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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HlwYvLJ04I
날짜 2018-01-12
본문말씀 요한복음 10:28(신약 16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영생, 영원히,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 에이스 톤 아이오나,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헤 아니오니오스 조에, 테스 아이오니우 조에스, 정관사 없는 영생,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은 한 번 주어지면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인가? 이것을 신학적인 관점에 따라 논해보면, 첨예하게 평행선을 긋고 달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그것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금방 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성경본문이라 할지라도 성경원문을 살펴보면 답을 찾아낼 수 있고, 어떤 것은 문맥을 살펴보아서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은 요10:28에 나오는 말씀 즉 한 번 구원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것인지를 "영원히"라는 헬라어 문구를 통해서 좀 더 들여다보고자 한다. 정말 사람이 한 번 받은 영생은 영원히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것일까?

 

1. 들어가며

  믿는 자는 모두가 다 정말로 영원한 생명을 영원히 받게 되는 것일까? 그리하여 한 번 받게 된 영원한 생명은 영원히 빼앗기지 않으며, 영원히 누리면서 사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칼빈주의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반대로 "아니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을 일컬어 사람들은 "알미니안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신학자들의 강의를 들어보면,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어떤 면에 있어서는 둘이 일치하는 점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진의의 판별에 대한 기준은 성경말씀이다. 성경말씀에 어떻게 나와있는지를 살펴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단들이 쓰는 것처럼 어떤 한 구절을 쏙 뽑아서 자기의 교리적 체계를 대입해서 말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다. 성경에 나와있는대로 증언해야 한다. 우리는 어느날 우리가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 이실직고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사고와 논리를 말한 것으로는 그날 책망을 들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증인이요,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날에 우리가 주님 앞에서 책망을 듣지 않고 잘했다고 칭찬듣는 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가 성경말씀에 나와 있어도 몇 가지 사항에 주의하면서 살펴보면 보다 더 성경적인 입장을 찾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어떤 주장이 앞뒤전후 문맥과 일치하는가를 보면 된다. 둘째로, 성경원문에는 어떻게 나와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글과 영어로 된 성경만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는 문장들이 더러 발견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증거의 본문이 더 나오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믿는 자가 과연 영생을 받되 영원히 받게 되는지를 이제 알아보도록 하자. 그럼, 믿는 자가 받게 되는 영생은 영원한가에 대해 살펴보자.

 

2. 믿는 자는 과연 영생을 영원히 얻게 되는 것인가?

가. 문맥을 통한 판단

  첫째, 성경의 문맥을 보자. 우선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영원히 구원받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영생을 받는 것을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누군가에게 영생을 주실 것인지 아니 주실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만약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한 번 영생을 주시기로 결정하셨다면 그것은 영원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했다면, 그 사람은 영생을 영원히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사실일까? 여기까지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들의 주장이 맞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칼빈주의자들이 자신의 교리에 맞추어 해석한 것이지 성경말씀을 그대로 말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맞추어놓은 신학적인 틀에 따라 요10:28을 해석한다. 대체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셨으며, 때가 되면 어느날 그를 불러내어 예수께로 보내시는데 그러면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는다. 그리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영생을 받게 된 자는 영원히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 어떤 자도 예수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으니, 그들의 구원은 안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주장은 사실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그들(3인칭,복수)"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한 것일 뿐, 결코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맥으로 볼 때, 예수께서 영생을 받게 될 "그들"은 대체 누구일까? 그들(그것들)은 중성복수대명사로서 27절에 나오는 그들(그것들)이다. 그들은 곧 양들을 가리킨다. 그렇다. 주님께서 영생을 주시려는 자들은 바로 양들인 것이다. 만세전에 예정된 자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양들이란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0장은 양과 목자의 비유에 관한 말씀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모든 양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27절을 보니, 양들이라도 목자인 그분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고 있고, 그분을 계속해서 따라가고 있는 자들에게 예수께서 영생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칼빈주의자들은 이와 반대로 말하기도 하다. 다시 말해, 목자의 음성을 듣고 있고, 목자를 계속해서 따라가서  주님의 양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양들로 예정되어 있던 자가 그분의 음성을 들으면 그분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죄인으로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요8:44에 보면, 사람의 원래 아비는 마귀라고 되어있다. 즉 모든 사람은 아담의 범죄이후 다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다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즉 이 세상 사람치고는 단 한 사람도 양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다 염소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 사람은 주님 앞으로 나아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며,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마음에 믿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염소로 태어났지만 양이 되는 이는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양들은 주님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게 되고 주님을 따르게 된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맥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에게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것은 아니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고 그분을 따르는 자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나. 성경원전에 의한 판단

  둘째, 원어상 이 문장을 살펴보자. 요10:28~29절의 문장은 칼빈주의자들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으로써 한 번 얻은 구원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구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정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29절의 성경말씀은 헬라어성경원문에서 잘못 번역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영원히"라는 문구와 "영원한"이라는 단어는 다른 뜻이기 때문이다. 먼저, 첫째로 29절의 오역부터 살펴보자. 우리말성경에서는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원문(헬라어대문자사본)은 그렇지 않다. "내 아버지께서 이미 내게 주신 채 있는 것(중성,단수)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크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29절의 말씀은 예수께서 영생을 주고자 하는 양들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준 양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것은 아주 크다는 것인데, 그것은 구원받으려고 예수님게서 나아오는 자들을 예수께서는 하나도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에수님에게 어떠한 것을 그에게 보내주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빼앗을 주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꼭 있어야만 예수께서도 자시에게 나아오는 양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실 영생은 영원히 그들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수님께서 주실 영생은 그들에게 영원히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게만 통용되는 생명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답은 "영원히"라는 문구 속에 들어있다. 헬라어로 "영원히"라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문구는 전부다 "영원토록"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 세대까지(시대까지)'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 문구가 헬라어로 "에이스 톤 아이오나(until the age)"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의 "아이오나"는 "아이온"의 복수 목적격 명사다. 그렇다면 "아이온"은 남성명사로서, "시대(age), 세대(generation), 세상(world)"로 번역되는 단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에이스 톤 아니오나"는 "그 시대(세대,세상)까지"라고 번역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뜻이 영원히(영원토록)이라는 뜻이 아닌 것이다. 만약 이 문구가 정말 끊없이 계속되는 것을 뜻하는 "영원히(영원토록)"가 되려면, 헬라어문구는 "에이스 투스 아이노나스(ultil the ages)"여야 한다. 즉 '아이온'이 복수형태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시대들까지(세대들까지)"라는 말이 되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을 아울러 지칭하는 세대들이기 때문에, "영원히(영원토록)"이라는 뜻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로는 마6:13에 나오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나옵나이다"와 같은 문구가 있다. 여기에 나오는 "영원히"라는 문구는 헬라어로,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ultil the ages)"로 나와 있다. 그러나 요10:28에 나오는 "에이스 톤 아이오나"는 "그 시대(세대)까지"라는 단수문장이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세대)만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영원히"라로 번역하면 안 되는 문장인 것이다.

  정리해보자. 요10:28에 나오는 "영원히"라는 헬라어문구는 "에이스 톤 아이오나"라는 단수형태의 문장이므로, "영원히(영원토록)"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시대(세대)까지"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당신을 믿고 따라오는 자에게 주실 영생은 이 세상에 끝나는 그날까지만 유효한 생명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그러한 생명이 파괴되고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그 사람이 죽는 그날까지 그의 속에 있기는 하지만, 그가 죽는 날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두어가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사실 누구든지 영생을 가진다. 하지만 이 영생은 영원히 파멸될 수 없는 영생이 아니다. 만약 믿고 회개하여서 이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고해도, 죽는 날에 그 생명을 계속해서 보존하는지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죽는 날에 자신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어린양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자도 있음을 뜻한다(계3:5). 그렇다. 사람은 누구든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어느날 성령의 은혜가 임하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게 되면 그도 영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때 주어지는 영생은 영원히 지속되는 영생이 아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사는 이 세대까지만 유효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을 믿고도 늘 죄를 짓고, 회개하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 안에 들어있는 영생은 그가 죽는 날 그를 떠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날 주님으로부터 그 사람을 모른다고 부인하실 것이며, 그를 지옥으로 보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 영생을 그 날 예수님께서 취하시는 것이다. 자, 이 말씀을 보라.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렇다.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분명히 영생이 주어진다(요6:47,54,요일5:12). 하지만 그러한 영생이 영원토록 그의 것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만약 받은 영생이 영원히 자기의 것이 되게 하려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잘 해야 한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거나, 고의로 죄를 범하거나, 핍박 때문에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자들은 심판 때에 그가 가진 영생을 빼앗길 자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주실 영생은 정관사가 없는 영생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요10:28에 나오는 '영생'이라는 단어느 헬라어로 어떻게 되어있을까? 그것은 "조엔 아이오노이온(eternal life)"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는 정관사가 없는 문구다. 그러므로 이 문구와는 정관사를 가진 문구와 확연히 다르다. 정관사 붙어있는 영생이라는 문구는 주격으로 쓰일 때에는 "헤 아이오니오스 조에(the eternal life)"라고 나오며, 목적격으로 쓰일 때에는 "테스 아이오니우 조에스(the eternal life)"로 나온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생은 어떻게 되어있는가?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다.

  그러면, 영생이라는 문구에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다면, 그 뜻은 뜻인가? 그것은 요1:1의 말씀과도 비슷하다. 요1:1을 헬라어로 직역하면 이렇다. "태초에, 그 말씀이 계셨고 아직까지 계신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님을 향하여 있었고 아직도 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같은 것(혹은 하나님의 일부)이다." 왜나하면, 이 문장의 마지막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문구를 보면, 그 단어에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란 헬라어단어는 주격일 때에는 "호 데오스"로 표기되며, 목적격일 때에는 "톤 데온"으로 표기된다. 하지만 가끔씩 정관사인 "호"나 "톤'이 붙어있지 않고 쓰일 때가 있다. 그때에는 우주만물을 창조핫히고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과 같은 어떤 것이요, 하나님의 일부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그 말씀은 하나님과 같은 것이며, 하나님의 일부인 것이지 하나님 자신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말씀만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라, 지혜도 가지고 있고, 명철도, 능력도, 권세도, 영광도 가지고 있으시다. 그 중에서 하나가 "말씀(호 로고스)도 들어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10:28에 나오는 "영생"이라는 단어에도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생'이라는 것은 그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영생과도 같은 것 내지는 영생의 일부인 것에 해당한다. 그 영생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관사가 없는 영생은 점점 더 약해지다가 죽는 날에 빼앗길 수도 있는 영생이다. 하지만 정관사가 붙어있는 "그 영생"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신다는 정관사가 없는 "영생"은 그 기한이 그 사람이 죽는 날까지(그 시대까지)만 유효한 생명일 뿐만 아니라, 죽는 날에 빼앗길 수도 있는 시대의 생명에 불과하다는 것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

딤전6:11-12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그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이 본문에 나오는 "영생"은 정관사가 붙어있는 "그 영생"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도바울이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에베소교회의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하고 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그 영생"을 취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아마도 디모데는 이미 벌써 정관사가 없는 영생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이제 선한 믿음의 싸움을 싸워 이겨서, 정관사가 있는 "그 영생"을 취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 영생은 이 다음 세상에서도 영원히 있을 영생이기 때문이다.

 

3. 나오며

  예수께서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생 곧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는 영생은 일시적으로 주시는 영생이다. 또한 이 영생은 영원히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헬라어원문에 보니, 이 시대까지만 유효한 영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믿는 자가 받아가 간직하고 있는 영생이라도 자신이 죽는 날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영생을 우리 믿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이 따놓은 당상이라고 되는 것인량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가 잘못 살았다가는 죽는 날에 내 속에 있는 영생(정관사 없음)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라가는 자에게 생명이 주어지고 거듭나서 영생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만큼 사실이다. 알미니우스주의자들처럼 영생이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영생이 주어지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까지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는 것이다(요일5:12). 그러나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게 사는 자는 자신이 죽는 날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그는 자신이 받았던 영생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즉시 즉시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주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혹시 고의로 죄를 짓다가 영원히 회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서는 절대 아니 된다. 회개하자.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라. 날마다 자신을 쳐 복종시키라. 그리고 육체의 본성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행하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자. 그리고 죄를 이겨내자. 예수의 이름으로.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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