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59)무지개언약, 평화의 언약인가 생명의 언약인가?(창9:8~17)_2022-10-09(주일)

by 갈렙 posted Oct 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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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5k1S_tZJei4
날짜 2022-10-09
본문말씀 창세기 9:8~17(구약 11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무지개언약, 평화의언약, 생명의언약

2022-10-09(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창세기강해(59)무지개언약, 평화의 언약인가 생명의 언약인가?(창9:8~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5k1S_tZJei4

 

  진리의 말씀은 참으로 우리를 자유케 한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지금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치병과 희귀병에 시달리기도 하며 그리고 자신의 자녀가 정신적인 질환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원인은 대체 무엇인가? 여기, 또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있다. 여러분은 노아와 맺은 언약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아니 그 전체의 내용을 알고 있는가? 이 언약 속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맺은 언약은 대체 어떤 것인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때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은 언약을 가리켜 '무지개 언약'이라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맺은 언약의 핵심은 무지개 언약에 있지 않다. 물론 무지개 언약도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은 언약에 속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맺은 언약이 과연 어떤 언약인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 언약이 한마디로 '영원한 평화의 언약'인지 아니면 그것이 '영원한 생명의 언약'인지를 통하여 지금 우리는 무엇을 놓치며 살고 있으며, 그 언약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노아와 노아의 아들들과 맺은 언약이란 대체 무엇인가?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 안에는 '무지개 언약(창9:8~17)'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맺은 언약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노아의 언약은 곧 무지개 언약이라고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노아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사람과 생물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언약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이것에서 조금 더 생각이 진전된 분들은 앞으로 이 세상은 물로 심판을 받지는 않겠지만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시에는 불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인 만큼 불 심판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맺은 언약이 이것보다 훨씬 중요하며 심각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조금 있다가 알아보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약의 징표로서 무지개를 하늘에 두셨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말씀을 요약하면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세운 언약의 일부라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인류와 체결하신 세 가지 언약은 무엇인가?

  사실 하나님께서 인류 전체에게 미칠 중요한 언약에 대해서 세 번 정도 말씀하셨다. 그것의 첫 번째는 아담과 맺은 것이고 두 번째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맺은 것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것이다. 그중의 첫 번째 언약은 첫 사람으로서 인류의 시조였던 아담과 체결하신 것이다. 그것의 가장 기본적인 말씀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다(창1:28).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덴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모든 과일은 다 먹을 수 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다(창2:16~17). 만약 그 열매를 따먹게 된다면 정녕 죽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하와가 먼저 그 열매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어서 그도 먹게 된다. 그리고 선악과의 열매는 인간의 몸 속에 들어와 살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아담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선악을 몸에 지닌 채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두 번째 인류의 시조였던 노아와 그리고 그의 아들들과 체결하신 것이다. 그것의 기본 사항은 아담과 똑같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다(창9:1).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짐승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함부로 그것들의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그래도 피를 흘리게 한다면(죽이면) 그 죄값을 반드시 묻겠다는 것이다(창9:5~6). 이는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허락없이 함부로 짐승을 죽이거나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모든 생명체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시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그분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허락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릇 짐승이나 사람을 죽인 자가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값을 그 사람에게 도로 묻겠다고 하셨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명령을 통하여 살생이나 살인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만약 이 경고를 듣지 않고 함부로 살생하거나 살인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값을 그 사람에게 묻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약은 영원히 곧 이 시대가 끝나는 그날까지(즉 주님 재림 전까지) 유효하다고 말씀하셨다(창9:16). 그런데 문제는 과연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언약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것에 주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언약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세운 언약이다. 이것을 우리는 '율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율법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바와 같이, 율법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어떤 것은 완성됨으로 폐지되었고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율법 중에서 의식법은 이미 폐지된 지 2천 년이 넘었다. 그러한 의식법에는 제사법, 정결법, 음식법, 절기법 등이 있다. 그리고 율법에는 도덕법으로서 십계명법이 있다. 그리고 재판법이 있다. 이중에서 오늘까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고 있는 법은 십계명법이다.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는 이 도덕법은 한층 더 강화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써, 마음으로만 살인했어도 살인죄를 지은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다(마5:21~22).

  문제는 세 번째 언약인 율법 말씀은 거의 대부분 폐지되었고 십계명법만이 현재 남아 있지만, 두 번째 법은 폐지된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조금 전에도 살펴보았지만 두 번째 언약을 굳이 정의한다면 세 번째 언약에 등장하는 제6계명법의 전 단계 언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동물이든지 사람이든지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한 골자다. 만약 이것을 어길 경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죄값을 도로 찾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것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그 죄값을 톡톡히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그러한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살고 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우리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불치병이나 정신 장애가 내가 지은 죄가 아닌 것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식이 의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아니한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을 우리가 두 번째 언약을 지키지 않은 것에서 찾는다면 그 이유가 쉽게 납득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이유가 세 번째 언약인 십계명법 가운데 우상 숭배의 죄를 지었을 경우도 해당되기는 한다(출20:5). 그러나 둘 중의 어떤 것이 되었든지 오늘날 사람이 받는 저주 가운데에는 두 번째 언약을 어겨서 그 형벌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세 번째 언약을 어겨서 그 형벌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알고 우리가 조상들의 죄를 대신 회개할 수만 있다면 우리와 우리 자손의 앞길은 환히 열리게 될 것이다. 

 

4. 무지개 언약의 본래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맺은 '무지개 언약'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이제는 무지개 언약을 좀 세분하여 살펴보자. 첫째, 이 언약은 누가 누구와 맺은 언약인가? 이것은 하나님과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생물과 사람 사이에 맺은 언약이다. 즉 이 언약은 노아와 노아의 세 아들들과만 맺은 언약이 아니라, 노아와 노아의 세 아들들을 포함하여 코로 숨 쉬는 모든 생명체와 맺은 언약이 바로 무지개 언약이었던 것이다. 둘째, 그 내용은 무엇인가? 그 내용은 간단하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모든 생물(사람과 동물)을 물로 인하여 멸하시지는 않겠다는 것이다(창9:11).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한 표징으로서 하늘에 무지개를 두신다고 하셨다. 한쪽에서는 태양이 떠 있으나 다른 한쪽에서는 비가 내릴 경우 비가 내리는 방향에 나타나는 것이 무지개인데, 이 무지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숨 쉬는 생명과 사람을 물로 멸하시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을 인류와 그리고 동물들과 세운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에서 비가 쏟아질 때마다 혹시 하나님께서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또다시 물로 심판하여 죽이는 것은 아닌지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사람도 기뻐하고 동물도 기뻐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무지개 언약은 '평화의 언약'인가 '생명의 언약'인가? 얼핏 보기에 무지개 언약은 '평화의 언약' 같아 보인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무지개 언약은 '평화의 언약'이라기보다는 '생명의 언약'이다. 왜냐하면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수명이 다 차지도 않았는데도 비를 내려 다 죽이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이 일천 살을 살도록 창조하신 인간만의 특권을 제거해 버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로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의 언약을 또 세우셨는데, 이때부터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생명체의 생명이 정해진 그날까지는 그 생명을 살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대신 어느 누구도 함부로 생명체에 손을 대어 피 흘려 죽게 하면 그 댓가를 반드시 묻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지개 언약은 '생명에 관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5. 무지개가 알려 주는 중요한 정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무지개 자체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정보는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은 '무지개'하면 일곱 색깔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으로 표현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도 서구에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지개는 오색 무지개가 전통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무지개가 꼭 일곱 색깔을 지닌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인즉 북극이나 남극에서 뜨는 무지개의 색깔은 결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이 아니라, 흰색이다. 그럼, 왜 남극이나 북극에서 뜨는 무지개는 색깔이 흰색인 것인가? 그것은 무지개가 무엇인가를 반사하여 색깔을 만들어 내는데, 북극과 남극은 흰색의 눈과 얼음만 있기에 무지개 빛깔도 흰색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신 무지개는 어떤 색을 지녔을까?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선 무지개가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그 색은 한마디로 비취색이라는 것이다. 즉 에머랄드색인 것이다. 이는 초록 빛깔의 보석을 가리킨다. 고로 천국에서 무지개색은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색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색깔이 녹색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무지개'하면 일곱 빛깔의 무지개만을 연상하곤 하였는데, 무지개는 반드시 일곱 색깔을 지녀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구의 무지개가 지금 현재 일곱 빛깔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지구의 자연 환경에 따라서 색깔이 반사되어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선 무지개의 색깔은 초록색의 빛깔인가? 그것은 하나님 자체가 생명이시기 때문이요, 그의 보내신 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분만이 영원한 생명으로서, 양의 생명이요, 생명의 떡이요, 부활 생명이기 때문이다. 

 

6. 무지개는 지금 어떻께까지 변해 있는가?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무지개는 동성애자들의 표상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무지개색을 사용하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색을 자신의 컬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곱 빛깔의 무지개는 사실 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것은 중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한자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한자에 있어서 무지개는 무지개 '홍(虹)'자를 쓴다. 그런데 '홍'이라는 글자의 옛 글자를 살펴보면, 용 두 마리가 서로 꼬리를 이어서 둥그런 원을 만든 모양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무지개를 벌써 마귀(용)가 도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극과 남극의 무지개색을 본 일이 있는가? 그 색깔은 흰색이며, 천국에서 무지개색은 초록색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지개가 무슨 의미를 던지고 있는지를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7. 무지개 언약을 통해서 진짜 우리 인류가 기억하고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무지개 언약은 홍수 이후 이미 하나님께서 노아와 노아의 세 아들들과 맺은 언약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자 보조적인 언약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언약의 실체는 함부로 생명을 해하지 말라고 하신 생명 존중 언약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인간에게 주신 수명을 물 심판 같은 것으로 단축시키지 않겠노라고 하나님 스스로 땅과 하늘 사이에 증표를 갖다 놓으신 것이 무지개다. 자연 수명이 다 될 때까지 인간은 이 땅에 살면서 회개할 기회와 그리고 믿음 얻을 기회를 붙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노아와 노아의 세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으로 동물과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동물들은 먹거리로써 꼭 필요한 만큼만 잡으면 될 것이며, 사람들은 절대 함부로 죽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사람을 해하여 피 흘려 죽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피 흘려 죽게 한 그 사람을 찾아내어 반드시 그 죄값을 받아 내시겠다고 하셨다. 이것이 오늘날 후손들에게 나타나는 불치병이요 희귀병이 아닌가 싶다. 

 

8. 나오며

  보통 사람들은 아담과의 언약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담이 그 언약을 깨뜨림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그 죄의 결과들을 지금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그 언약을 깨뜨린 탓에 모든 인류는 지금까지도 그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 죄값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진 상태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신학자들은 '원죄'라고 부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선악과의 일은 이미 과거의 일이고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선악과는 이미 아담의 몸 속에 들어와 피와 살이 되어 버렸기에, 모든 인간은 선악을 다 가지고 태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웬만해서는 악을 택하고 만다. 그런데 두 번째로 노아와 맺은 언약에 대해 정리해야 한다. 문제는 과연 오늘날의 성도들은 얼마나 노아의 언약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을 살인하게 되었을 경우 받게 될 그 형벌은 참으로 크고 무겁다. 어떤 이는 회개과 천국복음을 통하여 저주에서 해방 받는 길이 조상들의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라고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억울하게 하여 죽게 한 죄값에 대해서는 그동안 잘 들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므로 혹시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에게 저주가 계속 머물러 있다면 그는 즉시 조상들의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죄만 회개할 것이 아니라, 조상들 중에 다른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들었고, 사람을 죽였던 죄까지 대신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조상들이 지은 살인죄값이 누군가 회개하기 전까지는 그 형벌이 계속해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 죄값을 나중에 어떻게 담당하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함부로 한다는 말인가? 이제는 우리 민족이 저지른 살인의 죄를 진심으로 눈물로 회개할 때가 되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기본적으로 허락한 생명의 시간까지 우리의 생명을 보장 받을 수 있으며, 그때까지 회개하여 구원 받을 수도 있고, 또한 그때까지 충성하여 하늘의 상급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2년 10월 09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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