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바울이 전해주고자 했던 참된 칭의는 무엇이었나(롬3;19~31)_2017-12-15(금)

by 갈렙 posted Dec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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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eK3yKJ5mUL4
날짜 2017-12-15
본문말씀 로마서 3:19~31(신약 24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전통적인 칭의론, 율법의 행위들,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믿음으로, 속죄의 피, 언약의 성취자, 말씀에 대한 충성됨, 순종하심의 결과, 칭의의 근거

칭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칭의가 율법의 행위를 지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얻게 된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간과하는 이들이 많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선한 행위가 없더라도 믿음이 있으니 자신은 이미 칭의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맥을 벗어난 해석이요, 헬라어성경원문을 정확히 보지 못한 견해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비단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만의 일이 아니다. 중세교회로부터 바른 믿음을 회복하자는 종교개혁자들의 실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자들은 무엇을 실수했으며, 후손들에게 무엇을 잘못 전달해주었는가? 그리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칭의 곧 주님이 말씀하셨고 바울이 전해주고자 했던 참된 칭의는 대체 무엇인가?

 

1. 들어가며

  칭의(稱義)란 무엇인가? 왠만한 기독교인이라는 그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칭의(稱義)란 의롭다고 칭함받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외적인 신분의 변화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칭의는 어떻게 받을까? 그것은 율법을 행위를 지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롬3:28). 여기까지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들 잘 알고 있는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종교개혁자들이 말했던 칭의를 얻는 방법이 과연 예수께서 말씀하셨고, 사도바울이 전해주려고 했던 것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칭의를 얻는 방법이 과연 "오직 믿음"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칭의가 무엇이며 칭의를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그것에 대해 예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으며, 사도바울은 진짜로 어떻게 말했는지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2 칭의란 어떤 것이며, 칭의를 얻는 2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칭의란 무엇인가? 실제적으는 의롭지 않지만 어떤 절차를 밟은 자를 의롭다고 칭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칭의인과 의인은 다르다. 칭의인은 의롭지 못한 자이나 어떤 절차를 따라 의롭다고 칭함받는 자를 각리킨다면, 의인은 행위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말했던 사람은 칭의인일까 아니면 의인일까? 그것은 칭의인이다. 의롭지 않으나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자에 관한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에는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율법을 다 지켜 행하는 경우다. 하지만 율법의 행위를 다 지켜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자는 없다. 왜냐하면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깨달을 수는 있어도 율법을 다 지켜 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죄아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자기 속에 죄된 본성이 자리잡고 있고 외부에 죄짓도록 유혹하는 귀신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다 지켜 행함으로 의인이 되는 방법 말고 다른 한 가지 방법을 마련하셨다.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그것은 메시야의 속죄를 통한 방법이다. 메시야가 대신 율법의 의로운 요구 곧 죄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시고 그 의로움을 믿는 자는 자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치고 칭의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메시야를 통한 전가의 방법밖에 없다.

 

3. 사람은 어떻게 해서 의롭다고 칭함받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칭의인 되는 것일까? 롬3:20~21에 의하면, 칭의를 얻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종교개혁자들이 그토록 열변을 토하며 외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칭의의 획득에 관해 의의를 제기하는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신학자들로는 톰 라이크, 리처드 B 헤이스 등이 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원래 말하고자 하였던 순수한 칭의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우리말 개역성경에 나와있는 칭의의 방법부터 찾아보자.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 말씀만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방법을 율법이 조항들을 지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믿음은 무슨 믿음인가? 단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사 살리신을 믿는 믿음인가? 아니면 또 무엇인가? 정확한 답을 찾으려면 문맥을 따라가봐야 한다. 먼저, 롬3:28의 문맥을 따라가보자.

롬3:24-2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렇다. 단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안에 있는 속량(구속)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로움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예수의 피로서 주어지는 의(義)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칭의를 얻으려면 옘수께서 누구시며 어떻게 그의 피로서 인류의 죄를 속량하셨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롬3:21~22의 말씀은 번역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우리말 개역성경의 말씀을 살펴보자.

롬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렇다. 롬3:21에 의하면, 율법의 조항들을 지켜서 의를 얻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 율법을 지켜서 얻을 수 있는 의(義)외에 다른 하나님의 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이미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율법 외에 다른 의가 주어질 것이 이미 구약시대에 계시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율법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는 메시야의 속죄를 통한 의(義)이다. 이것에 관한 대표적인 예표로서는 유월절양이나 속죄양이며, 예언은 이사야53장에 나오는 고난받는 메시야의 노래다. 그런데 롬3:22에 의하면, 이러한 의를 얻는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만약 롬3:22의 말씀이 21절 다음에 나오지 않았다면,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그것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21절처럼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이미 증거를 받은 것이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또 다른 의는 메시야가 와서 율법과 선지자들이 했던 약속을 고스란히 하나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성취하심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4. 칭의의 본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통하여서"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인가?

  그렇다면, 롬3:22의 의 번역은 어떤 것이 바르고 정확한 번역인가? 사실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의 롬3:22말씀은 헬라어를 한글이나 영어로 옮길 때에 잘못 번역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통하여)"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은 번역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의롭다게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헬라원문상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를 통하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구를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번역하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우리에게 의를 안겨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헬라어 '피스티스'에 대한 번역을 심사숙고해야했다. 하지만 영어성경이나 한글성경에서는 그것을 너무나 간편하게 번역해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를 목적격으로 번역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목적격이 아니라 소유격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로 말미암아(통하여)"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구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으로 말미암아"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faithfullness)을 통하여"으로 번역했어야 옳았다.

  그래서 어떤 성경번역본들이 이처럼 번역하고 있는가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어성경에서는 단 한 종류도 그렇게 번역한 성경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한 개가 있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있는 한글성경 번역본들은 약 22종에 이른다. 그런데 이중에서 한 개의 번역본만이, 롬3:22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이라고 번역했다. 그것은 신구약성경을 직역하신 허성갑역 "히브리어헬라어 직역성경"이다. 거기에 보면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롬3:21-22 그러나 이제 토라 외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으니 그것은 토라와 예언서에 의하여 증언된 것입니다. 그것은 예슈아 마쉬아흐(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통한 하나님의 의로서, 모든 신자를 위한 것입니다. 참으로 거기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렇다.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통한 것이기는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충성)을 믿는 믿음으로 통해서인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라올 죄인들을 위해, 충성되이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신 것이다. 그의 결국은 인류의 죄값을 대신하여 피흘려 죽는 속죄양이 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셨지만 예수께서는 일차적으로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의 모양을 입으셨다. 그리고 구약의 율법으로 예표되고,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예언된 350여가지의 예언들을 성실하게 다 성취하신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그 많은 예언들을 다 이루기 위해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래서 예수님이라 하더라도 눈물과 때로는 밤을 새워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육체를 가진 인간이 겪어야 할 많은 일들을 다 겪으셨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가서는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죽음을 맞이하셨다. 구약의 약속들을 철저하고도 성실하게 이행하신 것이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실"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해주시는 것이다.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롬3:25을 번역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그의 피 안에서 신실함을 통하여 속죄제물로 삼으셨다"라고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그의 피 안에서 믿음으로 속죄제물로 삼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이 칭의를 얻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자 절대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한 속죄사역인 것이다(롬3:25, 5:9). 그것은 구약에서 율법과 선지자들로부터 이미 예표되었거나 예언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예수께서 오셔서 신실하게 다 성취하신 것이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숨을 거두셨다.

 

5. 그리스도의 신실함(충성됨)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적어도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구약의 약속들을 다 이행하셨다는 뜻이다. 사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자신을 "신실한 하나님(신7:9)"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은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는 존재라고 하셨다. 고로, 그리스도의 신실함이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시 모든 예언들을 메시야로 오신 예수께서 철저히 다 이행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께서는 구약의 예언된 말씀에 따라 철저히 복종하시고 순종하셨음을 의미한다. 구약시대에 모세는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그는 종으로서 충성하였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아들이심에 불구하고 아버지께 충성하셨다(히3:5~6). 그랬다. 사람이 칭의를 얻다는 것은 자기에게 의로운 행동이 하나도 없다고 할지도 그냥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구약에 나타난 모든 약속들을 예수께서 오셔서 성실히 수행하심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자가 결국 칭의를 얻게 된다.

 

6, 그렇다면 종교개혁자 루터는 칭의의 개념을 설명할 때에 무엇을 실수한 것인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종교개혁자 루터는 다음과 3가지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다고 보아야 한다. 첫째, 칭의를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고 정의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진실로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에 칭의를 얻는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약화시키거나 외면하게 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칭의를 얻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말씀했는지 아는가? 그것은 2가지였다. 하나는 율법(십계명)을 다 지켜 행하는 것이었다. 부자청년은 어려서부터 그것을 지켰다고 말했으나 주님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도망치듯 달아나버렸다. 사실 율법대로 살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철저히 시인하고 하나님의 속죄가 아니면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 회개하고 주님의 속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눅18장에서 말씀하셨던 바리새인과 새리의 기도에 나타나는 칭의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규정한대로 다 지켜행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누가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있겠는가? 하지만 세리는 달랐다. 처음부터 가슴을 치며,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서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한 채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주님의 속죄를 간곡히 요청했다. 그래서 그는 의롭다하심을 받고 먼저 집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비유가 칭의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가르쳐준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 회개와 주님에 의한 속죄를 믿는 믿음이다. 이 세리는 바로 그러한 자였기에 칭의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루터는 "오직 믿음(sola Fide)"을 외침에 따라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인 회개를 소홀하게 여기게 한 것이다. 이것이 그의 첫번째 실수요 잘못이다. 둘째, 칭의를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고 정의함으로 말미암야, 믿는 자에게 당연히 뒤따라 오는 행위의 열매들의 유익성을 간과시켜버렸다. 다시 말해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게 되면 믿는 자에게서 당연히 선한 열매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간과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오래했지만 선한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아도(물론 회개하지 않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은 믿음을 가지고 있느니 구원받을 것이라는 착각을 갖게 한 것이다. 비록 선한 열매들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자신이 정말 구원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로서의 기능이 있음에도 그것을 망각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사람이 칭의를 얻는 것이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고 정의함으로 말미암아, 칭의가 그리스도의 실실함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약화시키거나 축속시켜 버렸다는 점이다(몰론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믿음으로 사람은 칭의를 얻는다). 단지 "믿음"만을 말했을 뿐, 어떤 믿음인지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음으로, 지적동의적인 믿음만으로도 구원얻었다고 판단하는 우를 범하게 한 것이다. 

 

7. 나오며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이란 대체 어떤 믿음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셨고 사도바울이 그렇게 우리에게 전달해주려고 노력했던 참된 믿음 곧 칭의를 얻기 위한 참된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실됨과 충성됨을 믿는 믿음이어야 한다. 그것은 칭의에 관한 가장 확실한 성경구절의 하나로서 갈라디아서 2:16에도 나온다.

갈라디아서 2:16(허성갑역) 사람은 토라(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예슈아 마쉬아흐(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통하여 의로워지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가 예슈아 마쉬아흐를 믿는 것은 토라의 행위가 아니고, 마쉬아흐의 신실함으로 의로워지기 위함입니다. 이는 토라의 행의로서는 어떤 육체도 의로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신실하고 충성되이 구약의 율법말씀과 예언을 이행하셨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이 없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다.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 지적인 동의만으로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그것이 그에게 결코 칭의를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신실한 속죄의 사역 때문에 죄용서를 받고 칭의를 얻는다. 우리의 행실로 말미암아 칭의를 얻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실하심과 충성됨을 정확히 이해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해낼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 그리스도가 맺었던 열매들을 그대로 맺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선한 행위를 통해서 칭의를 얻고 구원을 얻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실한 순종과 희생을 믿는다면, 우리에게서 선한 행위의 열매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구원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선한 열매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바른 믿음과 바른 칭의를 가진 자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열매들에 해당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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