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22) 성도의 교회생활의 실제(1)(롬12:1~21)_2016-03-23

by 갈렙 posted Mar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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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oQp3HRZxvFI
날짜 2016-03-23
본문말씀 로마서 12:1~21(신약 256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교리와 생활, 하나님과의 관계, 성도와의 관계, 지체의식, 로마서강해, 로마서 12장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교리요 하나는 생활이다. 로마서에서 교리부분은 롬1:18~11:36까지다. 그리고 생활부분은 12:1~15:13까지다. 물론 그 전에 도입부(1:1~17)가 있고, 그 후에 종결부(15:14~16:17)가 있다. 오늘은 로마서의 두번째 부분으로 생활의 시작부분이다. 사도바울은 지금까지 죄와 칭의와 성화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의 관한 문제들에 관해 말해왔다(롬1:18~11:36). 그런데 롬12장부터는 구원의 노정에 들어온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과 국가에 대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관해 다루고 있다. 오늘은 그 첫시간으로 성도들이 하나님과 성도들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한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성도들의 삶의 바른 자세를 살펴보자(롬12:1~2). 사도바울은 여기서 2가지를 주문한다. 하나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도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라고 한다. 그렇다. 성도들에게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물론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나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듣고 이어서 축복을 받는 것도 귀하다. 하지만 예배 시간만 예배가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성도들은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아가야 할까? 그것은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몸(헬, 소마)'이라는 개념이다. 몸은 육체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의 하나다. 하지만 사도바울이 몸이라는 개념과 육체 혹은 육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에, 다른 생각을 두고 그 표현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육체(혹은 육신)이라는 표현은 거의 대부분이 죄된 본성을 가진 육을 가리키며, 그것은 거의 다 죄의 도구로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롬7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자신의 속 곧 자신의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고 그 속에 죄가 거한다고 말이다(롬7:18~20). 뿐만 아니라 육체는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말했으며(롬8:6), 둘째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했고(롬8:7), 마지막으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롬8:8).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이후 육신 속에 죄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몸이라는 또 하나의 육의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때에 몸은 죄된 육체라기보다는 대부분 육체와 정신을 하나로 묶는 전인을 가리킬 때에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몸은 예수님께서 값으로 사신 바 된 존재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전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도 말한다(고전6:19~20). 그래서 육체가 하나님의 성령에 붙들림을 받게 되면, 그 몸은 의의 병기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롬6:12~13). 그렇다. 구원의 노정에 들어온 성도들의 육체는 이제 두 주인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만약 육체를 가만히 두게 된다면, 육체는 옛주인인 사탄을 따라가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육체를 쳐 복종시키면 이 육체는 하나님을 향하여 의의 병기로 쓰임게 된다(고전9:27). 당신의 육체는 과연 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가?

  사도바울은 롬12:1에서 자기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면한다. 이것이 삶 속에서 드리는 영적인 예배라고까지 말한다. 어떤 성도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잘 드린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 사는 것을 보면 거의 불신자와 비슷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 사람은 교회에서의 예배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 속에서의 예배생활은 빵점인 사람이다. 이 사람은 칭의로 구원의 노정에 들어온 성도의 바른 삶의 태도가 아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것이 행함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예배를 드린다해도 그것으로 자기의 의를 쌓으려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남을 정죄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몸을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리기 위해 힘써야 한다. 사실 자신의 몸이 세속적인 육체의 방식으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하나님께 드려져 의의 무기로 사용되느냐는 하는 것은 하나님이 결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이 오늘도 결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죄된 본성이 지배했던 옛사람의 삶을 청산하고, 이제는 성령이 주인되는 성령의 전이 되어 그분께 자신을 드리느냐 하는 것은 자신이 결정해야 할 몫이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여러분의 육체가 성령이 지배하는 거룩한 전으로 드려지기를 바란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께 대해서 취해야 할 적극적인 삶의 바른 태도이다.

  이어서 사도바울은 성도가 하나님께 대하여 취해야 할 소극적인 바른 태도도 언급한다. 그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원문에 의하면, 성도는 이 세대와 같은 모양을 취해서는 아니된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자신이 교회에서 은혜받았다고 해서 교회를 나가자마자 술 한 잔을 걸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이 세대와 같은 모양을 취하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은혜받았다고 해서 노래방에 가서 춤을추며 노래를 한다면 그 사람도 이 세대와 같은 모양을 취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사실 거룩함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그런데 장차 우리가 주 앞에 서는 날 그에게서 거룩함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세대에 살면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을 사도바울은 2가지 방법으로 제시한다. 하나는 날마다 마음(헬, 누스) 즉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받으실만한고 온전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분별해보는 것이다. 생각을 새롭게 하면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늘 분별해보고 검사해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도들은 자신도 모르게 세속적인 사람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속에 충만한 사람을 결코 천국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어서 사도바울은 둘째, 성도들간의 지켜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해 관해 말한다(롬12:3~13). 오늘은 그것들 중에서 첫번째 부분(롬12:3~5)까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사도바울은 우선 성도들이 다른 성도들에게 지켜야 할 윤리를 설명하면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란 바로 지체의식이라고 말한다. 성도들은 각기 다른 은사를 받은 지체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여러 다른 지체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지체끼리 서로 존중해주며 귀하게 여기며 상호보완하면서 도와주고 섬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전인격체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혹시 지체들 중에서 자기가 받은 은사가 더 뛰어나면서 으시댄다거나 다른 사람을 깔보게 된다면 교회는 그만 세속적인 기관이 별반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말한다.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말이다(롬12:3). 자기에게 어떤 직분이나 은사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체의식은 깨어지고 분열과 갈등만이 교회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몸에는 눈이 있고 코가 있으며, 귀가 있고 입이 있다. 또한 손이 있고 발이 있다. 하지만 한 지체가 다른 지체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리 몸이 어떤 일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라 지체인 이상 서로 돕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 아니 오히려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마음이 더 요청된다고 하겠다. 그럴 때에 교회는 웃음꽃이 필 것이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게 될 것이다.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오늘 이 시간부터 당신에게도 그러한 마음이 넘쳐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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