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돌아가자(마15:1~10)_2017-07-07

by 갈렙 posted Jul 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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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l3ViItxNVtg
날짜 2017-07-07
본문말씀 마태복음 15;1~10(신약 2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로마천주교의탄생, 성경대로믿은사람들,위클리프성경,종교개혁의특징,현대교회의타락,제2의종교개혁,바른구원론과바른하나님신앙

A.D.100년경 사도요한의 사후, 초기교회는 오직 성경 하나만을 붙잡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것 같다. 또한 성경은 중세 천년기간에 성경은 순수한 신앙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았다. 그리고 천년을 뛰어넘어 A.D.1382년이 되자, 영국의 신학자 위클리프가 불가타 라틴어성경(A.D.405년)을 영어성경으로 번역하기에 이른다. 그때 그는 로마카톨릭이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무엇이 틀렸는가를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성경번역은 A.D.1517년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다. 그런데 오늘날에 들어와서 성경을 해석하고 이단을 판별하는 기준으로써 성경을 사용하지 않고, 신조나 교리를 가지고 이 일들을 행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 의해 진리는 감추어지고 있고 또 다시 영적 암흑기에 접어들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장을 담아본다.

 

1. 들어가며

  여러분은 현재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이 어떻게 해서 우리들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성경과 성경번역의 역사를 통해서, 성경대로 믿는 신앙의 지조를 지키다가 순교한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실 비주류의 이야기다. 주류에 서 있는 자들은 항상 핍박하고 죽이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초대교회부터 신앙이 어떻게 변질되었으며 변질된 신앙을 뿌리치고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으로 맞선 자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을 읽게 하려고 성경번역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 참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교회사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성경대로 믿기 위한 처절한 싸움

  우리가 가진 성경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성경책은 어떤 책일까? 그것은 A.D.95~96년경에 쓰인 신약의 묵시서인 요한계시록이다. 그리고 성경의 기록은 종결되었다. 그러자 그 뒤 성경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지침서가 되었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했던 것이다. 12사도들의 사역을 이어받은 속사도들은 그때부터 자신의 신앙을 지켜나가기 위해 로마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로마황제 네로에 이어, 도미시안 황제가 노골적으로 시민들에게 황제숭배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리스도인들은 결정해야 했다. 로마황제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섬길 것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섬길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각오했다. 그들은 오직 주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과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고자 했기 때문이다. 갖은 핍박은 시작되었고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그들은 사자의 밥이 되었으며, 어떤 이는 불에 태워져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래서 기독교는 없어지는 줄로 알았다.

 

3. 기독교는 어떻게 되어 이교도와 혼합종교가 되어버렸는가?

  하지만 A.D.306년 로마의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는 A.D.313년에 밀라노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로마의 공적인 종교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A.D.321년에는 일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그리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에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제 로마 나라 전체가 서서히 기독교국가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A.D.63년 네로가 로마의 황제로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로마내의 모든 종교의 최고사제직인 "최고승원장(폰티펙스 막시무스)"자리를 로마황제가 겸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A.D.376년경 로마의 황제였던 그라시아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최고승원장을  안 하겠다고 그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그러자 당시 로마의 주교였던 다마수스(Damasus)가 A.D.378년 이교도인 바벨론종교의 공식적인 최고승원장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최고승원장의 상징이었던 두 개의 열쇠(야뉴스와 키벨레 신의 열쇠)를 거머쥐었고, 53년 뒤인 A.D.431년에 가서는 그것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준 천국열쇠들(마16:19)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로마주교가 최고승원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제는 이방종교의 모든 제도와 풍습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마침내, A.D.590년 로마주교 그레고리1세가 자신을 황제라고 칭하면서, 공식적인 로마카톨릭(천주교)이 시작된다. 다시 말해, 로마카톨릭은 순수한 기독교에다가 이교도 특히 바벨론종교가 합쳐져서 탄생한 혼합종교인 셈이다.

 

4. 로마카톨릭의 탄생과 불가타 성경의 발행

  그런데 A.D.378년 로마주교가 이교도의 최고승원장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때, 거기에 합류하지 않는 비주류의 순수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오직 기록된 성경말씀(헬라어신약성경)에 따라 예수님을 주님과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섬기는 타락한 주류기독교와 오직 예수님을 주님과 하나님으로 섬기는 비주류의 순수한 기독교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승자의 법대로 되어가는 것처럼, 이교도와 혼합한 로마카톨릭은 세상 모든 권력을 흡수하게 된다. 이때 로마주교 다마수스는 자신의 비서였던 신학자 제롬(A.D.342~420)으로 하여금, 고대 로마어로 기록된 성경들을 당시 통용되는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자 제롬은 그때부터 성경번역 작업에 착수하여 약 20여년에 걸쳐 신구약 라틴어성경(불가타, VULGATA)을 발간하게 된다. 처음에는 히브리어를 잘 몰랐던 제롬은 헬라어판 구약성경인 70인역에서 구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였고, 헬라어는 대문자사본으로 추정되는 헬라어신약성경을 가지고 번역한다. 그후 히브리어를 공부한 제롬은 이제는 히브리어성경에서 직접 성경을 번역하여 불가타성경 개정판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하여 로마의 주교 다마수스는 제롬이 번역한 불가타 성경을 갖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상 어느 나라든지 제롬이 번역한 불가타성경 이외에는 어떤 성경도 성경으로 인정을 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로마카톨릭교회의 공인성경인 불가타 성경이다.

 

5. 천 년만에 다시 세상에 등장한 번역성경, 위클리프성경(A.D.1382년)

  하지만, A.D.1450년 구텐베르크가 종이인쇄술을 발명하기 전까지 성경은 파피루스나 소나 양가죽에 베껴쓴 것이므로, 중세 약 천년간에는 성경을 구경하기도 힘든 시대였다. 아니 그렇게 해서 성경을 못보도록 일부러 감추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성경을 만인이 보게 되면, 천주교가 얼마나 우상숭배의 혼합종교인지를 알아챌 것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A.D.405년 이후 약 천년간 성경은 그야말로 성도들의 손에서 완전히 멀어진 성경의 암흑기에 접어들고 만다. A.D.1382년 영국의 신학자 위클리프가 불가타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기까지, 성도에게 성경이 전혀 주어지지 못하는 영적인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A.D.1229년경에 로마교황은 불가타성경을 제외하고 그 어떤 성경도 가질 수 없다고 선언한 뒤, 평신도가 성경을 소지하게 되면 엄벌에 처한다는 것을 선포했다. 그때 어떤 평신도가 성경을 소지한 것이 발각되었는데, 그만 화형당해 죽고 말았다.

  하지만 영국의 신학자 위클리프(A.D.1300~1384)가 불가타성경을 영어로 번역함에 따라(A.D.1382), 종교개혁의 불씨가 서서히 지펴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따르면, 천주교의 의식들과 교황의 선포가 성경 우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위클리프는 구전전승과 교황의 선포 등이 성경과 동등하거나 우위에 있지 않음을 말하기 시작한다. 당시 그가 선포했던 설교의 내용을 보면 이렇다. "전승이나 교황의 선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참신앙의 진정한 원천이다.", "성경만이 진리다.", "성경 위에 무엇인가를 두거나 혹은 인간의 전승이나 교리, 의식 등을 선호하는 것은 단지 앞을 보지 못하는 추리에 불과한 것이다.", "교회의 역사는 복음으로부터 이탈되고, 후기전승과 혼합되면서, 처음에는 희미하여 잘 인지되지도 못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부패성이 심해진다.", "그리스도에 의해 이뤄진 구원의 개인적인 적용은 회심과 성화에 의해서 가능하다. 회심은 죄로부터 돌이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 곧 회개와 믿음을 가리킨다. 회개는 구원의 필연적인 단계이며, 또한 열매로 확증되기 마련이다." 이것 뿐만 아니다. 위클리프는 교황의 무오설을 반대했으며, 화체설까지 반대했다. 성경이 그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영국국왕이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화형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로마교황은 그의 시체를 파내어 불태웠고 강에 뿌리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6. 성경이 주는 유익과 원문에 가까운 헬라어신약성경의 발간

  그렇다면, 위클리프는 로마카톨릭이 잘못된 혼합종교이며,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성경을 보면서부터다. 성경의 진가는 거짓과 진실을 알려주는 시금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A.D.1450년 이후 인쇄술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그러자, 봇물처럼 성경번역작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1년전인 A.D.1516년에는 에라스무스가 헬라어신약성경이 출판했다. 그리고 1545년에는 종교개혁자 루터가 자신의 모국인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다. 그리고 A.D.1565년에는 칼빈의 제자 베자에 의해 헬라어 베자성경이 출판되어 나왔고, 1611년 영국에서는 또다시 영어성경인 흠정역성경(KJV)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리고 1624년에는 엘제비어형제가 표준원문(Textus Receptus)이라는 헬라어신약성경을 발간하게 된다. 1633년에는 이것의 개정판이 나오는데, 이때부터 헬라어원전성경은 '표준원문'이라고 불리웠고 이 성경이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표준원문은 엘제비어형제가 만든 말일 뿐 실제 표준원문이 아닌 것이 드러나게 되었고, 본문비평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원저자가 썼던 헬라어성경에 가장 가까운 성경들이 출판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헬라어 대문자사본을 바탕으로 한 네슬알란트 계열 성경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위클리프가 불가타 번역본을 역본으로 하여 영어성경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는 그는 신약의 대본으로 불가타 번역본을 사용하지 않고, 소문자헬라어사본을 가지고 번역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위클리프가 사용한 역본은 훨씬 후대의 헬라어사본이다. 수많은 부분들이 고쳐지고 첨가된 사본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위클리프는 그것을 잘 몰랐다. 그래도 위클리프의 공은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약 천년동안 없었던 성경번역의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기 때문이며, 그로 인하여 중세 로마카톨릭의 잘못되었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7. 왜 성경이 주어졌는데도 성경을 읽지 않는가?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이미 비평사본학을 통해 헬라어사본이 거의 원본에 가깝게 재현되어, 우리의 손의 들려진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헬라어신약성경을 보기를 원한다면, 누구든지 서점을 인터넷을 통해 만나볼 수가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현재 얼마나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가 헬라어원문성경을 그대로 보고 있는지 사뭇 의심스럽다. 중세시대에는 성경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화형을 당했지만, 몰래몰래 숨어서 성경을 보고 성경대로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든지 성경을 볼 수 있고, 맘만 먹으면 헬라어성경을 인터넷으로 혹은 PC용이나 스마트폰용으로 구입하여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여기에 힘쓰는 이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시대에는 헬라어성경보기가 매우 쉬워졌다. 이미 헬라어 단어에 대한 구문분석도 다 나와있고 방대한 사전까지 한 번 클릭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원문성경을 직접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진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텐데도 말이다.

 

8.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대로 판단하지 않을 때에 나타나는 심각한 결과들

  문제는 무엇인가? 이미 가장 완벽에 가까운 헬라어원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수많은 목회자들이 교리나 교단의 신학에 따라 그냥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고 편하게 말씀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고대 신조들(니케아신조, 콘스탄티노플신조, 칼케돈신조 등)이나 칼빈의 교리 등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는가? 사실은 이미 이방종교와 혼합된 기독교 곧 로마카톨릭에서 만들어냈거나 그들이 결의한 것들이다. 그리고 칼빈의 예정론 같은 것도 사실은 어거스틴과 제롬의 신학을 그대로 완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종교개혁 이후에도 여전히 교리나 신조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 이단을 연구하는 자들조차도 성경을 가지고 정죄하는 아니라 신조과 교리나 교단의 신학을 바탕으로 이런 일들을 행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신조나 교리는 죄인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자, 정치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교회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단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9. 예수님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수님 시대를 보자. 예수께서 왜 신성모독죄로 죽임을 당해야 했는가? 예수님은 죽인 자는 대체 누구였는가? 그것은 당시 가장 신령하고 가장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자 그리고 사두개인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예수님을 정죄했는가? 예수께서 구약성경을 지키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정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첫째로, 예수께서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다고 미워하고 정죄하였다(마15:1~10). 장로들의 유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세가 기록하지 못했던 말씀으로 구전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기록된 율법말씀보다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손을 씻지 않고 먹는 예수님을 정죄한 것이다. 하지만 기록된 율법을 보라. 모세오경 어디에도 손을 씻고 음식을 먹으라는 말씀이 없다.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지키면 건강상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아니다. 장로들의 구전일 뿐이다. 참고하면 된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을 그것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다. 그러니 손을 씻지 않고 먹는 예수님을 보면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가자 그것이 미웠고 더욱 시기가 났다. 예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자기들에게 오던 백성들이 그만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핑계거리를 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말했다는 것을 가지고, 어찌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면서, 예수께서 신성모독하는 말을 했으니 더이상 그냥 놔 둘 수 없다 했다. 하지만 시편 2편을 보라. 메시야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나온다. 그리고 사9:6, 7:14에 의하면, 메시야는 사람의 아들이자 아기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로 처녀의 몸을 빌어 임마누엘 할 것이라고 나온다. 그러니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이 진실로 메시야인지 아닌지,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분별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구전율법인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다고, 예수님이야말로 율법을 무시하는 자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잡아 로마에 넘겨 죽게 만든 것이다.

 

10. 무엇이 성경해석과 이단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이 다른가? 만약 성경을 해석하거나 이단을 판단하는 일이 성경을 가지고 성경이 해석하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시대나 지금시대나 마찬가지다. 성경에 나온 말씀대로 믿지 않는 것을 가지고 판단해야 함에도, 인간이 결정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신조나 교리를 가지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중세교회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장차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요 하나님이요 전능자라고 하면, 초기 로마시대처럼 우리를 독선주의자라고 하면서 매도할 것이 뻔하다. 로마카톨릭처럼 종교다원주의만 살아남는 세상이 도래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 천주교에서는 예수님만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며 거기에도 하나님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마리아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은 아들 하나님이요, 여호와는 아버지 하나님이요, 성령님은 영이신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으니,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게 맞는 논리인가? 그렇다면, 여호와는 예수님의 아버지요,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니, 마리아는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이교도와 합쳐지면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섬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조(칼케톤신조)를 변치 못할 하나님의 말씀처럼 믿고 따라가고 있는 것이 현대교회 기독교 지도자들이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단을 보라. 그들은 하늘에 아버지 하나님도 있고 아들 하나님도 있으니, 어머니 하나님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혹하면서 그쪽에 넘어가는지 모른다. 성경이 증언하는 무소부재하신 한 분 하나님을 모르니, 신천지교주가 자신이 재림예수요 보혜사성령이라고 해도 그를 따라가는 것이다. 큰 일이다. 바른 구원론이 회복되어야 하고, 바른 하나님 신앙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오직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고, 성경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11. 나오며

  초기교회가 예수님만이 주님이요 하나님인 것을 찾고 선포한 것이라고 한다면, 중세시대의 끝무렵 위클리프와 종교개혁자들은 성경만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며, 성경만이 진리인 것을 찾아 선포한 장본인들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 500년이 지난 지금의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몇년전부터 칼빈의 예정론과 5대교리가 틀렸다는 사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것이 정통과 이단의 판별기준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다. 칼빈의 교리는 흠이 있는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 누구의 주장이라도 그것이 성경 66권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주장은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우리에게는 오직 66권의 성경만이 정통과 이단을 나누는 기준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중세시대에 성경을 소지했다고 해서 그리고 성경대로 믿는다고 죽임당한 8천만의 억울한 죽음이 재현되지 아니할 것이다. 이제는 오직 66권의 성경만이 우리의 구원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오직 66권의 성경만이 진리와 비진리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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