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9(금) 금요기도회
제목: 너희는 아버지께 기도하라(마6:9~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ds58o5nuLo [혹은 https://tv.naver.com/v/28685184 ]
1. 들어가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에게 기도드리는가? 오래된 교회에 가 보면, 나이 많으신 분들의 기도들 중에는 '여호와여'라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기도 한다. 어떤 분은 "하나님" 또 어떤 분은 "주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학교에서는 "예수님'이라고 기도하는 교회학교 교사들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드릴 때에 어떤 호칭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을까? 기도의 대상을 부르는데 어떤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장 기본적이며 원칙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드릴 때에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기도의 대상에 대한 호칭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드릴 때에 나는 과연 어떤 호칭으로 기도의 대상을 부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듣고 싶어하는 호칭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사용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나오는 기도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기도의 대상을 어떻게 칭하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마5~7장) 가운데 마태복음 6장에는 기도에 관한 교훈이 들어 있다. 이때 예수께서는 잘못된 기도의 2가지 유형을 먼저 말씀하신 후에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기도문'이라고 알려진 바로 그 기도문이다. 그 기도문이 어떤 것인지부터 우선 살펴보자.
마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렇다. 우리의 기도는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을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께서는 기도의 대상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면, '아버지여'라는 말이 가장 앞서 나온다. 즉 "파테르 헤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이다. 이것을 직역하면, "아버지여, 우리의, 하늘들 안에 계시는 이여"라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대상을 부를 때에 가장 먼저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 왜 예수께서는 기도의 대상을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셨을까?
왜 예수께서는 기도의 대상을 부를 때에는 '아버지여'라고 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우리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기도의 대상을 부를 때에는 보통 "하나님", 혹은 "주님"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어떤 수식어를 붙여 기도한다. 예를 들어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롭고 자비로운 주님"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아버지여"라는 호칭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아버지'라는 용어가 지닌 독특한 특징 때문이다. 이렇게 부름으로서 우리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우리가 기도할 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인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의 첫 번째 의미는?
그렇다면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아버지'라는 호칭은 기도하는 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으므로 진정한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된 자만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은 하나님과 기도하는 자가 반드시 생명의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증거한다. 즉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낳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낳는다'는 말은 아버지의 생명을 그에게 준다는 의미다(요5:26). 그러므로 하나님을 최초로 '아버지'라고 부른 이는 예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맨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아버지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외에 구약 성도들 중에는 단 한 명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자가 없었다. 구약 시대에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백성이었지 아들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은유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하기는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한 사람은 예수님이 최초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이것은 예수님 시대만 해도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 사도 요한은 그래서 예수님을 "독생자"라고 말했다(요3:16). 이는 그분이 '홀로(유일하게) 태어난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외에는 그 어떤 성도도 사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3계명에 따라서 하나님을 부를 때에 하나님의 이름이었던 '여호와'라는 말을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오로지 '아도나이(나의 주님)'로 바꾸어 불렀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아직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이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하나님을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요20:17).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자신을 대신하여 이 땅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아버지의 생명을 우리에게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죽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생명주는 영'으로 오셔서 믿는 이들 속에 거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5:45).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진실로 믿는 성도들 속에는 성령이 계신다. 그리고 성령이 그에게 들어가실 때에는 생명을 가지고 들어가시기 때문에, 그때 이후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 그러므로 그때 이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갈4:6~7).
5.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의 첫 번째 의미는 진짜로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기도할 수 있게 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아주 자비롭게 응답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특히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의 의미는 그분이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눅11:11~13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렇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집어줄 아비가 없으며,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집어줄 아비는 없다. 그리고 아들이 알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집어줄 아비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아버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더 좋은 것으로 주시겠느냐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좋으시다.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아버지는 이제 두렵고 경외할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고 친밀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다. 이분을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나쁜 것 곧 해로운 것을 주시지 않으며 좋은 것을 주신다는 말 속에는 그분이 우리가 구하는 것이 잘못 되면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응답이 좀 더딜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때에는 우리에게 해로운 것을 구해서는 아니 된다. 예를 들어, 5살짜리 아들이 식칼을 달라고 하면 과연 식칼을 그냥 덥석 내어 줄 아비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을 구해도 주시지 않고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6.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이 곧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구약 시대에도 가끔씩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을 하나님께서도 사용하신 적이 있으시고, 성도들도 그러한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구약 시대에는 아직 하나님께서 자녀를 낳지 않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아버지는 아니지만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아버지를 사용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고 답할 수 있다. 특히 구약의 인물들 중에 모세와 다윗과 에단, 그리고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말라기 등 여섯 사람이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표현들은 다 은유적인 것들이다.
예를 들어 보자. 첫째, 모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라고 말했다(신32: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얻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32:6)" 그런데 여기서 아버지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을 얻었고 그들을 만드셨고 그들을 세우신 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아버지'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의 창시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기를 자신은 솔로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다(삼하7:14, 대상22:10).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솔로몬을 낳았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다윗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양육자가 되어 주신다는 의미요, 솔로몬을 돌보아 주신다는 의미다.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지혜를 주시고 그를 지도해 주셨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씨로서 아들 솔로몬을 보내 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아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다윗은 하나님을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기도한 적이 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68:5)" 여기에서도 '아버지'라는 의미는 고아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시며 또한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는 뜻이다. 고아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넷째, 시편 89편의 기자인 에단이 다윗이 기도했을 것으로 기록한 말에 다윗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다윗)가 내(여호와)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시89:26)"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직접 낳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윗에게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은 분으로서, 그분만이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하며 이끌어 주시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시적으로 노래하며 기도한 것이다.
다섯째, 이사야 선지자도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사63:16)"고 했지만 이것 역시 문맥으로 보면 그분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창조하신 분이요 지으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자, 보라.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라(사64:8)"
여섯째,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에 "나(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렘31:9)"라고 말씀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문맥으로 보면, 여기서 '아버지'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분으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일곱째, 마지막으로 말라기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거나 자신의 말로 '아버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은 제사장들로부터 공경받을 분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것이고(말1:6), 둘째로, 모든 인류의 창조주가 되신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말2:10).
말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2: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그렇다. 구약 시대에는 가끔씩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하거나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을 낳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만이 인류의 창조자가 되신다는 은유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다. 그래서 문맥을 살펴보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돌보신다는 의미이며, 모든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며, 타락한 인류를 회복시켜 주실 분이요 공경할 대상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예언해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장차 보내 줄 메시야의 진짜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을 뿐이다.
7. 그분이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늘들 안에 계신 이 곧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분은 하늘들에 계신 분이라는 의미를 알고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이 땅에는 자신의 육신의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늘에 계신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과는 다른 것이다. 이 땅에 육신의 부모는 우리가 해 달라고 하는 모든 기도를 다 들어줄 수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도 다 아시고 우리의 간구에 다 응답하실 수 있는 분도 역시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는 대상인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육신의 아비와는 다르다. 그래서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곧 "하늘들 안에 계신 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럼, 하나님이 '하늘들 안에 계신 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그분은 하늘들에 다 계셔서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이는 새가 날아다니는 첫째 하늘,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공간인 둘째 하늘, 하나님이 계시는 첫째 하늘 안에 그분이 충만히 거하신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곳이 없다는 뜻으로서, 우리의 작은 신음까지도 다 아시고 또한 우리의 기도를 다 들을 수 있는 분인 것을 말해 준다. 한 마디로 '전지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둘째, 그분은 높이 있는 하늘들 안에 계시다는 말은 우리 인간으로부터 초월해계시는 절대 전능자라는 의미다. 이 세상의 법칙에 좌우되는 분이 아니라 그 위에 계시는 절대자로서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리더라도 그 기도를 다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 그분은 어디에든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기도에 다 응답할 수 있는 분이시다.
8. 나오며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모든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시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음을 알 수 있다.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제 계속해서 이와 같이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주기도문을 모범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주기도문이야말로 이미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기도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오늘날 나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기도인 것이다. 사실 이 기도가 누구에게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하는 것의 모든 핵심이 다 들어 있다.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할 때에 더 빨리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기도문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드리는 대상을 단지 '하나님'이나 '주님'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명령했다는 말씀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그분이 우리와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하고 우리에게 자비로운 분이라는 것을 알고 기도하라는 뜻이다. 구약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아버지에게 기도하자.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자.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작은 신음까지도 듣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간구에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022년 08월 19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