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강해(03) 이웃사랑 계명 실천과 행함 없는 믿음의 허구와 실상(약2:1~26)_20222-04-06(수)

by 갈렙 posted Apr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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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4월 06일(수) 수요기도회설교(사순절 다섯째주일)
[제  목] 야고보서강해(03) 이웃사랑 계명 실천과 행함 없는 믿음의 허구와 실상
[찬  송] 찬 309장 목마른 내 영혼, 찬 356장 주 예수 이름 소리 높여, 찬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말  씀] 약2:1~26(신약 372면)
[키워드] 영광의주,차별대우,부자와가난한자,이웃사랑,계명실천,믿음과행함,율법의행위들,믿음의행위들,칭의,아브라함의칭의,라합의칭의,야고보의칭의관

 

1. 서론

차 례

야고보서 리포트

1문단 문안 인사 및 시험 중의 성도의 신앙 자세(1:1-12)

스페셜 포인트

2문단 시험의 원천인 욕심의 경계 및 하나님의 선한 은사와 선물(1:13-18)

3문단 말씀의 들음과 실천 및 오직 실천으로 입증되는 참된 경건(1:19-27)

스페셜 포인트

4문단 빈부에 따른 차별 행위 책망 및 이웃 사랑의 계명 실천 촉구.(2:1-13)

5문단 행함 없는 죽은 믿음과 행함으로 입증되는 참된 믿음(2:14-26)

6문단 바른 신앙 생활에 필수적인 혀의 올바른 사용(3:1-12)

7문단 세상의 악한 지혜와 하늘의 선한 지혜의 대조(3:13-18)

8문단 세상 정욕의 경계 및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합당한 자세(4:1-12)

9문단 자기 뜻대로 사는 세속적 삶에 대한 경계(4:13-17)

10문단 불의한 부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5:1-6)

11문단 믿음의 고난 중의 인내 권면 및 맹세 금지 교훈(5:7-12)

스페셜 포인트

12문단 고난 중의 기도 및 미혹된 자에 대한 인도 권면(5:13-20)

 

 

. 야고보서의 기본 이해

 

1)제목 : 헬라어 원전의 제목은 저자의 이름을 반영한 야코부 에피스톨레야고보의 서신. 한글 개역 성경 역시 야고보서로 명명됨.

2)저자 : 예수의 형제이자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야고보(1:1; 15:13 ; 1:19; 2: 19).

3)기록연대 : 본 서신의 기록 시기와 관련해서는 예루살렘 공의회(A.D.49) 이전 기록설과 야고보의 순교(A.D. 62) 직전인 A.D. 60년대 초반 기록설이 있음, 이중 본 서신에 할례 시행 등 이방인과 연관된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점, 복음이 유대인에게만 전파되던 초기에 기독교인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던 회당이란 용어가 언급된 점(2:2) 등으로 미루어 전자가 유력함.

4)수신자 :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

5)내용 : 시험에 대한 인내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할 참된 믿음

 

 

2. 야고보서의 중심 내용

 

시험에 대한 인내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할 참된 믿음에 대한 실제적이고도 직설적인 교훈의 서신

 

야고보서는 모든 서신서 중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윤리적 실천 의무를 가장 강력하게 강조한다. 또한 일반 서신서들이 각 개별적 덕목 등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면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윤리를 실천할 의무를 갖고 있는 사실 자체를 강조한다. 심지어 야고보서는 이 기독교 윤리의 실천을 한 성도의 믿음이 살았는가, 죽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까지 제시한다. 이러한 야고보서는 신약의 잠언혹은 신약의 아모스로 불리기도 하는데, 전체 108절 중 54절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한편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각 서신이 누구에 의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야고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지 불과 20년이 채 되지 않은 때에 당시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지도자 중의 하나였던 야고보로마 제국 내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이다.

신약 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네 명 등장하며, 그 중 성경을 기록할 만한 지명도와 영향력을 지닌 인물은 사도 요한의 동생으로 역시 사도였던 야고보주님의 육신의 형제 야고보이다. 그런데 사도 야고보는 A.D. 44년 일찍이 순교하였기에(12:2) 그를 본 서신의 저자라고 보기에는 기록 시기가 너무 빠르다. 따라서 본 서신의 저자는 주의 형제 야고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비록 주의 생전에는 불신자였으나(7:5)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하였으며(고전 15:7), 이후 예루살렘 공의회(The conference of Jerusalem, A.D. 49)의 의장 역할을 하는 등(15:13-22) 베드로 및 요한과 더불어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 되었다(2:9). 유다서의 저자 유다가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라고 소개할 정도로(1:1) 야고보는 초대 교회 당시 널리 알려진 핵심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한편 본서가 암시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본서의 수신자들은 대개 A.D. 30년 후반경 스데반의 순교 이후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그리스도교에 대한 유대교의 대대적인 박해(8:1)를 피하여 로마 제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 곧 디아스포라에 정착하였거나 아니면 이미 오래 전부터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었던 유대인들 가운데 복음이 전파됨으로 인해 개종하게 된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흩어진 성도들의 삶은 한 마디로 시련그 자체였으나, 초기의 그들의 삶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고귀한 삶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점차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외적으로유대교를 신봉하는 동족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큰 시련을 겪고 있었다. 내적으로는 서로 사랑하며 유무 상통하던 예루살렘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과 달리, 서로에게 비방과 판단을 일삼으며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차별하였다. 또한 계속되는 시련에 지쳐서인지, 세상과 타협하여 급속히 세속화(世俗化)되어 가는 조짐들이 나타났다. 즉 성도들은 다툼과 분쟁을 일삼고, 세상의 악한 지혜를 따라 살며, 자기 뜻과 계획대로 세속의 부를 축적하는 데에 관심을 집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본 서신이 기록된 A.D. 40년대 후반은 유대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교리를 강조한 바울의 가르침이 로마 제국 내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을 즈음이다. 그렇다면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하거나 혹은 아전 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믿음에 합당한 실천 없이 세속화되어 가던 자신들의 신앙을 합리화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야고보는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실천을 철저하게 강조하는 본 서신을 보내게 된 것이다. 야고보가 보기에 당시 수신자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기는 하였으나 그에 합당한 신앙의 열매들을 전혀 맺지 못하고 있었다. 행위가 결여된 그들의 믿음이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이에 야고보는 신랄하고도 직설적인 어조로 수신자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2:17, 26),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2:14). 더 나아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2:24)고 하여 바울의 이신득의의 교리(3:28 ; 2:16)와 상충되는 듯한 선언까지 한다.

하지만 야고보의 선언은 혹자들이 주장하듯 이신득의 교리와의 충돌이 아니다.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야고보의 진술은 하나의 역설(paradox)이다. 야고보는 이신득의 구원 원리를 부인하고 이행득의(以行得義)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 기만적인 믿음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나무와 열매가 그렇듯이, 참된 믿음이란 입술의 공허한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함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의 교훈은 바울의 이신득의 교리와 상호 보완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듯 야고보 또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믿음과 행위는 마치 나무와 열매의 관계처럼 밀접히 연관된 하나이며 각각 분리될 때 이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믿음과 행위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인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균형(均衡)’ 이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질 때 다른 한쪽을 강조함으로써 양자는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예컨대 종교 개혁의 시대에는 이신득의의 교리가 강조될 필요가 있었으며, 신앙 고백의 시대에는 야고보서의 교훈이 강조될 필요가 있었다. 오늘날 한국에는 그리스도인은 많으나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부재(不在)하다고들 한다. 달리 말하면 예수 믿는다고 신앙 고백하는 인구는 많으나 삶 속에서 그 신앙을 실천하는 이들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처럼 통탄스러운 한국적 상황에서, 야고보서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 믿음과 행함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데 유익한 교훈을 제공할 것이다.

 

 

3. 야고보서의 내용 구조

야고보서의 특징 중의 하나는 뚜렷한 구조상의 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 야고보서는 서신서임에도 불구하고 시작 부분의 단 한 구절의 문안 인사(1:1)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서신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 또한 전체 내용이 논리적 연결 고리를 따라 전개되기보다는 단편적인 내용의 교훈들이 산재(散在)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야고보서의 전체 구조를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편, 비록 본 서신의 내용 전개가 논리적 연결 고리를 결핍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서에 담긴 내용모두 믿음의 실천을 강조하는 실제적이며 직설적인 교훈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각 부분적 교훈들은 시험에 대한 인내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참된 믿음이라고 하는 전체 주제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의 내용을 굳이 구분한다면 본서의 핵심 부분으로서 믿음과 행함의 문제를 다루는 중반부 1:19-5:6을 중심으로 하여 1:1-185:7-20에서는 시험과 고난의 문제를 각각 다루고 있다.

먼저 전반부 1:1-18시험에 대한 성도의 바른 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야고보는 시험이라고 하는 헬라어상 하나의 단어를 시련(trial) 및 유혹(temptation)의 의미로 중의적(重意的)으로 사용하고 있다. (1-12에서는 시험 곧 시련당할 때의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으며, 13-18에서는 사람이 시험 곧 유혹을 당하는 원인은 인간 내부의 욕망에 있음을 지적한 후 진정으로 좋은 은사와 선물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다.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참된 믿음이라고 하는 야고보서의 전체 주제의 차원에서 볼 때, 1:1-18 참된 믿음이란 시험에 의해 검증되는 것임을 교훈한다고 할 수 있다.

이어 중반부 1:19-5:6 행함으로 입증해야 할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1:19-2:26 본 서신 전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으로서 행위와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야고보는 듣기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 문제,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교회의 차별 행위 등의 문제를 차례로 언급한 뒤 행함 없는 믿음의 허구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그 믿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없음을 밝힐 뿐 아니라(2:14, 17, 26), 심지어 사람이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선언한다(2:24).

이어 3:1-12 말과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야고보는 말의 재갈’, 배의 ’, ‘등의 비유적 표현들을 사용하여, 지체 중의 작은 혀(tongue)가 지니는 지대한 영향력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그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혀가 잘못 사용될 때에 온 생의 바퀴를 불사를 정도로 파괴적 결과를 가져 오는 것에 대해 인상 깊게 제시하며, 이어 성도는 그 혀를 악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됨을 역설하고 있다.

이어 3:13-5:6 세속주의(secularism)와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야고보는 먼저 세상의 악한 지혜와 하늘의 선한 지혜를 대조하고 있다. 이러한 두 종류의 지혜의 대조는 곧 두 가지 삶의 방식의 대조와 같은 것으로서, 하늘의 시민인 성도는 어떤 종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자기 성찰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그에 연결하여 야고보는 세속 욕망을 따라 사는 삶과 자기 뜻과 계획대로 사는 삶에 대해 경계한 뒤, 세속주의의 화신이라 할수 있는 불의한 부자들에 대한 심판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후반부 5:7-20 고난과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마지막 부분은 앞의 내용들이 주로 책망과 경고를 통한 교훈인 것에 비해 주로 권면을 통한 교훈이라고 하는 점에서, 교훈의 방법에 있어서 앞의 문맥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구약 선지자들 및 특히 욥의 경우를 제시하며 고난 중에 끝까지 인내할 것을 권면한다. 또한 삼년 반 동안 비를 멈추게도 다시 내리게도 한 엘리야의 사례 제시를 통해 고난 중에 기도할 것을 권면한다. 인내와 기도는 결국 하나의 문제이다. 성도의 삶에서 인내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바라며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야말로 가장 실질적인 믿음의 표현이다.

 

 

4. 야고보서 관련 주요 일람표

 

1)야고보서 연대표.

예수님의 생애(4 B.C.-A.D 30)

스데반의 순교(A.D. 32-34년 사이)

사도 야고보의 순교(A.D. 44)

야고보서의 기록(A.D. 46-49년경)

바울의 1,2,3차 전도 여행(A.D. 47-58)

예루살렘 공의회(A.D. 49)

주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A.D. 62)

네로의 통치(A.D. 54-68)

2)야고보서의 구약 인용(6구절)

. 모세오경(4구절)

2:8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19:18)

2:11 간음하지 말라(20:14 ; 5:18)

2:11 살인하지 말라(20:13 ; 5:17)

2:23 의롭다고 인정받은 아브라함의 믿음(15:6)

. 이사야(1구절)

1:11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40:8)

. 잠언(1구절)

4:6 겸손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3:34)

 

3)야고보서가 산상수훈 말씀을 인용한 것

①약 1:2: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②약 1:4: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③약 1:5: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④약 1:19~20: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5:22: 형제(/자매)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⑤약 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7:24: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⑥약 25: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⑦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⑧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받을 것임이요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⑨약 3:12: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7:16: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⑩약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받을 것임이요.

⑪약 4:4: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6: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⑫약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⑬약 5:2-3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너희가 말세에 재물(심판)을 쌓았도다.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⑭약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⑮약 5:10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5:12: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⑯약 5:12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하는 것은 그렇다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5:34-37: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땅으로도 말라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주제에 있어서의 밀접함에도 불구하고, 평행구가 그 표현되는 어법이나 어순에 동일하지 않다는 것에 주목하라.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야고보서의 저자는 마태복음을 알지 못했지만, 마태가 알고 있었던 Q와 유사한 유형의 예수 전승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4)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

.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2:19)

.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주인(1:1)

빛들의 아버지(1:17)

하나님 아버지(1:27)

왕국을 상속해 주시는 자(2:5)

주 아버지(3:9)

만군의 주(5:4)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5:11)

.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

주인(1:1)

상주시는 이(1:12)

영광의 주 곧 주 예수 그리스도(2:1)

재림주(5:7)

심판주(5:9)

치료자(5:14~15)

 

 

5. 야고보서 메시지 요약

 

1) 시련당할 때의 성도의 자세

성도가 세상을 살면서 시련(trial)을 피할 수는 없으며, 그 시련을 어떤 자세로 맞느냐가 중요하다. 야고보서는 성도가 시련당할 때의 자세를 여러 측면에서 교훈하고 있다. 즉 성도는 시련을 당할 때 그것을 달게 받아들이며, 시련을 극복할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며, 고난을 견딘 성경 인물들을 본을 삼아 인내하여야 한다. 성도가 이러한 자세로써 시련을 극복할 때 선한 결말을 보게 될 것임을 야고보서는 약속하며 격려하고 있다(1:12; 5:711).

 

2) 유혹의 원천은 인간 내부의 욕망

사람들은 때로 죄의 유혹(temptation)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시험한다고들 한다. 그리하여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인간이 죄의 유혹을 받는 근본 원인은 인간 내면의 욕망에 있음을 밝힌다. 인간 내면의 욕망이 씨앗이 되어 죄를 낳고 그것이 자라면 사망에 이르게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1:14,15). 성도는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시험당하는 책임을 하나님께 돌려서는 안된다. 또한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외적 환경에도 유의할 뿐 아니라 더욱 자신의 내면에 욕망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지 않는지를 경계해야 한다.

 

3) 참된 경건의 표징(表徵)

야고보서는 도()를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 곧 복음의 진리를 듣고 이해하며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천이 없는 자의 경건을 헛되다고 한다. 그리고 참된 경건(敬陵)이란 환난에 처한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자기를 세속에 물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1:19-27). 물론 경건이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내적 신앙심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그것은 어떤 양상으로든 밖으로 표출되게 마련이다. 야고보서는 진정한 경건의 표징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명확히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4) 부자(富者)와 빈자(貧者)에 대한 차별 행위 책망

본 서신 기록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 신자들의 예배처로 사용되던 회당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차별이 행해지고 있었다. 야고보는 이처럼 사람을 외모로 취하여 차별하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율법의 판단자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범죄라고 규정하며 준엄하게 꾸짖는다. 하나님의 긍휼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이루게 된 공동체인 교회에, 세상적 지위나 재산 여부에 따른 차별이 행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난센스(nonsense)이다. 그러나 그런 난센스가 적지 않게 자행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5) 행함 없는 믿음의 허구성

야고보서는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 곧 입으로는 신앙 고백하지만 삶의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기만적인 믿음을 신랄하게 공격한다. 야고보의 표현에 따르면 그런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2:17,26). 즉 아무런 생동력도 유익도 없는 것으로서 결코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는 믿음이다(2:14). 많은 이들이 이신득의(以信得義) 교리를 오해하여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기에 행위는 별로 중요치 않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구원은 물론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지만, 그 믿음은 행함이 결여된 공허한 믿음이 아니라 행함으로써 그 진실성이 입증된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야고보서는 행함과 믿음은 반대가 아니며, 오히려 나무와 열매의 관계처럼 결국은 하나라는 주님의 가르침(7:16-20)을 새로운 각도로 우리에게 조명해 주고 있다.

 

6) (tongue)의 사용과 믿음

믿음이 행위로 입증되는 두드러진 양상 중의 하나는 바로 언어생활이다. 야고보는 말의 '재갈', 배의 '', '' 등의 비유적 용어로써 인간의 혀가 지니는 강력한 영향력을 표현하고 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자신의 지체 중의 하나로서 이토록 강력한 영향력이 있는 혀를 다스리며 선의 도구로 사용한다. 반면 공허한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의 혀를 다스리지 못하며, 도리어 그 마음의 악을 따라 혀를 악의 도구로 사용한다. 샘이 한 구멍으로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없듯이, 성도 역시 한 입을 가지고 찬송과 저주를 다 말할 수 없다. 만일 성도가 그런 모순된 행위를 자행한다면, 그것은 곧 자기 믿음의 허위성을 드러내는 것임을 야고보는 경고하고 있다.

 

7) 세속화(secularization)에 대한 경고

야고보서는 시기와 분쟁, 세상 지혜를 따른 삶의 방식, 부정한 재물의 축재, 가진 자의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압제 등 당시 수신자들이 보이던 세속화의 여러 양상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세상과 벗하는 것이 영적 간음과도 같아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임을 경계하며 (4:4), 특히 세속화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불의한 부자들에 대해서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세속화란 곧 교회 혹은 성도가 세상적 요소들의 영향을 받아 그 본질적 특성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성도는 비록 땅에 거하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들이다(3:20). 따라서 삶의 방식과 추구하는 바가 세상의 불신자들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8) 기도하는 생활과 믿음

야고보서는 기도에 관한 권면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곧 성도는 고난 중에 기도하며 또한 병든 자를 위해서 피차 기도하라는 것이다.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참된 믿음이라는 본 서신 전체 주제의 차원에서 볼 때, 기도란 가장 중요한 행함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도란 믿음의 가장 직접적이고도 실질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2. 빈부에 따른 차별 행위 책망 및 이웃 사랑의 계명 실천 촉구(2:1~13)

1)본문내용(2:1~13)

첫째, 교회 안의 가난한 자와 부자에 대한 차별 행위 책망(1-4)

먼저 성도들은 영광의 주 예수를 믿는 자들로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아야 함을 명령한다(1). 교회에 들어오는 부자에게는 관심과 친절을 보이고 가난한 자에게는 무관심하고 무시하는 경우를 가정한다(2-3). 만일 그렇다면 성도들은 자기들끼리 외모로 차별하고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책망한다(4).

둘째, 하나님 편에서의 가난한 자에 대한 옹호 및 부자에 대한 경계(5~7)

하나님이 세상에 대해서 가난한 자를 택하시고 믿음에 부한 자가 되게 하셨다(5a). 또한 그렇게 택하신 자들에게 약속의 나라인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하셨다(5b). 그러나 일반 성도들은 오히려 가난한 자를 괄시하고 있다(6a). 하지만 성도들을 압제하고 법정에 끌고 가는 자들은 다름 아닌 이 세상의 부자들이다(6b). 세상의 부자들은 주님이 성도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는 자들이다(7).

셋째,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죄에 대한 경고 및 이웃 사랑의 계명 실천 촉구(8-13)

성도들이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지키고 있다면 잘하는 것이다(8). 그런데 오히려 외모로 사람을 취한다면 최고의 법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며 따라서 율법에 의해 범죄자로 정죄 받게 된다(9). 율법이란 그 특성상 다른 모든 것을 지키다가도 어느 하나만 어겨도 전체를 어긴 것이 된다(10-11). 성도들의 언행은 자유의 율법인 복음에 의해 심판받게 될 자라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에 근거해야 한다(12). 긍휼 없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을 것이나 긍휼을 행하는 자는 모든 심판을 면하게 될 것이다(13).

 

2)영적 교훈

앞선 1:19-27은 본서의 핵심부분이기도 한 실천으로 입증되는 믿음에 대해 권면하는 1:19-2:26의 첫 단락으로서, ‘말씀의 들음과 실천오직 실천으로 입증되는 참된 경건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이에 이어지는 두 번째 단락인 2:1-13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사람을 외적 조건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안 되며, ‘진심으로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사람을 외적인 조건에 따라 차별대우해서는 아니 된다. 사람을 외로 취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1~4).

사람의 외적인 모습만 중시하여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의 본질적인 면을 중시해야 한다. 사람의 신분이나 직업, 성별, 경제능력 등 여러 외적 조건에 따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부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결코 이방인이나 가난한 자나 소외된 계층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돈과 학벌과 권력이 있는 자에게는 좋은 대우를 해주지만 반대로 가진 것이 없이 가난하고 무식하고 헐벗은 사람 혹은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어 부자유한 자들에게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악한 행위다. 사람은 영혼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이다(삼상16:7, 22:16)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마음)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22:16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둘째, 선하신 하나님은 오히려 초라하고 힘없는 자들을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다(5a)

셋째,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바 왕국의 상속자들로 삼으신다(5b)

넷째, 부자들이 오히려 억합하며(인권을 유린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며, 예수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한다(6~7)

다섯째,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이웃사랑의 계명을 어기고 있는 범법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8~9).

여섯째, 성도들은 이웃 사랑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8).

일곱째, 하나님과 사랑과 더불어 이웃 사랑 계명은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8).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일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요일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이1: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22:34-40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여덟째, 가난한 성도를 차별대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가 된다(9).

아홉째, 율법 말씀 가운데 하나라도 어긴다면 율법을 어긴 것이 된다(10). 율법의 계명은 어느 한 계명이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아니 된다. 율법의 일체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27: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열째, 성도는 율법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된 자유의 율법을 따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12).. 이웃 사랑 계명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심판을 받을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의 율법이란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는 뜻으로(1:25), 복음을 일컫는 말이다.

열한째, 자유의 율법은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13). 긍휼이란 가난한 자, 힘없는 자, 고통 속에 있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행위를 가리킨다(9:13). 긍휼은 심판날에 심판을 이기게 도와준다.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열두째, 긍휼은 심판을 면케 해주는 근거가 된다(13)

그리스도인들은 남을 긍휼히 여기며 살아야 심판 날에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열셋째, 성도가 형제를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4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성도는 누구나 영광의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주시기 때문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형제 차별을 금하고 이웃 사랑을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 형제를 차별하는 자는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열넷째, 성도 사전에 차별 대우라는 것은 없어야 한다(1).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성별이나 종족, 신분이나 지위, 과거의 행적을 막론하고 자비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이다.

열다섯째,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려면 교회 안의 차별부터 없애야 한다(2~3).

열여섯째, 차별대우의 기준이 되는 재물, 이해득실 등의 계산적인 사고와 결정은 악한 죄가 된다(4).

열일곱째, 가난한 자를 무시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없다(6).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들에 큰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0:18, 69:33, 2:10, 17:5)

10: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69:33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17: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68: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열여덟째, 부자라고 부모건 우대하는 것은 복음의 진보를 막는 것이다(6~7).

열아홉째,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자를 결코 죄없다고 하지 않으신다(9). 마지막 심판의 날에 반드시 차별행위를 한 죄를 물으시고 댓가를 치르게 하실 것이다.

스무째, 하나님의 법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단지 심판받을 죄인들일 뿐이다(10).

스물한째, 성도의 삶의 원칙과 기준은 세상사람보다 한 차원 높아야 한다(12). 그것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6:32-33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스물두째, 땅에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심판날에 콧노래를 부를 수 있다(13). 왜냐하면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기 때문이다.

 

 

3. 행함없는 죽은 믿음과 행함으로 입증되는 참된 믿음(2:14~26)

1)본문내용(2:14~26)

첫째,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의 허구성을 제시함(14-19).

믿음이 있노라고 말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의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14). 헐벗고 굶주린 형제나 자매에게 편히 가라, 따뜻하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말만 하며 실제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다면 이는 공허한 말뿐이라는 사실을 예시한다(15-16). 이처럼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17). 믿음과 행함은 불가분의 것이라는 사실을 익명의 사람의 논쟁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18).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하는 믿음은 좋은 것이지만 그런 인식에만 그치는 믿음은 귀신들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19).

둘째, 행함이 따르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된 아브라함의 사례를 제시함(20~24)

이제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이라는 선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자 함을 웅변적으로 강조한다(20). 그 결정적 실례로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실을 제시한다(21). 아브라함의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났으며, 행함을 통해 그의 믿음은 온전케 되었다(22). 이렇게 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하는 말씀이 실현되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다(23). 이를 통해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은 지식적 믿음만이 아닌 믿음에 근거한 행함으로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24).

셋째, 행함이 따르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된 라합의 사례를 제시함(25).

이스라엘의 여리고 정복 당시 여리고의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환대하여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25a). 기생 라합은 그렇게 행함으로써의롭다고 인정받아 구원받은 것이다(25b).

넷째,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행함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임을 거듭 선언함(26)

 

2)영적 교훈

야고보는 21~13절 단락에 이어지는 14~26절 단락에서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라는 사실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논증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윤리적 실천 의무를 모든 성경 가운데 가장 명시적으로 강조함으로써 본 서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한 이 단락은 행함 없는 믿음의 허구 및 행함으로 입증되는 참된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행위로 입증되는 믿음에 대해서 다루는 1:19-2:26 기사의 종결 부분이다. 여기서는 수신자들의 빈부에 따른 차별 행위를 책망하고 이웃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도록 촉구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2:1-13에 이어 성도의 실천적 신앙을 주제로 하는 본서의 핵심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과 행함의 문제를 교리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먼저 14-19절에서는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의 허구성을 밝히고 있다. 한 마디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으로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20~25절에서는 믿음과 행함이 있는 진정한 믿음의 인물이었던 아브라함과 라합을 사례로 들어 행함으로만 믿음의 진정성이 입증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다. 끝으로 26절에서영혼 없는 몸이 죽은 몸이듯이 행함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임을 거듭 선언함으로써 행함이있는 믿음을 가질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야고보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치 바울의 이신득의(以信得義) 교리와 배치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야고보는 여기서 이신득의 교리를 오해 또는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수신자들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이 구원에 유효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지, 결코 이행득의(以行得義)나 공로적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항상 병행되어 나타나야 하는 것으로, 믿음은 행함으로만 입증되고 행함은 믿음 위에서만 올바른 가치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첫째, 행함이 없는 믿음은 유익이 없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14)

둘째, 바울이 말한 행위는 할레의 시행과 같은 율법적 행위이지만, 야고보가 말한 행위는 믿음에 합당한 열매로서의 행위다(14).

셋째, 믿음이 있으면 순종이 당연히 뒤 따른다(17).

넷째, 귀신들처럼 인식론적인 믿음으로는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 오직 순종하는 믿음이어야 하는 것이다(19).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결국 순종이 참된 믿음이 되는 것이다.

다섯째, 15장의 아브라함의 믿음은 시작으로서의 믿음이라면, 22장의 믿음은 완성으로서의 믿음이다(21). 왜냐하면 믿음은 절대 순종이라는 행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섯째, 바울의 칭의는 시작할 때의 칭의로서 법정적인 선언이라면 야고보의 칭의는 종말론적인 칭의로서 완성된 칭의다(21). 왜냐하면 행함으로 칭의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처는 미완성 칭의인 것이다.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일곱째, 주님의 뜻을 알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면 하나님의 친구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23)

대하20: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친구인)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41:8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15:14-15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여덟째, 아브라함과 기생라합은 믿음에 대한 결과로서 행위로서 그 믿음이 온전케 된 사례다(25).

아홉째, 영이 없는 몸이 죽어있는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26).

열째, 믿음은 단수이지만, 행위는 복수의 개념이다(26).

열한째, 행동하는 믿음만이 자기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14).

열두째, 믿음의 실천은 삶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에서 시작된다(15~16).

열셋째, 야고보서는 우리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주는 일종의 크리닉과 같다(17).

열넷째, 입술로 고백하는 것은 반드시 삶의 증명되어야 한다(18).

열다섯째, 단지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히려 책망의 대상이 될 뿐이다(19).

열여섯째, 행위가 따르는 온전란 믿음은 온전한 축복의 전제조건이다(21).

열일곱째,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가운데 믿음으로 철저히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은 당신의 벗으로 삼아주신다(23).

열여덟째, 믿음과 행함의 관계는 뿌리와 열매의 관계와 같다(24).

열아홉째, 오직 믿음에 근거한 행위만이 허다한 허물을 가질 수 있다(25).

스무째, 믿음에 순종하는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생사를 건 결단이다(21~25).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결코 단순한 감상이나 유희가 아닌 것이다.

 

 

< 야고보서 2:1~26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무엇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참된 믿음인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며 오직 행함으로 입증되는 믿음이야말로 자기를 구원하는 믿음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는 외적 조건에 따라 사람을 차별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은 오히려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약속하신 왕국을 상속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을 차별 대우하는 것은 이웃사랑 계명을 어긴 것이 되고 범법자가 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는 구약의 율법보다 더 한 단계 더 진전된 자유의 율법을 따라 이웃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하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칭의는 시작으로서의 법정적인 칭의였다면,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칭의는 완성으로서의 종말적인 칭의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온전한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순종이 없는 믿음도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자랑한 것을 회개하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실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순종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입증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행동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살리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믿음에 따른 행위의 열매가 없어도 믿음만으로도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속여온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시작의 칭의와 완성의 칭의를 분별하지 못하게 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참된 믿음으로 살아갈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이란 믿음의 열매가 뒤따라오는 것이었구나.

2. 사람을 외모를 보고 차별대우하는 것은 이웃사랑 계명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죄가 되는구나.

3. 오늘날 성도는 자유하는 율법 아래에 있지만 자발적인 순종으로 주님의 계명을 실천해야 하는구나.

4.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구나.

5.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자가 되었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야고보서 2장 헬라어 직역

 

정병진목사

 

(01)내 형제들아, 너희는 차별대우(외모로 판단함)안에서 영광의 주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갖고 있지 말라.

(02) 왜냐하면 만일 화려한 의복 안에서 너희의 회당 안으로 금반지를 낀 남자가 들어온다면, 그런데 역시 오물묻은(불결한) 의복 안에서 가난한(궁핍한) 도 들어온다면

(03) 그런데 너희가 화려한 의복을 입은 이에 대하여 눈여겨 본다면 그리고 너희가 말한다면, '당신자신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리고 가난한(궁핍한) 에게 말한다면, '당신자신은 거기 서 있으십시오.' 또는 '내 발판 아래에 앉아 있으십시오.'

(04) 그러면 너희는 너희자신들 안에서 차별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악한 생각들이 재판관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0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들으라.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궁핍한) 이들을 믿음 안에서 부자들로 선택하지 않으셨느냐?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바 그 왕국의 상속자들[선택하지 않으셨느냐?]

(06) 그런데 너희자신은 가난한(궁핍한) 이들을 업신여겼다. 부자들 너희를 압제하지 아니하느냐? 그리고 바로 그들은 너희를 법정 안으로 끌고가지 아니하느냐?

(07) 그들은 너희에 대하여 일컬어졌던 좋은 이름을 비방하지(모독하지) 아니하느냐?

(08)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만일 성경을 따라서 '너는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장차] 사랑할 것이다'고 하는 왕에게 속한(최고의) 을 지킨다면 너희는 잘 행하고 있는 것이다

(09) 그런데 만일 너희가 차별한다면 죄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율법에 의하여 너희가 위반자(죄있는 자)로 폭로되고 있으면서.

(10) 왜냐하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킬지라도 하나 안에서 걸려넘어질 때에는 모든 것들의 범법자가 된 채 있기 때문이다.

(11) 왜냐하면 '너는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이가 역시 '너는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가 만일 간음하지 않아도 살인한다면 율법의 위반자(죄를 범한 자)가 된 채 있다

(12) 이와같이 너희는 자유의 율법을 통하여 심판받도록 작정되고 있는 이들처럼 발언하고 있어라. 그리고 행하고 있어라

(13) 왜냐하면 긍휼을 행하지 않았던 이에게 긍휼없는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긍휼은 심판에게 자랑한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누구든지 믿음을 말할지라도 그런데 그가 행위들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믿음자기를 구원하는 것을 할 수 없지 않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혹은 자매가 헐벗은 이들로 있고 그리고 일용할 양식에 빈곤하게 있는데(부족한데도)

(16) 그런데 너희들로부터 누구든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떠나가고 있어라,  덥게 하고 있어라, 배부르게 하고 있어라 말하면서, 그러나 너희에게 그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17) 이와같이 믿음 역시 만일 행위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자기자신을 따라(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18) 그러나 누가 [장차말할 것이다. "너자신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나자신은 행위들을 가지고 있다. 너는 행위들이 없는 네 믿음[단번에] 내게 보이라. 나도 역시 나의 믿음행위들로부터 네게 보일 것이다."

(19) 너자신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잘 행하는 것이다. 귀신들도 역시 믿고 그리고 [벌벌] 떤다.

(20) 그런데 아아 허탄한(공허한) 사람아, 행위들이 없는 믿음쓸모없다는(무익하다는) 을 알기를 원하느냐?

(21)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 위에 드린 후에, 행위들로부터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22) 너는 믿음이 자신의 행위들과 아직도 함께 일하고(동역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다. 그리하여 행위들로부터 [있는] 믿음이 완성되는(온전케 되는) 것이다.

(23) 그래서 말씀하고 있는 성경이 이루어졌다(충만케 되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의 안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려졌다.

(24) 너희는 사람이 행위들로부터 의롭게 된다는 것을 본다. 그리고 오직(다만) 믿음으로부터는 아니라는 것을 [본다]

(25) 그런데 마찬가지로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영접한 후에 그리고 다른 길로 내 보낸 후에 행위들로부터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26) 왜냐하면 마치 영이 없는 몸이 죽어있는 것처럼, 행위들이 없는 믿음 역시 죽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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