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27 사도행전강해(32) 바울일행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전도(행17:1~15)

by 갈렙 posted May 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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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27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주일)
[제  목] 사도행전강해(32) 바울일행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전도
[찬  송] 찬 536장 죄짐에 눌린 사람은, 찬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찬 505장 온 세상 위하여
[말  씀] 행17:1~15(신약 216면)
[키워드] 2차전도여행, 데살로니가전도, 베뢰아전도 유대인들의 무지와 종교적인 열심, 복음의 핵심내용, 복음전파 결실의 요인, 간절함과 겸손함


1. 서론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편이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면서 남기신 지상대명령이 주의 사도들에 의해 건립된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실행되어 갔던 역사의 기록이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최초 30년간의 기독교회의 역사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다룬 4복음서들과 연속선상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누가복음의 연작으로서 누가복음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사도행전을 복음을 전파한 인물중심으로 그 내용을 구분한다면, 베드로행전과 바울행전으로 나눌 수 있다. 1~12장까지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복음전파를, 13~28장까지는 사도바울을 중심으로 한 복음전파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행1:8에 의한 지역적 지리적인 구분에 의해 그 내용을 구분한다면, 1~7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설립과정과 성장과정을, 8~12장까지는 사마리아와 온 유대에서의 복음전파, 13장~21장 상반부(16절)까지는 수리의 안디옥을 중심으로 소아시아와 유럽으로의 복음 전파(여기에 1~3차 바울의 전도여행이 들어 있다), 21장하반절부터 28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의 복음전파(제 4차 바울의 로마전도여행)를 다루고 있다.
  이 중에서 사도행전 3장에서 7장까지는 예루살렘교회의 폭발적이 성장과 팽창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8장부터 12장까지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안디옥까지의 교회 확장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13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의 전도사역을 통해, 로마에까지 교회가 확장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크게는 2부분으로, 적게는 3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행1~12장까지는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사도 베드로를 통한 유대인을 향한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다면, 행13~28장까지는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사도 바울을 통한 이방인을 향한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다. 앞부분인 행1~12장은 다시 1~7장까지와 8~12장까지로 나눠볼 수도 있는데, 1~7장에서는 예루살렘교회의 탄생과 성장을 보도하고 있으며, 8~12장까지는 과도기로서 유대와 사마리아지역으로 복음이 확장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행13~28장까지는 본격적인 이방인 중심으로 복음증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지역적으로 본다면 안디옥에서 로마까지의 복음전파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의 2차전도여행 중 더베와 루스드라, 그리고 마케도냐인의 환상과 빌립보전도사역(행16장)의 뒤를 이어,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그리고 아덴에서의 복음전파사역을 주로 다룬다.


2. 마케도냐 지방의 주도 데살로니가 사역(행17:12~9)
1)본문내용(행 17:1~9)

첫째, 바울 일행이 암비볼리, 아볼로니아를 거쳐 마케도냐 지방의 주도인 데살로니가에 도착함(1a절)
둘째, 바울이 관행대로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침(1b~3절)
  바울은 자신의 설교관행에 따라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삼주에 걸쳐 안식일에 성경을 강론한다. 강론의 내용은 그리스도가 해를 받아 죽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날 것으로 예언되었음을 지적하고, 바로 그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셋째, 복음을 들은 데살로니가 유대인 회당의 사람들의 반응이 양분됨(4~9절)
  경건한 헬라인 출신 유대교인들의 큰 무리와 상당수의 귀부인들이 회심하고 바울과 실라를 좇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바울일행을 예수를 세상의 왕으로 추앙하려는 정치범으로 매도한다. 즉 유대인들이 데살로니가 중앙광장의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바울일행이 머물고 있던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바울과 실라를 찾는다. 발견치 못하자, 야손과 형제들을 끌어다가 읍장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가이사가 아니라 예수를 임금으로 섬기는 반역자라 모함하여 고소한다. 무리와 읍장들이 한바탕 소동한 뒤에 야손과 형제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 놓아준다.

2)영적 교훈
첫째, 전도에도 전략이 필요하다(1절)
  데살로니가는 당시 인구 20만명의 거대도시로서, 마케도냐의 제1의 중심도시(주도)이자, 로마의 식민지가 아니라 자유도시였다. 바울은 이곳을 복음전파의 또다른 전초기지이자 전도공략지로 삼았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의 여로 회당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다음의 도시로서 데살로니가를 선택한다.
  그렇다. 복음전도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바울은 마케도냐지방의 주도로서 정치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인 데살로니가를 유럽전도의 또 다른 전초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이처럼 전도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도해야 하는 것은 옳지만 무턱대고 전도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지역이나 위치를 찾고,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좋은 방법을 찾아서 전도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전도는 자기가 해 오고 있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1절)
  바울은 매안식일마다 회당에 나갔고 율법공부를 했던 사람이라 성경말씀을 강론할 기회를 잘 활용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유대인으로서 안식일이 되면 응당 현지에 있는 회당으로 나가서, 율법말씀을 들려준 뒤, 그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말해주어,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인도했던 것이다.
셋째, 전도의 열매가 맺을 때까지는 어떠한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복음전파를 지속해야 한다(2절).
  바울이 데살로니가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파했지만 단 한 번으로 전도의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니다. 그는 세 번씩이나 회당으로 나아가서 율법말씀을 강론하면서 그것을 복음과 연결해주었던 것이다. 첫 안식일에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세 안식일 즉 21일은 나은 편이었다. 고린도에서는 1년6개월 걸렸고(행18:11), 에베소에서는 2년이 걸렸다(행19:10). 한 영혼을 얻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생각처럼 쉽지 않다. 사탄이 거져 영혼을 내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 전도의 결실은 말씀을 전해주어 그들을 설득함과 동시에 강력하게 권유할 때에 일어난다(3~4절)
  바울은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서 토론하면서 뜻을 풀어 복음의 핵심내용을 증거했다. 그러자 적잖은 무리가 납득을 하고는 권함을 받자 그리스도를 믿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어떤 표적과 기사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해 논리적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설득을 잘 해야 한다. 즉 권면을 잘 해야 하는 것이다. 전도는 방법적으로 볼 때, 바로 이 설득과 권면이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는 것은 전도의 일부분이다. 그렇게 가르치고 선포한 후에는 반드시 권면이 있어야 한다. 친절하고 지혜로운 말로 권하여 의지적인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하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결단을 내리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도를 잘 하는 성도들은 권면을 잘 하는 성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다섯째,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소식이다(3절)
  바울은 나중에 베뢰아와 아덴을 지나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에 데살로니가에 편지를 써 보낸다. 그것이 데살로니가전서이다. 그런데 이 편지에 의하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전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이었음을 수차례 언급한다(살전2:2,8,9,13).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가 바로 행17장에 나온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며, 왜 십자가에 죽으셔야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잘 감당했음에 대한 보증이 바로 그분의 부활이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몸의 부활을 거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살전2:13).
  특히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세 안식일에 바울의 율법강해를 들었는데, 그중에서 어떤 사람들 즉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않은 헬라인 귀부인들이 빋었는데, 이들이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떤 자세로 들었는가를 살펴보면, 이들은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던 것이다.
일곱째, 복음전파는 겸손히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얻는 구원의 희망의 소식이 되지만, 복음을 거절하고 거역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소식이 된다(4~5절)
  세 안식일에 유대인들도 복음을 들었고,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도 그 복음을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는가? 개종한 헬라인들은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 구원을 받았지만, 유대인들은 그 말씀에 귀를 닫고 거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어서 바울일행을 모함하고 핍박하고 죽이려고 애를 썼다. 심지어 도망친 바울을 찾아 무려 80km나 떨어진 베뢰아까지 쫓아가서 방해했다.
  대체적으로 바울의 복음전파는 이방인들에게는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기회가 되었으나, 유대인들에게는 시기와 훼방만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여덟째, 정확히 알지 못한 애매모한 성경지식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파멸을 자초하게 된다(4~5절)
  복음을 전파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듣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하심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죄인됨을 시인하고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성령의 음성을 고의적으로 거부하게 되면 사탄이 오히려 그 심령을 붙잡아 악하게 사용한다. 바울의 전도를 듣고도 성령의 역사에 설득당하지 않고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결국 바울을 시기질투하였고, 핍박했으며, 죽이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성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이 그저 율법의 전통대로 살아왔을 뿐 정말 성경말씀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결과였던 것 같다.
아홉째, 핍박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는 자들 중에서 나온다(5~6절)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유대인들이 오히려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거부하여, 복음의 대적자로 활동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열째, 거짓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라 마귀의 자녀들이다(7절)
  우리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일행을 미워하고 시기한 이유가 혹시 잘못 알고 그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바울을 거짓으로 모함하여, 그들이 섬기는 로마황제가 아닌 다른 왕인 예수님을 섬기는 자들이며, 이들은 가이사의 칙령을 반대하는 자들이자, 로마나라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라고 고소했다. 그것도 시정잡배들을 동원하여 바울이 장막을 만들기 위해 취직해 있던 야손의 집에 들어가 바울을 체포하려고 시도했다. 이 모습은 과연 그들이 유대인으로서 해야 할 모습인가! 이방인들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유대인들은 바울일행을 로마황제에 대해서 반역을 선동하는 자들이라고 했던 것이다. 거짓으로 데살로니가 읍장들에게 고소했던 그들은 거짓을 일삼는 마귀의 자녀들이었던 것이다(요8:44).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그것도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했지만 정작 유대인들은 얻지 못하고, 개종한 헬라인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유대인들이 믿었다면 얼마나 복받은 것이 되었겠는가!


3. 바울일행의 베뢰아사역 및 아덴으로의 바울단독피신(행17:10~15)
1)본문내용(행 17:10~15)

첫째, 복음에 대한 베뢰아 사람들의 신사적인 태도(10~12절)
  바울과 실라가 밤에 베뢰아로 피신해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간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또한 바울이 전한 말씀의 진위를 알고자 날마다 구약성경을 상고한다. 그러자 베뢰아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들 중에도 믿는 자가 생겼고 헬라의 귀부인들과 남자들도 믿게 되었다.
둘째, 유대인들의 박해에 따른 아덴으로의 바울의 단독 피신(13~15절)
  바울의 베뢰아 전도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와 무리를 선동한다. 그러자 바울의 베뢰아의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아덴까지 일단 혼자 피신한 후에 자기를 안내해 준 형제들에게 실라와 디모데도 데려오도록 부탁하며 돌려보낸다.

2)영적 교훈
첫째, 성도들은 목회자를 주도적으로 도울 줄 아는 센스가 필요하다((10절)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은 바울과 실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것은 속히 그들을 피신시켜 안전한 곳으로 가게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바울이 주도할 수 없다. 지리적으로도 그들만큼 바울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이 자신을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부탁하지 않았지만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은 바울 때문에 핍박을 받고 돈이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지만 기꺼이 바울일행을 도와 피신시킨다. 그것도 낮을 피해 밤에 말이다. 모세가 정탐꾼들 중 10명의 부정적인 보고로 인해 곤경에 처해 있을 때에 어떻게 했는가? 여호수아와 갈렙이 주도적으로 뛰쳐나와서 돌에 맞아 죽을 각오로 옷을 찢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모세가 팔에 힘이 떨어져 기도를 쉴 때 여호수아가 이끈 군대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지는 것을 보았을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두 팔을 받쳐들지 아니했던가!
  말씀을 받는 측면에서 볼 때,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수동적이어야 하지만, 혹 목회자가 부탁하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씀을 제외한 다른 일에 있어서는 주도적으로 적극 나서서 돕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복음수용에 있어서는 때로는 성품적인 어떤 것이 더 유용할 수 있다(11절)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인보다 더 신사적이었다. 즉 귀족적이며, 성품이 고상했다. 신중했다. 그래서 너그러웠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어도 즉각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이지는 아니했지만 바울이 전한 말씀이 정말 그러한가 하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성경이 그들을 깨우쳤다. 왜냐하면 성경의 저자가 성령이신데, 말씀을 알려고 하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시분초마다 눈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말씀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성경을 더 들여다보아야 한다. 날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들이 ‘신사적’이었다는 말은 ‘가문이 좋은, 고귀한, 매너가 좋은’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성질이 불같은 데살로니가 사람들과는 달리 차분한 성격이어서 말씀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었고 그래서 유대인들까지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유대교로 개종했던 헬라인들도 바울의 말을 듣고 많은 수도 주께 돌아왔다.
셋째, 강하게 맞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혜를 써야 한다(10,13~15절)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의 80km나 되는 베뢰아까지 쫓아와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였다. 그러자 베뢰아의 형제들이 이번에는 바울을 320km나 떨어진 아덴까지 피할 수 있도록 에스코트해주었다. 복음을 전할 때에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한 증상인 핍박과 박해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복음전파자는 신중을 기해서 결정해야 한다. 정면으로 돌파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기회를 보기 위해 일단 후퇴해야 할 것인가? 우선 알 것은 상대방이 시비를 걸 듯 강하게 나오면 절대 맞서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이겨도 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논쟁에 이겼다고 해서 그가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종교적인 열심은 복음에 대한 핍박과 박해를 가져온다(13~15절)
  다시 말해 복음에 대한 오해와 영적 무지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을 저지르게 하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뜻을 적당히 아는 자가 무섭다.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자가 열심을 품게 되면 다른 사람도 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도 구원할 수 없다. 바울이 사울일 때 그랬다. 또한 1차 전도여행 때에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파하자, 그곳까지 찾아와 방해하지 않았던가!
다섯째, 편협한 생각과 시기질투심은 오히려 자기를 멸망으로 치닫게 만든다(13절)
  유대인들의 편협한 국수주의와 선민의식은 도리어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말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것만을 골라서 지키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할례를 받고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천국으로 안내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사람의 어떤 행위가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그들은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기 위해 고생고생하고 있었던가? 그런데 너무나 쉬운 구원법을 바울이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맞는 것인가? 바울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바울을 싫어했고 미워했다. 그러자 나중에는 바울을 없애려 시도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바울이 주장이 허망한 풍설(출23:1)로 들렸을른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무지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을 들어도 건성으로 듣지 말고 제대로 들으라. 그리고 정말 그것이 그러한지 성경말씀을 자세히 살펴본 베뢰아 사람들처럼 되어라.


<사도행전 17:1~15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되는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인간의 편협한 생각과 시기질투심이 얼마나 사탄을 이롭게 하는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복음전파의 결실은 설득과 권유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특히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를 아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들었던 말씀이라도 성경에서 정말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상고하는 자가 결국 참된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말씀사역을 제외하고는 성도들이 주도적으로 목회자를 도울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개인적인 생각과 전통으로 믿음생활을 했던 것을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더 살피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편협한 생각과 질투심을 버리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성경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성경말씀을 더 상고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때로는 주도적으로 일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전통과 교리가 아니라 성경말씀을 그대로 따르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교리와 전통에 매이게 하여 참된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던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시기와 질투심을 유발하는 악한 영들은 지금 당장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지어다. 성경을 날마다 상고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에 따른 종교적인 열심은 사탄만 이롭게 하는구나.
2. 복음을 전파할 때에 설득과 권유를 병행할 때 결실이 잘 맺어지는구나.
3.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분의 오심과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것이 핵심이로구나.
4.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구나.
5. 말씀사역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성도들이 주도적으로 목회자를 돕는 것이 필요하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다운로드하기] 2015-05-27 사도행전강해(32) 바울일행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전도(행17;1~15).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