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25)[최종회] 교회성도들을 위한 연보와 바울의 마지막 부탁 및 인사(고전16:1~24)_2021-10-27(수)

by 갈렙 posted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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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7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스물두째주일)
[제  목] 고린도전서강해(25)[최종회] 교회성도들을 위한 연보와 바울의 마지막 부탁 및 인사
[찬  송]  찬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찬250장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찬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말  씀] 고전16:1~24(신약 285면)
[키워드] 예루살렘교회위한연보(모금),고린도방문계획,디모데파송,아볼로소식,마지막권면,마라나타,은혜와사랑

 

1. 서론

. 고린도전서의 기본 이해

본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여러 통의 서신 중 신약 성경에 보존된 두 편의 서신 가운데 제1서신으로서, 헬라어 원전의 제목은 프로스 코린디우스 알파이다. 이에 따라 한글 개역성경에서도 고린도전서로 명명되었다. 본 서신의 저자는 사도 바울(1:1,16:21)이다. 고린도전·후서의 기록 시기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하는 바,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기간(A, D, 53-58) 중 에베소에 머물던 시기인 A.D. 55년 봄 무렵(16:5-8; 20:31)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본 서신의 수신자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한 곳이며,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다. 그리고 본 서신의 내용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교회 생활과 관련한 제반 질문 사항에 대한 목회적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의 배경 이해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영적 ·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및 신앙생활 현안들에 대한 목회적 답변의 서신서라고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각 서신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먼저 수신자 문제와 관련하여, 본 서신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A.D.49-52) 약 일년 반 동안 사역하며 개척한(18:11)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일차적 수신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당시 고린도(Corinth)는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헬라의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우선 고린도는 헬라의 상업 중심 도시였다.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협(地峽)의 남쪽 2km 지점에 위치한 고린도는 수많은 여행자와 상인들의 필수적 통행로였다. 고린도는 좁은 지협 양쪽으로 동쪽으로는 겐그레아(Cenchrea) 항구를, 서쪽으로는 레게움(Lechaeum)이라고 하는 항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 항구를 통해 이탈리아, 스페인, 소아시아, 페니키아, 이집트 등지로부터 온 많은 양의 상품들이 유통되었다.

또한 고린도는 문화적으로 보면 비록 아테네와 같은 교육과 문화의 도시는 아니었으나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헬라 문화의 특징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 헬라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그 영향으로 지혜를 높이 평가하였다. 종교적으로도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태양의 신 아폴로(Apollo), ()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등을 숭배하는 12개의 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거대 상업 도시들이 으레 그렇듯이 고린도 역시 다양한 외부 문화에 개방적이었으며 어떤 부도덕한 풍습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하지 않았다. 특히 성() 문제는 그 사회의 도덕적 척도라 할 수 있는데, 고린도는 성적으로 문란하기로 유명한 도시였다. 한 예로 고린도의 가장 높은 곳인 아크로 고린도에 세워진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1,000여 명의 신전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매춘을 자행하는 종교적 창녀들이었다. 고린도가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하였는지 고린도화하다 (Corinthianize)’ 라는 말은 곧 성적 부정을 행하다라는 뜻으로 통용될 정도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린도 교회가 많은 도덕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약 성경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본 서신 이전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서신을 보낸 바 있었다(5:9). 즉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기 이전에도 고린도 교회에는 음행을 비롯한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본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을 이미 시작하여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에 있었는데(16:8,9), 거기서 바울은 여러 경로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1:11:16:17). 바울에게 들려온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이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빠졌다는 것이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음행 문제 뿐 아니라 심각한 분쟁까지 발생하였으며, 그 분쟁의 양상 또한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들의 인맥(人脈)을 중심으로 분파(分派)가 생기는가 하면, 또한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또 패가 갈라져 다투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영적 은사를 받은 자들이 저마다 자기의 은사를 내세우며 자랑하였고 주의 만찬은 오용(誤用)되고 있었으며, 예배는 무질서하였다. 또한 교리적으로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마치 독소처럼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당시 고린도 교회의 형편과 특징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여 제시할 수 있다. 즉 고린도 교회는 분명 지식이 풍족하며 영적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다(1:5-7).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하고(immature) 신령하지 못한 (unspiritual) 교회였다(3:1-4).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은 이처럼 은사는 풍족하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여전히 미숙하고 육신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고린도 교회의 오류들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교회의 분쟁, 성적 부도덕, 세상 법정에서의 소송, 결혼 및 이혼, 우상 제물의 식사, 주의 만찬, 영적 은사의 사용, 예배의 질서, 부활의 교리 등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목회적 관점(pastoral view)’에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고린도 교회 내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목회적 상황에 대해, 목회자의 심정(a pastor’s heart)을 가지고 진심 어린 책망과 권면 및 바른 진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서신은 특정 상황(occasion)과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 속에서 복음의 원리가 교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1세기의 고린도 교회가 처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복음에 입각하여 그 해결 지침과 원리들을 제시한다. 바울이 본 서신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중요한 관심사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 일부 문제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 속에만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오늘의 문화적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적적, 교리적 문제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복음의 원리는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관계없이 중요하다.

시대에 따라 교회를 분열시키고 오염시키는 문제들의 양상과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였던 복음의 원리들, 예를 들어 교회의 유일한 기초로서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령의 전으로서의 성도의 몸, 회의 성결을 유지하기 위한 권징(勸懲)의 시행,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는 목적과 원리, 부활의 교리 등은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 서신은 불변하는(unchanging) 복음의 진리가, 변화하는(changing) 시대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중요한 목회적 통찰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고린도전서 내용분해(목차)

1) 인사말(1:1-3)

2) 고린도 교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1:4-9)

3) 고린도 교회의 파당과 분열(1:10-4:21)

A. 고린도 교회의 파당에 대한 보고(1:10-17)

B. 십자가의 미련한 지혜(1:18-25)

C. 하나님이 미련한 자들을 선택하심(1:26-31)

D. 인간의 지혜 대 하나님의 영과 능력(2:1-5)

E.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성령의 계시(2:6-16)

F. 하나님의 종들의 사역을 평가함(3:1-17)

G.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법과 타인을 평가하는 법(3:18-4:5)

H. 십자가의 지혜의 모델로서의 사도들(4:6-13)

I. 그들의 아버지 바울을 본받으라는 호소(4:14-21)

4) 근친상간, 소송, 매춘(5:1-6:20)

A. 근친상간의 사례(5:1-8)

B. 교회 안에서 죄를 관용한 것에 대해 새롭게 경고함(5:9-13)

C. 소송들에 반대하는 권고(6:1-11)

D. 창녀를 찾아가지 말라는 권고(6:12-20)

5) 성관계, 이혼, 혼인에 대한 가르침(7:1-40)

A. 혼인 안에서의 성관계(7:1-5)

B. 미혼자들과 과부들의 독신 생활 및 혼인(7:6-9)

C. 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 및 비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에게 주는 이혼에 대한 가르침(7:10-16)

D. 논의의 기저에 있는 지도 원리: 현재 상태로 있으라(7:17-24)

E. 약혼자들과 과부들의 혼인의 적절성(7:25-40)

6) 우상에 바쳐진 음식에 대한 논쟁(8:1-11:1)

A. 우상에 바쳐진 음식 문제의 소개(8:1-6)

B.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치는 위험으로 인해 그들의 행위를 논박함(8:7-13)

C. 그의 권면을 뒷받침하는 바울 자신의 예(9:1-27)

D.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부정적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13)

E. 주의 만찬의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4-22)

F. 이교도적 환경에서 우상의 음식 문제를 다루기 위한 실천적 충고(10:23-11:1)

7) 공적 예배에서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11:2-16)

8) 주의 만찬에서의 분열(11:17-34)

9) 공적 예배에서의 영적 은사의 사용(12:1-14:40)

A. 영적 은사의 소개(12:1-3)

B.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12:4-11)

C. 몸의 지체들의 다양성과 상호 의존성(12:12-31)

D. 사랑: 가장 좋은 길(13:1-13)

E. 방언과 예언의 대조(14:1-19)

F. 예언을 선호함(14:20-25)

G. 예배를 위한 규정과 영적 은사에 대한 결론적 가르침(14:26-40)

10) 부활(15:1-58)

A. 서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선포와 믿음(15:1-11)

B.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12-19)

C. 죽은 자들의 부활이 사실이므로 생겨나는 결과(15:20-28)

D.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29-34)

E. 부활의 육체적 성격(15:35-49)

F. 모두가 변화될 것임(15:50-58)

11) 연보에 대한 가르침과 여행 일정(16:1-12)

12) 끝인사(16:13-24)

 

 

. 고린도전서의 내용

고린도전서의 내용은 1:1-9의 도입부, 1:10-15:58의 본론부, 그리고 16장의 종결부로 구분할 수 있다.

 

1)도입부(1:1~9)

도입부에서는 당시의 일반적인 서신 형식을 따라 칭찬과 감사 등 통상적 인사를 담고 있으며, 종결부에서는 본론부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당부와 문안 인사를 담고 있다.

 

2)본론부(1:10~15:58)

그리고 본론부 1:10-15:58은 내용에 따라 다시 1:10-6:20까지의 전반부7-15장까지의 후반부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먼저 전반부 1:10-6:20 주로 고린도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 및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 제7-15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서신을 통해 질문한 신앙 현안들에 대해 바울이 목회적 관점에서 답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A. 전반부(1:10~6:20)

·후반부 두 부분으로 크게 양분한 본론부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0-6:201:10-4:21과 제5, 6장으로 다시 세분할 수 있는데, 이중 1:10-4:21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분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바울은 글로에의 집편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분열 소식을 전해들은 것을 밝히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했던 자신의 고린도 전도사역을 회상시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지혜이자 능력으로서 성도에게는 오직 예수만이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나서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들의 인맥(人脈)을 따라 분파를 지어 다투는 문제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지적하며 책망한다. 더 나아가 교회의 유일한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도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며 우주적 연합체라는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분파를 지어 서로 다투는 것은 결국 그들의 교만 때문임을 지적하며 부성애(父性愛)에 기초하여 분쟁을 종식할 것을 권면한다.

이어 5, 6고린도 교회의 윤리 문제, 도덕적 무질서의 문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세 가지 문제, 근친상간의 죄, 도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문제, 그리고 음행 죄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심지어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자까지도 용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하며, 그 죄를 범한 자에 대한 단죄를 선언함과 동시에 교회가 누룩 없는 떡이 되기 위해서,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징을 시행해야 함을 촉구한다. 그리고 성도간의 문제는 교회 내에서 판단할 것이지 결코 세상 법정에서 불신자들의 판단에 맡기지 말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음행 죄와 관련하여서는, 성도들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 및 성령이 거하는 성령의 전이라는 관점에서 음행 죄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성전을 더럽히는 심각한 죄임을 경고하고 있다.

 

B. 후반부(7~15)

다음으로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제기한 질문에 대한 목회적 답변 형식을 띠고 있는 7-15장은 결혼과 이혼, 우상 제물의 취식, 공적 예배시의 질서, 부활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제기되던 신앙 생활 현안 중 중요한 네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7장은 결혼과 관련된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혼자의 결혼 문제 뿐 아니라, 부부 생활, 이혼 문제, 불신 배우자와 결혼했을 경우의 처신, 과부의 재혼 등 혼인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각각의 경우들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과 더불어 포괄적인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8:1-11:1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첨예한 의견 대립의 요소가 되었던 바,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지식적으로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가 아닌 사랑과 자유 절제의 차원에서 접근하여 답변을 제시한다. 즉 원칙적으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성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에도 자유하지만,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해서 그 자유를 절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직접 자신을 권리와 자유를 절제한 모범으로 제시하여 고린도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을 것을 촉구하고, 또한 이스라엘의 자유를 남용한 부정적인 본보기를 제시하여 성도는 자유를 절제할 것과 또한 먹고 마시는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유익을 위하라고 권면한다.

이어 11:2-14:40 공적 예배에 관한 교훈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공적 예배의 질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성찬 문제, 영적 은사의 사용 등 세 가지 문제에 상당 분량을 할애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바울은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영적 질서와 창조 원리 및 당시의 문화적 규례에 따라 여성은 순종의 표시로서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찬의 문제에 있어서는, 성찬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거룩한 의식임을 일깨움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성찬 참여자의 바른 자세를 교훈한다.

특히 영적 은사에 관한 바울의 교훈은 특기할 만한데, 바울은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조화롭게 교훈한다. 즉 교회에 나타나는 은사는 다양하지만 그 은사들은 모두 한 분 성령께 기원을 두고 있으며, 또한 각 은사들의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심도있게 제시하고 있다. 영적 은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문맥 속에 사랑을 주제로 노래한 유명한 제13장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곧 모든 영적 은사들의 사용의 원리가 곧 사랑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은사에 대한 결론적 권면에서 모든 은사를 질서있게 사용하고 또한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이 방언에 비해 예언의 은사를 높이 평가하고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권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 예언이 방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어 제15장은 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 기독교 신앙의 근거이자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되는 그리스도 부활의 의의, 부활 이후의 몸의 상태, 부활 신앙과 성도들의 삶의 실질적 관계 등을 심도있게 제시함으로써 당시 고린도 교회에 퍼져 있던 부활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3)종결부(16)

마지막으로 본 서신의 종결부인 16장은 본론부에서 다루지 않은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질문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의 문제에 대해 바울은 그 연보 수집 및 전달 방법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 디모데와 아볼로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후, 교회 내 충성스러운 일꾼들에 대해 존경과 복종을 보이라는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써 본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 메시지 요약

 

1) 타락한 세속 문화 속에서의 교회의 위상 정립

본 서신에 언급되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윤리적 문제들 중 상당 부분은 당시 고린도의 혼탁한 도덕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교회 내 근친 상간자를 용납할 정도로 심각했던 음행의 문제고린도의 부도덕한 분위기에 교회가 그대로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 서신의 행간(行間)에는 불신 세계의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고린도 교회의 위상에 대한 바울의 깊은 탄식이 서려 있다. 세속 문화에 대해서 각 지교회가 어떤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본 서신 전반에 걸친 행간의 메시지이다.

 

2) 분쟁하는 교회를 향한 메시지

고린도 교회는 분쟁으로 갈라져 있는 교회였으며 분쟁의 양상도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를 따라 패를 갈라 다투고,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또한 서로 반목하였다. 교회의 분쟁이 어디 고린도 교회에만 해당되는 문제이겠는가? 오히려 분쟁과 반목이 없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아닌가? 바울 사도는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부성애적(父性愛的) 책망과 권면 및 분쟁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교훈을 본 서신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비록 분쟁의 양상과 종류는 다르다 할지라도, 분열과 반목에 빠져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은 바울의 책망과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윤리 실천과 신앙 성숙의 관계

고린도 교회는 지식과 영적 은사들이 풍성한 교회였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성숙한 성도들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의 유치성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분파를 형성하여 서로 다투고, 교만하고, 세상 법정에 소송하고, 남의 유익보다 자신의 유익만 중시하는 등 윤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 성숙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은사를 가지고 능력을 행하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성숙한 신앙은 윤리적인 면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서신 전반에 흐르는 교훈의 맥락이다.

 

4) 성도의 몸은 곧 성전

바울은 음행 (sexual immorality)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성도가 음행 죄를 피해야 할 보다 본질적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의 몸은 곧 성전(holytemple)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 처소였다면, 신약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內住)하시는 실제적 임재의 처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음행의 죄를 비롯하여 몸으로써 짓는 죄를 멀리해야 할 본질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5)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중요 현안으로 떠올랐던 우상 제물의 식사 문제에 대해 가부(可否)의 차원에서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다. 사실 우상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그 문제를 둘러싼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였다. 즉 그것을 지식의 차원에서만 해결하려고 하고, 교회의 덕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지식에 앞서 사랑으로 해결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옳고 그름을 따지는 지식의 차원을 떠나, 자기보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복음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면,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지식에 앞선 사랑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원리이다.

 

6)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diversity and unity)

고린도 교회는 영적 은사가 풍성하였으나 저마다 자기 은사를 자랑할 뿐 그 은사들을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세우는 데 잘 활용하지 못했다. 바울은 제12장에서 각각의 성도들은 다양한 은사를 받았는데, 그 은사들을 주신 분은 동일한 성령이시며, 성령께서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의 유익이라고 하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서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달리 말하면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교회는 각 사람이 가진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고, 또한 다양한 은사들을 교회의 유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7) 사랑과 건덕

은사 사용의 대원칙. 바울은 제12-14장의 긴 지면을 할애하여 영적 은사에 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사랑과 건덕(love and edification)을 은사 사용의 대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은사의 바른 활용은 사랑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며, 은사 활용의 목적은 오직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건덕의 원칙 위에 은사들이 활용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더욱 조화와 질서 속에서 아름답게 성장해 갈 것이다.

 

8) 공적 예배의 바른 시행

고린도 교회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찬의 잘못된 시행, 은사의 남용 및 오용 등의 원인으로 인해 공적 예배의 질서가 무너졌다. 공적 예배의 질서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그 교회 성도 신앙 생활 전반이 무질서하고 체계가 잡히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율법적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반대로 아무 원칙도 질서도 없는 것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무질서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혼란과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모든 공적 예배는 반드시 조화와 질서 속에 드려져야 한다.

 

9) 부활 신앙과 성도의 삶

교리의 문제는 성도의 실제적 삶과 직결된다. 즉 성도들의 신앙과 사상과 삶의 태도는 그들이 믿고 있는 특정 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토대로서, 부활에 대해 불신한다면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만다. 바울은 소위 부활장이라 불리는 제15장에서 기독교 신앙이 허공 위에 세워지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하는 확고한 역사적 사실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과 최후의 승리를 보증한다는 것을 제시한 후, 성도들이 부활 신앙에 굳게 서서 주의 일에 수고하는 자들이 되기를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부활이야말로 성도의 최대, 최고의 소망이며, 주 안에서 인내하고 수고하는 모든 삶에 확실한 보상이 될 것이다.

 

 

 

2.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 방법 및 전달에 관한 지침(고전16:1~4)

1)본문내용(고전16:1~4)

첫째,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여보를 독려함(1~2)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처럼 연보하라고 명한다. 매주일 첫날에 각 사람이 수입 중 얼마를 따로 떼어 모아둠으로 자신이 방문했을 때에 따로 연보를 하지 않도록 지시한다.

둘째,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의 전달 계획을 밝힘(3~4)

고린도 교인들의 인정을 받은 몇 사람에게 바울이 추천의 편지를 써주어 그들이 연보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할 것이라고 한다. 만일 바울 자신도 연보를 가져가는 것들과 동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면 자신도 함께 올라가겠다고 한다.

 

2)영적 교훈

16장은 본 서신의 종결부이다. 16장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주제로 묶을 만큼 중심적인 주제는 없으며, 다만 본론부에서 다루지 않은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한 간략한 언급, 마지막 권면, 문안 인사 축도로 그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의 문제(1-4)아볼로의 고린도 방문 여부의 문제(12)를 언급할 때 바울은 에 대하여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 문제들이 고린도 교인들이 서신을 통해 바울에게 질문한 내용들에 대한 답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내용은 전체 내용 구조상 고린도 교회의 질문들에 대한 바울의 답변을 다루고 있는 본론 후반부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다룬 문제들처럼 신앙 생활의 주요 현안이 아니며, 바울 역시 이 문제들을 간략히 언급하는 정도이기에 서신의 종결부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먼저 1-4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의 수집 및 전달 방법에 대한 지침을 담고 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기근, 핍박 등의 영향으로 가난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와 마게도냐 교회에 그러했던 것처럼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도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형제애를 발휘하여 연보를 할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방법까지 가르쳐주고 있다.

다음 5-12절에서는 바울 자신의 고린도 방문 계획 및 디모데 파송 소식을 알리며, 고린도 교인들이 궁금해한 아볼로의 고린도 방문 여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본 서신을 기록할 당시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거의 마무리해 가고 있는 시기였다. 바울은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를 방문하여 고린도에서 겨울을 날 계획을 통보하고 있으며, 현재로서 에베소에 좀 더 머물려고 하는 이유는 대적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효과적인 사역을 할 기회가 활짝 열려 있기 때문임을 밝힌다.

한편 아볼로(Apollos)에 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아볼로는 지식과 학문에 능통한 자로서(18:24) ‘아볼로파가 있을 정도로(1:12)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아볼로의 방문을 요청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바울은 아볼로에게 그렇게 하기를 권하였으나 아볼로는 현재로서는 고린도를 방문할 뜻이 없음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아볼로의 결정은 고린도 교회의 리더십의 문제, 곧 특정 인맥을 중심으로 분파를 형성하고 다투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사려깊은 결정으로 보인다. 본 서신의 기록 당시 아볼로는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 있었다. 바울이 아볼로로 하여금 고린도를 방문하도록 거듭 권고한 것이나,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 상황을 고려하여 현재는 방문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바울이나 아볼로나 자신들의 인기 보다도 교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아름다운 동역의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엿보게 해준다.

마지막 13~24절은 마지막 권면과 문안 인사 및 축도의 내용이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설 것, 서로 사랑할 것, 몇몇 인물들에 대한 추천 그들을 인정하고 따를 것 등의 권면은 바울의 다른 서신들의 마지막 권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내용들이다. 바울은 마라나타주께서 임하시리라는 염원과 함께 고린도 교인들이 주를 사랑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는 축도와 바울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말로써 본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첫째, 이웃 성도를 위한 구제는 성도의 아름다운 미덕이다(1).

둘째, 헌금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참 연보다운 것이다(2). 미리 저축하여 드었다가 내는 것이 좋다. 이는 헌금할 때에는 자발적인 헌신과 기쁨으로 하라는 것이다.

셋째, 초대교회는 주일에 모임을 가졌다(2)(20:7, 1:10).

넷째, 영적인 것을 받은 자는 육적인 것으로 섬기는 것이 은혜에 대한 바른 삶이다(3).

다섯째, 구제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떠안아야 할 영원한 과제다(1). 당시 예루살렘에는 아가보가 예언한대로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큰 흉년이 들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할 필요가 있었다. 가난한 형제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고후8:9).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다(19:17).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여섯째,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는 사실 하나의 하나님의 교회다(1). 연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다(15:26).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헌금하는데 이미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명한 것처럼 하라고 하였다. 이는 이미 다른 곳에서도 시행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기근으로 인하여 가난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나왔기에 그들이 어려울 때 그들을 섬기는 것은 당연하다.

15: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 하였음이라

일곱째, 성도에게 헌금은 예배의 중요한 요소다(2). 사도바울은 매주일 첫날에 헌금을 드리라고 하였다. 주일은 일 주일 동안 열심히 일해서 얻는 것을 주님께 바치는 날이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여 수입한 것에서 십일조와 헌금을 바치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3:4). 이스라엘 남자라면 일 년에 세 차례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아와서 절기를 지키라고 했는데 그 때에는 반드시 헌물을 함께 드리라고 했다(16:16~17).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16:16-17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여덟째, 하나님께서는 쓰시기에 합당한 자 곧 준비된 자를 쓰신다(2).

 

 

3. 바울의 고린도교회 방문계획 발표 및 디모데 파송과 아볼로 근황 소개(고전16:5~12)

1)본문내용(고전16:5~12)

첫째, 바울자신의 고린도 방문 계획을 알림(5-9)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에 방문할 예정임을 알린다.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낸 후, 고린도 교회의 지원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향을 밝힌다. 지나는 길에 고린도에 잠시 들르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과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유할 계획임을 밝힌다. 자신이 오순절까지 에베소에서 머물려는 이유는 대적자도 많지만 효과적인 사역을 할 기회도 활짝 열려 있기 때문임을 밝힌다.

둘째, 디모데의 파송 사실을 밝힘(10~11)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하면 불안 없이 머물도록 배려해 주기를 부탁한다. 디모데는 바울 자신과 같이 주의 일에 힘쓰는 자라고 추천한다. 디모데를 평안히 영접하여 머물게 하기를 재차 부탁하며 그가 돌아올 때 고린도 교회에서 보낼 자도 함께 보내라고 한다.

C. 동역자 아볼로에 대해 언급함(12)

아볼로에게 고린도에 가도록 여러 차례 권하였음을 밝힌다. 그러나 그가 현재로는 고린도에 갈 의향이 없음을 밝힌다.

 

2)영적 교훈

앞선 1-4절에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 방법 및 전달에 대한 지침을 언급한 바울은 본절부터 12절까지에서는 자신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을 밝힘과 동시에 디모데 파송과 아볼로의 근황을 소개한다.

 

첫째, 은혜를 받은 자는 받은 은혜로 다른 사람을 섬기 룻 있어야 한다(5). 바울은 거저 은혜를 받은 고린도 교회가 이제는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랬기에 헌금을 부탁했으며, 또한 고린도 교회의 지원을 받은 다른 선교지로 가려는 계획을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선교사역을 위한 식량과 의복 등의 생필품을 지원을 받기를 바랬다.

둘째,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항상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부탁해야 한다(7).

셋째, 복음전파를 위한 효과적인 기회가 주어지면 최선들 다해야 한다(9). 왜냐하면 위기가 곧 호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하나님이 뜨겁게 역사하는 곳에 마귀도 역시 뜨겁게 역사한다(9).

다섯째, 연륜이 적은 목회자라도 그를 잘 세워주고 대우할 때에 훌륭한 지도자가 탄생한다(10).

여섯째, 독자적인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종이라도 다른 선교사들의 사역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12). 아볼로는 충분히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수 있었으나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조장하지 않고, 분쟁을 부추기지 않기 위해서 기꺼이 방문을 거절하였다. 동역자 정신이 아주 투철했던 인물이었다. 이는 교회의 유익을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일곱째, 목회자가 신령한 것을 뿌렸다면 육신의 것을 거두는 것은 과한 것이 아니다(6).

여덟째, 목회자들의 모범과 선의의 헌신을 악의로 바꾸어서는 아니 된다(6). 바울은 복음전파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린도에 갔을 때에 자비량 선교를 하였다(18:1~4). 하지만 고린도 성도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자 신령한 것을 받았다면 당연히 육신의 것으로 섬기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이제야 비로소 가르치기 시작한다(고전9:11).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신령한 것을 전해 주었다면 그들로부터 목회자는 육신의 것을 거둘 수 있는 일정한 자격과 권리가 있다. 구약시대에 일반 백성들이 레위들에게 십일조와 첫 열매를 바친 것과 비슷하다.

아홉째, 성도의 삶과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7).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안 된다. 참새 두 마리조차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늘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허락하심을 깨닫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열째, 은혜가 강력하게 역사하는 곳에는 사단의 역사가 크다(8~9). 에베소에 바울이 사역하고 있을 때에 에베소서의 회당에서 3달을, 두란노서원에서 2년을 가르쳤다(19:10). 그때 하나님께서 따르는 표적으로 희한한 일들을 행하게 하셨다. 그러자 엄청난 부흥이 있었다. 하지만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고, 그때 바울의 동역자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 군중들에게 붙들려 연극장까지 끌려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나님의 은혜가 강력하게 역사하는 곳에서는 사탄도 강력하게 역사하는 법이다. 사시 에베소를 복음화하면 소아시아의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열한째, 어리고 부족한 목회자라도 존중받아야 할 하나님의 종이다(10). 하나님의 종이라 할지라도 모든 완벽한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는 자는 거의 없다. 부족한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고 길고 긴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열두째, 형제가 연합하여 선을 이룸이 사역자 된 모든 성도의 온당한 태도다(12). 사도바울에는 사실 결코 아볼로와 경쟁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바울에게 아볼로의 하나님께서 그 분야에 세운 그 일꾼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모든 주의 종들은 합력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 경쟁심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싸우고 헐뜯게 되면 피차에 망하는 일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4. 마지막 권면 및 문안 인사와 축도(고전16:13~24)

1)본문내용(고전16:13~24)

첫째, 서신서의 말미에 부치는 믿음과 사랑의 마지막 권면(13-14)

깨어서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하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기를 권면한다.

둘째, 특정 성도들에 대한 칭찬과 추천의 말(15-18)

충성스러운 스데바나 집안 사람들을 언급하며 그와 같은 자들과 또한 주의 일에 동역하며 수고하는 자들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한다. 특히 에베소까지 와서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전해 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 아가이고가 방문하여 매우 기뻤음과 그들이 바울의 허전함을 달래주었다고 밝히며 그들과 같은 자들을 인정해 주라고 추천한다.

셋째, 문안 인사(19~21)

아시아 교회들, 바울의 동역자들, 주 안에서 형제된 자들의 고린도 교회를 향한 문안을 전한다. 바울 자신도 친필로 문안을 전한다.

넷째, 주의 재림을 소망하는 끝맺는 기도 및 축도(22-23)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을 경고한다. 그리고 주의 재림을 염원하는 마라나타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가 고린도 성도들과 함께하기를 축도한다.

다섯째, 자신의 사랑이 고린도 교회와 함께 있음을 선포하는 끝맺는 말(24).

 

 

2)영적 교훈

5-12절에서 바울 자신의 여행 계획디모데에 대한 천거 아볼로의 근황에 대해 언급한 바울은, 이제 본절 이하 24절까지에서 마지막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하고 문안함으로써 자신의 서신을 마무리 짓는다.

첫째,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하고, 믿음에 굳게 서야 하며, 남자답게 행동해야 하며, 강건해져야 하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13~14).

둘째, 모든 것 위에 사랑의 은사를 더해야 모든 사역이나 사람이 온전해진다(14).

셋째,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의 첫 열매를 아주 귀하게 여겼다(15~18).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여 구원받은 스데바나와 그의 가정을 세례를 베풀었다. 그들은 다른 성도들을 섬기는 데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그들이 일하며 수고한 자들이기에 그들에게 모든 성도가 순종하라고 권면한다. 특히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에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찾아와서 자신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음을 칭찬한다. 성도 섬기기에 탁월한 가정이자 주의 종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가정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에베소까지 찾아와 고린도교회 상황을 공식적으로 전해줌으로 그 교회의 문제를 알게 되었고 답변을 해 줄 수가 있었다. 글로에의 집 사람들은 비공식적인 보고채널이었다면,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는 공식적인 보고채널이었던 것이다.

넷째, 자신의 가정을 내주어 헌신하는 자는 어디에 있더라도 칭찬을 듣는다(19). 바울의 편지 가운데 계속해서 등장하는 사람은 아굴라와 브리스가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에베소와 로마에서 자신의 집을 교회로 개방하였던 자요, 바울의 선교비를 꾸준히 지원해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아굴라는 소아시아 북부의 본도 출신의 유대인이었으나 그의 아내 브리스가와 함께 로마에 정착해 살았다. 그런데 A.D.49년에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에 따라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에 머물러 체류하면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18:2~3). 그들은 후에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건너와 체류하면서 자신의 집을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개방하였고, 그곳에 가정교회를 세웠다(16:5).

다섯째, 성도들은 거룩한 입맞춤 곧 성도 안에서 서로 사랑의 사귐이 있어야 한다(20).

여섯째, 바울의 편지를 사도적 권위가 있다(21). 특히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저작에 아무런 의심이 없다. 진정성과 권위성을 갖춘 책인 것이다. 사실 바울의 로마서도 대필자 더디오가 썼고, 베드로전서는 실루아노가 대필했다(벧전5:12). 그런데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 골로새서는 마지막에 가서는 친필로 썼다(고전16:21, 6:11, 4:18).

일곱째, 주님을 사랑하는 않는 자 곧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된다(22).

여덟째, 마라나타 곧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의 아람어는 당시의 기도제목이었고 인사말이었다(22). 사도들의 가르침을 기록한 디다케에서도 성찬식의 기도문 가운데 마라나타라는 표현이 나온다.

아홉째, 모든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과 사랑이 필요하다(23~24).

열째, 모든 성도에게는 여호수아처럼 남자다운 씩씩한 믿음의 기상이 필요하다(13). 약해지지 말고 강하고 담대해져야 한다.

열한째, 성도가 행하는 모든 행동의 동기는 사랑에 근거해야 한다(14).

열두째, 하나님의 교회에서 높아지는 비결은 결국 섬기는 일이다(15). 아가야의 첫 열매로 소개된 스데바나는 정말 섬기는 데에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그가 바로 고린도 교회의 개척멤버였던 것이다.

열셋째, 모범을 보이는 성도에 대한 복종은 뒤를 따르는 모든 성도의 아름다운 의무다(16). 모든 성도는 먼저 믿은 평신도 지도자나 목회자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열넷째, 성도는 스스로를 보고 싶은 얼굴로 가꿔가야 한다(17).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스데바나와 그의 집을 생각했다. 그들은 항상 보고싶은 얼굴이었던 것이다.

열다섯째, 성도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18). 특히 고린도교회에서는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가 고린도교회와 사도바울의 마음을 항상 시원하게 해 주었다.

열여섯째,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의 본질을 사랑이다(22).

 

 

 

< 고린도전서 16:1~24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무엇이 합당한 연보이자 성도간의 교제이며, 진정한 섬김인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교회가 떠안아야 할 영원한 숙제로서 연보와 구제는 미리 준비하여 자발적인 마음과 기쁨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떤 사역자이든지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길 때에 진정한 동역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적인 것을 뿌린 자와 육적인 것을 나누는 일은 매우 아름다운 미덕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목회자들의 모범과 선의 헌신을 악의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은혜가 강력하게 역사하는 곳에 사탄의 역사도 크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참된 성도는 깨어있어 믿음에 굳게 서가는 성도요, 남자답게 강하게 살아가며,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성도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참된 섬김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권위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대로 충성할 때 교회는 더욱 더 견고해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미리 준비하여 기쁨으로 연보하고 구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영적인 은혜가 임할수록 더욱 깨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깨어서 굳세게 살아가되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섬기는 자로 살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참된 연보와 구제를 실천하지 못하도록 늘 방해해온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서로 세워 주어야할 동역자를 시기질투하게 하고 미워하게 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연보하고 구제할 때에는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리되 미리 준비하여 드려야 하는구나.

2. 어떤 사역자든지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겨야 하는구나.

3. 영적인 것을 뿌리는 자와 육적인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은 아름다운 섬김이었구나.

4. 은혜가 임하고 은혜가 강해질수록 악한 영들의 공격에 더욱 대비해야 하는구나.

5. 섬기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야말로 교회의 사명이었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고린도전서 16장 헬라어 직역

(01) 그런데 성도들을 위하는 모금(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분명히 지시했던 것 같이 역시 너희도 그렇게 행하라.

(02) 안식일의 첫날 경에, 너희의 각 사람은 자신이 무엇이든지 형통하게 된 것을 모아서(저축하여서) 자기 자신의 옆에 두어라. 이는 내가 갈 때에 모금들(연보들)이 있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03) 그런데 내가 도착할(당도할) 때에, 너희들이 누구들을 검증(인정)했든지, 편지들을 통하여 이런 자들에게 너희의 은혜들을 예루살렘 안으로 가져가도록, 내가 [장차] 보낼 것이다.

(04) 그런데 만일 나도 역시 [계속] 가는 것이 합당하다면, 그들이 나 자신과 함께 [장차] 갈 것이다.

(05) 그런데 왜냐하면 내가 마게도냐를 [현재]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마게도냐를 통과할 때에, 내가 너희들을 향하여 [장차] 갈 것이다.

(06) 그런데 너희들을 향하여 뜻밖의 일이 발생한 후에, 곁에 머무르든지 아니면 겨울을 날 것인지 할 것이다. 이는 너희 자신들이 나를, 내가 어디로 가든지 앞서보내기(배웅하기) 위함이다.

(07) 왜냐하면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를 보기를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일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는 몇 시간을 너희들을 향하여 더 머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08) 그런데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 안에 [장차] 더 머물 것이다.

(09) 왜냐하면 내게 크고도 효력있는(유효한) 문이 열린 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적하는 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10) 그런데 디모데가 온다면(이르면), 너희는 [계속] 주의하고 있어라. 이는 그가 두려움 없이 너희들을 향하여 있게 하려 함이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1) 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멸시하지 말라. 그리고 너희는 평안히 그를 앞서보내라(배웅하라). 이는 나를 향하여 오게 하려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내가 형제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2) 그런데 형제 아볼로에 관하여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너희를 향하여 가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많은 것으로 그에게 권면하였다(청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뜻이 전적으로(전혀) 있지 않다. 그런데 기회가(때가) 있으면(되면) [장차] 갈 것이다.

(13) 너희는 [계속] 깨어 있어라. 너희는 [계속] 굳게 서 있어라. 너희는 [계속] 남자답게 행동하고 있어라. 너희는 [계속] 강하게 하고 있어라.

(14) 너희 모든 일들을 사랑 안에서 있게 되고(행하고) 있어라.

(15) 그런데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들에게 섬김을 위하여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배정했다는 것을, 너희가 알아온 채 있다. 내가 너희를 권한다.

(16) 이는 역시 너희 자신들도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함께 일하기 위함이며 그리고 수고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종하기 위함이다.

(17) 그런데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임재()에 대하여 기뻐한다. 이는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가득 채워주기 위함이다.

(18) 왜냐하면 그들이 나에게 속한 영과 너희들의 것()을 쉬게(시원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계속] 제대로 알고(인정하고) 있어라.

(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한다. 아굴라와 브리스가가 많은 것들로(많이) 그들의 집을 따라 있는 교회와 함께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한다.

(20) 모든 형제들도 너희에게 문안한다.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 안에서 서로들에게 문안하라.

(21) 나에게 속한 손으로 [기록한] 문안은 바울의 [것이다].

(22) 만일 누구든지 주님을 좋아하지(필레오) 않는다면 저주가 [계속] 있어져라. 마라나타(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있을지어다)]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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