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나라를 살리는 지도자의 리더십(2)(느5:1~19)_2016-08-28

by 갈렙 posted Aug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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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noZj-QhpZ4w
날짜 2016-08-28
본문말씀 느헤미야 5:1~19(구약 73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성벽공사, 백성들의 고충해결, 외부의 대적 척결, 느헤미야의 리더십, 보범된 삶, 율법준수촉구, 십일조와 안식일준수

  느헤미야, 그는 종교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갑자기 정치지도자로 파송받은 자였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종교지도자도 해내지 못할 일들을 해내었다. 대체 그의 리더십은 어디에서 나왔으며 그는 어떻게 자신의 사명과 대내외적인 난제들을 극복해 나갔을까?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하기 위해 힘쓴 느헤미야의 리더십에 관핸 살펴보도록 하자.

  바사제국의 제5대 아닥사스다왕에게 술관원으로 섬기고 있었던 느헤미야. 그의 민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과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조국이 황폐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앉아서 울며 금식했던 그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신다. 결국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의 재가를 얻어 고국에 들어간 뒤에 성벽을 쌓게 된다. 하지만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성벽공사뿐만이 아니었다. 2가지가 더 있었다. 하나는 백성들의 고충을 헤아려 해결하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외부의 적들의 간교한 공격을 막아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느헤미야는 이러한 3가지 과제를 어떻게 잘 수행할 수 있었을까?

  첫째, 그의 성벽공사 숙제를 보자(느4:1~8, 5:15). 그가 유다총독으로 파견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 무너진 성벽을 수축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70년동안 버려진 땅인지라 예루살렘은 이미 사마리아와 암몬 사람들의 수중에 있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의 총독이었던 산발랏과 암몬사람들의 총독이었던 도비야가 성벽공사를 진행하는 느헤미야를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았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공사하러 왔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비웃고 조롱했다. 그리고 좀 더 있다가는 군사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쳐들어 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느4:1~8). 느헤미야는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그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는 성벽건축과 예루살렘 방어를 동시에 진행해 나갔다. 절반은 일하게 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벽공사는 52일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둘째, 백성들의 고충에 관한 숙제를 보자(느6:1~13, 14~19). 성벽공사를 한참 진행될 무렵 예기치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백성들이 과중한 부역을 담당하고 아닥사스다왕에게 세금까지 바쳐야 했기에 빌어먹고 살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흉년까지 들어 결국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잡히고 곡식을 구해야 했으며, 결국에는 자신의 자녀들까지 종으로 팔아야 했다. 그러니 어찌 성벽공사에 전념할 수 있었겠는가? 이때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우선은 율법대로 행하지 않는 있는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었다. 같은 민족이면서 높은 이자를 받고 있고 같은 형제와 자매들이면서도 율법규정을 어기면서 그들을 종으로 사고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느헤미야는 율법규정에 따라 종들을 돌려보내고, 높은 이자를 받지 말도록 설득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같이 어려움을 나눈다면 받는 고통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망후에 느헤미야는 그들을 설득하여 돈과 양식 때문에 찾아온 가난한 유다백성들로부터 높은 이자를 취하지 말도록 하였고, 들어온 밭과 포도원과 집은 그냥 돌려주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제사장들을 불러다가 맹세를 하게 했다. 결국 고통분담이 이뤄지니 백성들의 원성은 잦아들게 되었다.

  더욱이 느헤미야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결코 남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백성들의 고충을 헤어려 자신이 마땅하 받아야 할 녹을 백성들로부터 받지 않았다(느5:14~19).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고리대금도 하지 않았으며, 땅투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했다. 그는 사실 총독이었기에 다른 총독들처럼 백성들로부터 양식과 포도주와 세금을 거두어 사용할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그러한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유다총독의 상 위에서는 함께 먹는 유다사람들과 민장들을 위한 고기까지도 다 사비로 충당하였다. 왜냐하면 백성의 부역이 중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모범된 삶은 고통분담에 참여하고 있는 귀족들과 민장들의 소리마저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외부의 적들에 관한 숙제를 어떻게 감당했는지 보자(느6:1~14, 13:4~31). 비록 당시 느헤미야가 유대총독으로 부임했지만 사실상 유대는 이미 사마리아총독인 산발랏과 암몬사람의 총독인 도비야의 수중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미 귀족들과 제사장들은 산발랏과 도비야와 결혼으로 인척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느헤미야의 일거투일투족은 이미 다 그들에게 착착 보고되고 있었다. 그러니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공사가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백성들의 원성도 잦아들게 되자, 대적 산발랏과 도비야는 느헤미야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총 5번에 걸친 암살계획에 결코 말려들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본연에 일에 충실하여 성벽을 건축할 수 있었다(느6:1~4). 그러자 산발랏은 평화회담 제의방식을 바꾸어 유언비어를 퍼뜨린 후에 느헤미야를 회담장으로 불러들이려고 시도하였다(느6:5~9). 하지만 유언비어는 유언비어일 뿐이었기에 느헤미야는 그것을 변호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산발랏과 도비야는 뇌물수수와 친인척비리를 이용하여 느헤미야의 지도자의 권위를 실추시키고자 하였고  범죄하도록 유도했다(느6:10~14). 이는 암몬총독 도비야가 뇌물을 주어 하나님의 선지자 스마야에게 거짓예언을 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느헤미야는 금방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숨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도자가 자기 한 목숨을 살겠다고 도망쳤다는 소문과 아울러,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전에 들어갔다고 말함으로 그의 명예와 권위를 실추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느헤미야는 그의 간교한 계획에 말려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산발랏과 도비야가 숨겨놓은 사람들 즉 친인척들을 이용한 간교한 작전에도 말려들지 아니했다. 오히려 산발과 도비야와 친인척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들을 다 쫓아내었고(느13:23~31), 도비야를 위해 마련해준 성전의 큰 방에서 그의 기물들을 던져버려 깨끗히 하였다(느13:4~9). 그리고 어려운 때를 이용하여 슬그머니 이행하지 않고 있는 백성에게 십일조를 하게 하여 먹을 것이 없어 일터를 찾아떠난 레위인들을 돌아오게 하였고(느13:10~14), 안식일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도록 성문관리를 철저히 하여 일절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였다(느13:15~22). 결국 예루살렘 도성은 하나님의 도성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다. 우리도 이러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고, 현재의 지도자라도 이러한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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