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42) 벨릭스 총독 앞에서 변호하는 바울과 2년간의 구류(행24:10~27)

by 갈렙 posted Aug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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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8()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열둘째주일)

[제 목] 사도행전강해(42) 벨릭스 총독 앞에서 변호하는 바울과 2년간의 구류

[찬 송]

260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말 씀] 24:10~27(신약 230)

[키워드]

전통과 교리, 부활신앙, 신앙고백, 양심, 지적 호기김, 권력과 돈

1. 서론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편이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면서 남기신 지상대명령이 주의 사도들에 의해 건립된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실행되어 갔던 역사의 기록이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최초 30년간의 기독교회의 역사.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다룬 4복음서들과 연속선상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누가복음의 연작으로서 누가복음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사도행전을 복음을 전파한 인물중심으로 그 내용을 구분한다면, 베드로행전과 바울행전으로 나눌 수 있다. 1~12장까지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복음전파, 13~28장까지는 사도바울을 중심으로 한 복음전파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8에 의한 지역적 지리적인 구분에 의해 그 내용을 구분한다면, 1~7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설립과정과 성장과정, 8~12장까지는 사마리아와 온 유대에서의 복음전파, 13~21장 상반부(16)까지는 수리의 안디옥을 중심으로 소아시아와 유럽으로의 복음 전파(여기에 1~3차 바울의 전도여행이 들어 있다), 21장하반절부터 28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의 복음전파(4차 바울의 로마전도여행)를 다루고 있다.

이 중에서 사도행전 3장에서 7장까지는 예루살렘교회의 폭발적이 성장과 팽창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8장부터 12장까지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안디옥까지의 교회 확장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13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의 전도사역을 통해, 로마에까지 교회가 확장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크게는 2부분으로, 적게는 3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1~12장까지는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사도 베드로를 통한 유대인을 향한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다면, 13~28장까지는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사도 바울을 통한 이방인을 향한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다. 앞부분인 행1~12장은 다시 1~7장까지와 8~12장까지로 나눠볼 수도 있는데, 1~7장에서는 예루살렘교회의 탄생과 성장을 보도하고 있으며, 8~12장까지는 과도기로서 유대와 사마리아지역으로 복음이 확장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13~28장까지는 본격적인 이방인 중심으로 복음증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지역적으로 본다면 안디옥에서 로마까지의 복음전파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 중에서 23장은 정식재판의 절차 가운데 하나로 로마군대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유대인들과 바울 사이의 소란을 종교적인 문제로 여겨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게 된 이후의 일을 보도한다. 사도행전 23은 총 3단락으로 되어있는데, 1~11절까지는 바울이 공회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12~22절에서는 바울을 살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가, 23~35절까지는 바울이 유대인들의 음모로부터 벗어나 가이사랴 총독부로 이송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 24장은 가이사랴에 있는 유대총독 벨릭스 앞에서 바울의 변호가 기록되어 있다. 오늘은 2410절에서 27절까지의 말씀으로, 벨릭스총독 앞에서 변호사 더둘로의 고소에 대한 바울의 변론(24:10~21)과 아울러 벨릭스의 재판연기와 이중적인 태도 및 바울에 대한 2년간의 구류상태방치(24:22~27)의 말씀을 살펴보기로 하자.

 

 

2. 변사 더둘로의 고소에 대한 바울의 변론(24:10~21)

1)본문내용(24:10~21)

첫째, 바울이 총독의 지시에 따라 간단한 인사로서 변론을 시작함(10)

둘째, 첫째로, 자신을 소요죄로 고소한 데 대해 변론함(11~13)

사건 발생 당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12일밖에 되지 않은 때였음을 지적한 바울은 성전이든 회당이든 성중에서든 자신이 먼저 유대인들을 소요케 한 것을 본 목격자가 없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지금 이처럼 자신을 고소하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고소내용을 입증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셋째, 둘째로, 자신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 고소한데 대해 변론함(14~16)

먼저 자신은 분명 더둘로가 이단이라고 고소한 그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시인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신을 율법서와 선지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다고 선언한다. 또한 자신은 고소하는 자들과 동일한 소망 곧 하나님께 향한 부활의 소망을 가졌다고 밝힌다. 그러므로 자신은 부활의 소망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앞에 항상 양심의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다고 주장한다.

넷째, 셋째로, 성전모독죄로 자신을 고소한 데 대해 변론함(17~19)

당시 자신은 유대인 구제헌금을 전하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자 상경하여 체류하고 있었을 뿐이었음을 밝힌다. 그러던 중 결례를 행하고자 성전을 방문하였으나 성전에서의 사건 발생 당시 자기 주변에 군중이 모일 일도, 소란스러운 일도 없었으며, 다만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만일 자신을 송사할 거리가 있었으면 그들이 직접 와서 벨릭스 앞에서 송사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섯째, 전날 유대 산헤드린 공회에 소환되었을 때에도 부활신앙문제를 제기했을 뿐임을 밝히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함(20~21)

또한 혹시 자신이 공회 앞에서라도 어떠한 잘못을 행했다면 지금 그 증거를 진술하도록 하라고 도전한다. 자신을 오직 공회 앞에서도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말했을 뿐이라고 밝힌다.

 

2)영적 교훈

첫째,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고소한 자들을 향해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11)

바울은 자신이 죄없음을 조목조목 소상하게 진술한다. 먼저는 소요죄에 대해 그리고 반란죄에 대해 그리고 성전모독죄에 대해서 소상히 말한다. 그는 사실 소요를 일으킨 적이 없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간지 불과 12일밖에 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그중 5일은 옥중에 있었으므로 그 짧은 기간동안 사람을 소요케할 가능성이 없었다. 또한 그가 성전에서 사람을 선동하거나 소요케 한 사실을 본 목격자가 증가가 없으니 더둘로의 고소는 분명 모함이거나 누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을 고소한 자들을 원망하거나 그들을 비난하는 모습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온화함과 침착함이 묻어나온다. 그렇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괴로움과 억울함을 당할지언정 상대방을 괴롭히지 않는다.

둘째, 참된 그리스도인은 신앙고백을 할 때에는 바르고 정직해야 한다(14).

바울은 자신의 신앙고백에 있어서는 혹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담담하게 고백한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그는 자신이 나사렛 예수를 믿고 추종하는 자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좇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이단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는 더둘로가 이단이라고 하는 도를 그가 믿고 있음을 인정함과 아울러 그 도는 결코 이단이 아니며 유대교와 같이 구약과 하나님을 믿으며 또한 부활의 소망까지 믿는다고 밝힘으로써 그가 전하는 복음이 참된 신앙인 것을 변증하고 있다.

셋째, 아무리 종교지도자들이라 할지라도 말씀에 기초한 신앙이 아닐 때에는 하나님의 뜻에 도달할 수가 없다(14~15). 유대교는 장로들의 전통을, 천주교는 교황의 말이나 교회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이나 사도바울은 다 같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여전히 장로들의 전통 아래 갇혀 있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달랐다. 그는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 곧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을 알아차렸다(5:39). 그리고 그것을 대조해보았다. 그랬더니 바로 자기가 배척했고 미친 자들이라고 생각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믿음의 도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그때까지 자신이 믿고 따랐던 유대교를 버리고 율법과 선지자들이 말해왔던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였고, 그분을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 설령 그것이 온갖 핍박과 고난을 가져오는 것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감내할 것을 결정한 것이다.

사실 유대인들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들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보다는 장로의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오늘날 천주교가 기독교라고 주장하지만 교황의 말 즉 교회의 전통을 말씀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로들의 전통과 교황의 말을 더 우위에 둘수록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교단의 가르침을 가르침의 표준으로 삼아서는 아니 된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해석을 따라가야 한다. 칼빈의 교리도 아니고 교단의 교리도 아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이다.

넷째, 성도의 참된 소망은 이 땅에서 받을 복이 아니라 부활 후에 받게 될 영의 복이다(15)

바울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것이 진짜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보다 비참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부활 후에 진짜의 삶을 살게 된다. 부활 후에 영체가 가서 거할 곳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천국이다.

사실 모든 사람은 부활한다. 그가 불신자이건 신자이건 상관없이 부활한다. 하지만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을 얻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의 부활을 받는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현실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사두개인처럼 말이다. 비록 바리새인들이 외식하는 것이 잘못되긴 했지만 그들이 믿었던 부활은 진짜인 것이었다. 바울도 부활이후에 삶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졌기에 기꺼이 자신의 삶을 주 예수께 바칠 수 있었고, 죽음 가운데에도 내 줄 수 있었다.

다섯째, 사람이 참된 믿음을 소유하려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16)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양심은 영의 기능 중의 하나다. 양심과 영교와 직관이 영의 기능을 수행한다. 양심은 배우지 않아도 이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구분해 내는 능력이다. 다메섹체험이 있기전 그가 예수믿는 자를 잡아 감옥에 가두고 죽는 데에 내어주었을 때에 그는 양심이 자신을 참소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기꺼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자신을 내버렸다. 그리고 양심을 따라 주 예수님을 따라갔던 것이다. 그가 예수믿기전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열심을 품고 유대교를 따라갔지만 그는 밤마다 양심에 거리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고 억울함을 당해도 그의 양심은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참된 믿음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하나님의 경륜과 역사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함부로 여기는 것은 금물이다(17~18)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이기에 물질적인 지상의 성전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성전을 없수이 여기지 않았다. 그는 거기에 가서 결례의식을 행하였고, 거기에서 기도했다. 성전이 없어지기 전까지 그는 성전을 부수거나 없애자고 선동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참된 성전의 예표요 그림자요 견본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다윗이 사울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끝까지 보호하려 했다는 것과 상통한다. 아무리 하나님께 버림당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도 한 때 주님을를 사랑했던 사람이었기에 함부로 말하거나 대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먼저 우리의 들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3. 벨릭스의 재판연기와 이중적 태도 및 바울에 대한 2년간의 구류상태방치(24:22~27)

1)본문내용(24:22~27)

첫째, 벨릭스가 재판을 연기하며 바울을 비교적 자유로운 구류에 처함(22~23)

벨릭스는 이미 그리스도교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벨릭스가 재판을 연기하며 바울을 구류상태에 두되 자유는 주고 또 친구의 뒷바라지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둘째, 벨릭스가 복음을 듣고도 외면하며 바울에게서 뇌물을 원함(24~26)

벨릭스가 유대인 아내와 함께 바울을 불러 복음에 대한 강론을 청하니 바울이 정의와 절제와 특히 말세의 심판에 대해 강론한다. 복음의 도를 들은 벨릭스가 두려워서 후일 다시 부르겠다며 바울을 보낸다. 벨릭스가 그후에도 바울을 불러 대화하였으나 그 동기는 바울에게서 뇌물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셋째, 벨릭스가 퇴임하기까지 2년여 간이나 바울을 구류상태에 방치함(27)

2년이 지난 뒤 벨릭스가 퇴임하게 되고 베스도가 그 후임이 된다. 벨릭스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바울을 구류상태에 방치하였다.

 

2)영적 교훈

첫째,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일치되어야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있다. 지적인 호기심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22)

총독 벨릭스는 사실 당시 나사렛교인 그리스도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바울을 불러 더 자세히 의와 절제와 장차 있을 심판에 대해서까지 들었다. 그가 이전부터 그리스도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의 아내가 유대여자(드루실라)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가이사랴의 백부장인 고넬료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유대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에 대한 보고를 통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복음에 대해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지식을 생명처럼 존귀하게 여기지 않고, 복음의 요체이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이자 주님으로 모시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지적인 호기심이나 종교적 호기심정도가 자기를 구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권력과 돈을 따라가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26).

벨릭스는 왜 바울을 자주 불러 복음을 들었던 것일까? 처음에는 지적인 호기심이었지만 나중에는 그로부터 돈을 받으려는 속셈이었다. 돈을 받고 석방해주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은 보석금을 지불하여 나오지 않았다. 그가 참된 믿음을 갖기 바란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반드시 악행하는 자를 심판하신다(27).

하나님께서는 벨릭스 총독의 악함을 아셨다. 그래서 2년 뒤 그의 직책을 박탈하도록 허락하셨다.

 

 

사도행전 24:10~27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망과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고백을 거짓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경말씀보다 우위에 놓는 것 때문에 진리를 놓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신앙의 핵심은 부활신앙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거리낌없는 양심을 따라 살아야 진리를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아는 것과 같은 지적 호기심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권력과 돈을 탐하는 자는 결코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은 악행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원망불평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신앙고백을 진실하게 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성경말씀을 신앙과 삶의 표본으로 삼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권력과 돈이 아닌 신앙을 붙들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참된 그리스도인답게 생활할 수 없도록 방해했던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핍박과 고난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될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할지어다. 주님만 붙들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원망과 불평은 불신의 열매였구나.

2. 죽음 앞에 선다 하더라도 올바른 신앙고백을 주저해서는 아니 되는구나.

3.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는 것이 있을 때 진리에서 벗어나는구나.

4. 부활신앙이 확고한 자는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5. 지적 호기심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구나.

6. 권력과 돈이 사람을 진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구나.

7. 악행하는 자는 반드시 그 댓가를 지불하고 마는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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