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선포하고 명령하는 기도는 과연 언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막11:22~2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_1b9NhrRFkw

[설교요약]
본 설교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해하고 있는 ‘선포하고 명령하는 기도’의 본질을 성경적으로 명확히 규명한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이며, ‘명령과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권세를 사용하는 영적 행위임을 분명히 구분한다. 이 밀씀은 축사와 치유라는 위임된 영역 안에서 언제 ‘명령’을 사용하고 언제 ‘선포’를 사용해야 하는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나아가 모든 권세 사용의 전제 조건인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간구와 명령, 선포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수동적 신앙을 넘어 하나님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풀어놓는 능동적인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역설한다.
1. 들어가며: ‘명령하는 기도’라는 위험한 오해를 넘어서
우리는 종종 ‘선포하고 명령하는 기도’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는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것을 넘어, 보다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삶에 나타내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표현 속에는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심각한 신학적 오해의 소지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밀한 의미에서 ‘명령하는 기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도란 본질적으로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겸손히 아뢰고 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도의 주권과 최종 결정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 반면, 명령이란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지시하는 행위이다. 만약 우리가 기도와 명령을 혼용하여 하나님을 향해 명령하려 든다면, 이는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는 심각한 교만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명령’과 ‘선포’의 권세는 어떤 것이며, 이는 ‘기도’와 어떻게 다른가?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1장에서 무화과나무를 향해 선포하시고(막11:14), 산을 향해 명령할 것을 가르치시며(막11:23), 이어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말씀하심(막11:24)으로써 이 세 가지 영적 행위를 분명하게 구분하셨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언제 그리고 어떻게 기도하고, 또 언제 어떻게 명령하고 선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 기준을 정립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위험한 오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권세를 올바로 사용하여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2. 명령, 선포, 기도, 과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영적 권세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명령과 선포과 기도의 세 가지 개념의 차이부터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 셋은 모두 믿음의 말을 사용하는 행위이지만, 그 대상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명령'(Command)은 하나님께 위임받은 권세로 악한 영과 질병을 꾸짖는 행위이다. 이때 명령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어둠의 세력과 그 결과물인 질병,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몸과 환경이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향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1:25),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9:25)고 꾸짖으시고, 바람을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막4:39)고 하신 것이 바로 명령이다. 이는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직접 대적을 제압하고 묶는 공격적인 영적 행위이다.
둘째, '선포'(Declaration)는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현재에 선언하는 행위이다. 선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이나 계시를 통해 이미 확정된 미래의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입술로 고백함으로써 그것을 현재의 시간 속으로 끌어오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열 두 해를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라고 선포한 경우, 그리고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막11:14)고 선포하신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는 단순한 소망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며 선언하는 창조적인 말의 권세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종합해 보면, 강력한 ‘명령’이 약 80%를 차지했고, ‘선포’는 약 20% 정도로 신중하게 사용되었다.
셋째, '기도'(Prayer)는 이 모든 권세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구하는 행위이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기도의 3단계를 가르치셨다. 먼저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하는 ‘구하는 단계’가 있고, 이어서 우리가 직접 발로 뛰며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찾는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 하는 ‘두드리는 단계’가 있다(마7:7-8). 이처럼 기도는 우리의 노력과 더불어 시작과 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소통이다. 그러므로 명령과 선포는 우리가 피조물을 향해 사용하는 ‘위임된 권세’이며, 기도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자녀의 특권’임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3. 명령과 선포는 대체 무엇에 근거하는가? 말의 권세와 ‘하나님의 믿음’
과연 우리 인간의 말에 어떻게 강력한 권세가 담길 수 있는 것인가? 그 근거의 시작은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에 있다(창1:26~27).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처럼 말을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창조의 역사를 이룬다.
사55:10~11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그렇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입밖으로 나오면 반드시 성취되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말에도 영적인 실재를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기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잠18:21)라고 말하면서 이 원리를 지지해 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말의 권세를 사용하는
핵심 원리를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는 한마디로 요약하여 알려주셨다.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는 ‘하나님의 믿음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으라’는 현재 명령형이다. ‘하나님의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의심이 전혀 섞이지 않은,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창조적인 믿음이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할 때, 우리의 명령과 선포는 더 이상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하늘의 능력을 이 땅에 풀어놓는 통로가 된다.그리고 이러한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대위임명령을 통해 오늘날에는 바로 우리 믿는 자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마28:18),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위임하셨다(마10:1). 그리고 이 권세는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명령과 함께, 시대를 넘어 교회의 사명 속에 계속해서 계승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로서, 우리를 섬기도록 보냄 받은 천사들(히1:14)보다 더 높은 영적 권위를 가지고 이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4.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 명령과 선포의 올바른 사용법
그렇다면 이러한 강력한 권세를 과연 우리는 언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것이 반드시 ‘회개’를 전제로 해야 하며, ‘축사(逐邪)’와 ‘치유’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의 권세는 위임된 권세이기 때문이다.
첫째, 모든 명령과 선포의 시작은 ‘회개’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삶의 문제, 특히 영적인 문제나 질병의 배후에는 거의 다가 악한 영의 활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한 영들은 우리의 ‘죄’를 발판 삼아 합법적으로 역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악한 영을 향해 명령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들에게 저주하는 활동의 빌미를 제공한 나의 죄와 특히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우상숭배와 같은 뿌리 깊은 죄들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덮을 때, 악한 영들은 힘을 잃고 떠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요일1:7,9). 회개 없는 명령은 기초 없는 건물과 같아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둘째, 위임된 권세인 ‘명령’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회개를 통해 영적인 기반을 다졌다면, 이제 우리 안에 있는 질병과 어둠의 영들을 향해 담대히 명령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에게 “깨끗함을 받으라”(막1:41)고 명령하셨듯이, 우리는 우리 몸의 아픈 부위와 세포를 향해 “내 몸의 세포는 건강할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의 영은 떠나갈지어다!”라고 구체적으로 명령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몸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셋째, ‘선포’는 신중하게, 성령의 확신 가운데 사용해야 한다. 선포는 미래의 일을 현재로 끌어오는 강력한 행위인 만큼,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는 ‘공수표’가 될 위험이 있다. 예수님께서도 환상을 통해 결과가 확실할 때나 하나님의 뜻이 명백할 때 주로 선포를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함부로 선포하기보다, 깊은 기도 가운데 성령께서 주시는 분명한 감동과 확신이 있을 때 신중하게 선포해야 한다.
5. 나오며: 간구, 명령, 선포의 균형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라
선포하고 명령하는 권세는 우리를 수동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적극적으로 이루어가는 능동적인 동역자로 세우는 놀라운 무기이다. 그러나 이 무기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합하도록, 파괴와 저주가 아닌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이고 강력한 신앙생활은 이 세 가지 영적 행위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모든 문제 앞에서 겸손히 하나님께 ‘간구’하며 그분의 뜻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확인되었을 때, 그 뜻을 가로막는 어둠의 세력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명령’하여 내쫓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회개하여 깨끗해진 우리의 삶과 가정, 교회 위에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이 임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한다. 이처럼 간구로 하늘의 문을 열고, 명령으로 어둠을 몰아내며, 선포로 약속을 성취하는 균형 잡힌 기도의 용사가 되자. 그리하여 더 이상 문제에 끌려다니는 패배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로 세상을 다스리며 날마다 승리하는 이 시대의 여호수아 세대로 굳건히 서게 될 것이다.
2025년 08월 17일(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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