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죄회개(08)] 불교의 죄를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02)(수23:6~7)_2022-03-18(금)

by 갈렙 posted Mar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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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i2Vazq8Pmrg [혹은 https://tv.naver.com/v/25735106 ]
날짜 2022-03-18
본문말씀 여후수아 23:6~7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불교의죄,부처를신으로섬긴죄,부처상에절한죄,연등켜고기왓장에이름올린죄,사찰짓고불상과불탑세운죄,49재와천도재지낸죄,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탑돌이한죄,절밥먹은죄,중이된죄,공양미바친죄

불교는 인간의 본성이 어떤 것이며, 인간이 어떻게 운명지어지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하지만 죽은 후에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 주지는 못한다. 그럼, 왜 인간은 죽은 후에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는 것인가? 49재와 천도재는 진정 효력이 있는 불교 행위인가? 그리고 왜 석가모니를 신으로 숭배하면 아니 되는가? 그리고 부처와 불상 앞에 절하거나 탑돌이를 하면 왜 아니 되는가? 그리고 사찰을 지어 바치고 불상과 불탑을 세우면 아니 되는가? 여기 명쾌한 해답이 있다.

1. 들어가며

  부처와 불교를 섬기는 것은 진정 죄가 되는가? 그렇다. 그것은 진정 죄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안을 열어서 보면, 아무리 부처상이나 돌부처에 빈다고 할지라도 부처가 그 자리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가 오지 않고 오히려 귀신들이 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를 폄하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실상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는 인간이었다(인도 왕족의 왕자). 그런데 한 번 죽은 사람은 절대 이 세상에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이 만고불변의 법칙이자 영계의 법칙이다. 혹 부처가 그 자리에 온다고 해 보자,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예불을 하면, 부처는 과연 어느 절에 가서 예불을 받겠는가? 부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여기에 있으면 저기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가 설령 사바세계에 온다고 할지라도 동시에 사람들의 예불을 받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부처와 불교를 섬긴 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리고 불교에서 흔히들 말하는 '보살'이나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우리 조상들은 1~2대만 올라가면 다 우상을 숭배하고 살았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 중에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불교를 신앙하고 살았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부처와 불교를 섬긴 죄들에는 대체 어떤 것이 있으며, 우리의 직계 조상들이 직접적으로 지은 부처와 불교의 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자. 

 

2. 부처와 불교를 섬긴 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절에 다니면서 지은 부처와 불교를 섬기는 죄들에는 어떤 죄들이 있는가? 참고로, 우리가 영의 눈을 떠서 부처와 불교를 섬기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보면, 부처는 오지 않고 귀신들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처와 불교를 섬길 때 어떤 귀신들이 오게 되는가? 그것은 총 5가지의 경우의 죄가 있다.

  첫째, 부처를 신으로 알고 숭배하고 섬기면 죄가 된다. 왜냐하면 부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동시에 사람들이 비는 기도와 소원을 들을 수도 없고 그 소원을 들어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그때에는 대신 귀신들이 바로 부처를 신으로 알고 숭배하고 섬기는 것을 대신 받는다. 그리고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는 자 속에 들어간다. 이때 부처를 신으로 섬기면 헛된 망상에 빠지게 하는 영들이 침투해 들어온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헛된 꿈만을 좇아가며, 현실감 없는 허무맹랑한 것들을 추구하게 된다. 

  둘째, 부처와 불상 앞에 엎드려 절하고 소원을 빌어도 죄가 된다. 부처와 불상은 돌로 만들거나 나무에다가 금을 입힌 것이 대부분이다. 돌과 나무는 인격체가 아니다. 어떤 장인이 그것을 만들어서 거기에 갖다 놓았을 뿐이다. 그것은 결코 신이 아니다. 그런데도 거기에다가 절하고 예를 갖추면 귀신들이 와서 그 절을 받는 것이다. 불교에서 행하는 절의 종류를 살펴보면 보통 3배, 7배, 108배가 있고, 많게는 500배, 3,000배, 10,000배도 있다. 그러나 많이 절을 할수록 많은 영들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간다. 그리고 부처와 불상 앞에 절을 하게 되면 그의 후손들이 집중력을 갖지 못해 학습 능력이 떨어지며, 믿는 사람의 자녀라 할지라도 영안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셋째, 불경을 외고, 염주를 세고, 연등을 달고, 촛불을 켜 놓고, 방생하고, 기왓장에 이름 올리게 되면 죄가 된다. 이는 이 모두가 다 어떤 신앙의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행위를 할 때에도 여전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 달라붙는다. 하나님이 아닌 것에 무엇인가를 바치게 되면 바친 만큼 악한 영들이 오는데, 그중에서도 '잃어버리게 하는 영'이 온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무엇인가를 바친 사람은 반드시 회개할 때에 속죄 헌금을 바쳐서 과거의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속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재물을 모을 수가 없다. 

  넷째, 사찰을 지어 바치고, 불상과 불탑을 세우고, 시주하고 공양하면 죄가 된다. 그것도 아주 큰 죄가 된다. 그리고 사찰과 불상과 불탑을 지어 바치면 저주를 받아 당대나 다음 대에서 자손이 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손들도 물질의 복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때에 '모아지지 못하게 하는 영', '재물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영', '거지가 되게 하는 영' 등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다섯째, 죽은 자를 위해 49재와 천도재를 지내도 역시 죄가 된다.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49재와 천도재는 겉으로 볼 때에는 망자의 한을 달래줄 수 있는 의식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영안을 열어서 보면 귀신들을 맞이하고 그것들이 후손들에게 들어오게 하는 통로를 열어 주는 주술 행위이다. 이미 죽은 자의 운명은 절대 바뀔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은 자의 혼이 절대 이 지상에 다시 나올 수 없다. 죽은 자의 운명은 아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위해 빌어 주는 어떤 행위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돈만 허비할 뿐이다. 석가모니도 힌두교에서부터 시작된 천도재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미 운명 지어진 것을 어찌 바꿀 수 있겠느냐면서 부질없는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불교에서는 뭇 중생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 주고, 후손들이 자기의 조상들을 좀 더 편안한 곳으로 보내 드렸다는 위안을 갖도록 천도재를 드려 준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무당이 행하는, 죽은 자를 위한 '씻김굿'과 거의 유사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죽은 자를 위해 49제나 천도재 그리고 씻김굿을 해 준들 이미 죽은 영혼을 이 세상에 다시 불러 올 수도 없을 뿐더러, 이미 운명지어진 그들을 다시 다른 장소로 옮겨줄 수도 없다. 만약 무당이나 후손이 빙의를 하여 죽은 자가 '고맙다'는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절대 속지 말라. 영안으로 열어서 보면 다 귀신들이 들어가서 그렇게 말하도록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3. 기본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불교 용어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만 우리가 부처와 불교를 이해하고 회개에 집중하려면 불교에서 쓰는 기본적인 용어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보살'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처와 불교를 섬기는 자들은 '불자'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그 일에 종사하는 자들을 '승려('중', 높여서 '스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보살'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불교의 구도자를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 부처의 깨달음을 구하여 수도를 하고 있는 중생으로서 지혜를 가진 자를 일컫는 말이 곧 '보살'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하는 서원이 있어야 하고, 자기가 쌓은 공력을 남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하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고승'이나 '불교 대학자'를 일컫는 말이 '보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좀더 흔한 말이 되어 버렸다. 

  또한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기도문도 종종 듣게 된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나무'라는 말은 '귀의한다'는 것에 대한 불교 용어다. 그리고 '아미타불'은 '아미타 부처'라는 말로서, 이미 죽어서 극락에 있다고 하는 부처를 일컫는 말이다(그러나 실제 부처는 지옥에 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은 보살은 보살인데, 관세음보살이다. 여기서 '관세음'이라는 말은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한다는 뜻으로서, 자신도 이분들처럼 되게 하고 이분들처럼 살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다. 

 

4. 바로 윗대의 우리 조상들이 지은 부처와 불교의 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어떤 불교의 죄를 짓고 살았을까? 사실 불교의 죄의 경중은 지역적으로도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과거 통일신라가 위치한 경상도 지역의 사람들 특히 대구 지역 사람들은 불교에 더욱 더 노출되어 있다. 대신 지금으로부터 30년 전만 해도 전라도와 제주도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무당'을 접할 기회가 아주 많았다. 왜냐하면 마을마다 단골네 혹은 당골네라는 무당과 점쟁이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끝으로 조선시대 때에는 숭유억불정책이 펼쳐져서 나라가 유교를 장려함으로 조상 제사가 우리나라에 성행하게 된다. 하지만 천년 이상된 고찰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불교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과거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시대만큼 불교가 성행하는 때는 없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와 그 다음 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여전히 절에 다녔다. 특히 자기가 태어난 지방에 있는 가까운 절에 다녔다. 특히 사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에는 거의 모든 집에서 한 두 사람쯤은 절을 찾아가 석가탄신을 기뻐하면서 염불하고 곡식을 바치면서 소원을 빌었다. 그때 서민들이 보통 저질렀던 불교의 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사월 초파일에 공양미(곡식 종류)를 바치고 떡해서 바치거나 돈을 바쳤다. 둘째, 부처상(불상)과 돌부처에게 빌고 절했다. 셋째, 탑돌이를 하면서 소원을 빌었다. 넷째, 절밥을 얻어먹었다. 다섯째, 때로는 중이 되거나 보살이 되기도 하였다. 여섯째, 절을 지어 바치거나 불상이나 돌탑을 바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죄들이 있는 집안은 반드시 저주가 뒤따른다. 몇 대 안 가서 재물을 앗아가는 영들의 공격을 받아 망하여 가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손이 재물에 있어서 넉넉하게 살려면 반드시 조상들이 지은 죄들 가운데 부처와 불교의 죄를 회개하기를 바란다. 

 

5. 나오며

  사실 부처는 자신을 신으로 섬기라고 단 한 번도 말한 적도 없고 가르친 적도 없다.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해 천도재를 지내라고 말한 적도 없고 또한 가르친 적도 없다. 그는 사람은 이전 세계에서 지은 업보를 따라 그 댓가를 받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실은 조상들이 지은 죄들의 결과를 후손들이 받는 것이다. 전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천국에 있는 낙원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영혼을 창조하신 후, 거기에서 지구의 나이로 약 5세에서 15세 정도가 되었을 때에 그 아이를 여자의 자궁 속에 집어넣어준다. 그래서 엄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전생이 있다는 것은 귀신의 속임수다. 오직 귀신이 전생이 있는 것처럼 환상과 꿈을 통하여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오늘날의 불교는 좀 변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토속 신앙과 맞물려서 혼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워낙 토속 신앙이 강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빌어서 복을 받기를 원하는 우리 조상들의 간절한 마음을 불교에서도 저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국시대가 되어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기 전까지 칠성신(천지신명)이나 산신, 용왕신을 믿고 그 신들에게 빌었다. 이 셋을 합하여 '삼신'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므로 지금도 절에 가 보면, 대웅전 옆에 삼신각이나 칠성각이 꼭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의 토속 신앙과 불교가 한데 결합되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대상으로 그를 더 좋은 곳으로 가게 하고자 행하는 불교의 49재나 천도재 의식은 전부 우리나라 토속 신앙에 있었던 '씻김굿'이 그대로 불교에 자리매김된 것이다. 그것이 단지 49재나 천도재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위해 어떤 의식을 행하는 것은 우상 숭배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죽은 자나 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섬기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들은 반드시 저주가 뒤따라온다. 하지만 꼭 당대에 저주가 나타나지 않고 몇 대 후손에게 나타날 수도 있어서 잘 모르고 살고 있을 뿐이다. 속지 말라. 하나님 이외에 다른 모든 것을 신앙하는 행위는 다 귀신을 섬기는 행위라는 것이다(고전10:20). 저주를 자처하는 것이다(수23:6~7, 출20:4~5). 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오직 한 분 하나님, 예수님만을 믿고 섬겨야 한다. 그분이 창조주이자 전능자이시며 그분만이 참 신이시기 때문이다. 그분 이외의 모든 것들은 다 귀신들이 장난치는 것에 놀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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