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9)] 방언의 다양한 종류에 따른 실제적인 유익은 무엇인가?(고전14:18)_2025-05-28(주일)

by 갈렙 posted May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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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bBX7GgpKbG4
날짜 2023-05-28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4:18(신약 280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주제어 방언,방언의종류,발음소리에따라,대상에따라,방법에따라,방언기도의유익,대신방언,대인방언,대물방언,대국방언,찬양방언,대적방언,단파방언

2025-05-2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방언의 다양한 종류에 따른 실제적인 유익은 무엇인가?(고전14: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bBX7GgpKbG4 [또는 https://tv.naver.com/v/36741616]

 

1. 들어가며

   방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들이 있다. "외국어다. 귀신들림 현상이다. 고린도 지역의 특수한 현상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다." 등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실제로 영의 세계에 들어가서 보면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로 성령께서 주시는 놀라운 영적 은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보수 교단에서는 오늘날 성도들이 말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를 '방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첫 방언이 외국어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시각을 갖고 있든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그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방언의 은사를 인정하고 방언을 통해 주실 은혜를 사모하고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방언을 통해서 많은 영적인 유익을 얻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방언의 은사가 주는 실제적인 유익이 무엇인지를 여러 가지 방언의 종류에 따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바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방언을 말하는 것에 감사했던 것일까?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개척했던 고린도에 보냈던 첫 번째 편지에 따르면, 바울은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방언을 더 말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고전14:18). 이는 바울이 방언을 말함으로 얻고 있는 어떤 유익이 분명 있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말하는 것에 대해 감사했겠는가? 그리고 바울은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였다(고전14:39). 그렇다. 방언은 교회에서 금해서 될 사항이 아니라 더 말해야 되는 은사인 것이다. 다만 예배시간에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공중 앞에 말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렇게 말하려면 통역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방언을 말하는 것은 금하지도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말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을 말하면 어떤 영적인 유익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고전12:7).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울이 방언을 더 말한다고 했을 때, 방언이 한 가지 종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사용한 방언이라는 말이 단수(글로싸)가 아니라 복수(글로싸이스)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울은 한 가지 종류의 방언만을 많이 말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울의 성령의 신령한 9가지 은사를 언급할 때부터 이미 말했던 것이다. 즉 성령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사들 가운데 방언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는 '방언들의 종류들'(헬라어 원문 참조)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고전12:10).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에는 여러 가지 종류들이 있다는 것과 그 종류에 따라 영적인 유익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3. 방언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이지만 방언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전12;10).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떤 방언의 종류를 언급하고 있을까? 성경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방언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한다면, 크게는 3가지 유형별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발음소리에 따라 단방언(단파방언), 언어방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둘째는 방언을 하는 대상에 따라, 대신방언, 대인방언, 대물방언, 대국방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방언을 하는 방법에 따라 대화방언, 기도방언, 찬양방언, 축복방언, 대적(전투)방언, 회개방언 등이 있다. 

 

4. 방언의 종류에 따른 유익은 무엇인가?

  바울은 방언을 종류에 따라 더 말하는 것은 유익한 것이라고 했다. 고로 방언의 종류에 따라 어떤 영적인 유익이 있는지를 알고 방언을 말한다면 더 많은 영적인 진보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방언의 종류에 따른 영적인 유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발음소리에 따른 방언의 종류와 유익을 살펴보자. 먼저 '단방언(단파방언)'이란 외마디나 몇 글자를 반복해서 말하는 방언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랄랄랄랄", "다다다다", "두두두두", "파파파파" 등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이 "랄랄랄랄"이라고 하는 방언을 두고 애기 방언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처음으로 방언이 터질 때에 이런 방언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언이든지 단파로 나오는 방언이 있다면 그것은 권세 있는 방언으로서, 귀신을 쫓아낼 때에는 이러한 방언이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방언'이 있는데, 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어딘가에 존재하는 언어처럼 들리는 방언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방언을 고급방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단파방언이든 언어방언이든 통역해 보면 아주 유창한 방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방언을 하는 대상에 따른 방언의 종류와 유익을 살펴보자. 첫째로는 '대신방언'이 있다(고전14:2). 이것은 방언을 하나님을 향하여 하는 방언이다. 모든 방언은 이것이 기본이 된다. 그러므로 방언은 하나님만 알아듣는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방언을 싫어한다. 자기들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방언하는 자가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했는지 알 수 없기에 귀신들이 무서워하는 것이다. 둘째는 '대인방언'이 있다(행2:4,6~8,11).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방언을 말하고 있는데, 듣는 자가 자기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듣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마가 다락방의 120명 성도들의 방언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도 처음에는 대신방언을 했겠지만, 이윽고 방언소리를 듣고 찾아온 15개국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향하여 방언으로 말을 한 것이다. 그러자 15개국의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언어로 그들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언의 유익은 자신이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의 언어를 모르고, 자신도 그 말을 할 줄 모르지만 방언으로 말했을 때 그 나라 사람이 알아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언은 아프리카의 오지에 사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유익하다. 셋째로는 '대물방언'이 있다(롬8:19~20). 이것은 타락하기 전의 상태에서 아담이 살아 있는 동물들 및 식물들과 대화를 나눈 것과 같은 종류의 방언을 가리킨다. 그러면 새와 나무 그리고 꽃들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이것은 동물물과 식물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 유익하다. 넷째로는 '대국방언'이 있다. 이것은 내가 다른 나라의 말을 모르는데, 갑자기 그 나라의 말로 말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영어나 독일어, 중국어를 배우지도 않았고 할 줄도 모르는데, 갑자기 그 나라의 언어들을 사용해 자유자재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할 때에 매우 유용한 방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방언을 하는 방법에 따른 방언의 종류와 유익을 살펴보자. 첫째로, '대화방언'이 있다(고전14:2). 주님과 대화하듯이 말하는 방언인데, 이때 주님으로부터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만약 이 방언이 통역이 된다면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 예언처럼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대화방언을 잘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개인과 교회와 국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어 유익하다. 둘째로, '기도방언'이 있다(고전14:14). 주님께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방언이다. 그런데 이 방언이 놀라운 것은 이 기도방언에는 단 한 마디도 쓸모없는 방언이 나오지 않고, 정욕적이고 이기적인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로, '찬양방언'이 있다(고전14:15). 방언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방언 중에서도 최고의 꼭대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 방언을 하게 되면 영의 억압에서 많이 풀어진다. 고로 자신의 영을 붙잡고 있는 악한 영들로부터 억압이 풀려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 그러므로 찬양방언을 많이 하면 막혔던 영의 통로가 열려진다. 그러므로 방언찬양을 많이 하면 많은 다른 영적인 은사들을 받을 수 있다. 넷째로, '축복방언'이 있다. 다른 사람을 영으로 축복하는 방언이다. 주로 주의 종들이 성도들을 위해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 이 방언이 나온다. 다섯째로, '대적방언'이 있다(고전14:4). 이 방언으로 악한 영들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언은 매우 권세 있는 방언이다. 그리고 이 방언은 주로 단파방언으로 나온다. 이 방언을 한다면 영적 계급이 올라간다. 고로 이 방언을 말하는 자는 높은 계급의 귀신들까지도 제압할 수 있다.  

 

5. 방언의 유익을 정리해 본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가?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방언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각 방언에 따라 유익한 점도 각각 다르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방언들을 더 잘 말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언의 유익을 정리해 본다면 어떻게 정리해 볼 수 있는가?

  첫째, 모든 방언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으며, 틀린 것도 없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는 자신의 욕심이 들어가는 혼의 기도가 아니라 영이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개인 욕심이나 세상 욕심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한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방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둘째, 방언은 약해지고 작아진 자신의 영을 매우 강화시켜 강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악한 영들을 대적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자신의 영을 건축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방언은 어떤 귀신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단파방언을 지속해서 드릴 수 있다면 그는 영적 권세와 계급을 올릴 수가 있다. 

  셋째, 방언은 다른 영적 은사들을 가져오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방언 중에서도 찬양방언과 대적방언을 많이 하면 많은 다른 영적 은사들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적 통로를 열어 주는 고속도로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언을 하다 보면 방언통역을 하게 되고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게 되고, 능력들이 나타나고, 병고침의 은사도 나타나게 된다. 방언은 이런 은사가 나타나게 하는 기초이자 통로인 것이다. 

  넷째, 방언은 자신의 영이 하나님과 매우 가까워지게 한다는 것이다. 방언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방언은 복음 전파의 매우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로 쓰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이 대인방언으로 나오면 다른 사람도 내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요, 대국방언으로 나오면 배우지 않고도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아직도 한국 교회 안에는 방언은사를 터부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방언을 금하거나 꺼려한다. 그것은 아무래도 보수적인 교단쪽에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 방언은 모든 영적 은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나는 은사이자 다른 은사들을 가져오는 통로의 은사인 것을 알 수 있다.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데, 영 분별의 은사가 나타났다든지 병 고침의 은사가 나타났다고 하는 이야기는 들어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방언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다른 영적 은사들도 받게 되어 많은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집중적으로 다뤄 보았지만 방언도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종류의 방언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한 가지 은사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더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권면하였다(고전12:31). 그렇다. 은사는 성령께서 나눠 주시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모하는 자가 얻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사모하는 자가 얻지 못하는 은사였다면 바울은 이러한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사도 바울은 기초 은사로서 방언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하였고, 자신은 더 많은 종류의 방언들을 말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다양한 방언이 자신의 영적생활에 유익했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직접 이것을 실행해 볼 때에 그 능력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방언들을 말함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놀라운 유익을 많이 얻게 되기를 바란다. 

 

 

 

2023년 05월 28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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