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의 부활과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이 다른가?(요11:17~27)_2019-03-15(금)

by 갈렙 posted Mar 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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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5agR-445RFs
날짜 2019-03-15
본문말씀 요한복음 11:17~27(신약 16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나사로의 소생, 예수님의 부활, 부활체의 영의 차이점, 성도의 부활, 부활의 비밀, 잠자는 상태, 천년왕국, 환난전휴거설의 대두, 주님의 재림,현재적인 믿음

나사로의 부활과 예수님은 부활은 같은 종류의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나사로의 부활사건은 일종의 소생기적사건이라고 보아야 하고,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진짜로 영의 몸으로 다시 사는 진정한 부활사건이기 때문이다. 고로 나사로는 다시 죽어야 할 부활을 경험한 것이지만 예수께서는 다시 죽지 않을 부활을 경험한 것이다. 그때 나사로는 부활체를 입은 것이 아니라 죽기 전까지 자신이 사용했던 그 옷(몸)을 도로 입었으나, 예수께서는 새로운 부활체를 입은 것이다. 그렇다면, 부활체와 사람의 영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사람은 진정 언제 부활하게 되는가? 정말 어느 교단의 경우처럼 사람이 죽으면 중간상태에 들어가서 쉬고 있다가 주님이 오시게 될 때에 무덤 속에 있는 육체와 만나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체를 입고 휴거되는 것인가? 그리고 또한 휴거는 환난전에 일어나는가 아니면 환난후에 일어나는가? 정말 7년대환난이 있고, 7년공중혼인잔치가 있는가? 그리고 예수의 지상재림후에 천년왕국이 정말 지상에 펼쳐지게 되는 것일까?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답변은 여기에 들어있다.

 

1. 들어가며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죽었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살려내심으로 죽었다가 나흘만에 다시 살아난 사람이 나온다. 그는 바로 "나사로"라는 사람이다. 그는 베다니에 살던 유대인으로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였다. 그런데 나사로가 되살아난 이 사건을 두고, 보통은 "나사로의 부활사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의미가 부활사건은 아니다. 왜냐하면 되살아난 나사로는 그 뒤에 다시 죽었기 때문이다. 나사로는 그때 죽었던 육신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지 영원히 죽지 않을 상태로 되살아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육신을 떠났던 그의 영이 다시 육체 안으로 돌아와 그가 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이와는 다르다. 예수님은 다시 죽을 육신을 가지고 다시 살아난 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영원히 죽지 않을 부활체를 입고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나사로의 부활사건과 예수님의 부활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성도들의 부활은 언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이 왜 성도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것인지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나사로는 왜 죽었고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가?

  나사로는 왜 죽었는가? 그는 한 마디로, 병들어 죽은 것이다(요11:1,3,6,14). 하지만 그가 죽기 전에, 그의 동생들이었던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병든 오라버니를 살려달라고 요청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도를 한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 소식을 들으시고 요단강 건너편 베레아에 있다가 유대로 건너오신다. 하지만 예수께서 도착했을 때에 나사로는 이미 죽은지 나흘이나 지난 후였다. 그래도 마르다가 마중 나가서 주님께 말씀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네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마르다는 "주여,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아나이다"고 대답했다. 그는 예수께서 누군지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그녀의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 예수께서는 당신이 누군지를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고 있는 자는 비록 죽을지라도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으며 믿고 있는 자는 그 시대까지 그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네게 믿느냐?(요11:25~26)" 그때 마르다는 "주여!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세상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은 채 있습니다(요11:27)"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까지 예수님이 아직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가 이어 무덤으로 갔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돌을 옮겨놓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마르다가 말한다. "주여, 죽은 지가 이미 나흘이 되었으며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11:39)" 하지만 주님은 말씀은 단호했다. "만일 네가 믿는다면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냐(요11:40)" 마르다는 나사로의 부활을 먼 미래의 사건으로 가져다놓았지만 예수님은 지금의 부활사건으로 가져다놓고 계셨다. 그러자 비로소 무리들과 함께 돌을 옮겨놓는다. 마르다가 자신의 믿음없음을 회개했던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밖으로 나오라"고 명하셨다. 그러자 나사로는 손과 발을 베로 동인 채 무덤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있었다.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 밖으로 걸어나오게 것이다.

 

3. 나사로의 부활사건과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것은 나사로의 부활사건은 사실은 부활사건이 아니라 소생사건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기는 했지만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다시 죽을 몸으로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사로의 부활사건은 정확히 표현한다면, "나사로의 소생 기적사건"이라고 해야 한다. 어찌되었든 나사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되살아나게 된다. 그의 영혼이 육체를 떠났다가, 다시 육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면서 썩어가던 그의 육신은 다시 생명으로 채워지게 된다. 그러자 나사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더니, 세마포로 동인 채 무덤 밖으로 나우게 된다. 썩어가고 있는 몸이 다시 생명의 몸으로 바뀌면서 그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이와는 다르다. 예수님의 되살아난 사건은 부활사건이기 때문이다. 다시 죽을 몸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사로의 소생은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육체 안으로 그의 영이 들어가서 다시 살아난 것이요, 예수님의 부활은 육체를 떠났던 그의 영이 다시 죽지 않을 몸 안으로 들어가 되살아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다시 죽지 않을 부활체를 입고 부활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부활체로 부활한 것이지 다시 죽을 육체 안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다.

 

4. 부활체와 사람의 영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부활체는 부활의 몸으로서, 사도바울은 "영의 몸"이라고도 말한 죽지 않은 영원한 몸을 가리킨다. 이것은 부활하는 자가 입게 될 새로운 옷으로서, 새로운 몸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부활의 몸에는 사실 2종류가 있다(요5:29). 하나는 생명의 부활체를 입은 부활의 몸이 있고, 또 하나는 심판(사망)의 부활체를 입은 부활의 몸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부활체를 입은 자는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며, 사망(심판)의 부활체를 입은 자는 지옥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활의 몸 곧 부활체와 사람의 영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부활체는 부활의 몸이지만 사실은 육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들을  가지고 있는 영적인 몸이다. 그러므로 만약 누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면 그는 즉시 뜨거운 용암이나 불구덩이에서 뜨겁다는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며(눅16:24, 막9:49), 유황냄새를 맡게 되면 숨도 제대로 못 쉬게 될 것이고(계14:10), 구더기가 갈근갈근 씹어먹게 되면 강한 아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막9:48). 또한 부활체는 영의 살과 육이 있기에 피도 나는 것이다(눅24:39).

  하지만 영은 다르다. 영은 살과 뼈가 없다(눅24:39). 그러므로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피도 나지 않는다. 오늘날 여러 사람들이 육체는 이 세상에 있지만 그의 영이 빠져나가 멀리 있는 천국과 땅 속에 있는 지옥을 탐방하고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 영으로 가는 것이지 부활체를 입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5. 사람의 부활은 어떤 순서로 일어나고 있는가?

  사람의 부활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지고 살았던 육체가 아니라 새로운 영의 몸을 입는 것으로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의 몸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어떤 순서로 부활하는 것인가? 고전15장에서 보면, 사람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순서로 부활하는지가 나와 있다. 먼저, 사람은 어떻게 부활하게 되는가? 사람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부활하며, 썩지 아니할 부활의 몸으로 부활한다(고전15:48~50). 둘째, 사람은 어떤 순서로 부활하는가?(고전15:22~24) 그것은 제일 처음은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부활의 첫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였다고 함은 그 뒤부터 계속해서 추수가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예수님의 부활이후 즉시 천국의 한 켠인 낙원에 있는 성도들의 영이 부활체를 입고 천국의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개인의 부활이 시작되었다. 즉 그때부터는 신앙의 사람이 죽으면 죽은 즉시 심판을 받고 부활체를 입고 부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주적인 종말이 올 것이다. 이때 우주적인 부활이 있을 것이다. 그때에는 그때 죽은 성도들의 부활이 먼저 있고 그때까지 살아있고 남아있는 성도가 부활체를 입고 휴거되어 예수님께 마중나갈 것이다(살전4:13~18). 만약 그 반대에 있다면 그는 지옥으로 곧장 떨어질 것이다.

 

6. 사람이 부활하는 때를 안다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

  사람이 부활하는 시기를 안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것이 오순절성령강림 이후에는 언제 부활이 일어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사람은 죽은 즉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되든지 아니면 지옥에 떨어지게 되든지 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의 말씀은 사람이 언제 부활체를 입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들려준다(요5:25~29). 그것은 우주적인 종말의 때가 아니다. 자기가 죽는 그날을 가리킨다. 자기가 죽을 때에 부활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가 무덤 속에 있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 말씀은 마지막 날의 우주적인 종말의 시기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자신의 육체 안에 있는 [기능적으로] 죽어있던 영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다는 뜻이다. 영이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는 이야기이지, 우주적인 종말의 때까지 진짜 무덤속에 있다가 그날 부활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후 믿고 회개할 때 그 영이 살아난다. 즉 그때 영이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지게 되며,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를 "이때라(원문: 지금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요5:25).

  그러면 부활하는 시기가 죽은 즉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묘하게도 사람은 그때에 정신을 차리게 되고, 시험을 차리게 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부활하는 시기를 먼 미래 곧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로 연기하고 미루고 있다면, 사람은 보다 더 자기에게 기회들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더 시간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나태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 죽으면 당장 부활체를 입고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아는 자는 함부로 죄를 짓지 아니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더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7. 7년대환난이나 지상의 천년왕국이 과연 실재할까?

   (참고로, 이 부분은 https://youtu.be/n8Z0qbXOcTc을 먼저 들어보시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오늘날 오순절교단에서는 공식적으로 환난전휴거와 7년대환난과 7년공중혼인잔치 그리고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심판 및 영생영벌 결정이 언제 일어나는지가 교리화되어 있다. 하지만 타교단에서는 두리뭉실하다. 사람이 죽으면 잠자는 상태에 있다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무덤속에 있는 몸이 홀연히 영의 몸으로 부활하여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날 것이라고 가르친다. 과연 이 때 성도의 잠자는 상태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쉽게도 설명이 불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교리적인 종말론에서는 대부분 사람이 부활체를 입는 시기를 예수님의 우주적인 재림의 시기와 일치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오순절이후부터는 즉시 부활체를 입고 심판받아 천국과 지옥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하늘에서 왕노릇하고 있다. 이것을 사도요한은 "천년왕국"이라고 부른다(계20:4). 그러다가 주님의 재림하실 때에 그들은 주님과 동행하여 함께 천국에서 온다. 그때에는 우주적인 종말이 일어난다. 그래서 그때에 죽은 자들과 그때까지 살아있고 남아있는 자들이 다들도 다 부활체를 입을 것이다.

  한편, 오순절교단에서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일부가 먼저 환난전에 휴거되어, 공중으로 오시는 주님과 7년간 혼인잔치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혼인잔치를 7년동안 한다는 것은 세대주의(좀 더 앞으로 가면, 천주교의 리베라신부)가 만들어낸 주장일 뿐이다. 이들은 7년이 지나면 예수께서 신부들과 함께 지상으로 재림한다고 가르치며, 지상에 남겨진 자들은 7년동안 대환난의 시기에 고난을 이겨내야 비로소 주님의 지상재림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는 교회가 환난전에 휴거되어 공중에서 7년동안 체류한다는 그 어떤 말씀을 하지 않았다. 환난후에 즉시 해와 달과 별들에 이상이 생긴 후에 주님의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29~31). 성경에는 오직 단회적인 우주적인 휴거와 단회적인 우주적 재림만 언급되어 있다(7년을 앞뒤로 우주적인 부활이 두 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이러한 우주적인 휴거와 부활사건은 환난후에 단 한 번있을 것이다.

  한편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 20장에서만 언급하고 있는 "천년왕국"이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 오랜 긴 시간동안 왕노릇한다는 뜻으로서, 이는 오순절이후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천국에서 긴 시간동안 왕노릇한다는 것을 일컫는 영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세대주의자들이니 킹제임스계열의 사람들처럼 실제로 지상에 천년왕국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며, 시간적으로 딱 1천년동안 왕국이 있다는 것도 결코 사실이 아니다. 고로 환난전 휴거나 지상에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며, 이것의 원류는 천주교에서 만들어낸 가짜 종말론에 다 속은 것이다(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것이다. 아마 그날 땅을 치고 통곡하게 될 것이다). 환난 전 휴거에 관한 직접적인 성경구절은 단 하나도 없다. 한글성경을 곡해한 것이거나 앞뒤 문맥을 잘못 해석한 것에 오는 오류일 뿐이다. 환난전휴거와 7년대환난 그리고 지상의 천년왕국통치는 사실 영국의 신학자 존 넬슨 다비(이전에는 천주교의 리베라신부)가 고안한 것으로서, 전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이것은 정병진목사의 바른 종말론 https://dongtanms.kr/board_HizM73 의 글을 참고하면 그 사실을 철저히 알 수 있을 것이니, 그것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8. 나오며

  우리는 마르다와 예수님의 믿음에 대해 숙고해 보아야 한다. 마르다는 죽은 자신의 오라버니의 소생을 마지막 날에 부활의 사건으로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지금 즉시 나사로가 부활(소생)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과연 마르다의 믿음을 가졌는지 아니면 주님의 믿음을 가졌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구원의 날을 먼 미래의 일로 가져다놓아두고, 오늘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죽으면 지금 즉시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 사실 주님의 재림의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아들도 모른다고 하셨다(마24:36). 그러므로 그때가 올 때까지 모든 인류는 각자 개인적인 종말을 맞아 부활체를 입고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슬퍼하거나 이빨을 갈지 않도록 늘 대비해야 한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고 생각하고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먼 미래로 미루지 말라. 오늘 기도해야 할 일은 오늘 기도하고, 오늘 회개해야 할 것은 오늘 회개하며, 오늘 충성해야 할 것은 오늘 충성하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누구든지 자신의 개인적인 종말을 잘 준비하는 가장 올바른 성도의 자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15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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