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20)] 세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우린 무엇을 간과하고 있었는가?(막1:4~5)_2025-01-05(주일)

by 갈렙 posted Jan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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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rruLp9ltqq4
날짜 2025-01-05
본문말씀 마가복음 1:5~6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5-01-05(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교회론(20)] 세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우린 무엇을 간과하고 있었는가?(막1:4~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rruLp9ltqq4

 

1. 들어가며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마28:19).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은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세례를 주어야 한다(막16:16). 그렇다면 세례를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을 믿어서 죄사함을 받았다는 표시로 주는 것이요(막1:5), 그리스도와 이제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인치기 위해 주는 것이며(고전12:13),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확실히 알리기 위해 세례를 주는 것이다(롬6:3~4). 특히 사도 바울은 믿는 자가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인치는 것이라고 했다(갈2:20). 그렇다면 과연 세례를 받은 자들은 죄된 본성을 가진 옛사람이 진짜로 죽은 것인가? 더이상 내 속에 있는 죄된 본성이 죽었으므로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세례를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서, 오늘날 세례를 받을 때에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세례는 어떤 형식으로 받는 것이 좋은가?

  세례를 받은 방식은 2가지다. 하나는 침례를 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세례를 주는 것이다. 전자의 방법은 주로 침례교에서 행하는 세례방식이다. 그것은 사람을 물 속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내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방법은 주로 장로교에서 쓰는 방식인데, 이는 세례를 주는 자가 손으로 물을 떠서 세례받는 자에게 뿌림으로서 주는 세례방식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떤 세례방식을 말씀하고 있는가? 성경에서는 '침례'방식만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물 속에 사람을 담갔다가 다시 꺼내는 방식으로 세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침례의 방식으로 세례를 주었으며, 예수님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읽어보면, 빌립 집사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흐르는 물에 가서 세례를 주었다고 나온다. 그러므로 정확히는 나오지 않았어도 예루살렘 교회와 사마리아 교회 그리고 에베소 교회가 성도들에게 세례를 주었을 때에도 다 침례를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를 주었다고 하는 동사가 다 '밥티죠'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침례를 주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들어와서 개신교에서는 대부분 머리에 뿌리는 세례방식(관수법)으로 세례를 주고 있다. 아마도 세례방식을 중세시대에 천주교에서 주던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그렇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원래 세례는 침례를 주는 것이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3. 왜 세례를 줄 때에는 침례의 방식으로 주는 것이 더 나은가?

  그렇다면 왜 세례를 줄 때에는 관수법으로 하지 않고 침례의 방식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 더 마땅한가? 설령 그렇게 세례를 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세례는 침례방식으로 주아야 한다는 것을 왜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침례방식이 세례의 본질적인 의미를 그대로 재현해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침례를 줄 때, 사람을 물 속에 장사지낸다. 그리고 다시 물 속에서 끌어올린다. 이것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이와같은 사실을 알고 침례가 들려주는 영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안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안으로)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안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을) 말미암아(통하여)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 세례를 줄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줄 수도 있지만, 사도행전에 나오는 4번의 세례사건을 보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그분의 죽으심 안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요, 다시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분과 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세례의 형식으로 보여주려면 역시 침례방식으로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은 누구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옛 사람과 새 사람이다.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죄된 본성을 따라살던 옛 사람이 죽은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주는 영이신 성령을 받아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럼, 왜 믿는 이들에게 이렇게 침례를 주는가? 그것은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김으로, 죄의 몸을 죽게 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된 몸 곧 죄된 본성이 지배하는 옛 사람을 죽음에 넘기는 것이다. 그리고 옛 사람이 죽음과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4. 자신의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났다고 간주하면 더 이상 죄가 우리 몸을 주장할 수 없는가?

  사도 바울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살아났다고 간주하면 그는 더이상 죄가 그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롬6:11~14). 그리고 옛 사람을 장사지내고 새 생명으로 다시 살고 있다고 자신을 간주했을 때에, 어느 정도 죄악된 본성을 이기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선언할 때에, 어느 정도 자신의 성질을 죽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유대인들이나 우상숭배의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타당할지 모르나,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5,000년동안 무당을 섬기고, 1,000년 동안 부처를 섬기고, 500년 동안 죽은 조상을 신으로 섬긴 나라에서는 이것이 잘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나 악한 영들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값을 자손 3~4대까지 묻겠다고 하셨기 때문에(출20:5),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에, 그대로 조상속에 들어있는 영들을 계속해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는 악한 영들이 쌓이고 쌓여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실행도 어느정도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몸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다 처리할 수가 없다. 그 이상의 방법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5. 세례 요한은 사람이 죄들의 사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했는가?

  그런데 세례 요한은 분명히 말하였다. 사람이 죄사함을 받게 회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면 자기가 지은 죄들을 자백하되 철저히 자백해야 한다고 말이다(막1:4~5). 

막1:4~5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그러니까 세례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사함이 일어나게 하는 세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복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엑소몰로게오'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철저히 자백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호몰로게오'(자백하다. 시인하다)는 단어에다가 강조접두사인 '에크'가 같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세례를 받으려면  자기의 죄를 자백하되 보다 더 철저히 자백한 후에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6. 오늘날 우리가 세례를 줄 때에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오늘날 세례를 받을 때에는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줄 때에는 그렇게 세례를 준 것이 아니었다. 철저히 회개한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던 것이다(막1:5).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철저히 회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기도문은 자신의 죄들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죄까지 자백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몸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조사해보면,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내게 내려온 영이 약 80~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지은 죄로 인하여 받아들인 악한 영들은 10~20%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지은 죄만을 자백하는 것으로 우리 몸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전부 다 제거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을 아무리 적용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귀신들은 여전히 내 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저히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귀신의 공격을 받게 된다. 그것도 우리가 사는 모든 날동안 귀신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질병으로 괴롭히고, 가난으로 괴롭히고, 신기를 주어서 괴롭히고, 앞길을 막아섬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죄사함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보다 더 철저히 자신이 지은 자범죄들과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자백해야 한다. 이 방법 이외에 그리스도인이 자기에게 불어닥치고 있는 저주를 떠나보내는 방법은 없다. 

 

7. 나오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함으로 대부분 구원의 노정 안으로 들어간다. 왜냐하면 그렇게 믿고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과거의 죄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그 죄들이 예수님의 피에 의해서 덮혀져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과거의 지은 죄를 자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몸 속는 여전히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악한 영들이 주는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낱낱이 자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죄된 본성으로 일컬었졌던 귀신들이 우리 몸에서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과거에 예수님을 믿어서 세례를 받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죄를 철저히 자백하는 회개가 정말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자백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값을 받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세례를 받음으로 옛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적용하는 것과는 별개로 과거에 지었던 죄를 자백하는 것이 정말 시급하다. 만약 이러한 죄들을 회개하지 않고 있다면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영들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내 자식과 손자에게 또 내려갈 것이다. 그러므로 점점 더 영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날 심각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고, 그러면 그때에 우상숭배의 결과들이 우리 몸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그때부터 회개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회개를 한 자만 죄된 본성 곧 귀신들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하면 악한 영들이 우리 몸 속에서 떠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자이든 세례를 아직 받지 않은 자이든,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더 나아가서는 조상들의 죄까지도 철저히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5년 01월 05일(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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