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은 다른 하나님인가 같은 하나님인가?(계5:1~14)_2016-10-09

by 갈렙 posted Oct 0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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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5NCXdfHnp_o
날짜 2016-10-07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5:1~14(신약 40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한 분 하나님, 제2위 하나님, 아들과 아버지, 이신론, 삼신론,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알파와 오메가, 한 개의 보좌, 하나님의 우편에 앉음의 의미

1. 들어가며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요16:23에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되어 있지만, 요14;14에서는 예수께 기도하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이신 예수님을 동시에 만나게 될까 아니면 한 분 하나님을 만나게 될까? 하나님이 한 분인지 두 분 혹은 세 분인지를 헷갈리니 기도할 때도 헷갈린다. 그리고 성령님이 누군지를 잘 모르니, 귀신이 주는 것도 성령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하는 일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한 분이지 아닌지 그리고 하나님과 아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본문은 또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의 존재방식에 관한 영구불변한 진리

  하나님의 존재방식에 대한 영구불변한 진리는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라는 것이다. 자 여기를 보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43:10~11)",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사37:16),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니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호13:4)" 그렇다. 구약성경에서 오직 하나님은 홀로 한 분뿐이며 다른 신은 없다고 증거한다. 어디 그것이 구약성경 뿐일까? 신약에서도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증거한다.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8:4)",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엡4:6)",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딤전2:5)", "하나님은 복되시며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며(딤전6:15)" 그렇다. 신구약성경이 공히 하나님은 한 분 뿐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르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국에 들어갔을까?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하면 양태론자라고 하면서 정죄하려 한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삼위일체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양태론을 믿거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구약의 과연 어떤 성도가 아버지 하나님도 있고 아들 하나님도 있으며 성령 하나님도 있다고 믿었던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구약의 성도는 천국에 들어갔다. 그들은 한 분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실 메시야를 믿고 회개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신구약성경이 공히 하나님은 한 분 그것도 홀로 한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견지해야 할 하나님의 존재방식은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양태론자들의 주장도 거의 대부분 틀렸다. 아버지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이 아니며, 아버지가 고난받고 죽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의 오심은 예수님의 재림과 다르며, 성령의 통치가 천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4.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인 고백일까?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예수님을 어떻게 신앙고백해야 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을 정리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왜냐하면 4세기경 예수님을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태어난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예수의 신성을 훼손하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100% 인간이셨지만 또한 100% 하나님이라고 하는 정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아버지도 하나님이지만 예수님도 하나님이라는 것이며, 더불어 성령님도 하나님이라는 정의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곧 아들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 보면, 분명 기도하는 아들이 있고 기도를 받는 아버지가 있으며, 보낸 분이 있고 보냄을 받은 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과 같지 않다고 정의해야 했다. 또한 행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서 성령께서도 하나님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행5:3~4). 그래서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시는 영이기에, 아버지와 같지 않고 아들과 같지 않다고 정의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출현한 교리가 바로 '삼위일체' 교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아들도 하나님이요 성령도 하나님이라고 정의를 하려다보니, 아들도 하나님으로서 만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성령님도 만세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다른 인격을 가진 하나님으로 있었다고 정의해야 했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만세전부터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하지만 또 문제가 발생했다.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결국 하나님은 세 분이라는 뜻과 같은 것이었기에, 삼위일체하나님정의가 삼신론으로 가버릴 위험성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성부도 하나님이요 성자도 하나님이요 성령도 하나님이지만 한 하나님만 계신다고 정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정의다. 하지만 삼위일체에 대한 정의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정의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을 알고 있는가? 


5.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

  그렇다고 양태론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약 1700여년동안 교회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하나님의 존재방식에 대한 가장 올바른 정의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이 오고 있고, 진정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겸손한 영을 가진 자들에 의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이 진정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바르게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결국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첫째, 하나님은 홀로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홀로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사44:24, 45:18).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이름은 구약의 백성들에게 '여호와'라고 계시하셨다(출3:12, 6:2~3). 그래서 구약의 백성들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 혹은 '만군의 여호와'라 불렀다. 하지만 맨처음 창조되었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없앨 방법으로 여자의 씨(창3:15)를 보내주실 것을 말씀해주셨다. 또한 그러한 존재는 사람의 죄를 대속할 흠없는 어린양이어야 했기에(출12:5~6, 고전5:7),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다.

  그래서 둘째, 하나님은 사람의 육체를 입고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이때 홀로 한 분이셨던 하나님은 인성을 취하시기 위해 성령으로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어 280일만에 세상에 아들로 태어나셨다. 그분이 바로 독생자요, 아들이요,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알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무소부재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요4:24). 그래서 창조주이신 그분만이 동시존재가 가능하며 상호내재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만세전부터 홀로 한 분이셨던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하늘에는 여전히 우주를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동시에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아들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인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 예수님은 그분을 '아버지'라 불렀다. 사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최초로 부르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셨던 것이다. 구약의 성도는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 아니 구약시대에는 아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 곧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은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아들로 오셨다는 측면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했으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측면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예수의 어머니인가? 마리아는 신성한 하나님을 낳은 것이 아니다. 단지 그녀는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을 낳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천주교가 주장하는 마리아에 대한 칭호 곧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말은 틀린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성을 가진 예수님을 낳았기에 그녀는 '예수의 어머니'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6. 성령님은 처음부터 한 분 하나님의 영이요 나중에는 아들의 영이시기도 하다.

  그런데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 곧 아들 혹은 하나님의 아들 내지는 사람의 아들(인자)로 불리우셨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 곧 대속제물로서 세상죄를 없이하는 어린양의 사역을 수행하신 후에 어떻게 되셨는가? 그분은 하늘로 되돌아가셨다. 원래 있던 곳으로 가신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분의 영인 성령을 보내주셨다. 구약시대에도 성령님이 계셨지만 사람이 되어 오셨다가 하늘로 가신 하나님은 이제 사람 속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으니(요14:17),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하나님은 영으로 사람들 속에 내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믿는 이들 마음 가운데에 들어오시게 되었다(갈4:4). 그렇다고 구약시대에 성령님께서 계시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 그때에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파송받아어 이 세상에서 많은 활동을 하시었다(계5:6).  

  그렇다면 성령님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약시대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며(계5:6), 오순절이후에는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요14:16). 사실 하나님은 볼 수 없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이다(요4:24). 그러나 한 분이시요 영이신 하나님은 동시에 존재하는 당신의 영을 보내서 창조사역을 수행하셨다(창1:2, 시104:30). 그러므로 성령께서 만물을 지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볼 수는 없지만 그분은 당신의 영을 이 세상에 보내 만물을 짓도록 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보낸 영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영'이라 불리웠고(창1:2),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이후에는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리웠다. 그러다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마리아의 몸으로 빌러 태어나심으로 성령님은 '아들의 영'이라고삿6:34) 불리우기도 하였고(갈4:4), '예수의 영'이라고 불리웠다(행16: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이셨으므로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롬8:9)'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 불리웠다(빌1:19).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원래의 보혜사(=대언자)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요일2:1),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아버지께 받아 성령님을 보내주셨으므로(행2:33) 성령님은 '또다른 보혜사'로 불리웠다(요14:16). 특히 요한계시록에 보면, 성령님은 '어린양의 일곱눈들'이라고 하고(계5:6),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도 불리운다(계1:4, 5:6). 그리고 보좌 앞에 있는 '하나님의 일곱 등불'이라고도 불리운다(계4:5). 여기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영이 일곱 개라는 뜻이 아니라, 온 땅을 완전히 감찰하시는 영이라는 뜻이다. 즉 일곱이라는 숫자는 영이 일곱 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할수행이 완벽하다 혹은 완전하다는 의미로서 일곱 영인 것이다.


7.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방식

  정리해보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떠한 존재방식으로 계시는 분인가? 그분은 홀로 한 분으로 존재하신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분이시다. 그러다가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흠없는 대속제물이 되시기 위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은 동시존재와 상호내재가 가능하신 창조주이자 전능하신 분이므로, 하나님은 하늘에도 계시도 또한 땅에도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하나님(사9:6)은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이제는 믿는 이들 속에 들어가서 활동하실 수 있는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성령님은 오셔서 사람들에게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을 하셨고, 예수께서 누구시며, 그분이 하신 말씀과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가르치고 계신다. 그리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고 계신다.


8. 하나님과 예수님이 함께 등장하는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성경에 보면, 특히 신약성경에 나오는 부분으로서,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등장함으로 두 개의 인격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있어서 삼위일체론자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아버지로도 계시고 아들로도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이 따로 분리된 인격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진짜 그럴까? 그렇다면, 예수께서 세례받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이같은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버지, 세례받는 아들, 비둘기처럼 내려오시는 성령으로 나타나신다. 그래서 삼위일체론자들은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세 인격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들의 주장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분명 하늘에 계시고 있다. 그리고 그분이 당신의 영인 성령을 아들에게 보내주고 있다. 그리고 아들로서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거기에 계신다. 그러므로 이 장면도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즉 하늘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이 땅에는 아들이 계시며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성령이 계시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세 위격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곧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시는 각기 다른 역할의 수행장면이기 때문이다.


9.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들

  이제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것들을 잠깐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 보좌 앞에서 중보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각각 따로 있다(요일2:1, 딤전2:5). 그렇다면 중보하시는 보혜사이신 예수님과 중보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따로 있는 것이 분명한 것이 아닌가? 얼핏 보면 그렇다. 하지만 요일2:1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하나님 앞에서 중보하시는 보혜사(대언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중보하는 보혜사(대언자)로 나온다. 그리고 이것은 한 하나님에 대한 2가지 역할을 말하는 것이지 서로 다른 두 인격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좀 더 살펴보자.

  둘째, 아들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장면들을 보자. 예를 들어 겟세마네동산의 기도 혹은 요17장의 마가다락방에서의 대제상적인 아들의 기도 보면, 분명 기도를 드리는 아들이 있고, 기도를 받으시는 아버지가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분명 둘로 보인다. 그래서 삼위일체론자들은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진 두 분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두 개의 인격을 가리키는 것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격을 가지신 분은 오직 아들 예수님 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한 번도 인격을 취하신 일이 없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신격 안에서만 계셨다. 또한 그분은 한 번도 하나님의 보좌를 떠나신 적이 없다. 하지만 동시존재가 가능한 한 분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어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이전에는 가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격이 덧붙혀졌다. 이제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도 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형태로서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이때 예수님은 사람의 성분을 취하셨기에 분명 사람과 똑같이 되신 것이다. 그분은 분명 280일동안 어머니 마리아의 뱃속에서 자라나셨고, 탄생의 과정을 거치셨으며 키가 크고 자라는 과정을 거치셨다. 먹지 않으면 배고팠으며, 피곤하면 쉬셔야 했다. 그리고 다치면 우리와 똑같이 아픔도 겪으셨다. 다만 우리 인간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죄성이 없었다는 것이다(요일3:5, 히4:15, 벧전2:22).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잉태되셨기에 죄된 본성을 취하지는 않으신 것이다. 사실 그분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임하셨고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기에, 그분의 영이자 그분의 아버지는 요셉이 아니며, 그분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요 성령님이신 것이다(눅1:35). 그래서 아담으로부터 죄된 본성을 물려받지 아니한 예수님은 죄만 없으셨지 우리와 똑같이 성정을 가지셨고 그것 안에서 사셨던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인성을 취하셨기에 그분은 신성의 아버지에게 겸손히 행하셨다. 항상 물어보면서 하루의 이정을 시작하셨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 그대로 순종하셨다(요5:19). 그러나 그분이 가진 인성에도 자유의지가 있었기에 겟세마네동산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투쟁하기도 하셨다. 뿐만 아니라 육체를 지닌 인간이었기에 예수께서는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고 유혹도 받으셨다. 만약 예수께서 신성만을 가진 분이셨다면 그분은 결코 악한 자에게 시험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도 약한 인성을 취하셨기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또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셔야 했다. 그리고 사람인 아들로서, 그분은 당신의 재림의 때를 모른다고 언급하셨으며(마24:36), 신성만을 지니신 아버지보다 크지 않다고 말씀하셨고(요14:28),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보낸 아버지보다는 크지 않다고 말씀하셨다(요13:16).


10. 예수께서 인성을 취하신 이유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은 사람의 인성을 취하신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인자)이었기에 온 인류의 죄를 속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마귀를 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 한 분이신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야 했을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때문이다. 인류의 죄를 속죄하려면 흠없는 어린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피흘려 죽어야 죄값을 지불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부득불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이다. 아담의 후손들 중에 아무도 그러한 조건을 갖춘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류의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다(계3:20, 계7:15~17, 계22:1~3).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승천이후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다고 기록되었지 무슨 소리냐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상징적이며, 비유적이요, 시어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시16:8, 77:10~11, 98:1).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인류의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승리하셨다는 뜻이며, 권능으로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천사들 앞에서 왕노릇하실 것이라는 의미다(출15:6, 마26:64, 벧전3:22).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에게는 결코 오른쪽이나 왼쪽이 없기 때문이요, 또한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2개 내지는 3개가 없기 때문이다. 신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환상의 기록들을 죄다 읽어보라. 천국에는 높이 들린 단 한 개의 보좌만 있을 뿐이다(계4:2, 22:1~3, 사6:1~3). 그 보좌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앉아계신다(단7:9).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보좌에 앉아 계신 이를 '주 하나님'이라 부른다(계4:11, 19:1~2). 


11.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은 같은 하나님인가 다른 하나님인가?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보좌에 계신 이'  곧 주 하나님과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은 같은 하나님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하나님인가를 살펴보자.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계1:8)" 그리고 요한계시록 4~5장에 보면, 주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아계신다. 그래서 그분을 일컫어 '보좌에 앉아 계신 이' 혹은 '보좌에 계신 이'라고 부른다. 한편 거기에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 같으며, 불꽃같은 눈과 단련한 빛난 주석같은 발을 가진 분이 계신다. 그분은 '인자같은 이'라 칭하고 있다(계1:3~15). 그런데 놀랍게도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는 '인자같은 이'는 단7장에 보면 '보좌에 앉아계신 이'다(단7:9~10). 그리고 그분이 요한계시록 4~5장에 보면, 어린 양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은 다른 분일까 한 분일까? 각각 따로 표현되어 있는 구문만을 보면,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은 다르게 보인다(계5:13). 그렇다면, 보좌에 계신 이는 사람이나 천사의 눈에는 보이는 것일까? 아니다. 볼 수 없다. 어느 때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했고(요일4:12), 볼 수도 없다고 하였다(딤전6:16). 그리고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어서 독생하신 하나님 곧 예수께서 나타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요1:18). 그러므로 '보좌에 계신 이'는 보이지 않으며 볼 수도 없다. 다만 자신의 영으로 그분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감지할 뿐이다. 그러나 보이는 분은 '인자같은 이'(계1:13)가 있다. 천국에서 예수님은 결코 사람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인자라 불리지 않는다. 인자같은 이 곧 사람의 형상을 모습을 갖추었으나 하나님이신 분라고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4~5장에 보면, 인자같은 이인 예수께서는 보좌에 계신 이로부터 두루마리책을 취하시는데, 그분의 모습이신 어린양이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양은 실제 이 땅에 보는 어린양(양새끼)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양에게 눈이 일곱 개가 달려있고, 뿔이 일곱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어린양은 인자같은 이 곧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곧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인 것이다. '뿔'은 권세와 능력 곧 전능성을 상징하고, '눈'은 온 땅을 감찰하는 전지성을 상징한다. 또한 '일곱'이라는 숫자는 진짜 뿔이 일곱 개와 눈이 일곱 개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하다, 충분히 갖추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일곱 뿔'은 온 우주를 주관하고 다스리는 어린양의 전능성을 가리키며, 어린양의 '일곱 눈'은 온 우주를 감찰하시는 어린양의 전능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어린양이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면, 이 어린 양은 괴물에 해당할 것이다.더불어 어린양의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했다(계5:6). 이는 성령님이 일곱 분이라라는 뜻이 아니라 온 땅에 보냄을 받아 활동하고 계시는 성령님께서 완전하고 충분하고 일하고 계심을 뜻한다. 그렇다. 어린양은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보좌에 계신 이로부터 두루마리책을 취하시는 어린양은 상징적인 의미인 것이다. 앞으로 미래에 되어질 일들이 기록된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고 그것을 펼칠 수 있는 분은 오직 어린양되신 인자같은 이 곧 예수님 뿐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활동은 실제 양새끼가 아니라, 아직도 천국에서 사람의 인성을 취하셨던 아들께서 행하시는 사역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두 개의 인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두 가지 역할을 상징하는 것이다. 보좌에 앉아계신 이는 오직 신성만을 가지신 하나님을 가리키며, 어린양은 인성을 취하셨던 예수님을 가리킨다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과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은 다른 두 분의 하나님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보좌에 앉은 이'가 어린양이며, 인자같은 이요, 예수님이기 때문이다(계3:20, 7:15~17). 그러므로 천국에 있는 단 한 개의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동시에 어린양의 보좌인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2:1~3에 보면, 한 개의 보좌(단수)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보좌에 앉아계신 이'가 보좌에서 내려와 있으면 '인자같은 이' 곧 어린양으로 나타난 '예수님'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계1:17과 22:13에서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계21:6에서는 '보좌에 계신 이' 곧 '하나님'께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1:18에서는 예수께서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계4:9~10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계19장에 보면, 어린양되신 예수께서 심판하시지만, 계19:2와 20:11에 의하면,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가 심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계17:14과 19:16에서는 예수께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나오지만, 딤전2:15에 보면, 주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나온다. 그리고 계19장에 보면, 예수께서 재림하신다고 되어있지만, 계1:8과 4:8에 의하면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가 장차 재림하실 것이라고 되어 있다.


12. 나오며

  이단이란 무엇인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이단이요(요일4:2), 예수께서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야로서 불충분하다거나(요일2:22)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하나님되심을 부인하는 자가 이단이다(요일5:20, 4:9~10). 그리고 성령님이 하나님인 것을 부인하는 자가 이단이다(행5:3~4). 그리고 하나님이 세 분(삼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단이다. 오늘 말씀을 잠시 생각해보라.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두 역할을 가리키고 있다. 보좌에 계신 이는 신성만을 가지신 하나님을 의미하고, 어린양은 인성을 가지셨던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분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이신데, 신성의 하나님과 인성의 하나님의 역할을 구분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아계신 이가 결국 어린양이신 예수님인 것이다(계7:15~17). 그러므로 하나님과 어린양이 각각 다른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묘사이다. 그리고 어린양은 인성을 가지신 하나님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인 것을 잊지 말라. 그렇다. 장차 들어갈 천국에서 우리는 두 분 혹은 세 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뵐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오직 한 분이신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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