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41)] 율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한 이유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롬9:30~10:15)_2025-06-15(주일)

by 갈렙 posted Ju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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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wGi7v1W4Jw
날짜 2025-06-15
본문말씀 로마서9:30~10:15(신약 253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5-06-15(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로마서강해(41)] 율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한 이유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롬9:30~10: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hwGi7v1W4Jw

 

1. 들어가며

   유대인들은 율법을 열심히 따라갔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하나님의 의(義)에 이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렇다면 율법을 열심히 따라가며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든 일은 더 허사였단 말인가? 그런데 만약 그 모든 것이 허사였다면 구약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전부다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이 옳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인물들 중에서도 구원얻은 자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유대인들 중에는 과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의(義)를 얻게 되었고 구원받을 수 있었으며, 반대로 율법을 따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얻지 못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오늘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교훈을 주는가?

 

2. 구원을 얻기 위해 그토록 수고한 유대인들의 결정적인 실수는 무엇인가?

  율법 아래 살았던 유대인들 중에는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시대에 들어와서 유대인들은 거의 구원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도 유대인의 한 명이었지만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롬9:30~32 의의 [율]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1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2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랬다. 율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義)를 얻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 가지였다. 그것은 그들이 율법이 말하고 있는 바를 믿지 못하고 율법의 행위를 의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채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을 믿지 않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율법 아래에 태어난 유대인들이 십계명을 안 지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그건 아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아야 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어떤 영생을 얻기를 갈망하는 청년에게  영생에 들어가려면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9:16~19). 성경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할 것 없이 십계명은 항상 있을 것이며, 그것은 지켜져야 한다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십계명을 지키려 한 것은 아주 잘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실수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3. 유대인들이 구원받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구약의 율법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지켜야 할 율법이 있고, 또 하나는 믿어야 할 율법이 있었던 것이다. 지켜야할 율법이란 도덕법으로 주어진 십계명을 가리킨다. 그런데 또 하나의 율법 말씀이 있으니 그것은 믿어야 할 율법이었다. 그것은 바로 여러 의식법들이다. 할례법, 안식일법을 포함한 절기법, 정결법, 음식법, 제사법(제사장법, 성막법) 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크게 실수하였다. 왜냐하면 믿어야 할 것으로 주어진 의식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무신장 안간힘을 썼다. 예를 들어 그들은 안식일법을 목숨처럼 지켰다. 그래서 심지어 안식일에는 병자를 고쳐주지 않았다. 이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그날에 일하지 아니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안식일을 주신 것은 그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데에 있지 않았다. 육체의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약자들을 보호해주시기 위해 주신 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약자들에게 그날 숨 좀 돌리도록 일을 시키지 말라고 하는 의도에서였다. 고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법을 주신 이유는 약자들에게 쉼 곧 안식을 주려고 시키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쳐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는 것이 병자에게 쉼 곧 안식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이기 때문이다(마12:8). 그래서 그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1:28~29). 그러므로 사람이 진정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안식을 주러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된다. 그래야 참된 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안식일법을 주신 근본적인 이유는 참된 안식을 주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붙들라고 주신 법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의식법들은 다 실체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구약의 의식법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모형이자 그림자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의식법들은 그것이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실체이신 예수님을 붙들라고 주신 법이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끝까지 의식법들을 문자 그대로 지켜려고만 하였다. 더욱이 안타까운 일은 문자 그대로 의식법들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이 곧 율법을 어긴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누구든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유대인들 중에 그 누구도 의식법을 문자 그대로 지킬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법에 대해 일생에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안식일에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먼지를 털면 그것은 안식일을 어긴 것인가?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일이라고 랍비가 해석했다면, 그때부터 그 일은 안식일을 어긴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어떤 안식일의 규정이든지 그것을 강하게 적용하면, 어느 누구도 안식일법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 중에서 의식법들을 지키라고 주신 법이 아니라 그것의 실체를 붙들라고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문자 그대로 지키려는 시도는 오히려 자신에게 굴레를 씌는 것과 같았다. 그들에게 율법은 일종의 멍에였던 것이다. 그래서 율법은 자기도 메기 어렵고 남도 메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의 모든 규범들 곧 도덕법인 십계명과 또한 의식법들까지 다 지키며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유대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율법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다 죄인이 될 뿐이었던 것이다. 

 

4. 구약시대의 유대인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가?

  고로 구약시대에 태어난 유대인이라면 그는 반드시 십계명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율법을 지키지 못해 지은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 제사법에 따라 제사를 드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율법의 금령 중 하나라도 어겼을 때에는 속죄제사를 드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율법에는 지켜야 할 십계명 법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겼을 경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율법도 같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의식법의 하나인 제사법인 것이다. 그러니까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것을 용서받으려면 의식법의 절차에 따라 제사를 드리면 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율법 아래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따른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먼 곳에 살고 있는 자라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까지 와야만 했고, 또 사용할 제물을 사서 제사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가지 죄목에 한 가지 제물이 드려져야 했다. 그러므로 제사는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죄에 따른 제물을 장만할 돈도 없었다.

  그러므로 의식법들은 사실 그것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장차 속죄제사의 제물로 오실 예수님을 붙들라는 주신 법의 하나이다. 장차 오실 메시야를 믿어서 속죄받으라고 주신 법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고전5:7)으로 오셨고, 속죄제물로서 이 땅에 들어오신 것이다(막10:45). 그래서 십계명을 지키지 못했던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서 우리 주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서 죽으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드린 제사는 단 번에 드린 제사이지만 영원한 제사였기에, 어떤 죄를 지었더라고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들어와 모든 사람들은 항상 제물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용서받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사람들은 여러 번 값비싼 제물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그분이 우리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속죄제물로 오셨음을 믿고 죄를 자백한다면 바로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 중에 의식법들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붙잡지 않았다. 의식법의 규정을 그대로 지키려고만 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구약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씀이니 그것을 믿으라고 말이다(요5:39). 여기에서 구약성경이란 율법 중에서 의식법들과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율법 중 의식법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소개해주고 그것을 붙들라고 주신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말씀들도 역시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과 더불어 메시야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은 의식법들의 실체이자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를 믿었어야 했다. 그러면 그들도 율법 아래에 있으면서 구원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의식법들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붙들지 않고 계속해서 의식법들의 규정만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끝없은 죄목들이 계속 추가될 뿐이었다. 그러므로 율법 안에서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는 그들의 시도는 전부 실패하고 만 것이다. 

 

5. 신약시대 들어와서 이방인들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었는가?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구원에 대한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것은 율법의 저주로부터 인류를 속량하고 죄사함을 받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율법 중에서 십계명을 지키셨을 뿐만 아니라 의식법들이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다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께서는 절기법들 중의 하나인 유월절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유월절의 양이 되시어 유월절에 죽으시면서 십자가에 흠없는 피를 뿌리셨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자신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십계명을 지키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의식법들을 직접 자신의 몸으로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다 죄들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죄를 지어 이미 죄인인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어떤 죄든지 그 모든 죄들을 용서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직접 자신이 유월절 양이 되시어 죽음으로서 죄값을 대신하신 속죄양을 믿으면 죄용서를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죄인이라도 유월절 양이자 속죄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용서를 받아서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방인들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따라간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쟁취할 수 있었지만, 율법의 의식법들마저 그대로 지키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의(義)에 이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6.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이방인 성도들의 실수는 대체 무엇인가?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믿음의 법으로 구원받은 이방인들도 여전히 유대인들처럼 실수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이방인들은 너무 믿음만을 강조하다가, 그만 칭의를 얻은 이후의 삶 곧 자신의 속사람이 거룩케 되고 또한 천국에서 받을 자신의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놓쳐버린 것이다. 그래서 개혁교회의 전통 아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믿음만 있으면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고, 또한 어떤이는 자신이 구원받은 것은 이미 만세전에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것이므로, 자신의 구원은 안전하며 흔들릴 수가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변치 않는 한, 자신이 받은 구원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크게 잘못된 믿음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자신이 일차적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죄를 짓고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마지막 날 죽는 순간에 지는 자가 되어서,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면서 동시에 성밖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3:5, 22:15). 왜냐하면 다시 오실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오시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우리 믿는 이들의 신랑으로 오실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 자신의 더럽혀진 옷을 빨지 아니하고 더러운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있다면 그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그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계22:15). 주님은 더러운 자를 자신의 깨끗한 신부로 맞이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날에 오시는 예수께서는 죄용서를 하시러 오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날 오시는 우리 주 예수께서는 심판하시는 분으로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더 이상 자비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때는 오직 공의로온 심판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칭의를 얻어서 구원받은 상태에 있다면, 그는 끄대부터 2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첫 번째는 자신이 과거에 지었던 죄들과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들을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었던 죄들과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이미 자기 몸 속에 더러운 귀신들이 들어와있기 때문이다(마12:43~45). 그리고 이러한 귀신은 오직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서만 내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요일1:9). 그렇지 않으면 내 몸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영들은 다 깨끗함을 받지 못한 저주받은 영들이기 때문에 그들로 인하여 내 삶은 계속해서 저주가 떠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지금도 여전히 질병의 저주, 가난의 저주, 신기의 저주, 막힘의 저주 가운데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때부터 그는 자신에게 저주를 가져다 주고 죄를 짓게 유혹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회개를 통해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천국에 들어가는데에 이러한 사실이 걸림돌이 되지 않게 된다.

  둘째는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가 되었으면 이제는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가 받게 될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급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첫째로, 날마다 하나님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롬8:14). 둘째로, 주와 복음전파를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아야 한다(롬8:17~18). 셋째로, 어떤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천국에서의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급을 위하여 참고 견디며 그날을 기다려야 한다. 한 마디로 이는 주와 복음을 위하여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천국에서 받을 나의 기업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종교개혁이후의 세대에 태어난 믿는 이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믿음만 있으면 다 구원받는다고 하는 믿음 지상주의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칭의를 얻고 속죄를 얻고 중생을 얻는 것은 사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성화를 이루고 영화를 위해 힘써 달려가는 일은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날마다 죄된 본성을 따르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롬6:11,13, 갈2:20). 날마다 자기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롬8:14). 그리고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것을 드려야 한다(롬8:17). 시간을 드리고 물질도 드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라도 주와 몸된 주와 복음전파를 위해 기꺼이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받게 되는 어떤 고난과 핍박도 잘 견뎌내야 한다. 그래야 천국에서 높은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급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받은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급이 천국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이상의 사실을 살펴 보면 하나님의 백성중에 유대인들의 어리석음도 있고 이방인들의 나태함도 여전히 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방인인 그리스도인들도 영적인 무지에 빠져서 나태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남은 때를 천국을 준비하는 데에 사용해야 하는데,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준비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종교개혁의 후혼들은 자신의 구원은 이미 만세전에 예정된 것이니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님이 자신을 구원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로 구원하셨으니 천국에 들어가면 자신도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어떤 이는 천국에 들어가면 다같이 왕같은 제사장들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구원은 은혜로 받은 것이지만 천국에서 받을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은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단호하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구원과 상급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지만, 상급은 우리의 수고와 땀과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에 주어진다. 그것은 죄인을 회개시켜 구원받게 함으로 천국에 들어갈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산출할 때에 주어진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줄 때 주어진다. 그러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에게 높은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급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 그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곧 있으면 그날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시간이 없다. 우리에게는 회개하고 주의 일을 감당할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한다면 지금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충성해야 할 일이 있다면 지금 충성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미래를 위하는 우리의 가장 확실한 대비인 것이다. 

 

 

2025년 06월 15일(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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