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가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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