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예수님께 굴복하는가(요8:12~30)_2018-02-23

by 갈렙 posted Feb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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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E0bZJvmRjJo
날짜 2018-02-23
본문말씀 요한복음 8:12~30(신약 15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은 자,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분,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전능자와 창조주,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

오, 이 일을 어찌 말로다 형용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 고난받으신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셔서 받으신 고난이며, 예수께서 죽으신 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죽으신 것이요, 예수께서 흘리신 피가 하나님의 피이기 때문이다(사9:6,딤전3:16, 행20:28). 이 사실이 믿음으로 확 다가오는 순간 아무도 그분 앞에 무릎꿇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앞에 회개하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하나님의 죽음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되며, 그분이 흘리신 피를 하나님의 피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이 놀라운 신비를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오늘 이 메시지는 사람이 회개해야 할 첫번째 회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님께 굴복하게 된다. 그 순간 죄사함이 일어나며, 그순간 영생이 들어오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오 하나님의 이 놀라운 낮추심과 끝없는 사랑을 우리는 만대에 그리고 또 만대에 전해주어야 한다.

 

1. 들어가며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께서는 당시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알고 있는 자는 아버지도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8:19). 그리고 당신을 믿는 자는 당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라고 하셨다(요12:44~45). 고로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예수님만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과 아버지를 믿는다는 것이고, 예수님과 아버지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지를 알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예수님과 아버지를 알고 있는가? 사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며(요17:3), 이것을 알고 믿어야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다. 만약 하나님이 홀로 한 분이라는 사실과 그분이 보내신 자 곧 예수님(요17:3)을 제대고 알지 못하는 믿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 그에게 영생이 없는 것이다(요17:3). 그렇다면 아직 내게 영생이 없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주인이 교체되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영생이 없는 자는 예수님께 굴복하지도 아니한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이 예수님께 굴복한 적이 없다면, 자기 안에 아직 영생이 없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고로 우리는 아버지와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고 믿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아버지와의 관계성 속에서 예수님이 누군지를 살펴보기를 원하며, 사람은 대체 언제 예수님께 굴복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님에 대한 2가지 측면의 신앙고백

  사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예수님이 누구시냐"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분의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십니다. 그분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으셨고 33세쯤에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셨지만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마16;16)" 맞다. 그분은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그리스도이시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그분은 다른 한 쪽의 속성을 더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그리스도)로 믿는 것에서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기 전의 제자들이 가졌던 믿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마16:16).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만 믿고 있었을 때, 그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었지만 여전히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했고, 죽음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붙잡히시던 날 밤 그들은 겟세마네동산으로부터 도망쳤고 무서워서 문을 걸어잠그고 숨어있었다. 하지만 부활로서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이 확증되자, 그들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복음전파에 힘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 대부분은 순교의 제물로서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바쳤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누구신가?

 

3. 예수님이 제자들이 알고 믿었던 2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비록 유대인들이나 바리새인들은 믿지 않았지만 부족하지만 제자들이 믿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요16:7). 그것은 2가지다. 그것은 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성에서 예수님이 누군지를 안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로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첫째, 하나님은 오직 홀로 한 분이신데 그분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과 둘째, 비록 성령을 받기전까지는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 분이라는 사실조차 알고 있었다(요16:30). 이러한 믿음은 그들이 성령받은 후에는 확실히 견고해졌으니, 그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자신의 믿음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믿었던 예수님에 대한 사실 2가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요13장부터 시작된 다락방강화의 맨 마지막 부분인 요한복음 17장의 제8절, 21, 25의 예수님의 기도에 잘 나타나 있다.

요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제자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17: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제자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4.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2가지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 하나는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이다(요8:42, 11:42, 12:44~45, 17:8, 17:21). 그리고 또 하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밖으로] 나오신 분이시다(요8:42, 13:3, 16:30, 17:8).

  첫째로,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 안으로 보냄을 받은 분이시다(요8:42, 11:42, 12:44~45, 17:8, 17:21).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에수님은 사람이시다. 그렇다. 그분은 사람의 인성을 취하신 분이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이 인류 역사 가운에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으셨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이 세상 안으로 파송되실 때 아기이자 아들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불리운다(눅1:35). 특별히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아들은 아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버지가 되심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임과 동시에, 사람인 마리아의 뱃속에서 잉태되어 10달동안 자라고 태어났기에 "사람의 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분을 마리아(사람)의 아들이라고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마리아에 대해서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 그녀는 예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비록 예수님을 낳기는 했지만 마리아는 여전히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작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측면 곧 그분이 인성을 취하신 측면에서 본다면, 예수님을 보냄을 받은 자로서 보내신 자보다 크지 않다(요13:16). 반대로 아버지는 예수님보다 크시다(요14:2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기간에 재림날짜에 대해서 아버지만 아시고 자신은 모른다고 하셨다(마24:36). 그런데 이것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신 사람이신 입장에서 하신 말씀일 뿐이다.하지만 이것을 두고 여호와증인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피조물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이 무례함을 어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죽어보면 알 것이다. 누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는지를 말이다. 천국에서 예수님은 누구신지를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 안으로 보내심을 받은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다른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구원을 위한 메시야로서의 직무를 감당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보냄을 받을 때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분은 인류의 메시야이자 구원자로서 이 세상에 들어오셨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분을 몰라볼까봐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약 4천년간 350가지 이상으로 메시야에 관해 약속해주셨다. 그렇다. 전능자가 이 세상에 오셨다가 가시는데,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리가 없지 아니한가? 그렇다. 당장 이 세상 역사와 가장 믿을만한 책인 성경책을 들여다보라. 그분의 공생애시절 활동했던 모든 흔적들과 그분이 하신 말씀까지 고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말이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후대의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 설화나 신화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과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은 당시 유대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보고서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더욱이 예수님이 잡혀가시자 두려워서 떨어졌던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하자, 그들은 죽음을 무릎쓰고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복음을 전했으니, 그러한 기록들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처럼 예수께서 메시야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예수님은 2가지 신분을 지니셨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그분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로 그 메시야(그리스도)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에 관하여 제자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믿었다. 그러니 3년반이 흐른 무렵,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그때 제자들은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거나 예레미야나 다른 선지자들이라고 하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다. "당신은 그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 오실 때 늘 들르시던 베다니 마을의 마르다고 잘 알고 있었다(요11:27). 그렇다. 하나님으로 보내심을 받으신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혹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 분이시다(요8:42, 13:3, 16:30, 17:8).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 예수께서 인성을 취하시기 전부터 예수님은 존재하셨고, 하늘로부터 오신 것이다(또한 아버지께로 가셨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하늘로부터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셨다(요16:28). 또한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 분이시다(요8:42).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께서 하늘에서 아버지로 따로 계시다가 성육신하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아버지와 따로 성자로 계시다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나오신 것이다(요1:18). 이 세상에서 그분을 바라볼 때에는 아버지의 품 속 안으로 계시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다(요1:18).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아버지지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것은 무소부재가 가능하시며,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14:9~10)".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요12:44)", "나를 보는 것은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요12:45)",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요14:9)", "너희가 들은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시나(요14:24)",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와 내 아버지를 미워한 것이다(요15:22,24)",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요8:19)",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요13:20)" 결국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고 말씀하셨다.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분이 아버지의 또 다른 자기자신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을 아버지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아버지는 신성만을 가지신 분이지만 아들은 인성까지 가지신 분이기 때문이다.

 

5. 사람은 언제 예수님께 굴복하는가?

  사람은 언제 예수님께 굴복하는지 아는가? 그것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던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게게 되는 그 순간이다. 우리를 위해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아버지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그 순간에 예수께서 받으신 고난이 하나님께서 받으신 고난이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하나님께서 흘리신 피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를 위해 종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시어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순간 내가 주인되어 내가 하나님처럼 살아온 인생이 후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로 얻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분이 내 인생의 주인이신데, 그분이 하나님이신데, 그분을 문밖에 서 계시게 한 것이 죄스러운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회개요,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에 대한 회개다. 만약 이러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 회개의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그분의 희생이 아버지께서 아들을 달랑보내서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아들로 오셔서 한 일이다. 그 일이 뜨겁게 자신에게 다가올 때 사람들은 그분 앞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그분이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것은 전능하신 창조주(사9:6)께서 고난받으신 것임을 알게 되며, 그분의 죽음이 하나님의 죽음인 것을 알게 되고(그러나 그렇게 말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은 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인성을 입으신 예수님만이 죽으실 수가 있다).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곧 하나님의 피인 것을 알게 된다(그라나 그렇게 말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은 피를 흘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인성을 입으신 예수님만이 피를 흘릴 수가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분이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그분이 주 하나님 전능자이시고, 그분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이자, 그분이 보좌에 앉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때 굴복하는 것이다. 그때 그분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는 것이다. 그때 죄사함이 일어나며, 그때에 영생에 자기자신 안에 들어온다. 그때 비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주님께 굴복해보지 않은 자는 아직 자기 안에 아들이 안 계신 것이다. 아직도 종교적으로 주님을 믿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문밖에 예수님을 서계시게하고 있는 라오디게아교회 교인인 것이다. 그들도 분명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었지만 그들 안에 아직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셨다.

 

6. 나오며

 누가 회개할 사람인가? 예수님을 전혀 안 믿는 사람인가? 맞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이요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자가 더욱 더 회개해야 한다(요16:9, 28,30).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자는 그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분께 시간을 드리는 것이 아깝고(새벽기도, 주일성수...), 그분께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깝다(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물...). 왜냐하면 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활로 말미암아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확증되었지만 지적으로 동의만 한 것일 뿐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33년반의 생애를 사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믿지 말고 아버지께로분터 나오신 또 다른 아버지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사9:6, 요14:9). 그러나 그분을 아버지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아버지는 신성만을 가지고 계시니 말이다. 그때 비로소 그분 앞에 굴복이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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