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우리가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행1:6~11, 벧후3:9)

by 갈렙 posted Oct 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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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QzLFRqJKNhY
날짜 2015-10-04
본문말씀 사도행전 1:6~11(신약 187면), 베드로후서3:9(신약 386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먼저 부름받은 자의 사명, 이스라엘의 사명, 제사장 나라의 사명, 복음전파와 회개생활의 중요성, 왕같은 제사장, 잘못된 종말론과 김여명목사,

  이 시대에 진정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얼마남지 않은 우리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주님 일에 오늘도 계속해서 충성하는 것인가? 둘 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며, 주님께서 나 자신과 교회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서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하는지 알고서 충성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와 어떻게 사명에 충실해야 하는지도 알고서 기다리며 충성해야 한다. 이것을 모른 채 마냥 주님의 재림만을 기다리면 주님께 책망만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 충성한다고 하면서 남을 해치면서까지 충성해서 아니 될 것이다.

  자, 일례를 들어보자.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마땅이 주의 자녀가 해야 할 일은 행하지 않은 채 날마다 그날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다면 그게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되는가? 누가 어느 때쯤 휴거가 일어난다고 하면 거기에 쏠렸다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또 언제쯤이라고 말하면 또 거기에 쏠려 그날만을 기다리는 자는 정상적인 성도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에 그런 자들이 한국교회 안에 있다. 시한부종말론자들이 그들이다. 특히 올 9월 장막절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라면서 사람을 꼬드기는 이들이 올 해도 이미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대표자는 부천에 있는 어느 교회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고, 제주도의 한 팬션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9월 28일에 1차 휴거가 일어나지 않게 되자, 오늘 10월 4일 12시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또 어명을 받았다고 계시의 미명하에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들을 이끌고 있는 김여명목사라는 분은 정말 목사인지 묻고 싶다. 이번에 또 불발이 되면 무슨 말로 사람들을 또 속이려고 들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나 그것은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마24장을 읽어보라. 성도들의 휴거가 있는 날까지도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그들은 그날도 일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밭에 나가서 일하다가 들림을 받았고 여자들은 집안에서 멧돌을 돌리다가 들림을 받았다(마24:40~41). 그리고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받고 한 사람은 남겨둠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눅17:34). 그렇다. 성도도 인간이니만큼 휴거되는 그 날까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면서 그 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낮시간에는 일해야 하고 밤시간에는 잠을 자야 한다. 그러나 밤이나 낮이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날만 오기만을 기다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도라도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인간이기에 열심히 일하면서 그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오로지 주의 재림만을 기다리는 잘못된 성도들에게 이렇게 엄하게 말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그렇다. 기다림의 목적이 잘못 되었고 기다림의 방법도 잘못된 그들을 결코 따르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이 주의 날을 잊고 살아서도 아니 될 것이다. 천기를 분별할 줄 알면서 영적인 상태를 분별하지 못한 채 세상 일에만 취해 있어도 아니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열심이 일을 하면서도 저 천국으로 이사갈 준비도 꾸준히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저 천국은 어떻게 들어가는지 그리고 거기에 들어간 자는 어떤 축복을 누리게 되는지를 준비하면서 세상 일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메시야의 왕국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한 생각은 그들에게 팽대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메시야의 왕국은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었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곧 그 왕국이 지상에 세워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혹시나 예수께서 메시야의 왕국을 세우지 않을까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한다고 하니까, 모두가 다 열렬히 예수님을 환영했다. 구약성경에 그토록 예언되어 있는 메시야의 왕국이 곧 세워질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메시야의 왕국에 관한 시편118편에 말씀에 따라 목청껏 찬송을 불러댔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 뒤 채 5일이 다 지나기도 전에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다. 왜나하면 예수께서 왕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저 이 세상 임금인 마귀를 제압한 뒤에, 십자가에서 인류의 대속의 죽음을 죽어야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고난과 죽음을 택하신 것이다. 그러나 고난당하고 죽으시는 메시야에 대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닫혀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인 메시야의 등극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들의 기대는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예수님을 3년 반씩이나 따라다녔던 제자들의 생각은 조금은 달랐다. 그들도 처음에는 실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죽으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시어 그들을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의 눈들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시대에 메시야의 왕국을 세우시려나보다" 하고서 말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즉시 부활하신 주님께 언제 메시야의 왕국을 이루실 것인지를 직접적으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 질문에 대해 답해주시었는데 놀라지 말라. 주님의 대답은 아주 분명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제자들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이 곧 제자들 위에 부어질턴데 그러면 능력을 받아서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을 증언하는 것이 그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하셨다(행1:7~8). 그렇다. 이 땅 위에 세워지는 메시야의 왕국의 때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지 말아야 하듯, 우리들도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믿는 이들의 제일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서 아니되어야 한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유대인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들은 지금까지 메시야의 왕국이 이 땅 위에 세워질 것을 고대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 빨리 예루살렘 성전 산에 유대인들의 성전을 세워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곧 제3의 물질적인 성전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왜냐하면 살후2장에 나오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해야 그 뒤에 주님이 재림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전'의 물질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히에론'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나오스'라 단어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림의 예수께서 하늘의 왕이자 메시야로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왔었지만 그들이 끝끝내 그분을 왕으로 영접하지 않은 채 배척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장차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탄식하셨다.

마23:37-3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잘 곱씹어 생각해보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기대를 하나님께서 사실상 접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가?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민족 가운데 제사장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출19:5~6). 하지만 그들은 주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이 먼저 선택받은 만큼 하나님을 잘 섬겨 복을 받은 다음 타 민족에게도 그러한 복을 나눠주는민족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거부했다. 결국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왕으로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상태로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그들은 먼저 선택받은 민족으로 사명을 저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버림받았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백성에 대한 기대는 그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아니다. 비록 이스라엘백성에 대한 기대는 끝났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할 제사장의 사명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것이 차이가 난다.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주님께서 핏값을 주고 산 교회에게 제사장권이 넘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계1:5~6, 5:9~10). 어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유대인들이 회개하여 천년왕국 안으로 제사장이 되어 참여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천년왕국이 실제 도래하게 되고 그들이 거기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그곳에서 제사장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거기에는 주님께서 핏값을 주고 사신 교회가 제사장직무를 감당할 것이고 왕노릇도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먼저 부름받은 사명을 사실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그 특권은 주님을 위해 헌신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교회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오늘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며 수고하고 충성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서 제사장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살 것이다. 복음전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며 그것을 주님께 드린 자가 왕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세상의 모든 교회들은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먼저 회개와 천국복음을 들어 깨달게 되었다면 그것을 실천하고 그것을 온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백성에 걸맞는 본보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 먼저 참된 복음을 접한 자로서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치 않는면 촛대는 또 다른 곳으로 옮겨질 것이 뻔하다. 그렇다. 이 시대에 우리 성도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먼저 부름받아 먼저 주의 자녀가 된 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자 과제인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하면서 주의 재림도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그날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종말론자가 되지 말라.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지도 않으면서 주의 재림만을 기다린다면 그날 주님으로부터 엄한 책망만 들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시대 가운데 오로지 주의 복음을 전파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죄인인 우리에게는 이것 말고도 또 한 가지도 더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회개"하는 일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날마다 시간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만 매달릴 수 있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거의 없다. 혹 그런 자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자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떤 시기에는 그 일을 잘 감당했던 자라도 어느 순간엔가 쉬고 있는 자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하다가도 시험을 받아 주의 일을 쉬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항상 우리는 주님 일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충성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충성해야 하지만 잘 충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혹 육신이 아프거나 나이가 들게 되면 충성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이라면 주님 일에 충성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세상에 살다보면 성령충만이 떨어지기 때문에라도 못하게 된다. 더욱이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된 본성이 우리로 하여금 주 앞에 항상 충성하도록 그냥 내버려두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우선적으로 이 시대 가운데 해야 할 것은 주님 앞에 날마다 매 시간마다 충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개를 하는 일이다. 사실 천국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 일에 충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지은 죄를 회개하지 못해서다. 왜 오늘날까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지 아는가? 여러 가지 요인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베드로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당시에 고난받고 핍박받는 상황에서 성도들은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기다린다 해도 주님이 오실 수는 없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는 성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그들은 회개치 못하고 주의 재림을 맞이하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이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오직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기회를 주신 까닭이다. 오, 주님께 감사하라.

  사실 회개의 중요성은 누누이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는 주제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아시아의 7교회를 보라.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충성하라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번 믿었다고 해서 미래의 죄까지 다 사함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백한 죄에 대해서만 용서받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므로 이 시대에 성도들이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은 날마다 시간마다 회개하는 일이다.  

  성도들이여, 주님의 재림이 아주 가까운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 명확해졌다. 하나는 주의 일에 충성하여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의 육신을 벗는 그날까지 날마다 매 시간마다 회개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충성한 만큼 그날에 보상을 받게 될 것이며, 회개하는 만큼 용서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5-10-04 이 시대에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행1;6~11_벧후3;9).ts_00114037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