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함(행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요일3:13~18)_2022-11-06(주일)

by 갈렙 posted Nov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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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BdMJGOwpVoY
날짜 2022-11-06
본문말씀 요한일서 3:13~18(신약 391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행위(행함),행위구원론자,율법의행위,공로의행위,칭의와구원,믿음의행위,믿음의행위의의의

2022-11-0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함(행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요일3:13~1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BdMJGOwpVoY  [혹은 https://tv.naver.com/v/30583858 ]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인들에게 행위 곧 행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행함이란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받아들인다. 아마도 그것은 종교개혁의 전통에 서 있는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 행함을 우리는 결코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 그러나 행함 자체를 터부시하는 것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행함은 믿음의 행위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믿음이 바르고 참된 믿음인지를 알려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함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조금 깊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먼저는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행위를 비교해 볼 것이며,  믿음의 행위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믿음의 행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율법의 행위'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의 행위'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인하여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아예 필요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율법은 2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의 기능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먼저 율법의 첫번째 기능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한다.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율법 안에는 그리스도의 모형과 그림들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능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앞의 것은 율법의 의식법들이 담당하는 기능이요, 뒤의 것은 율법의 도덕법(십계명)이 담당하는 기능이다. 율법 중에 의식법이란 밖으로 표현되어지는 의식적인 법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것에는 할례법, 안식일법, 절기법, 정결법, 음식법, 제사법 등이 있다. 사실 할례부터 제사의 모든 의식법들은 다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모형론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것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성령강림 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의 의식법들을 지키지 않아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율법의 두 번째 기능은 정죄하는 기능은 여전히 살아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도들은 율법의 도덕법인 십계명을 통하여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회개함으로 죄사함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전부가 다 율법의 의식법들을 지키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고, 예수님을 믿는 것에다가 율법의 의식법들을 준수해야 의롭게 된다고 믿는 것이 유대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A.D.49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서 그것이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이 결의된 바 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가 필요없다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아니 된다. 율법에서 도덕법은 여전히 살아있어서 이것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발견하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율법의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죄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는 마지막 심판에서 죄인으로 드러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21:8).

 

3.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행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행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위에서 살펴보았지만 '율법의 행위'는 의롭다함을 얻기 위하여 율법의 의식법들을 준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믿음의 행위'이란 이미 회개와 믿음으로 구원얻은 자가 자신의 믿음이 식어지지 않기 위하여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전파하기 위해 살아가면서 나타난 결과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믿음의 행위'는 그것을 구원얻기 위한 수단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구원얻은 자가 믿음을 따라서 살면서 나타나는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천주교에서도 일종의 행위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구원얻기 위한 공로를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자신이 이 세상에서 지은 죄값을 처리하여, 그 죄값보다 선행과 공로가 더 많아야 연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죄보다 더 의로운 삶을 더 많이 산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자신의 공로가 부족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연옥이라는 일종의 형벌과 연단의 장소에 떨어져서 죄값을 치른 후에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중세시대에 이런 자들이 곧바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면죄부를 판매했을 때에 그 면죄부를 사서 자신의 부모를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려보내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미 죽은 자의 운명은 절대 바꿀 수 없는데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천주교의 구원은 믿음만으로는 안 되고 죄보다 공로가 더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주교에서는 선행과 구제, 금식과 기도, 고행 등을 천국가는 방법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행위구원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4. 믿음의 행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구원얻기 위해 수단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서 응당 나타나는 열매로서 믿음의 행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은 보통 다음과 같은 4가지 것들이 있다.

  첫째, 믿음이 식어지지 않기 위해서 행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것에는 말씀읽기, 말씀묵상하기, 기도하기, 그리고 예배하는 것 등이 있다.

  둘째,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서 행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것에는 고난과 핍박이라도 달게 받는 것, 고난을 견뎌내는 것, 순교하는 것 등이 있다.

  셋째, 믿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것에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자는 것을 포기하는 것,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평안한 삶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누리는 살을 잠시 내려놓는 것, 복음전파를 위해 청빈한 삶을 사는 것도 기뻐하는 것 등이 있다. 믿음이 식어지지 않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나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것은 자기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하는 소극적인 행동이라면 믿음을 전파하기 위해 행하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믿는 자 답게 살아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들로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사회봉사를 실천하며, 형제를 돌아보며 그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형제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것 등이 있다. 

 

5.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행위'는 자신의 의롭다함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또한 구원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것은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믿음을 전파하고 자신이 믿는 자 답게 살려고 할 때에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연발로적인 행동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믿음의 행위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판단할 수 있다. 

  첫째, 내가 과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온 자인지를 확인시켜 주는 도구가 된다. 즉 그것은 자신이 진정 구원받은 자인지를 알려주는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온 자가 아니라면 그에게서 믿음의 행위들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러한 것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은 자가 아닌데, 어떤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믿어지지 않는 부분을 보충하려는 한다면, 그는 믿음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 내지는 공로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 내가 지금 구원의 노정 가운데 올바르게 구원의 최종지점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된다. 구원받은 자는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구원받은 자답게 살지 않고 있는데도 자신을 믿음이 있으니 구원받은 자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구원받은 자는 당연히 그가 구원받은 것에 합당한 열매들이 맺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믿음의 행위들이 있다는 것은 그가 구원을 향해 바르게 가고 있다는 표시가 된다. 

  셋째, 만약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된다면 그의 믿음의 행위들은 결국 천국에서 상급이 된다. 믿음의 행위들은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천국에 올아가 천국에서 살 내 집을 마련해주고, 어떤 것은 내가 받을 면류관의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 결국 믿음의 행위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에게는 영광스러운 상이 되는 것이다. 다음의 성경구절을 참고하라.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빌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6. 나오며

  중세 로마카톨릭이 잘못된 행위구원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오늘날의 개신교회에서는 '행위'라고 말하면 이내 손을 절래절래 흔들어버린다. 왜나하면 사람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누구든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음에도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중에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라면 그 누구든지 자신의 행함으로 구원얻으려고 시도하는 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힘쓰는 자들이 아니다. 이미 회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그리고 믿는 자 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믿음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행하는 믿음의 행동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 아니 된다.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 모두는 자신이 행한 대로 보상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행위는 정말로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았는지 알려주는 표지가 되어줄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는 우리가 받아 누리게 될 귀한 상급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주안에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구원은 믿음과 회개를 통해 받은 것이라고 한다면, 믿음의 행동은 구원의 표지와 천국에서의 상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2년 11월 06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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