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159) 애굽에 들어간 이긴 자들 70명과 하늘의 144,000명의 상관관계(창46:8~27)_2021-07-23(금)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Jul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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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CbuZNZ3pBEI
날짜 2021-07-23
본문말씀 창세기 46:8~27(구약 46:8~27)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이스라엘과야곱의이름,이스라엘의가족들70명,애굽에내려간자,70명,시온산에서있는144,000명,이기는자,보좌에앉는자,왕같은제사장

1. 들어가며

  성경은 통전적으로 보아야 한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보지 못하면, 성경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성경은 일종의 퍼즐과 같아서 한 곳만 읽어서는 전체적인 뜻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은 자기가 성령의 감동받은 분량만큼만 기록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받은 성령의 영감을 비교해서 보아야 전체적인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창세기 이야기 중에서 야곱 이야기와 요셉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창세기는 크게 2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창조와 타락이야기(창1~11장)이요, 또 하나는 세 명의 족장들의 이야기다(창12~50장). 여기서 세 명의 족장이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야곱 이야기가 종결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창세기 25장에서 야곱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그 이야기의 끝은 마지막 장인 창세기 50장에 가서야 비로소 마치게 된다. 그런데 야곱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11번째 아들인 요셉 이야기와 겹쳐 있다. 그렇다면 요셉은 대체 어떤 인물인가? 왜 3명의 족장 이야기들 가운데 요셉이 등장하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야곱 이야기가 가운데 요셉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에 대해 쭉 살펴보았다. 그것은 요셉 이야기가 성령 시대의 이기는 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곧 야곱 이야기가 이기는 자들의 이야기요, 이기는 자들 중에 왕노릇하는 자의 이야기가 요셉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의 고센 땅으로 이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야곱의 가족들 70명이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은 영적으로 볼 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70명이라는 숫자는 천국에 있는 성도들 중에 144,000명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오늘은 그것을 살펴보려고 한다. 아무쪼록 이 메시지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들 자신은 이기는 자로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 중에서도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창세기의 저자 모세는 왜 애굽으로 이주한 자들을 이스라엘의 가족이라고 소개하고 있는가?

  창세기의 저자 모세는 애굽과 그 주변 가나안 땅에 찾아온 기근으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던 야곱이 자신의 아들들과 그리고 손자와 손녀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주하고 있는 장면을 기록하였다. 그때에 모세는 이들의 이주에 대해 "야곱 가족들의 이주"라고 말하지 않고, "이스라엘 가족들의 이주"라고 기록하였다(창46:1,8). 왜 야곱의 가족의 이주가 아니라 이스라엘 가족의 이주인가? 결론적으로 그것은 애굽으로 이주한 이스라엘의 70명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이기는 자들의 예표라는 말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그가 "이긴 자"였음을 이미 언급해 놓았기 때문이다. 즉 야곱이라는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그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그가 과거에 "팔꿈치를 붙잡은 자(야곱)"였지만 이제는 그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이스라엘)"인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창32:28). 그러므로 애굽으로 이주했던 70명의 사람들은 이긴 자의 아들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로 나중에 가서 말씀드리겠지만 70명의 가족들은 이긴 자의 대표자들로서 그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로 우리는 야곱과 야곱의 가족들의 이주가 곧 이긴 자와 이긴 자의 후손들의 이주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3. 이긴 자들이 이주한 애굽의 고센 땅은 영적으로 볼 때 어떤 땅인가?

  그렇다면 이긴 자들의 예표로서 야곱과 그의 자손들 70명이 이주한 장소(고센 땅)는 대체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가? 대부분의 성도들은 애굽을 나쁘게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부리던 민족이라는 선입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굽이 그렇게 불리게 되었던 시기는 B.C.1446년경의 일이었고, 지금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 때(B.C.1876년)는 상황 이 다르다. 요때 애굽의 고센 땅은 기근으로 죽어가는 야곱의 식구들을 안전하게 살 수 있게해 줄 장소로서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를 보면, 고센 땅은 2가지 면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축복의 땅의 예표라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첫째는 그 땅은 애굽인들이 사는 땅과는 완전히 구별된 장소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인과 섞여 살 수 없는 구별된 장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소는 이스라엘의 혈통적 순수성과 신앙적인 순수성이 지켜질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엿떤 것이다. 둘째는 그 땅은 풍요롭고 기름지고 부족함이 없는 땅이라는 사실이다. 이곳은 물이 풍부한 곳이다. 그래서 어떠한 가뭄에서 끄덕없이 견뎌낼 수 있는 최적의 입지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장소는 마치 천국에서 생명수가 충만히 공급되는 새 예루살렘 성 안을 지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430년을 살면서 혈통적 신앙적 순수성을 지켜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정복할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숫자를 지닌 민족으로 번성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이때는 70명만이 이주한 장소이기는 하지만 430년이 지났을 때에는 장정만 60만명 곧 여자와 아이까지 포함하면 200만명이 넘는 숫자로 불어났으니, 당시로서는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번성할 수 있었던 최적의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출1:7).

 

4.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 70명과 천국에 들어간 144,000명의 사람들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우리는 창세기의 마지막 파트에서 이긴 자로서의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으로 이주한 것을 보게 되는데, 친절하게도 창세기의 저자는 그들의 이름들을 고스란히 기록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창46:8~27). 사실 이 명단은 야곱의 자손들로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풍요롭고 기름진 땅으로서 애굽의 고센 땅에 들어간 자들의 명단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표론적으로 볼 때, 이 땅은 풍요롭고 기름지고 구별된 "천국"을 상징하는 것이고, 거기에 들어간 야곱의 자손들은 "이긴 자"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천국에 들어가되 이긴 자로서 누가 그곳에 들어갔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창46장의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70명일까? 애써 창세기 기자는 그 명수는 "70"이라고 언급한다. 왜 그랬을까? 우선 그 땅에 들어간 자들 중에 야곱의 며느리들도 있었지만 그 며느리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왜 뺀 것일까? 왜 그녀의 이름들이 숫자에 포함되지 아니한 것인가? 그것은 "70"이라는 숫자에 맞추기 위한 어떤것이 아니었겠나 짐작이 든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그때 애굽에 들어간 자가 66명 혹은 72명이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75명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행7:14). 그러나 성경은 그 숫자를 "70"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제로 그 숫자가 어떠했는지 상관없이 "70"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70"은 대체 어떤 숫자인가? 그것은 3 + 4에다가 10을 곱한 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3'은 신성한 하나님의 숫자를 가리키며, '4'는 동서남북의 네 방향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을 가리키고 있는 등의 세상의 수이자 피조물의 수를 가리킨다. 골 '3+4'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의미하며, 완전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보통 '7'을 우리는 완전수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7일간 창조하셨고, 요한계시록에도 이 세상에 있는 교회를 7교회라고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10'이라는 숫자는 충만한 수를 가리킨다. 충한한 수에는 '10'이 가장 작은 수이이지만, 좀 더 큰 수로는 '100'과 '1,000'이 있으며, 가장 큰 수는 '10,000"이 있다. 그러므로 '70'이라는 숫자는 이 땅에서의 완전하고도 충분한 수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보면, 천국에 들어가서 시온산에 서서 찬양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144,000명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144,000'이라는 숫자는 어떤 수인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수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산술적인 숫자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면,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숫자인가? 우선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숫자는 12 곱하기 12 곱하기 1,000으로 계산하면 144,000이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앞의 12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고, 뒤의 12는 예수께서 자신이 제자들로 삼았던 12명의 제자들을 상징한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144,000명이니, 12 곱하기 12에다가 충만한 숫자인 1,000을 곱하면, 144,000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에 144,000명은 신구약의 구원받은 충만한 숫자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도 광범위하게 크게 본다면 그리 틀린 해석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 숫자가 실제하는 산술적인 숫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주장도 옳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훗날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의 숫자가 아주 많은데, 그 중에서 시온산에 서서 찬양하는 144,000명의 성도가 실제로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44,000명은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중에 이기는 자들의 숫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144,000'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우선적으로 첫째, 그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계14:1). 그런데 더불어 둘째, 빌라델비아교회의 이기는 자들로서, 그들의 이마 위에 예수님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또 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계3:12). 결국 이 두 개의 말씀을 합치면, 천국에서 오직 이기는 자들만을 지칭하는 용어가 바로 144,000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셋째, 요한계시록 3:21의 말씀에 따르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 주님께서 "보좌"를 주신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는 가장 먼저 이기는 자가 되어 예수께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셨던 것처럼, 장차 이기는 자들도 예수께서 마련해 주신 보좌들에 앉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위에 나온 3가지 말씀을 합하면, 144,000명은 이기는 자들로서, 천국에서 예배드릴 때에 보좌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44,00명 뒤에는 구원받은 허다한 무리들이 실제로 서서 예배를 드린다. 고로 144,000명의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갈 때에 이기는 자들로서 참여하는 자들을 가리키며, 예배할 때에는 자기들의 보좌에 앉아서 예배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5.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자기의 보좌에 앉을 자들은 대체 몇 명인가? 70명인가 아니면 144,000명인가?

  그렇다면,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자기의 보좌에 앉을 자들은 몇 명인가? 구약에 예표로 등장하는 70명인가? 아니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144,000명인가? 그런데 둘 다 맞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숫자는 144,000명이라고 해야 옳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예배할 때에 하나님의 보좌 바로 앞에 144,000명이 따로 구별되어 앉아있기 때문이다. 이때에 구원받은 성도들의 대표이지 이기는 자의 대표로서 24장로가 하나님의 보좌 좌우편에 좌정하게 된다. 그리고 144,000명이 바로 이들 뒤에 준비된 보좌에 앉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명예를 그만큼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구약의 성도들 중에 천국에 들어가서 보좌에 앉게 될 성도들의 숫자는 144,000명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풍요로운 고센 땅에 들어간 야곱의 가족들의 70이라는 숫자는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예배하기 위해 모인 수 천 수 만 수 억의 성도들 중에 앞쪽에서 있는 자들이 144,000명인데, 이들의 줄이 총 70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24장로들이 앉는 보좌가 첫번째 줄이라면, 두번째 줄에 또 보좌가 놓여 있고, 세번째 줄에도 또 보좌가 놓여있는데, 바깥쪽으로 멀어져갈수록 그 보좌의 숫자가 더 커지는 것이다. 부채꼴 모양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그때 보좌자리는 총 70줄뿐이다. 이들만이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권위를 인정해준다는 의미로 보좌에 앉는다. 그리고 그 뒤에 허다하게 많은 무리들이 서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46장에 70명의 이름은(여기에는 여자들의 이름도 간혹 나온다). 천국에 있는 70줄의 대표자들로서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보좌에 앉아 예배드리는 이기는 자들의 숫자는 총144,000명이며, 동시에 그 줄이 70줄이기에, 구약과 신약의 숫자가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70이라는 숫자는 창세기 46장에서 처음 등장하지만, 이 숫자는 이스라엘의 대표성을 띠는 숫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이때로부터 430년 뒤에 모세가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장로를 세울 때에 70명을 세웠고(출24:1,9), 예수께서도 천국복음을 전하라고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12제자들 외에도 70명을 파송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눅10:1,17).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의 최고의결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원의 숫자도 70명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70이라는 숫자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숫자이며, 이들은 천국에서 보좌에 앉는 144,000명 중에 각 줄의 대표자들의 숫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 십사만사천명(144,000)명에게 24장로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보좌에 앉아있는 144,000명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24장로는 대체 누구인가? 구약시대만 해도 그 어떤 선지자라 할지라도 천국에서 24장로와 24보좌를 본 일이 없다. 그들이 본 것은 다만 한 개 뿐인 보좌 곧 하나님의 보좌만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보좌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8:11).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그 보좌에 앉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9:28, 눅22:30).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약 60년이 지났을 때에 사도요한이 천국에 올라가서 보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보좌 좌우편에 24보좌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24장로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된다(계4:4).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 곧 A.D.95년경에 이미 24장로가 정해졌으며, 그 자리에 24장로들이 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뿐이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24장로들이 분명히 들어 있을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 보좌는 예수께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때에 따로 준비해준 보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더불어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은 24장로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요 제사장으로 섬기는 자들이다. 그렇다. 이들이야말로 한편으로 볼 때에 왕과 같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천국에 있는 땅 위에서 왕노릇을 하는 자들로서, 만국(열방) 위에서 왕노릇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한편으로 볼 때에는 제사장과 같은 자들이다. 천국에서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리는 자들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미 제사를 최종적으로 드리심으로 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있는 제사장들은 다른 일을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찬양하고 기도하는 일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그들은 더이상 기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로 천국에서 제사장들은 찬양하는 자들을 지칭한하고 할 수 있다. 그래서 24장로들의 손에는 거문고가 들려져 있다(계5:8). 악기를 연주하면서 찬양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역대상 23~25장의 기록을 통하여, 또다른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다윗이 이미 장차 되어질 천상의 모습을 먼저 본 것 같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레위인들 중에서 아삽, 여두둔, 헤만을 중심으로 4,000명의 찬양대를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대상23:5). 더불어 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만 해도 288명을 두었다는 것은 감탄을 금하지 아니할 수 없다(대상25:7). 그리고 다윗이 아론자손의 제사장들을 24반차(엘르아살의 자손 16반차와 이다말의 자손 8반차)로 나누어 각각 따로 봉사하게 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는데, 이는 다윗이 환상으로 장차 천국에서 되어질 일을 보고서 이 땅에서도 고스란히 조직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로, 천국에서 구원받은 자들과 이기는 자들의 대표로서 24장로가 대제사장으로 소개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을 다윗은 가장 먼저 환상으로 보았고, 그것이 나중에 요한계시록에 가서 그대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계4:4). 

 

7. 천국에서 이기는 자와 왕노릇하는 자는 천국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분명히 이기는 자들 중에 있을 것이다. 그 예표가 야곱와 요셉 이야기에 나오기 때문이다. 즉 야곱의 그의 자손들 70명은 전부 이기는 자들에게 속한다. 그런데 그 중에 요셉은 그들 중에 왕노릇하는 자였다. 그러니까 이기는 자들 중에 왕노릇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 가운데서도 왕들과 제사장과 레위인과 일반백성이 각각 따로 사는 곳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천국에서도 왕노릇 하는 자가 있고, 이기는 자가 있고, 왕노릇하는 자로부터 다스림을 받는 자가 있고, 일반 백성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떤 자는 왕노릇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가? 우선적으로 24장로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이기는 자로서 144,000명이 제사장(찬양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할 때에, 그들을 지휘감독하는 대제사장으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있다. 그것이 부활승천하신 주님께서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속에 나와 있다(계2:26~27). 

계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들]을 지키는(이행하는) 그에게 만국[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그렇다. 이기는 자들 중에서 끝까지 주님께서 맡겨주신 주님의 일을 이행하는 자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왕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숫자는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기는 자들 중에서도 왕노릇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예수께서 누가복음 19장의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귀인(좋은 가문의 사람)이 왕위를 받으러 갈 때에 자기자신에 속한 종들 10명에서 각각 은화 한 개씩을 주었고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사업을 하라 한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그들이 수고한 대로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는데,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자에게는 열 고을을 다스리를 수 있는 권세를 주신다. 이것이 바로 이기는 자들 중에 왕노릇하는 자들이 누군지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다. 
 

8. 나오며

  우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어떤 성도들은 예수만 믿으면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서 입에 바른 말만을 하는 자를 결코 천국에 데려가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공생애 가운데 "나더러 주여 주여"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들이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7:21~22).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천국에 들어가서도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왕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천국은 엄격한 신분사회다. 천국에 들어갔지만 그곳에 만국으로 참여할 자들도 있고, 이기는 자들 곧 보좌에 앉는 144,000명에 포함될 자들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144,000명 가운데는 왕으로 참여할 자들도 있으며, 24장로도 있는 것이다. 천국은 엄격한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는 장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서 주눅이 들어가나 상처를 받거나 의기소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천국에 들어갔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감격스럽게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천국에 들어갈 때에 어떤 이는 섬기는 종들로 참여할 자들이 있고, 어떤 이는 다스리는 자들로 참여할 자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냥 넘겨서는 아니 될 것이다. 기왕이면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자는 144,000명 안에 들어가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저와 여러분이 요셉처럼 그리고 야곱처럼 사는 길 뿐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7월 23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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